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나이의 아이들이 엄살이 많은 것처럼 자칫하면 기독교인들은 ‘엄살이 심하다’는 느낌이다.
즉 남들이 다 겪고 당하는 문제를 가지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경향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무난히 겪어내는 문제들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은 민감하게 반응해서 팔딱거리고 덩달아 목회자는 거기에 장단을 맞추어 주어야 한다. 교인들의 비위에 맞추어야 하므로 예수의 뜻을 그대로 전하고 따라서 살기 보다는 교인들의 관혼상제는 기본이고 백일잔치,
돌잔치, 이사, 개업, 입원, 퇴원 등등 , 크고 작은 각종 행사에 ?아 다니면서 복을 빌어 주기에 바쁘다. 목회자들의 머릿속에
이런 자잘한 일만 가득하니 자연히 자질구레한 기도만 늘고 역사, 민족, 환경, 정의, 평화, 기아문제 등등 굵직한 일에는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느라고 힘이 든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혹시라도 삐질까 싶어서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다. 이러다
보니 자기 속을 쉽게 내보이는 솔직담백함 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속을 들어 내놓지 않는 능구렁이가 몇 마리 들어앉아 있어야
목회를 할 수 있다. 실제로 목회 현장은 사방이 지뢰밭이라 어디서 언제 문제가 터질지 몰라서 그저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라서
전후좌우 위 아래로 눈치 살피기가 바쁘다.
내가 알던 프랑수 신부는 한국에서 사목을 할 때 국회의원에 당선된 본당
교우가 “신부님께서 기도해주셔서 당선될 수 있었기에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런 기도는 한 적이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는데 목사라면 그럴 수가 있었을까?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생존 원칙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의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다. 즉 교회들도 무한경쟁 사회 안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받고 있는 비난의 많은 부분은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부조리와 함께 뒤섞여 있다. 즉 아무리 ‘교회의 본질’을 외치고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쳐도 부조리와 모순이 가득한 세계에서 기독교만이 독야청정 할 수는 없는 것이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수현상인 이런 사실을 알면 아마도 예수도 놀랄 일이다.
이
런 상황에서도 운 좋게 어떻게든 목회에 성공해서 큰 교회를 맡고 있는 목사들과 대화를 해보면 대부분이 목소리에 묘한 권위가 들어가
있다. 물론 어느 직종이던 한 가지 일을 오랜 동안 하고 그 속에서 나름 성공을 했다고 하면 관록과 권위가 붙게 마련이다.
그러나 목회에서도 그래야 하는 걸까? 아마 그럴 것이다. 더욱이 목회는 전적으로 사람을 다루는 직업 아닌가? 그러나 진짜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권위'가 아닌 '겸손'이다. 그래서 예수가 '머리가 아닌 꼬리'가 되라고 하지 않았던가?
참으로 유치하게도 일반적으로 목사들은 자기가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항상 설교를 하거나 예배를
주도하던 습관 때문이다. 그래서 목사가 여려명 모이면 행사 순서를 배정하는 것이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목사들이 모이는
웬만한 조직에는 공동 회장이 있고 대표 회장이 있다. 참으로 유치찬란한 일이다.
나름 수 십년 목회를 하고 은퇴를 몇 년 앞 둔 동료 목회자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목소리에 개기름이 흐르는 것이 느껴져서 나만
겸손하게 나가면 비굴한 것 같아서 본의 아니게 내 쪽에서 목소리에 버터 칠을 하게 된다. 주변에서 대 교회 목회를 하고 사람들
가운데 "저런 정도의 인격을 저런 정도의 목회를 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로 기적이다."라고 느껴지는 이들을 종종 본다.
목사들은 좋은 말을 준비하고 좋은 말을 많이 하느라고 좋은 행동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이 선포하는 말씀으로부터 정작 자신의 영혼이 유리된, 자신이 증거하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에 정작 자신은 참여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건달들의 속어에 립서비스, 즉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다는 뜻으로 ‘접시 돌린다.’는 말이 있다. 목사들은 직업의 특성상 좋은 말만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우를 범할 가능성이 많다.
나는 첫 목회를 감리교에서 시작했고 감리고 감독을 지냈다나 하려고 했다나 하는 김 모 목사, 강 모 목사와 젊은 시절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내가 믿는 예수는 그들이 믿는 예수와 점점 달라져서 그들과 내가 같이 갈 천국도 없겠지만 설령
만나더라도 같은 방을 쓰기는 어색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탓이 아니라 전적으로 평범한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길거리 목사로서 살아온 내 탓이다.
목회가 먹고 살만한 직업이 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목회로 먹고 살아야만 하는 목회자들은 힘겹다. 평생 동안 목회를 해온 목사가 은퇴 후 거처할 집, 먹고 살 생활비가 보장되는 것은 매우 드물다.
내
배가 부르면 남이 배고픈 것을 잊어먹는 경향은 목회자 세계라고 해서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배부른 목회자들은 자기 교회를
돌보기에 바빠서 실추하고 있는 한국 교회 이미지까지 걱정할 여유가 없다. 대형교회는 대기업이 골목 상권까지 잠식하듯 중소규모의
지역 교회까지 영향을 미친다. 작은 교회는 목회자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큰 교회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대형 교회가 작은 교회 잡아 먹고 크는 것, 이미 오래된 현실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억지로, 본의 아니게, 마지 못해, 할 수 없이, 견디다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화두로 떠오르면서
‘갑을 관계’가 잇슈가 되고 있다. 애초에 ‘乙(을)’에 대하여 별관심이 없을 새누리당이야 그렇다치지만 심지어 민주당이
‘乙(을)을 위한 정치’를 내세우는 형편이다. 甲(갑)乙(을) 관계라는 것이 사람 죽이는 경제적으로는 불편한 관계이지만 한 인간이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을의 입장에 서보아야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입으로는 을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철저히 갑의 위치에 서는 것이 대교회 목회자들이다.
첫댓글 정말로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말씀 이십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 교회,교인들의 문제는 곧, 우리 사회의 문제지요.
"교회를 바로 잡는 길"이 사회를 바로 잡는 길이고, 거꾸로 사회가 바르게 되어 가면 "교회도 교회됨"에 가까워 지겠지요.
개혁의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나, 실제 실현은 요원한듯 하여 안타깝습니다...
이런 문제는 "일개인"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착하고 바르게 산다고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지요.
아무리 깨끗한 물고기가 있어도,
그 물고기가 살고 있는 연못이나 호수 자체가 썩어버리면...그 물고기도 결국 죽어버리고 말겠지요.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그런 상태를 "묵인 내지 방조"하면, 결국...한국 기독교는 썩고, 좋은 교인들은 다 사라지고,
"이름만 예수님만" 남는 "말로만 기독교"가 되겠지요.
물론, 이 와중에...목사들은 열심히 예수 팔아서 자기 축재를 할 테고,
이를 또 비판하는 자는...사단의 시험에 빠진 자라 하며, 축출 당하겠죠.
그럼, 또 어떤 자는 이럴 겁니다.
"이것도 주님의 뜻이라고..."
ㅎㅎ
그걸...말이라고,~
지가 하나님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지...
인류역사를 보면, 끝내 정의는 승리해 왔습니다.
불과 60년 전만해도,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은 학교도 같이 못 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대통령이 흑인 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자의 위치는 50년 전, 100년 전엔 어땠나요?
지금...여성이 대통령 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오직 주만이 아십니다
그 역사의 흐름속에서, 하나님은 필요한 인물들을 택하셔서, 사회의 부조리와 그런 잘못된 제도나 관습에 대항하게
하시고, 마침내 변혁시키게 하셨습니다
역사의 주재자는 하나님 이시니까요
제가 보기엔 그런 논쟁들보다 우선적으로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네요.
글번호: 16868(주님의 성호는 아무도 모른다)
윗 글을 안읽어 보셨나요? 읽고도 저 행위를(忍) 하고 있다면 밑 말씀이 여러분들의 것이지요~! 수정을 하든 안하든 그건 여러분들의 자유의지랍니다.
전 다만 제시를 해 줄 뿐이니 각자 알아서들 '판단'하세요.
-댓글작성자: 스피릿-
(롬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요 15:22)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으리라
(눅 12:47-48)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사 29:13-14)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마 15:8-11)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忍)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신 5:11)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聖號)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치 아니하리라
(렘 23:36-40)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사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씀이니라 하고
너는 또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무엇이라 대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 하셨느뇨
너희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보내어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지 말라 하였어도
너희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리며 내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어버려
너희로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케 하리라 하셨다 할찌니라
(약 1:22-26)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忍)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마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惡/흑암/게헨나/스올/忍/死)으로 좇아 나느니라
ㅎㅎ
예수님을 "예수"라고 했다고 존경심이 없다? 그건가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꼭 "님"을 안 붙여도 얼마든지 사랑하고, 믿습니다.
그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기서, 왜 여호와님은 나의 목자시니...
이렇게 안 쓰나요?
어떤 글에서나, 말에서 "좀 더 객관성을 드러내 보이고 싶을 때",
의도적으로 "님"자를 빼고 쓰기도 하지요.
예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님"자를 빼겠습니까?
"예수님은 나의 스승님 이십니다" 나
"예수는 나의 스승입니다" 나...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글의 문맥에서 쓰여 졌는가?
그런 것들이 다 고려되어야 겠죠.
통상, 글을 쓸때...좀 더 객관적으로 쓰고 싶을때, "님"을 생략하는 일이 왕왕
있습니다.
1인칭으로 불러지는 그 사항까지 저번에 적을려다가 글이 길어질까봐 생략했네요.
그 부분까지 적으면 그것도 모르겠냐고 무시할까봐.....
이해가시죠?
꼭 그 댓글을 누가 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역시나 닉네임만 멋진 '정의의이름으로' 인가요?
마인드님...그건 "마인드님만의 주장" 이시 잖아요
그리고, 마인드님
님은...남을 "정죄"하지 마라고 해 놓고는, 님이 지금 저를 정죄하십니다.
사람이...좋은 말로만 말한다고, 비판과 비난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왜...제가 역시나 닉네임"만" 멋진 "정의의 이름으로"가 되어야 하죠?
그 이면에는 이미, 님이 저를 정죄하시는 거죠.
아니.
예수님이라고 무조건 써야만, 예수에 대한 신앙이 깊다는 논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나요?
"언어"란 관습이고, 관행인데요...
그건 정말, 지나치게 율법주의적 사고 같습니다.
어떤 경우는, 세종대왕님,공자님 할때도 있고, 어떤 때는 세종대왕,공자 할때도 있습니다.
안 그런가요?
역시, 닉네임만 멋진 "정의의 이름으로" 인가요?
=> 이게, 말하면 비꼬고, 냉소를 보내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이게 욕입니다. ㅉㅉㅉ
마인드님. 목사님이시라면서 그 정도 인격 밖에 안 됩니까?
그리고, 제가 언제 님의 "인격"을 무시 했습니까?
님의 견해에 제 "견해"를 말했을 뿐입니다.
님도, 제 인격에 대하여 뭐라고 하지 마시고,
제 견해에 대하여, 님의 견해를 피력하시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인님의 견해가 "진리요, 무조건 옳다"는 증거나 근거가 어딨습니까?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어느 견해가 좀 더 타당한가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지.
그 이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인격을 들먹이시나요?
님은 예수사랑님 보고, 예수 믿는 자 답게 말 좋게 쓰라고 해 놓고는,
"이율배반"으로 바로, 저에게 똑같은 일을 하십니다.
그건 "위선" 아닙니까?
맘 속으로는 "온갖 욕을 하면서", 겉으로는 웃으면서 점잖은 척 말한다면 그건 위선 아닌가요?
저는, 그 글에서, 마인드님 견해도 충분히 옳다고 말헀습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말이 과하면 문제 있을 수 있다.
그러나,제 견해는요.
그러한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러한 대형교회 목사들의 비리는 비판받고, 심하면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제가 그 글에서 썼구요.
마인드님...
"의견은 논의 합시다"
마인드님은 제가 그렇게 보이세요?
님이 저를 어떻게 아시는데요?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다: 라고 말하라고 했지 누가 어중간하게 말하라고 했나요?
그리고 윗 사항이 저의 주장이나요? 율법에도 그리 나와있지않나요?!
또한 한국사람의 정서라면 당연한 도리로써 존댓말로 높여 드려야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요.
내가 님의 이름을 함부로 는,이,에,쟁이 라고 불르면 좋나요?
가장 기본적인 사항을 말하는데 무슨 어중간하게 토를 다는것이요~!
존경의 문제가 아니죠. 호칭의 문제는 듣는 제3자의 문제입니다. 독백으로 기도하면 몰라도 발성기관에 내뱉은 이상 다른이가 듣죠. 님의 예수님에 대한 호칭 문제로 다른 형제가 실족한다는 생각 안하시나요? 교회는 혼자 있는 곳이 아니고 같이 모이는 곳이니 나의 말을 100% 이해 해주는 사람 없습니다. 더구나 위 댓글에도 보다시피 거부감 느끼는 사람 있습니다. 님의 호칭이 다른 사람에게 왜곡되게 들리니 다른 사람 있을때는 자제하셔야죠
[롬 14: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나의 행동이 옳고 그릇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행동이 옳은것이라도 형제를 실족하게 하면 그게 옳은 것이냐는 말씀이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간단하게 이름으로님에게 몇 마디 하지요. 초등학생도 꼬박꼬박 '예수님' 이라고 붙힙디다.
그리고 1인칭 독백일때..
(행 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다른사람(인칭)에게 우리 예수님을 소개할때..
(요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 이시라
뭔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가셨어요?
monad님 주장이 옳습니다! 저는 개혁방에는 잘 안들어옵니다만 "정의의이름으로님"의 글에 동감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분의 주장이 과히 틀리지 않은데 모략을 당하는 느낌이 들어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댓글 을 답니다
샬롬!
결론은 한마디로 목사들은 징글징글하다는거 ......
맞어 그저 뭣이든지 많이 아는척 하고 혼자 특별한 척 하며 양보하나 할줄 모르는 목사들 보면 징글징글 하죠 진작 자기자신은 절대 남한테 지지않으려하고 높임만 받으려하는자들... 문제가 많은 자들이죠
정의의이름으로 님은 밑 댓글을 읽어보시고 예, 아니오! 로만 대답을 해 보시요~!
어중간하게 중간적인 말로 대답은 하지마시구요. 참고로 저는 밑 댓글에 100프로 이상이라도 동의하며 아멘하는바입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의 성호를 부를때 최소한 '님'자는 붙혀 드려야 인격적으로 경외심을 지닌 마음가짐이라 여겨집니다.
※ 댓글작성자: 삶을 바꾸는 기름부으심 ※
스피릿님 반갑습니다 좋은자료를 읽게하시고 이 자료뿐만 아니라 님이 올려주신 모든 자료를 일독하면서 말씀을 접할 때
다양한 스펙트럼이 님을 통해서 나올 수있는 지식의 은사가 있으신 분이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호칭문제에 관해서는 무엇때문에 중요한지
님은 이미 영으로 인식하고 있고 그것을 마음으로 믿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는 로마서 10:17말씀에 귀착하는데
님의 영혼상태라면 롬10:10말씀처럼 말씀을 근거로 하게 된다면 마음으로 믿고있기에 구원에 이른 상태입니다
굉장히 고무적이고 님을 통하여 저는 배울 것입니다 무엇이 믿음이고 산믿음은 어떤 열매를 산출하게 되는지를 말입니다.
호칭이 왜 중요한지는 앞서 무엇때문에 중요한지를 고찰해보았고 이것은 구원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는 것인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롬10:13말씀처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완료시제로 되어있습니다.
반면 믿지않는 불신자는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발음상 부른다고 하지만 영은 거듭나지 못한상태이므로 마음으로 믿어지지 않기에
이미 스피릿님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호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제대로 설명하고 계신다 생각하고 사료합니다
이는 님께서 얼마나 주님을 애뜻하게 사모하고 열정을 가지고 -열정이 있는 사람은 믿음을 재생산합니다 그 이름에 의미를 둡니다 이 게시물은 상당히 깊은 영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않겠다는 구약의 사상과 믿음은 이미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의식과 맞물려 파피루스에 글씨라는 기호체계를 담을때
글로서는 표현하였어도 발음상 발성은
하지않았습니다. 워낙 거룩하신 분이시며 유대인들은 기껏해야 하나님의 성호를 아도나이로 표현할 따름이였는데 이마져도 송구스러워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웠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불려지는 성호는 다양하지만 면면히 흐르는 믿음은 하나님의 성호를 부를때 굉장히 신중하면서도 어려워 하였습니다.
스피릿님의 게시물은 제가 이해하기는 상당히 어렵고 고차원적인 내용이므로 그냥 지나치지않고 몇번을 읽고 음미해보았습니다.
저라면 이런 게시물을 쓸 수있을까 싶을정도로 잘 쓰셨다 생각합니다. 아울러 어떤 회원님이 쓰셔도 저는 가급적 다 읽고 리플을 다는 편입니다.
쓰신분의 땀과 열정을 쉽게 읽을 수 없다는 취지에서
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스피릿님을 축복합니다 샬롬
마인드님. 잘 나셨습니다.
아주 고매하시고, 고상하신 목사님의 하늘같은 고견. 눈물나게 잘 들었습니다.
됐죠?
ㅉㅉㅉ
글의 내용은 안 보고, 사소한 꼬투리만 잡아서 비판하니. 나 원
그리고선, 자기도 비판하는데. 자기 눈의 들보는 안 보는지.
마인드님.
없이 계신 이님도 오랫동안 예수믿고. 연세도 많고. 그러신 걸로 압니다.
신앙이 없어서 "예수님"이라고 안하고 "예수"라고 했겠습니까?
왜 자기 기준으로 정죄하려고 하는지요?
더 웃긴건 분명히 예수사랑님에게는 말 좋게 쓰라고 해 놓고는.
마인드님도 똑 같네요
지금, 다른 분 글에.
논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지엽말단적 얘기만 하고 있으니 ㅉㅉ
여기 "교회개혁방"입니다!
어중간하게 말하지 말고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고 했을텐데.....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니깐 댓글을 다는 것 아니요.
말해보시요!
난 예 라고 했소~! 정의의이름으로님은 뭣이요?
그리고!
저는 없이 계신 이 님의 저 글에서 "예수"라고 쓴 부분 하등 문제없고,
글 전체의 내용또한 현재 한국 사회와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 및 그 상관관계를 날카롭게 지적한 훌륭한 글이라고 봅니다!
제 견해 입니다.
정의의이름으로님! 실망하지도 괴로워하지도 마십시오 님의 말씀이 신학적으나, 성경적으로나, 국문학적으나
다 옳습니다 여기 카페에 유식한자들 많고 외곯수들 많넹요~~교만의 극치, 옹고잡이지요
본질이 아닌것을 가지고 의견이 분분하시네요.
그러다 보면 핵심은 흘러갑니다.
위글은 동의합니다.
그런데 대안이 없네요.
제 견해는
육신을 입고 믿음생활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던, 성도이든,
육신은 자기를 드러내고 싶고.모든 면에서 비교우위에 있으려하나,
말씀은 , 진정한 믿음의 길은 이런길이 아니기에,
어쩌면 이글을 쓰고, 읽고 있는 저나 여러분이나 같지요.
그러니 주여 긍휼시 여기소서. 입니다.
ㅎ...참
그러고 보니 저도 선생이고, 그대들도 선생이고. 전부 선생들 뿐이군요.
문득, 나는 정말로 예수님 믿는가?
예수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빙자한" 내 주관을 상대에게 강요하는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선생은 우리 예수 뿐인데.
내 믿음도 참으로 천박하구나. 그런 자괴감이 문득 드네요.
한 가지 부탁은 성경 말씀으로 "남을 가르치려" 들지 맙시다.
나는 정말로 성경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는가?
먼저, 내 삶과 내 행실을 돌아본 후...
목사 = 목이 뻣뻣한 사람
정말 겸손하시고 낮은 자리에서 섬기시며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시는 목사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많은 목사님들이 항상 가르치려들려하고 많은 말을 하기를 좋아하고 자기말만 옳다고 여기며 높은자리에 앉아 대접받고 인사받기 좋아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아이러니 합니다. 평신도와 구분되는 특신도(?) 예수님의 종님이라 자부하는 분들이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에 앉는것을 싫어하고 높은 자리에서 권세를 휘두르고 싶어하는것을 보면 누구의 제자분들이시냐고 다시 묻고 싶을때가 많습니다.
기독교고 개독교고 목사고 장로고 집사고 다 떠나서 FirstLove님에게 한가지 물어봅시다.
님도 우리 예수님의 성호를 적을때 최소한 '님'자는 붙혀서 적어야 하나요? 아니면 반말식으로 적어야 하나요?
예,아니오로만 대답을 해 보세요.
전 100프로 이상 yes라고 했으니...님도 분명한 태도로 말을 해 보세요!
객관식 오 엑스 교육을 많으 받으신 어르신같으신데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서술형 논술형 창조형 문답법이 새로운 대세입니다. 저도 약간 구닥다리 교육을 받아 오 엑스식 사고를 할때가 많습니다.
예나 아니오냐 둘중 하나만 선택하라 강요하는것은 센스있는 질문은 아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단 언어는 다양한 상황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정의의이름으로님 말씀에 저도 동감입니다.
저는 예수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예수님이라고 호칭을 부릅니다. 더군다나 삼자에게 이야기 할때에는 더더욱 예수님이라 지칭합니다. 그런데 목사들이 예수님을 예수라 또는 예수 그사람 어쩌고 저쩌고 부르면서 목사호칭에는 꼭 목사님이라 부르는걸 보면서 참 어처구니 없어한적이 있긴 합니다.
자기 담임목사를 호칭할때 김목사가 어쩌구 저쩌구 우리 목사가 어쩌구 저쩌구 라고 하는 소릴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항상 김목사님, 담임목사님,우리목사님 하면서 님자를 꼭 붙입니다.
참 아이러니 하지요. 눈에 보이는 목사님은 존칭으로 눈에 안보이는 예수님은 비존칭으로 ㅠㅜ
가장 기본적인 강요라고 말을 했을텐데....
나머지 쓰고 싶은 말은 내가 쓴 답글에 댓글을 달겠소! 님도 댓글을 더 쓰고 싶다면 거기로 오시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결론은 정의의이름으로님의 주장이 옳습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호칭을 다르게 부를 수 있는겁니다 예수, 예수님, 그리스도예수등 말입니다
한가지만 옳다고 주장하시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수님보다더 귀한분은 없네"라고 해야 맞을까요? 그건 아니지요ㅉㅉ~~
(참고)"성화도 구원이다"(서울신대 김성원 교수,기독교사상 2010.4)-네이버 블로그 Kingdom of Heaven(예레미야)에 올려짐-한국 교회와 관련 우리 다같이 생각해 볼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