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소설가 김옥곤님의 홈페이지에서 옮겨왔습니다. 앞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14편의 감상문을 올릴 계획입니다. 연극인들과 연극에 대한 열정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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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회 전국연극제가 2000년 6월 2일부터 16일까지 울산에서 열렸습니다. 세월이 가면(충북)이 대상을 받았습니다. 예술작품이란, 상 하나로 그것의 모든 가치를 결정짓는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15개 극단 관계자 여러분들, 특히 무대 뒤에서 수고하신 스탭 여러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여기 실린 글들은 18회 전국연극제를 관객의 입장에서 본 순수한 감상문임을 밝혀둡니다. 연극대본을 구할 수 없어 무대묘사나 배우들의 대사는 순전히 필자의 기억으로 재구성한 만큼 실제 극과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점 염두에 두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차례>
세월이 가면 (충북) [6월2일]
조선제왕신위(충남) [6월10일]
남에서 온 손님(경기도) [6월3일]
마술가게(제주도) [6월11일]
자전거(전북) [6월4일]
길(부산광역시) [6월12일]
뼈와 살(울산광역시)[6월5일]
천년의 바람(대전광역시) [6월13일]
찬탈(광주광역시) [6월7일
초분(경남) [6월14일]
다시라기(인천광역시) [6월8일]
언덕에 서면 보름달이 보인다(경북) [6월15일]
길 떠나는 가족(대구광역시) [6월9일]
돼지비계(강원도) [6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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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명동야화]을 보고 홍진웅 제작 우현종 작 이윤혁 연출
김옥곤
나는 이번 제 18회 전국 연극제를 보기 위해 사랑티?(할인티켓)을 20장 샀다. 아내에게 6장을 주고 14장을 내가 가졌다. 이번 연극제에 출품된 작품이 15편. 한 작품 정도는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14편의 작품은 꼭 봐야겠다는 나름대로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6월 2일 오후 3시 30분에 울산문화예술회관에 도착했다.
공연은 4시부터였다. 한데 처음부터 나의 부푼 기대는 빗나갔다. 공연장의 관람객은 거의 학생들뿐이었다. 아차, 저녁 7시 공연을 볼 걸 하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예상대로 소란스러웠다. 막이 오른 다음에도 이렇게 시끄러우면 어떡하나 싶어 실로 난감했다. 막이 올랐다. 세트는 50년대 중반의 명동 거리, 관객이 보는 방향에서 왼편에 카페 '모나리자'가 있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른 편에는 막걸리집 '은성' 이 보인다. 얇은 막 하나가 더 쳐져 있어 무대는 마치 추억 속의 한장면처럼 뿌옇다. 꿈꾸는듯한 엷은 막이 올라가고 무대는 비로소 과거 속의 현실이 되어 관객 앞에 그 모습을 완연히 드러냈다.
그제사 나는 무대 위에 매달린 <이봉구 선생 특강, 주제 해방전후 문학사>라는 프랭카드를 보았다. 무대 앞에 한남자가 서 있다. 명동백작이라고도 불렀던 소설가 이봉구. 배우 이름은 모르겠다. (연극제 팜플렛을 참고 바람. 이하 배우 이름을 모두 생략.) 이봉구는 마치 시간의 줄을 타고 있는 듯한 몸짓을 하며 독백을 한다. 아니 특강을 한다.관객들에게. 그의 특강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 50년대 초반에서 부터 60년대 초반까지의 명동이란 허영의 도시, 거기서 살아 숨쉬었던 예술가들의 자화상이다.
기특하게도 소란스럽던 학생들이 조용하다.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그 시대의 무대배경이 신기해서일까. 학생들은 이봉구가 회상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곧 전혜린이 등장한다. 실존주의를 무슨 명함처럼 자랑스럽게 내밀고 다녔던 그런 시대, 자의식이 강했던 여대생 전혜린의 지적 오만과 허영은 여배우 남인숙의 화끈한 끼와 부딪친다. 이성과의 사랑에 고민하는 남궁연이 삽화처럼 보인다. 전혜린의 유행가에 대한 멸시는 남인숙이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부르면서 절정에 이르고, 극의 흐름은 조금 방만해진다.
박인환의 등장은 무대에 활기를 더해 주지만 이때부터 10대 관객들은 오히려 지루해 하는 눈치였다. 나는 무대와 객석을 번갈아 보았다. 자리를 뜨는 학생이 한, 둘 보였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박인환이 전후의 후반기 동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김경린 등과 함께 펴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이란 시집에 실린 모더니즘 시들이 해방전의 김기림이 주도한 모더니즘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과연 이해할 것인가.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들 몇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부터 객석이 조금 소란스러워지면서 무대에 선 배우들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이 극의 전체 구성은 작가 심현규가 현재의 시점에서 이봉구의 회상형식으로 읽혀질 수도 있고, 이들의 대화 즉, 이봉구와 심현규 또한 연속극의 인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건 내가 나중에 연극제의 팜플렛에서 읽은 해설 가운데 한대목이다. 그렇지만 나는 극의 그런 흐름을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나도 연극 보기에 서투르다는 얘기가 되겠다. 사람마다 감상에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주로 문인의 입장에서 이 연극을 보았다. 내가 시를 쓰고 소설을 습작했던 70년대의 지역 문단의 사정이란 것이, 50년대의 명동 시대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리고 연극을 보는 동안 아편처럼 문학에 탐닉했던 이, 삼십대의 내 과거가 들쳐지는 것 같아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김수영이 등장하면서 당시의 예술풍토가 비판을 받는 듯하지만 이봉구와 김수영 사이에 모호한 합의가 이루어진다.(물론 극중에서)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이라지만 명동야화로 불리는 한국적 딜레탕트의 모습에서 내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열한 열정으로 치면 오히려 그들이 지금의 약삭빠른 문인과 예술인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낭만으로 포장된 그런 시대는 세월과 함께 과거 속으로 묻혀갔다.
십대의 학생들이 왜 중간에 자리를 뜨고 지루해서 소란을 떨었을까. 단지 그들이 지적으로 어리고 연극에 익숙하지 않은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학생들은 그래도 의례적인 박수를 쳐주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보다 조금도 나을 것 없는 문인이나 예술인에 대한 연민의 정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어느 것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니 이 시대는, 명동백작 이봉구나 박인환 같은 사람한테 이미 무관심해져 버린 것이다. '세월이 가면' 이 아니라 그 세월은 이제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아스라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2000년 6월 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