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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오드리 헵번
⊙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으로 범띠 해다. 우리 집에 범띠는 둘째 손자 태원이뿐이다. 태원이한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하고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책이 이 책이다. ‘한 줄 인문학’이라고 하지만, ‘100가지 인생 문장’이라고 책을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주제도 다양하고 넓기도 한 것 같다. 그중에 몇 가지만이라도 손자들에게 전해진다면 책을 읽는 보람이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살아가면서 보면 내가 상대에게 어떤 입장이 있듯이, 상대도 내게 어떤 입장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그는 나를 이해하고 있는지 이런 것 말이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저자 김종원 선생은 독서에서도 중요한 것이 입장(立場)이라고 한다. “입장이 바로 책을 읽는 시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입장이 없는 독서는 어떤 지적 통로도 입장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학생이라면 학생의 입장에 맞는 해석이, 직장인이라면 직작인의 입장에 맞는 해석이 필요하다. 그것이 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읽는 방법이고 또한 중요하다”고 했다. 입장은 ‘당면하고 있는 처지나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책을 읽을 때는 책 읽는 입장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3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고 하는데, 세상을 살면서 적용할 때가 많은 것이 3의 법칙이 아닐지 모르겠다고 생각해 본다. 어떤 상황에서 ‘먼저 3초만 생각하라’,‘3초만 돌아보면 도울 사람이 있다’는 말처럼.. 이 책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과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보면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고 하였다. 1) 이 상황은 어떤 이유로 시작되었을까? 2)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3) 내가 이 상황의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 그것인데, 달리 말해 〈관찰법, 논리력,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관찰법’이란 다각도로 상황을 분석할 능력, ‘논리력’은 분석한 것을 논리로 풀어내는 힘, ‘창의력’은 1과 2 사이에 1.5가 있다는 것을 예상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1) 2) 3)에 대한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그 답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런 능력을 갖춘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인물 중에서 나도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오드리 헵번’을 꼽을 수 있겠다. 그녀는 영화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해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그보다는 국제구호단체 유니세프를 통하여 기부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2004년 그녀를 기리는 〈오드리 헵번 평화상〉이 제정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지 않았고, 자신이 어릴 때 어머니가 남긴 몇 가지 조언을 유언처럼 이야기했다. 그것은 “첫째, 친절하라! 친절은 가장 좋은 매너다. 둘째, 시간을 철저히 지켜라! 다른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먼저 생각하라. 셋째, 경청하라! 중요한 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넷째, 바른 자세를 유지하라! 똑바로 서고 몸을 곧게 세워 앉아라. 술과 사탕을 절제하라. 자제력을 잃는 것은 좋지 않다. 다섯째,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하라!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라.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끄는 데에 집중하지 마라.”어머니의 이 말씀을 깊이 새기고 살았던 그녀는 훗날 말했다. “나는 어머니의 인생관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오드리 헵번의 유년시절과 노년 시절
사람의 외모는 지금 순간에도 빛을 잃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잃어가는 것에 집착하면 삶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외모에 집착하는 것은 파멸로 가는 끈을 잡고 있는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나도 빛을 발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오드리 헵번’은 훌륭한 일을 했지만, 그녀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고 같이 했기에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가 있었다. 기품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함께’라는 단어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을 똑바로 보고 바른말을 하라! 내가 보는 것과 내가 내뱉는 말이 나의 마음이자 나의 일상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마음에 담은 것만 보는 삶은 바람직하지도 성공하지도 못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너무 멀리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은 마음의 눈으로 볼 수가 있다. 아이와 잠시 휴대전화를 끄고 시작해 보자. 누군가가 쓴 글을 필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부모가 각자 자신의 생각을 담은 ‘한 줄의 글’을 쓴다는 것은 영혼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증거다. 아픈 영혼을 치유하는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음악을 들어도, 영화를 봐도, 책을 읽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 무엇을 글로 쓰면서 채워보자.
여행이나 소풍에서 아이가 기억하는 건 부모와 함께 갔던 ‘장소’가 아니라, 부모와 함께했던 ‘순간’이다. 값비싼 파스타를 먹었던 유럽의 어느 식당이기보다 파스타를 먹다가 튄 소스가 얼굴에 묻어 놀라고 장난치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는 말이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장소가 아니라,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아이의 마음을 잊지 말자. 여행이나 체험 학습을 갈 때도 아이에게 필요한 건 훌륭한 가이드가 아니다. 구경하거나 사진찍기 좋은 곳을 소개하는 가이드 역할은 부모가 할 일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사색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아이에게 장난감을 마구 사주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장난감이 많아질수록 아이는 더 빠르게 싫증을 내고 새롭게 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사색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색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가 책 읽어주는 습관부터 바꿔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방에 수많은 책이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는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단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다. 아이가 만족할 때까지 함께 읽으며 사색에 빠지게 해야 한다. 또 책이 자신의 수준과 차이 나지 않으면 ‘사색 엔진’은 작동하지 않는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창의력을 자극해 주어야 한다. 독서는 답이 정해진 수학이 아니므로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것이다. 다르다는 것을 아는 아이는 사색하는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기보다는 예상 밖의 생각을 하는 아이의 창의성을 칭찬하고 감탄해 주자.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바꿀 것이라고 한다. 이에 쏟아지는 기사가 ‘10년 후 없어질 직업은 무엇인가?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부모가 사는 세상도 힘들지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도 힘든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한다. 세상과 시대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완벽한 경쟁력을 갖춘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은 오직 ‘독창성’을 기르는 것뿐이다. 독창성이란 ‘나를 나로 살게 하는 힘’이고 유일한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 최고의 경쟁력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 한 사람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미숙아로 태어났다. 불행한 환경 속에 허약한 몸으로 태어난 그를 최고의 시인으로 만든 건 고독에서 기른 독창성이었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것을 바라봐도 그는 다른 것을 보았고, 그의 시는 남달랐다. 하지만 그가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자질로 세상이 깜짝 놀랄 시를 섰던 것은 아니다. 누구나 릴케처럼 노력하면 독창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릴케가 알려준 독창성을 기르는 방법을 보자.
1) 억지로 한쪽을 편드는 글을 쓰지 마라. 생명력이 없는 교활한 글은 장난에 지나지 않으므로 되도록 비평보다는 긍정의 시선으로, 창조의 글을 자주 읽는 것이 좋다.
2)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내적 성장이 부족한 탓일 가능성이 높다. 내면의 명령에 잘 따라야 한다.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며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발전해야 한다.
릴케는 시를 쓰는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에 대해서도 말했다. “자연은 기다릴 줄 안다. 기다림 안에는 성장에 대한 믿음과 뜨거운 사랑이 담겨 있다. 나는 매일 뜨거운 마음으로 시를 쓰는 셈이다. 시를 쓰는 자연에서 시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세상에는 자연만큼 독창적인 것은 없다. 자연에서 배우지 않는다면, 평생 남의 뒤를 따라가며 모방자의 삶을 살겠다는 것과 같다.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생각해 보자. “달리는 자동차에서 잠을 자면 출발점과 도착점만 기억하게 된다. 잠자는 사람에게는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한다. 잠에서 깨어나라.”
조선 중기의 대학자 이황(李滉, 호 퇴계退溪, 1502.1.3.∼1570.1.3.)은 단양·풍기군수 등을 지내기도 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도산서원에서 후학을 기르다가 70살 생일날에 죽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죽기 한 달 전쯤에 죽음을 예감했는지 제자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5일 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빌린 책을 모두 돌려주게 했다. 또 다음날에는 조카에게 유서를 쓰게 하였고, 죽기 하루 전날에는 제자인 이덕흥에게 자신의 책을 모두 넘겨주면서 올바른 삶을 살 것을 당부하는 등 자신이 살아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마치고 생일날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을 어머니에게 배운 몸가짐에 관한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았는데, 그것을 ‘수신십훈(修身十訓)’이라고 하여 한시도 흐트러짐이 없이 살았다. ‘주자십훈(朱子十訓)’과도 비교되는 수신십훈을 보자.
1. 입지(立志) : 공자가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한 것처럼 뜻을 세웠다는 말이다.
2. 경신(敬身) : 제멋대로, 불손하지 굴지 말자. 언제나 몸을 경건히 하자.
3. 치심(治心) : 마음을 다스린다. 고요하고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4. 독서(讀書) : 책을 부지런히 읽되 뜻을 이해해야 한다.
5. 발언(發言) : 말은 정확하고 간결하게 이치에 맞게 한다.
6. 제행(制行) : 행동은 바르고 곧게 한다.
7. 거가(居家) :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 우애하며 가정에 충실한다.
8. 접인(接人) : 만나는 사람은 성실과 신의로,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한다.
9. 처사(處事) : 옳고 그름을 철저히 분석하고, 분노와 욕심 없이 일을 처리한다.
10. 응거(應擧) : 시험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최선을 다한 뒤 천명을 기다린다.
흔히 길을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을 하는 아이들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는 달려가 자제시키는 것이 좋다. 스마트폰을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은 앉아서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 때문에 그런가 하면 걸을 때는 검색하거나 동영상을 볼 것이 아니라 사색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걸으면서 하는 행동은 중독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걸으면서 음식을 먹는 것, 담배를 피우는 것도 그렇다. 걸을 때는 가슴을 펴고 앞을 바라보고 걷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좋다. 눈으로 본 것과 가슴으로 느낀 것을 마음에 담고 느낀 것을 서로 연결하면서 사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창조적인 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몰입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 좋은 예가 에디슨에게 배워야 할 것이다. 그는 계란에서 병아리가 깨어 나오게 하기 위해 밥 먹는 것도 잊고 헛간에서 계란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창조와 몰입은 아이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내 삶을 제어하고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을 읽고 필사해 보자.
세상이 갈대처럼 흔들릴수록,
나는 바위처럼 무거워져야 한다.
세상이 나를 끈질기게 유혹할수록,
나는 바람처럼 유연해져야 한다.
세상은 나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내 모든 것은 내가 제어한다.*제어 시스템을 원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
나는 내 뜻대로만 움직인다.
창조자가 되기 위해서는 밖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준비되지 않으면 그 창조의 힘을 발견할 수 없다. 어느 장소에서라도 주체적이라면 무엇이든 배우고 실천할 수 있다. 주인의식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세상에 살기 쉬운 시대는 없다.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도 마찬가지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식으로 창조력을 자극할 수 있다면 아이는 어떤 시대도 돌파할 힘을 기를 것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도 자기 일을 알아서 개척하는 아이, 가로막아도 스스로 돌파할 수 있는 아이, 그 모든 삶의 중심에 ‘창조력’이란 힘이 있고, 그것은 주인의식을 통해 기를 수 있다.
옛날보다는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또 그것을 시험과목으로 도입하고 있기도 하다. 논술과 말을 잘하고 또 잘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것은 ‘논리적이고 창의적으로 말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방법’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누구에게 왜 내 생각을 말하는지 생각해 보면 알게 된다. 상대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내 생각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아이들은 정치인도, 기업인도, 지휘관도 아니다. 남을 설득하기보다는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법’을 알게 되면,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말하기로 어른이 되어서도 저절로 그런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 핵심 사항이 있다. 1. 눈을 보고 말하기. 대상을 똑바로 보고 항해(航海)하라는 말과 같다. 2. 아이와 가상 대화를 자주 하라. 대화도 연습이 필요하다. 3. 존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식이라고, 동생이라고 하대하다 보면 대충하게 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4. 경청과 공감은 하나다. 모두가 떠들고 있을 때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사람이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다. 5. 사실에 강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수다를 떨거나 과장하는 것은 자신감이 결여된 증거다. 겸손은 미덕이지만 본인의 장점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은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다. 말을 할 때는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부터 길러야 한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빠른시간 안에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로 말을 몇 마디 나누지 않았어도 ‘이 사람 말을 참 잘하네’라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의도도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우리 아이는 글은 잘 쓰는데 말은 잘하지 못해요’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아래 사항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단 몇 줄의 글로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가?’
‘나는 내가 쓴 글처럼 살고 있는가?’
이 두 가지 중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면 글을 잘 쓰는 아이가 아니라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의 글은 감동을 주기 힘들다. 자기 이야기만 옳다고 외치기 때문이다.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목소리만 크고 남을 이해하면서 안아주려는 마음의 적다.
글은 현실에서 나와야 한다. 현실에서 나온 글을 쓰는 데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상상으로도 멋진 글을 쓸 수 있다. 현실이 먼저다. 글과 말은 하나이며 그러면서 실천이 곧 글과 말이 된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삶에서 먼저 실천 하도록 하자. 세상은 언제나 같은 색만을 원하는지 모른다. 사과는 빨강, 토끼는 하얀 이런 식 말이다. 늘 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을 우리는 매력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매력적인 글을 쓰려면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힘’이 있어야 한다. 내면을 바라볼 줄 알고, 그런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혼자 걸어서 집에 돌아와 내 방에 앉아 있을 때가 진짜 내 모습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보다 나 자신에게 받는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이들에게 책 내용을 가르치기에는 상당히 어려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부모가 책을 읽고 이해하면 아이에게 전달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은 해 본다. 어제 12월 26일 일요일에는 작은 손자 태원이와 큰 손자 지원이가 오랜만에 김장한다고 왔다. 여기서 말해 주었다. ‘긍정의 힘을 가지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긍정한다는 것은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농사지은 농부, 농산물을 유통해준 상인, 음식을 조리해준 엄마에게 고마워 하는 것.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을 하라고 하는데, 그것을 잘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라는 말도 해 주었다.
괴테도 인간은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는데, 자연에는 계절이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계절이 있다. ‘나이’말이다. 10대에는 10대에 해야 할 일이 있고, 20대에는 20대에 해야 할 일이 있다. 10대에 해야 할 일을 20대로 미루면 안 된다. 하지만 어제 저지른 잘못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오늘 또 저지를 실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에 얽매이지 말고 오늘을 맞이하자. 인생에는 반드시 때가 있기 마련이다. 때에 맞는 실수와 성공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고대 맹자도 말했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것은 사랑의 마음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는 항상 사랑을 품고 있어야 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라야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다. 솔선하는 부모의 행동이 아이에게는 바른 답이다. ‘인간의 한계를 정확히 가르쳐 주는 부모는 현명한 부모지만,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부모는 위대하다.’
세상에 돌이 없는 길은 없다. 돌부리에 부딪혀 넘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넘어져서도 다시 일어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시 일어나 묵묵히 가던 길을 걸어가면 된다. 아이가 잘 못 했다고 괴로워하거나, 분노하거나, 아이를 거두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지는 말자.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무능에 아파하지도 말자. 부모라는 이유로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충분하다. 아이를 생각하면서 마음 아파한다는 것은 순결한 육아법이다.
열아홉 살에 결혼해 21년 동안 무려 19명의 자녀를 출산한 ‘수산나 웨슬리’라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18세기 영국을 구한 종교개혁자로 그 많은 아이들을 직접 집에서 가르쳤다. 각각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시킨 것이다. 자녀들 중에는 그녀의 가르침을 따라주지 않는 고집불통의 딸이 하나 있었다. 못된 친구들과 어울려 행실에 문제가 생겼다. 어떻게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수산나는 어느 날 검정 숯 한다발을 딸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딸아, 이 숯을 한번 안아보렴. 뜨겁지 않단다.”
그러자 딸이 기겁하며 말했다.
“뜨겁지는 않지만, 손과 몸이 더러워지잖아.”
그때 수산나는 딸을 꼭 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사랑하는 딸아, 인생도 마찬가지란다. 바르지 못한 행실로 화상을 입는 건 아니지만,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더럽힌단다.”그 딸이 크게 뉘우쳐 바르게 성장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교육뿐 아니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이란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힘을 기르는 것이다. 자기 PR과 온갖 마게팅도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것이다. 살아가면서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군가 선택해준 삶을 살게 될지 모른다. 선택의 책임은 모두 자신에게 있고,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더 중요한 것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처음 시작하는 일이 참 많을 것이다. 새 친구와 선생님, 학원 수업, 그리고 아직 이해되지 않는 교과서까지. 이 모든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아름다운 결과를 내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시작을 대하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시작은 두렵다’는 생각을 바꾸지 못하면, 시작할 때마다 두려움에 빠질지 모른다. 시작이 중요하다. 무엇을 시작할 때 두려움보다 기쁜 마음으로 시작하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대문호 괴테는 어린 손자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시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한 시간에는 일 분이, 육십 초가 있다.
하루에는 천이 넘게 있다.
잊지 말아라.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그 분야에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배운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배운 것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는 하나를 배우면, 그 지식을 공식으로 삼아 다른데 응용하며 깊고 넓게 배움을 확장해 나간다. ‘타인의 생각을 공급받아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기억하자. 배움은 무엇을 알게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활용할 줄 알아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도 알게 되고 ‘홀로 설수 있는 힘’과 ‘함께 할 수 있는 따뜻함’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와 부처와 공자는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의 말은 책이 되어 세상에 남았다. 니체가 최고의 에세이라고 극찬한 「괴테와의 대화」역시 마찬가지다. 괴테는 그 책을 직접 쓰지 않았다. 글이 될 수 있는 말을 한 것인데, 그 말에 감명받은 제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말을 글로 적었고 그것이 인류를 대표할만한 책으로 남았다.
“나는 앞으로 많은 일을 맡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생을 살며 저절로 이루어지거나
한 방에 해결되는 일은 없다.
내가 시작하고 내가 끝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것을 ‘나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내가 아는 전부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 공자
모든 공부에는 ‘내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이 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그 상황을 제대로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배움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모든 상황에는 ‘배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소크라테스와 공자 등 성인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실천했다.
게임중독, 과자중독, 텔레비전중독 등 세상에는 이이를 망치는 중독이 많다. 중독은 곧 돈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수많은 기업은 눈에 불을 켜고 ‘어떻게 하면 아이를 중독시킬 수 있을까?’고민하는 게 현실이다. 각종 규제도 필요하고, 기업에 최소한의 도덕성을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소비자가 제어하기 힘들다. 무서운 세상에 우리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스스로 ‘자제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모가 없는 곳에서도 부모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참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것으로 심지어 어른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제력을 실천한 사람이 있다. 「칸트 윤리학」을 쓴 철하자 칸트다. 그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게 ‘산책’이다. 그는 왜 산책을 했을까?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반복한 행동에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인데, 그는 ‘건강’과 ‘사색’그리고 ‘관찰’을 위해서 산책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제력’을 발휘하기 위해 산책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삶을 제어하기 위해 산책을 택했다는 말이다. 그가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정확한 시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시계처럼 정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말은 쉽지만 행동하기는 어렵다. 10분 먼저 나서면 출근길이 넉넉한데도 늦게 나와서 허둥대는 직장인을 보면 그것이 증명된다. ‘그 사람 시계처럼 정확한 사람이야’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면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엄마는 한 봉지 다 먹으면서 나는 왜 다섯 개만 줘!”라고 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결국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운다. 부모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괴테를 비롯해 오드리 헵번, 이황 등 앞서 본 수많은 대가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어릴 때 부모에게 다양한 교육을 받고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아이 곁에 있었고,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때 들었고, 질문을 할 때 영감을 줄 수 있는 지적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고, 환경이 완벽해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그런 모든 것이 돈이 많아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흐르고 있고,
당신도 모르게 그냥 지나치고 있을지 모르는
아이의 골든타임,
내 아이를 빛나게 할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라.”저자의 충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