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아르헨티나에 온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를 걷다보면 이 나라는 특히 임신부가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든다.
그러나 사실은 임신부들이 다른 나라보다 특별하게 많다기 보다는 임신부들의 옷차림 때문에
많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 임신부들은 한결같이 몸에 꼭 맞는 옷들을입고 다니기 때문이다.
특히 배꼽티를 입고 불룩한 배를 내보이며 자랑스럽게 다니는 임신부들을 보면 우리와 분위기
차이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남존여비 장유유서에 따른, 남자와 어른 중심의 사회라고 한다면, 아르헨티나는
여자와 어린이가 우선하는 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를 가진 임신부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존중받는 사회인 듯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어디를 가든 두 명 이상 모여 순서가 필요 한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줄이 만들어진다.
어느 누구도 줄에 서서 기다리는 데 조급해 하거나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없다.
서울에서 '빨리빨리' 에 익숙해 있던 터라 한동안은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차츰 라틴 특유의
기다릴 줄 아는여유를 가지게 됐다.
이처럼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잘하는 줄서기에서도 반드시 임신부는 예외다.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설 때 임신부들은 우선적으로 탄다.
버스안에서 임신부들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자리를 요구할 수도 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먼저 양보하지 않을 경우 임신부들이 자신이 앉아야 한다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정도다.
수퍼마켓에도 임신부를 위한 전용 주차장과 계산대가 따로 마련돼 있다.
내가 임신 6개월이었을 때의 일이다. 수퍼마켓에서 쇼핑을 한 후 임신부 전용 계산대를 이용하려
했다. 그랬더니 여점원이 '이곳은 임신 부전용'이라고 쓴 팻말을 가리키면서 임신부가 맞느냐고
몇 번씩 물었다. 배꼽티까지 입고 불룩한 배를 자랑스럽게 내밀고 다니는 현지인들과는 달리
헐렁한 옷으로 임신한 배를 가린 나는 임신중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