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매혹적인 남자, 그리고 이상하고 매혹적인 책
20세기 SF 역사의 손꼽히는 거장이자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필립 K. 딕. 그리고 저널리즘식 글쓰기로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은 프랑스 현대 작가 에마뉘엘 카레르. 이 두 소설가가 만나 지금껏 접하지 못한 독특한 평전이 완성되었다.
카레르는 특유의 논픽션적 글쓰기로 필립 K. 딕을 극히 내밀하며 서사적인 텍스트로 풀어내는데, 딕이 태어난 1928년 12월 16일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태어나자마자 쌍둥이 누이가 굶주림으로 사망한 사건과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조숙한 아이로 자란 딕은 건강 염려증 환자였던 엄마와 살면서 처음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이후 그의 인생에서 정신과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성인이 된 후에도 안전 강박증에 시달리며 약물에 중독되게 된다. 1950년대 초반, SF 잡지를 펴내고 있던 앤서니 바우처가 딕이 쓰던 공상 과학 이야기를 장래성 있다고 평가하고, 그에 용기를 얻은 딕은 드디어 자신의 상상력을 은하계로 쏘아 올린다.
그렇게 해서 1952년 스물네 살 나이에 전문 SF 작가로 자리 잡은 딕은 36편의 장편소설과 100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지만 그는 평생 생활고에 시달렸고, 사망하기 몇 년 전에야 대중과 문단 모두에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딕의 책 중에서 널리 알려진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블레이드 러너」로 처음 영화화되었지만, 그는 완성을 보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결국 1982년 3월 2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원작 소설들이 「토털 리콜」, 「페이첵」, 「마이너리티 리포트」, 「임포스터」, 「컨트롤러」 등의 영화로 재탄생하면서, 오늘날 딕은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초능력이나 외계인과 같은 기존의 SF 소재와는 차별된, 인간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함을 그리며 끊임없이 인간성의 본질을 추구해 왔다.
이 책은 위대한 SF 작가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당시 미국 사회에서 태동한 SF 문학의 흐름과 그 주요 인물들도 함께 말하고 있다. 카레르는 총 24개의 키워드로 필립 K. 딕이라는 오디세이를 펼쳐 보이는데, 당시 좌파적이며 진보적이었던 버클리뿐 아니라 딕이 만난 사람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소설처럼 써 내려간다. 카레르는 『필립 K. 딕』을 쓰기 위해, 그리고 이 책을 끝내기 위해 많은 이를 만났다. 다행히 딕이 남겨 둔 자료뿐 아니라 그의 인생에 관해 세세하게 들려줄 주변 인물 ─ 딕은 다섯 번 결혼하고 모두 이혼했다 ─ 이 많았다. 또한 카레르보다 앞서 네 권의 전기가 발간되어 있었다. 하지만 카레르가 가장 많이 참조한 것은 딕의 작품들이었고, 증인들의 증언과 카레르의 상상에서 나오지 않은 모든 것은 여기에서 얻었다. 이것은 딕의 소설을 읽어 보면 고스란히 증명된다. 그에게는 글을 시작한 초기부터 끝까지 놓지 않는 주제들이 있었다. 머릿속을 서로 바꾸게 된 사내들, 맛이 간 세상, 병적인 정신에 갇혀 버린 사람, 평범해 보이지만 종교에 미친 사람……. 딕은 생각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심연을 갖추고 있을까, 아니 내 속에는 어떤 심연이 숨어 있을까. 그는 특히 어떤 아주 미세한 디테일에서 출발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는 사내〉라는 기본 요소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너무나 좋아했다. 진실을 말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미친놈〉 취급을 당하는 이야기, 그리고 딕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즉, 실제로 그에게 일어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한〉 SF 작가의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딕은 주인공의 이름과 직업을 바꾼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된다. 딕이 곧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카레르의 이 전기를 읽으면 딕의 작품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또한 딕의 책을 읽지 않았던 독자들 역시 그의 책을 찾게 만들 것이다. 딕이 쓴 소설 대부분이 SF 장르이지만 그의 유산은 SF 문단 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영화와 철학, 그리고 종교를 포괄한 후세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필립 K. 딕이 죽은 지 40년이 된 지금, 우리는 그가 SF의 아버지라는 자리를 초월하여 현대 미국 문학이라는 더 넓은 세상에서 다시 읽어야 할 위대한 작가임을 알게 되리라.
여러분은 분명히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스물네 살 나이에 전문 SF 작가로 자리 잡은 딕은 이 결정이 그의 삶 전체에 걸쳐 유효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기회를 한 번 잡았을 뿐이라고, 일시적 상황에 역시 일시적으로 적절하게 반응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37면
필은 음반 가게에서 일하던 시절 밤중에 글을 쓰는 버릇이 생겼는데, 이 버릇은 나중에까지 계속되었다. 아침이 되면 집 주변을 어정거리고 ─ 움직이는 반경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 서가에 꽂힌 중고 음반들을 점검하고, 특히나 황량하게 방치된 손바닥만 한 정원에 앉아 뭔가를 읽었다. 42면
하지만 그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쩌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에서 어떤 의미를, 하나의 질문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일 수 있는 것에서 어떤 대답을 찾는 범주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의 직업이 하는 일은 바로 이런 질문들을 상상하는 거였다. 72면
딕이 전에 쓴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들에서, 주인공은 세계의 질서에 관련된 엄청난 비밀을 우연히 발견하고, 믿으려는 이 하나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명하려고 무진 애쓴다. 이 소설에서 딕은 또 다른 플롯을, 좀 더 소름 끼치는 플롯을 시도해 본다. 〈그만 빼놓고 모든 사람이 모른다〉가 아니라 〈그만 빼놓고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이다. 80면
그런데 불행히도 딕이 살면서 추구하지 않는 게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혜였다. 『주역』을 기준 틀로 삼는 도교 사상이 유연함과 인내와 초연함의 효용에 대해 가르치는 모든 것, 더 넓게 말하자면 경험과 금욕에 바탕을 둔 삶의 접근 방식들은 그에게 전혀 흥미가 없었다. 이 점에서 그는 본질적으로 비의(秘儀)주의자였다. 107면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런 심리 테스트를 해보는 것은 딕이 소년 시절에 즐기던 놀이 중 하나였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어떤 종류의 정신병에 대한 성향이 강한지 보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질문했을 때, 거기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대답하는지 살폈다. 137~138면
『높은 성의 사내』를 발표한 이듬해 쓴 『화성의 타임슬립』에서 딕은 메스칼린을 잠시 맛보고 돌아온 헉슬리보다 훨씬 진지하게 〈정신병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작품 전체에 걸쳐 등장인물들에 파급을 미치는 어떤 자살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은 지구가 방기하고, 경쟁 세력들이 제각기 영토를 차지하고 힘을 겨루는 화성을 무대로 펼쳐지는 어떤 부동산 투기 이야기다. 141면
다른 사람의 악몽 속에서 죽는 것보다 끔찍한 일이 있을까? 144면
암페타민은 그로 하여금 몇 주 만에 소설 한 권을 끝내 2년 동안 10여 권이나 출판할 수 있게 해주었으나, 약물의 이러한 도움에는 끔찍한 우울증이라는 대가가 따랐다. 149면
이제 딕 주위에 모여든 팬들은 그의 안에 있는 어설픈 배우를 밖으로 끌어냈다. 그에 대한 전설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는 결코 이 전설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책들, 어쩌다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의 모습, 그리고 포인트 레예스 시절 거의 은둔자처럼 살았던 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그가 이상하고 마약 중독이고 망상적이고 천재적인 인물이라며 떠들어 댔다. 사실 그는 그렇게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그 모든 것이었다. 202면
양분법적 논리를 좋아하는 그는 세상에 두 종류 사람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한쪽 사람들에게는 현실의 실체가 빛과 생명과 기쁨이고, 다른 쪽 사람들에게는 죽음과 무덤과 혼돈이었다.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에서도 그리스도를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도스토옙스키의 스비드리가일로프처럼 영원을 거미줄투성이의 불결한 욕실로 상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212면
딕이 생각하기에, 모든 악의 근원은 자기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 자기 껍데기 안에 갇히는 것, 정신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조현병〉으로 진단되는 것이었다. 225면
어떤 SF 작가, 그것도 형편없는 문체의 작가가 쓴 글에서 전율이 느껴질 뿐 아니라 본질적인 무언가를, 근원적인 무언가를 접했다는 확신이 들게 하는 구절들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일부분이며, 아직 아무도 그 깊이를 알아내지 못한 심연을 언뜻 보게 되는 것이다. 229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서 필 딕은 〈키플kippl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는데, 이 단어는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만물이 지향하게 되는 분해와 쓰레기와 혼돈의 상태를 뜻한다. 딕의 삶은 이 〈키플〉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지금 〈딕의 삶〉이라고 말했지만, 그게 정말 자기 삶인지 알 수 없고, 자기가 아직 살아 있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마당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265면
『유빅』은 끝내기 불가능한 책이었다. 일반적으로 딕은 〈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끔찍이 힘들어했는데, 자기가 쓰는 작품이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280면
심하게 덴 적이 있는 그는 더 이상 믿고 싶지 않았다. 현실이 무언가를 감춘 담요라고, 우리가 바늘을 찌르기도 하고 다시 빼내기도 하지만 그 뒷면만 볼 뿐 나중에 찬란하게 드러날 앞면은 보지 못하는 어떤 태피스트리라고 말이다. 351면
그의 안에는 신이 20세기 후반의 미국에 자기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선택한 계시받은 자가 들어 있었다. 또 거기에는 이 계시받은 자가 빠져드는 환상을 끊임없이 고발하는 다른 사람도 있었다. 418면
딕은 반복해서 말한다. 우리가 삶 가운데서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자동차를 수리하는 거라고. 어떤 가상의 차, 일반적인 차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세상에 일반적인 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개별적인 차들뿐이며, 우리에겐 살아가면서 만나는 차들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모두 위험한 것들이다. 501~50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