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댓불
움직이는 물체는 다니는 길이 정해져 있다. 사람이 다니는 데도 길이 있듯이 하늘 넓은 곳에 다니는 비행기도 아무대로 다니지 않고 길이 정해져 있다. 도심의 거리에 신호등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대혼란으로 교통이 마비될 것이다. 신호등의 신호에 따라 차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이른 아침에 송정항에 이르렀다. 어선들이 정박해 있으며 어부들이 부지런히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항구에 배들이 드나드는 입구에는 등대가 높이 솟아 불빛이 반짝인다. 등대는 항해하는 배나 항로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항해하거나 고기잡이하는 어선들이 등대의 불빛을 통해 그 지역의 위치와 배가 나아갈 길을 예측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배들이 오가고 있다.
어디 등불이 거기에만 있을까. 산에도 등산로가 있으며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나 시그널이 붙어있다. 그래서 초행길도 어려움 없이 산을 오르내릴 수 있다. 이십여 년 전 오십 대 중반에 고교동기생들과 설악산 등반을 했다. 대청봉을 거쳐 소청봉에서 일박했으며 불자들은 봉정암에서 일박했다. 다음날은 백담사로 가는 일정이었다.
2층 좁은 네댓 평 방에 열댓 명이 모로 누워서 새우잠을 자고 일어났다. 말로만 듣던 공룡능선이 길게 뻗어 있으며 동해가 보이기도 했다. 동기생에게 공룡능선을 함께할 친구를 찾았으나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동기들에게 양해를 얻어 혼자 공룡능선을 섭렵했다. 낯선 길이라 두렵기도 하거니와 지도도 없이 무작정 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소청봉에서 대청봉이 오르니 저 동해에서 일출하는 광경이 매혹적이었다. 아랫길로 내려가니 희운각 산장이 있었다. 등산객이 더러 있었다. 그곳에서부터 마등령 가는 삼거리 이정표까지 공룡능선이다. 가파른 벼랑길을 따라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마치 공룡의 등을 넘나드는 그런 기분이었다. 가끔 거리 표시와 방향의 이정표가 있어 엇갈리지 않고 바짝 긴장하며 갔다. 이른 시간이라 등산하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거기서 길을 잃으면 미아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룡능선 5km를 2시간에 주파했다. 거의 산악달리기 하듯 했다. 마등령 가는 길과 오세암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거기서 아래쪽으로 내려가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에 도착했다. 땀을 식하고 한참이 지나 동기들이 봉정암을 거쳐 내려왔다. 안내 지도도 없이 젊음 패기 하나로 시도했으니 지금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나마 이정표가 있었으니 가능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불이 있다. 그 등불은 나의 길에 빛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갈 수 있도록 비춰주어야 한다. 세상 모두가 함께 엇길로 가지 않도록 빛이 되어야 한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 내가 등불이 되어 남에게 빛을 주어야 한다. 그 빛이 이웃에게 전해져 올바른 길로 가도록 한다.
이곳 라우어에도 우리의 길을 비추는 등불이 있다. 그것은 ‘청명원’의 빛이며 중앙공원을 비추는 전광판의 ‘꽃불’이다. 밤에 청명원을 거닐면 물의 생명력과 밝은 빛이 마음을 맑고 밝게 한다. 또 중앙공원에 산책하면 전광판의 꽃의 향기가 마음으로 전해져 바른길의 방향을 깨닫는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의 마지막 연(聯)은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몸짓이 되고 싶다”처럼 서로에게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하리라. 세상 삶은 저 바다의 등댓불처럼 목적지를 향해 모두가 길을 잃지 않고 가도록 손에 손잡고 밀어주고 당기면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