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천안함 최종보고서를 발간하면서 그간 논란이 돼왔던 핵심 쟁점에 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빼버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5일 오후 국회 최문순 의원실이 주최한 긴급토론회 참석자들은 천안함에 어뢰를 쏘고 달아났다는 북한 연어급 잠수정, 스크루 변형 시뮬레이션 등에 관한 내용이 최종보고서에 누락됐다면서 "국방부가 불리한 사실을 감추려 했다"고 입을 모았다.
불필요한 건 장황하게 설명하고 불리한 건 아예 삭제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북한산 어뢰 설계도의 출처, 카탈로그, 잠수정의 성능·재원·항로가 큰 쟁점이었는데 (국방부가) 과거에 공개했던 정보도 최종보고서에 싣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처장은 특히 "민군 합동조사단의 정보 태스크포스에 참여했다는 한국군 장성은 연어급 잠수정의 크기도 모르고 있었다"며 "그래서인지 보고서에서 다 빠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5월 20일 조사 결과 당시 장황하게 설명했던 알루미늄산화물에 대해서는 보고서 본문에 거의 싣지 않고 부록으로만 짤막하게 나온다"고 덧붙였다.
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전국언론노조로 구성된 검증위원회의 노종면 책임검증위원은 "보고서에 함체 변형에 관한 시뮬레이션 부분은 지루하게 들어갔지만 스크루 변형에 관한 시뮬레이션은 별도로 실시해 놓고도 본문은 고사하고 부록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합동조사단은 그간 스크루 변형 시뮬레이션은 천안함이 파괴되는 순간 급정지하면서 관성력에 의해 휘어지는 현상을 재연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합조단에 참여한 한 민간위원은 '시뮬레이션으로는 스크루 변형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실토한 바 있고, 그같은 사정 때문에 최종보고서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노종면 위원은 "합조단이 1차 시뮬레이션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뮬레이션을 다시 해 국방부 천안함 웹사이트에 올려놨는데 보고서에는 왜 안 넣었는지 모르겠다"며 "국방부는 스크루의 휨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고 실패했다고 깨끗하게 인정하는 게 낫다"고 꼬집었다.
▲ 노종면 언론 3단체 검증위원회 책임검증위원이 백령도 초병들의 진술서를 들고 진술서에 나오는 섬광의 방향과 폭발 원점의 방향이 전혀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뉴시스
"동대문 살인 사건 목격자 진술이 종로 살인 사건의 증거?"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근거를 꿰어 맞추기 위해 중요한 정보를 왜곡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이태호 처장은 "생존자와 백령도 초병의 진술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공개하고 있고, 진술 내용은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게 거의 없다"며 "왜곡되어 소개되어 있다"고 말했다.
노종면 위원은 특히 백령도 초병이 천안함 폭발로 만들어진 물기둥으로 추정되는 섬광을 봤다는 방향이 폭발 지점과 전혀 다르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그는 "초병은 일관되게 백령도 북서쪽에 있는 두무진돌출부 쪽에서 섬광을 봤다고 했는데 폭발원점은 남서쪽으로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며 "종로에서 살인 사건이 났는데 동대문 살인 사건의 목격자의 진술을 들은 격"이라고 말했다.
노 위원은 이어 "초병들의 진술이 일관되게 북서쪽에서 섬광을 봤다고 하고 군 당국도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해 그들의 말이 맞다고 확인했다"며 "그걸 가지고 물기둥이라고 우기면서 종합보고서에 집어넣은 것은 증언을 명백히 왜곡·조작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해난사고 전문가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꽝' 하는 폭발음이 아니라 '쿵' 하는 충돌음을 들었다는 진술이 나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폭발은 없었고 좌초됐다는 증거"라며 천안함은 암초에 부딪혔다가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절단됐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어 "현장에 있었던 상병 한 사람의 진술서를 보면 '좌초된 PCC(천안함)'을 구조했다는 진술이 나온다"며 "이런 진술은 숨기고, 방위각을 바꿔가면서 폭발이라는 결론에 맞추는 건 너무나 미개하다"고 개탄했다.
"한나라당이 국회 특위 재가동 거부한다면 '토론' 제의는 가짜"
이날 토론회에서는 천안함 조사 결과를 홍보하기 위해 국방부가 펴낸 만화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이라는 이 만화는 정부 발표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학자들과 언론계를 매도하고 협박하는 듯한 표현을 담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태호 처장은 "주인공이 기자인데 진실을 추구하는 직업이 아니라 국가의 위신을 걱정하는 직업으로 묘사됐다"며 "시민단체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서한을 발송한 것을 두고 기자가 국가적 망신을 운운하는 게 국방부의 접근이었다면 조사 자체에 객관성·신뢰성을 기대 못한다는 방증"이라고 성토했다.
이 처장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무장 갈등예방을 위해 안보 문제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적극 발언하라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권장한다"며 "천안함 사고의 당사자이자 책임자이며 조사대상인 국방부가 최종보고서를 내면서 시민단체의 활동을 국가적 망신이라고 한 건 무슨 근거냐"고 따져 물었다. 참여연대는 정부가 만화 배포를 즉각 중단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으로 맞서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권경애 변호사는 국방부 만화책에 대한 판매 금지 가처분소송을 낼 예정이며, 책에 언급된 전문가들이 명예훼손으로 정부를 고발할 경우 법률적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또 사고 당시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해군 2함대 사령관, 최원일 천안함장 등 군 관계자들에 대한 고소·고발을 민변 차원에서 다음주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변은 북한의 공격에 의한 침몰이었다면 합참의장이 전시에 준하는 경계령을 내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해 잠이 들었고, 해군이 사고 시간을 허위로 보고한 사실 등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토대로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권 변호사는 이어 "형사재판 과정에서 합참이 최초에 보고한 대로 (어뢰 피격이 아니라) 좌초에 의한 사고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몰고 가 국가를 전쟁 위험에 노출시킨 헌법 파괴 행위여서 죄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
한편, 러시아 조사단의 천안함 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파문을 일으킨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 대사를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하는 문제와 관련해 박선숙 의원(민주당)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그레그 전 대사와 공개 토론을 요구했는데, 그 말이 진실인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는 한나라당이 국감 증인 채택에 동의하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박 의원인 이어 "그러나 한나라당이 국회 천안함 특위를 재가동해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그레그 전 대사와 어떤 토론도 하겠다' 혹은 '천안함에 대해 열린 토론을 하자' 등 한나라당 측의 최근 발언은 진짜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