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에서 지리산 벙개 박산행 공지가 떴다~!!! 무조건 참가하기로 한다. 박산행은 막달려 산행이 아니기 때문에 요즘 들어 당일치기 산행 보다는 오히려 체질적으로 맞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든다. 주말이 점~점~ 다가오는데도 좀처럼 박지 정보가 오픈되지 않는다. 아마도 참가자들의 관심도에 따라서 가변적인 변수가 많이 있기 때문이리라.
드뎌~! 석남사터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접한다. 들머리를 어느 곳으로 잡든지 체력적으로 별로 부담이 없는 코스이다. 무엇보다도 13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석남사터에서 한번 머물고 싶었는데 그런 염원이 갑자기 찾아온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두온애량의 석조불상터도 발걸음하여 말없이 간직하고 있는 지리산의 인문학적인 향기를 나름 느껴 보고 싶었다. 그것으로 족하지 아니한가~!!!
by saiba(^^)
# <석남사터> 방면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2가지 방법으로 대별되는 것 같다. 첫번째는 내원사를 들머리로 잡아 <장당골> 방면으로 접근하는 방법, 두번째로 삼장면 평촌리 방면에서 초정골로 스며들어 <치밭목능선>을 넘어서 접근하는 방법이다. 이번 산행에서는 후자 방법으로 원점회귀 산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 산행들머리 분위기 - (06:52) 산청군 삼장면 평촌리에서 대원산방으로 접근하는 루트이며, 다리 건너 사유지 과수원을 통과하면 초정골로 스며들어 치밭목능선으로 수월하게 올라설 수 있다.
▼ 신라시대때 이런 모습의 불상이 세워져 있었다고 추정하는데 - [펌]지리구구 회원 엉겅퀴님 산행기에서
▼ <관음암불상터>에서 지리주능(천왕봉~중봉~하봉) 방면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조망미
▼ saiba 산님 멍때리기 인증샷~!!! - Photo by 천지님
▼ 터너님 멍때리기 인증샷~!!!
▼ 써니님 멍때리기 인증샷~!!!
# 아래글.. 지리구구 회원 엉겅퀴님 산행기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혀둔다.
두온애랑의 애절한 사연이 서려 있는 관음암으로 향하였다. 장당골에서 석남사지는 한 두어번 가봤지만 뒷쪽 능선에서 관음암으로 가는 길은 몰랐는데, 여러 선답자들의 탐구 덕에 길을 잇게 되어 감사드린다. 관음암이 암자냐 바위냐, 본석남사와 석남암수의 해석, 왜 같은 골짜기가 아닌 산 너머에 절이름을 딴 동네 석남리가 있느냐 하는 등의 문제는 다른 분들의 열정적인 분석이 있으므로 나는 다른 이야기 하나.
여기서 발견된 국보 233호 사리합(舍利盒) 표면에는 136자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데 이중 두온애랑은 두번 나온다. 「… 돌아가신 두온애랑(豆溫哀郎)의 염원을 위하여 … 원컨대 바라는 것은 두온애랑(豆溫愛郞)의 영신이나 …」우리는 두온애랑을 주인공의 이름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앞에서는 哀郞이라 하고 뒤에서는 愛郞이라 했을까? ‘두온애랑’까지가 사람 이름이라면 당연히 동일하게 표기했어야 하지 않을까? 관음암의 암을 庵이라 하지 않고 巖이라 했듯이.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두온과 애랑은 분리해야 한다고. 郞은 고대에는 주로 사내아이 또는 지아비를 뜻하였다. 그렇다면 ‘두온(豆溫)’만이 이름이고, 哀郞은 ‘일찍 죽어 슬픈 아들(또는 낭군)’ 愛郞은 ‘사랑하는 아들(또는 그대)’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이 합리적이다.
죽은 이를 위하여 석불을 조성할 정도라면 왕공귀족이었을 터, 남편이라면 사회적 지위와 처자식을 고려하여 경주 인근에 봉안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와는 다른 의미지만 결과적으로 두온(애랑)은 젊은 화랑이 아니었겠냐는 김경렬 옹이나 가객님의 의견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관음은 관세음보살로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상징이다. 관세음(觀世音)이란 중생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살핀다는 뜻으로 괴로울 때 그 이름을 부르면 구제된다고 하였으니,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심정은 무엇인들 부르고 싶지 않았겠는가.
세상에 영원한 건 없는 법. 세월이 흐르면 육신도 한줌 흙으로 바람으로 스러질 것이고, 영혼이 남아 있다 해도 그 영혼조차 언젠가는 소멸되는 것이 아닐까? 두온의 영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술 한잔을 부어올렸다.
비로자나불을 조성하여 석남암수 관음암에 모셨다고 하였으니 그전에 석남사가 존재 했고 관음암이란 이름도 있었다고 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작은 지능선을 따라 내려올 때 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당시 사람들은 저 듬직한 바위를 사바 세계를 내려다보고 앉아 중생들의 소리를 듣는 관음상으로 본 것은 아닐까? 아니면 석불을 안치하면서 그렇게 부르고 싶었는지도….
# 아래글은 지리구구 가객님의 <폐사지> 보고서에서 인용했음을 밝혀둔다. [석남사지] - 지리산 최대의 잃어버린 폐사지를 찾아서 (1부)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에 위치한 내원사에 가면 보물로 지정된 이 땅에서 제일 오래된 석조비로자나불이 있다.
▼ 내원사에 모셔다 놓은 국보 제233-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경남신문에서 펴옴)
불상의 정식 명칭은 石南巖藪毗盧遮那佛(석남암수비로차나불)이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서 이 불상이 안고 있는 사연이 구구절절하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 비로자나불을 두고 지역민들은 뜯어온 불상이라고 일컫고 있다.
불상을 뜯어 오다니..... 무슨 사연인가?
석불의 기단석과 좌대 및 광배가 분리되어져 있어 석불의 부재들을 하나씩 뜯어 왔다는 이야기를 증명해 준다.
# 현재 부산시립박물관에 있는 국보 233호의 사리함 통일신라 시대의 뚜렷한 글씨가 남아 석불의 조성연대를 증명하고 있어 국보적인 값어치가 매우 높다.
▼ 부산시립박물관에 있는 국보 233호의 사리함 (9cm x 14.5cm)
사리단지는 뚜껑이 있다고 해서 사리합(舍利盒)이라고도 불려지며 높이 14.5cm. 입 지름이 9.0cm크기의 사리호 표면에는 쉽게 판독하기조차 어려운 이두글자 비슷한 한자의 銘文이 적혀 있는데 글씨는 해서와 초서를 섞어서 음각 하였으며 총 자수는 136자로 당시에 동국대학교 교수진들에 의해 판독이 된 명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영태(永泰) 二년 丙午 七月 二日 釋法僧. 法緣 二僧 아불러 과거를 받들어 하나샤 (하시나니) 豆溫哀郞 (두온애랑)을 願하여(위하여) 石毗盧遮那佛 (석비로차나불)을 이루고 無垢淨光陀羅尼 (무구정광다라니) 아불러 石南巖藪 觀音殿에 두나다 (두었다) 바라는 것은 <두온애랑>의 靈神이거나 二僧들이거나 하다가 만약 본 사람이거나 바라보며 정례(頂禮)하거나 멀리서 듣고 와서 隨喜(수희. 마음속으로 기쁘게 느낌)함이나 그림자에 치달린 願이나 부는 바람에 치달리거나 方處에 치달린 바 一切衆生이나 一切 모든 三惡道의 業報가 없어지며 일로(스스로) 비로자나불이 等覺去世하며 다지나이다.
학계에서의 해석은 대충 이러하다.
이 비로자나불은 영태(당나라의 연호) 2년 병오 7월 (통일신라 혜공왕 대 서기 776년)에 법승(法勝). 법연(法緣) 두 승려가 亡子 <두온애랑> (豆溫哀郞)의 추복(追福)을 위하여 석조 비로자나불(石毘盧遮那佛)을 조성하고 무구정광다라니(無垢淨光陀羅尼)를 함께 봉안하여 석남암수(石南巖藪) 관음전(觀音殿)에 안치하였는데, 이 공덕으로 <두온애랑>의 영신(靈神)과 발원인 두 승려 법승, 법연과 함께 일체중생 모두가 삼악도(三惡道)의 業을 멸하고 성불하기를 원한다는 내용이다.
즉 이명문의 내용은 죽은 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불상을 조성하는 공양승과 그에 동조하여 불덕을 희구하는 중생들의 업멸(業滅)을 비는 일종의 서원문 이다.
“그림자에 치달린 원이나, 부는 바람에 치달리거나, 방처에 치달리거나...”
이토록 사실적이고도 애절한 중생의 업보를 비는 문구를 어느 불경에서 찾을 수 있을까?
▼ 눈익은 지리구구 회원 선답자들 시그널 - 송암님, 꼭대님 그리고 창원 독오당팀
▼ 지금부터 1241년전 법승(法勝). 법연(法緣) 두 승려가 불공을 드렸던 <석남사터> 방면으로~!!!
▼ 지능선을 따라 내려가고 있는 중
▼ 안장바위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진행하고 있는 분위기
▼ <석남사터> 방면으로 치고 오르고 있는 분위기
▼ 골짝에서 식수를 사전에 충분히 확보해서ㅎㅎㅎ
▼ 므그븐 식수를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올라가다~!!!
▼ 석남사터(해발약800m)에 보금자리를 느긋~하게 마련하다~!!!
▼ GPS 현위치 정보 - 석남사터(해발약800m) - 현재시각 16:04
▼ 석남사터에서 줌촬영한것으로 관음암(대슬랩) 상부 왼쪽에 불상터가 위치해 있다~!!! 따라서, 그 시절엔 석남사터에서 관음암위에 모신 비로자나불을 바라보면서 불공을 드렸을 것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 각자의 보금자리도 마련했고...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일행들은 부지런하게도 조금전에 식수를 구한 골짝까지 내려가서 R탕을 하고 되돌아온다. 그리고, 식당텐트에 모여서 각자가 가지고온 먹거리를 꺼집어 내어 찌지고 볶아 안주를 만들어 곡차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산정(山情)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당일치기 산행으로 발걸음해본 적이 있는 <석남사터>... 언젠가 박산행으로 한번쯤 머물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그런 희망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이 든다.
어떤 분은 지리산에서 최대규모의 폐사지라고 한다. 관음암불상의 사리함 표면에 기입되어 있는 136자의 이두글자 비슷한 한자의 銘文으로 인해 역사적인 고증이 확실하게 되고 있는 듯해서 왠지모르게 더더욱 관심을 갖게 한다.
언젠가 지리산에 대한 내공 깊은 지리산꾼 문학가에 의해서 사리함 명문속의 주인공인 <두온애랑>에 대한 창작소설이 출간되는 그런 날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지리속살의 내공이 깊어갈수록 장당골 우측능선 치밭목능선(대포리능선) 해발800~850m 산자락에 지리산 인문학적 향기를 찐~하게 느낄 수 있는 드라마가 실제로 펼쳐졌다는 사실에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수수께끼 같이 느껴질 뿐이다~!!!
이번에 함께 발걸음하신 산요 산방의 회원님들에게 상기의 부족함이 많은 saiba 流 포토 산행기가 앞으로 자신들의 기억력이 가물 가물 해져 갈 즈음에 지난 아름다운 박산행의 추억을 되살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실 산행중 중간중간 산행기와 관련된 자료들(사진,현위치 파악 및 독도)을 확보할려면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그런 여유 시간이 필요한데요... GPS 앱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잘 정비된 지리산길지도가 오룩스맵과의 협연으로 리얼타임으로 현장에서 독도정보를 제공해 주기 있어... 그 덕분에 물리적인 여유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아미산님께서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보시하신 덕에... 세월이 흘러 저같은 산님레벨의 산꾼에게도 은혜를 입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첫댓글 산행기가 점점 전문화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걸으면서 어떻게 메모를 해서 이런 산행기가 나오는지...
대단합니다.
사실 산행중 중간중간 산행기와 관련된 자료들(사진,현위치 파악 및 독도)을 확보할려면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그런 여유 시간이 필요한데요... GPS 앱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잘 정비된 지리산길지도가 오룩스맵과의 협연으로
리얼타임으로 현장에서 독도정보를 제공해 주기 있어... 그 덕분에 물리적인 여유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아미산님께서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보시하신 덕에... 세월이 흘러
저같은 산님레벨의 산꾼에게도 은혜를 입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