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벨 사하바(Jebel Sahaba)는 수단 북쪽 국경근처 나일강 유역에 발견된 신석기 시대 묘지 유적이다.
인근의 투슈카(Tushka) 유적과 함께 발견되었으며 신석기 시대 무덤떼 유적중 상당히 큰 축에 속한다.
제벨 사하바에 묻힌 시신들은 탄소측정에 의해서 약 13,000-14,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특이한 점은 제벨 사하바에 매장된 시신의 약 40%는 치명적인 상처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이 상처들이 아물거나 염증이 발생한 흔적이 없어 이 시신의 주인들은 즉사하였거나
짧은 시간내에 사망했을 것임이 거의 확실시된다. 더군다나 이들이 입은 상처는 거의 상체의 치명적인 부위,
즉 흉부와 경추부, 그리고 두부(頭部)에 집중되어 있으며 화살이나 침투형 무기(Penetrative weapons)에 의한 것이
많기 때문에 사고사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습격에 의한 상해로 인한 사망이 거의 확실하다.
누가 이 묘지에 묻힌 사람들을 죽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확실한 살해의도를 가지고 무기를 휘둘렀다.
제벨 사하바 유적인 신석기 시대 전투와 전쟁에 관한 대표적인 유적이다. 이 묘지는 신석기 시대,
즉 왕이나 군장이 등장하기 이전, 사유재산이 형성되기 이전에도 인간공동체간의 폭력과 전쟁이
예외가 아니라 거의 일상사(日常事)였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하여 준다.
제벨 사하바외에도 선사시대와 원시시대에 전투와 분쟁이 일상적이고
일반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적은 숱하게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고학적인 증거에도 아랑곳없이 여전히 원시평화론을 고수하며
선사시대 인간들이 폭력적이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연구자들이 있다.
이들은 대개 선사시대의 폭력/전쟁 행위를 기아나 천재지변에 따른 예외적인 상황,
할 일없었던 선사시대 주민들의 ‘오락’, 또는 ‘전쟁’이라 정의할 수 없는 소규모 분쟁이나
살인행위라고 하며 전투와 전쟁의 증거를 애써 부정한다.
그러나 원시평화론자들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근현대적인 전쟁의 개념을 선사시대에 투영한다.
예를 들어 각각 인구 50명의 적대적인 원시 부락이 있다고 치자.
이들이 전투에 돌입하게 되면 성인남자들은 거의 전사로 싸움을 맡고
여인네들이나 노인들 역시 전장에 나가 선동을 하거나 적이 던진 무기를 줍거나 부상자들을
간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현대적인 관점에서야 소소한 싸움이겠지만 그러면 이들 부락의 관점에서는 총력전,
영어로 말하자면 토탈워(Total War)인 것이다. 따라서 원시전투를 ‘소규모 싸움’
또는 ‘부족간 살인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개념상의 큰 오류인 것이다.
또 하나 원시평화론자들이 유념해야 할 것은 현대의 인류는
거의 모두 원시시대의 일상적인 전쟁과 전투속에서 살아남은
‘강한 전사’들의 후예라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폭력성은 본능인가? 물론 본능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원시시대은 홉스가 말했듯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난무하는 난장판이었고
그러한 난장판에서는 상대에게 보다 가혹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만이 그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게벨 사하바 유적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첫댓글 전쟁의 원인을 '사유재산'으로만 환원하여 이야기하는 건 나름대로 편리하고 유용한 면도 있겠지만, 과도한 단순화의 오류를 피할 순 없겠죠. 청동기 시대에 사유재산이 발생하여 거기서 분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전쟁이 크게 늘어나고 국가와 같은 정치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라는 건 너무 도식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 과장되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역발상도 가능할 것 같은데, 예컨대 이런 식의 논리입니다.
- 분쟁해결을 당사자간의 싸움(전쟁)에 의하지 않고 제3자의 개입에 의해 해결한다면 이는 권위를 가진 제3자, 즉 정부 내지는 국가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 원시시대일수록 넓은 영토와 인구, 권력을 가진 정부가 등장
하기 힘들어 제3자의 개입에 의한 분쟁해결이 어렵다. 따라서 원시시대일수록 당사자(집단)간의 전쟁이 자주 일어나기 쉽다.
- 청동기 시대 정도가 되면 개별 마을, 부족 수준을 넘어 도시국가 수준 이상의 영역과 초기 왕의 수준에 해당하는 권력을 가진 정치체가 등장하므로 제3자의 개입에 의한 분쟁해결, 즉 국가의 법에 의한 분쟁해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청동기시대 이후에는 (국가간 전쟁은 더 늘어날 수 있어도) 국가 내부의 마을간, 부족간, 기타 집단간 전쟁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특정 개인의 생존여부에 더 위협이 되는 건은 국가 단위의 전쟁보다는 국가 내부의 작은 단위(마을, 부족 등)의 전쟁이므로
원시시대일수록 개인이 전쟁의 위협을 더 느끼고 청동기 이후의 시대일수록 개인은 전쟁의 위협을 덜 느낄 수도 있다. (국가의 존재이유 중 하나로 항상 언급되는 것 중 하나는 국경 내부의 전쟁을 (강력한) 국가가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과장된 주장이지만 과도하게 단순화하여 논의할 것 같으면 이런 주장도 불가능하진 않을 겁니다. 전쟁을 너무 '근대적 현상' 인 양 바라보는 것이 선입견이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