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여울 -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잊지 말라는 부탁
소월 김정식이 암만 뛰언난 시인이라고 해도 설마 짐작이야 했을까. 그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앞으로 한 100년쯤 후 그의 나라에 몹시 슬픈 일이 생기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모르고서도 저렇게 슬프게 썼는데, 행여 미리 알았더라면 너무 슬퍼 아무 말도 못 했으리라. 암튼 소월은 제 마음 슬픈 줄만 알고 저 시를 썼는데, 지금 그의 시는 소월만의 것이 아니다. 물가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모양은 모든 주저앉은 이, 모든 울고 있는 이를 대변한다. 아아, 저 시는 꼭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옮겨다 놓은 것만 같다.
둘 다 사랑을 잃은 마음이라는 큰 공통점이 있고, 구체적인 장소가 다르다는 작은 차이점이 있다. 시에서는 '개여울'이라고 했는데 2014년 4월 16일부터 힘들었던 이들은 팽목항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소월처럼 주저앉아 있을것이고, 파릇한 풀 포기나 봄바람에도마음이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이들은 잊으라고 말하는데 마음으로는 영 가버린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을것이고, 그래서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과연 잊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역시 잊을 수 없구나, 생각하며 다시 앉아 있을 것이다.
너무 슬픈 사람의 시계는 와장창 깨진 이후로 전혀 가지를 않는다. 시간은 흘러도 멈춰진 마음의 시계는 쉽게 움직일 수 없다. 깨진 마음의 시계는 유가족만의 것이 아니고, 또 특정 사람만의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 마음이 누구 하나만의 것이 아니어서, 우리의 소월은 아직도 읽힐 수 있다.
이미 100년 전에, '잊지 말라'는 부탁이 있었다. '잊지 말라'는 부탁, 그래서 모든 4월 16일은 그리움의 날이 되었다. -나민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