토끼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김부식의 <구토설화龜兔說話)>
옛날 동해 용왕이 병들어 앓고 있었다.
의원이 말하기를,
“토끼의 간을 구해 약을 지어 먹으면 낳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다 가운데 토끼가 없으므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이때 한 거북이가 용왕께 자신이 구해 오겠다고 아뢴다.
거북은 마침내 육지에 올라 토끼를 만나 말한다.
“바다 가운데 한 섬이 있고 그곳에는 맑은 샘과 맛있는 과일이 많고
날씨도 적당하며 매나 독수리들도 없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토끼는, 같이 가자고 따라나선다.
그리고 한 2, 3리 헤엄쳐 가다가
거북이는 토끼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토끼는 말한다.
“나는 신령의 후예이다. 간을 내어 씻었다가 다시 넣곤 한다.
마침 그것을 꺼내어 바위 위에 말려 두었다.
나는 간이 없어도 사는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거북은 토끼의 이 말을 믿고, 토끼를 도로 업고 돌아서서 육지로 올라갔다.
토끼는 풀숲으로 뛰어 들어가며 거북에게 말한다.
“참 어리석다. 거북아. 간 없이 살 수 있는 놈이 있느야”하였다.
거북은 가련하게도 아무 말도 못하고 바다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를 윤정구 교수는 <주인의 삶을 복원한 이야기>로 해석한다.
토끼의 마지막 질문은 거북이에게 한 말이라기보다는,
토끼 자신에게 한 통렬한 성찰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마치 간을 자신 몸 밖에 떼어놓고 살 수 있는 것처럼,
주체성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처럼 살다가 주체성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닫은 용왕에게 간을 넘겨줄 뻔했던 사건에 대해 반성한 것”이라는 것이다.
용왕처럼,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간(주인 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고유한 생명은 사라진 무미건조한 삶이라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에 담즙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는 표현이 있다.
‘아부와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쓸개 빠진 놈’이라는 표현도 있다.
‘줏대가 없고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을 말한다.
한 마디로 간과 쓸개가 없어서
담(쓸개)즙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삶을 상징한다.
‘쓸개 없다’는 말은 자신의 것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의 주체성을 마치 자기 것으로 취하는 행위에도
최소한 상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로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윤정구(이대사회심리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