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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라면 다섯 개에 파 송송, 계란 탁!
언젠가 각종 자재를 잔뜩 실은 대형 트럭이 저희 피정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먼 거리에, 울퉁불퉁, 꼬불꼬불한 시골길에, 심한 정체로 기사님과 도우미께서 엄청 고생한 분위기였습니다.
힘을 합쳐 짐을 내리고 나서 두 분 얼굴을 보니 빨리 내려오느라 끼니도 못 챙긴 분위기였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즉시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마르 8,3)
그래서 제가 정중히 두분에게 여쭈었습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제가 초스피드로 라면을 끓여드릴 수 있는데, 드시고 가시겠습니까?” 두분은 반색을 하며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라면 다섯 개에 파 송송, 계란 탁! 거기다 김치와 밥과 과일과 차까지 내어드렸더니, 두분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철저하게도 하느님이셨지만, 동시에 철저하게도 인간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처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배가 고프면 아무리 좋은 설교 말씀도 안 먹힌다는 것, 뭘 하든 일단 잘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것을 잘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우리 옛말이 있습니다. 배고픈 아이가 있으면 그가 어떤 잘못을 했다 할지라도 우선 먹이고 봐야 합니다. 먹이고 나서 법을 따지든 원칙을 따지든, 야단을 치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몸이 크게 아프면 만사 제쳐놓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됩니다. 아무리 원칙을 중시하는 단체라 할지라도 사람이 아프면 열 일 제쳐놓고 일단 치료를 받게 하고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런 면에서 우리의 예수님은 너무나 인간적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이 고통당하는 것을 절대로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 각자 모두가 행복해지기만을 바라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한 인본주의자셨습니다. 만물 위에 인간이란 존재를 두고, 그의 성장과 구원, 복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었습니다. 굶주리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는 일, 아파하는 한 인간을 치료하는 일, 마귀 들려 죽을 고생을 다하고 있는 한 인간을 구해주는 일, 죽음으로 빠져들고 있는 한 인간을 구해주는 일, 그것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메시아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마르코 8,1-10
"저 군중이 가엾구나."
교구 평신도 복음화 봉사자들과 1박 2일로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한 어르신 봉사자께서 1970년대 TV에서 방영되었던 사연이라며 말씀해 주신 한 사연이 마음에 와 닿아 이렇게 옮겨봅니다.
6·25전쟁 때 서울에 살던 한 부인이 피난 가다가 가족과 헤어지고 혼자 부산에 도착해 국제시장에서 가게를 세내어 식당을 시작했습니다.
음식 솜씨가 얼마나 좋았는지, 한번 온 손님들이 계속 찾아와 식당은 날로 번창했습니다.
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지가 되어 동냥으로 연명했는데, 그 식당에도 거지들이 찾아와 종업원들과 자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밥 좀 주세요.”
“너희 주려고 밥장사 하는 줄 알아?”
주인아주머니는 거지들을 볼 때마다 헤어진 아들 생각이 나, 모두에게 밥을 주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적자가 나니 고민이었습니다.
하루는 아주머니가 식당에 큰 통을 갖다 놓고 종업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손님이 음식을 남기면 버리지 말고 전부 이 통에 깨끗하게 모아라.”
그날도 점심때쯤 되어 거지들이 몰려오자, 주인아주머니는 “저녁 9시쯤에 와라. 그러면 밥을 줄게.” 하였습니다.
“정말요? 꼭 줘야 해요!”
9시가 되자 손님들이 끊어진 조용한 식당에 거지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밥 준다고 했지요?”
거지들이 스무 명 남짓 식탁에 둘러앉자 주인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내게도 헤어진 너희만한 아들이 있다.
너희를 보면 그 아들 생각이 나 밥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이 식당은 망할 거다.
그래서 오늘부터 손님들이 남긴 밥을 깨끗이 모았으니 이것으로 죽을 끓여주마.”
아주머니는 모은 밥과 반찬으로 죽을 한 솥 끓였습니다.
거지들이 그 죽을 한 그릇씩 받아들고는, 늘 멸시와 천대를 받다가 따뜻한 사랑을 받는 것에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줌마, 고맙습니다!” 거지들은 매일 밤 그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소식이 알려지면서 스무 명에서 서른 명, 마흔 명… 하고 거지들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다 죽을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거지 왕초는 이러다가는 저 식당이 망할 것 같으니 이런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몰려가다가는 저 식당이 망하겠다.
이제부터 조를 짜서 요일별로 나누어 밥을 먹으러 가자.”
거지들도 그 아주머니를 위해 배려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식당 벽에는 “손님 여러분, 음식을 깨끗하게 남겨 주십시오.” 하는 글귀가 붙었고, 그 식당에서는 손님이 남긴 음식을 거지들에게 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늘 깨끗한 음식이 나오니까 손님도 믿고 먹을 수 있어서 손님이 더 늘어났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거지들이 다치면 약을 발라주고,
거지들도 식당의 부서진 의자나 문짝을 고쳐주고 청소도 해주었습니다.
어떤 거지는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운 엄마의 정을 그 아주머니한테서 느낀 것입니다.
그렇게 식당은 점점 사랑의 식당이 되어 갔습니다.
그 해 겨울, 부산 국제시장에 큰 불이 났습니다.
바닷바람이 강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시장 전체가 불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가장 피해가 작은 한 집이 있었는데 바로 그 식당이었습니다.
이유는 불이 나자 거지들 200여 명이 순식간에 그 아주머니 식당으로 몰려들었고, 그 중 일부는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 막고, 물을 퍼붓고, 또 일부는 물건들을 밖으로 꺼내고, 일부는 그것을 지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합판 조각과 박스 조각들을 모아 와 아주머니가 추위를 피할 집을 임시로 만들고
“어머니, 걱정 말고 여기서 주무세요.” 하였습니다.
거지들은 아주머니와 마음에서 하나로 엮여 있었던 것입니다.
참다운 소통은 우리가 모두 한 가족이 되도록 만들어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영적인 것은 사람을 살리지만 육적인 것에 심으면 죽음이 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영은 생명을 주지만 육은 아무 쓸모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육을 이기기 위해 40일간 단식하고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도 이겨내십니다.
육체의 욕망은 우리가 싸워야 할 세 가지 원수 중 하나로써 죄를 짓게 하는 뿌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끝까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의무는 영적으로 배고픈 사람들에게 영적 양식을 나누어 하느님을 체험하고 만나게 만들면 그만일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영적으로는 이미 충분한 양식을 주셨지만 육적으로는 배고파하는 이들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예수님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도 배부르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들을 배불리 먹일 음식을 주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책임 중 하나는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적으로 배고픈 이들도 배불려야 하는 것입니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있었던 한 식당 아주머니와 거지들과의 그 ‘소통’, 즉 아주머니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배고픈 이들을 먹이고, 또 거지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아주머니를 도왔습니다.
삼위일체께서 성령으로 소통하듯이, 소통은 각자의 희생을 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교도 하나의 소통인데 말로만 성당 나오라고 한다면 배고픈 이들은 오히려 그런 말에 짜증을 낼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도 동시에 도와주어야 합니다.
한 사제로써 이태석 신부님은 물질적으로도 가난했던 톤즈 사람들에게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물적인 도움도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성당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이라면 배고픈 사람들은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 안에서마저 나눔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배고픈 이들을 보며 마음 아파 했던 예수님을 따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물적으로 내가 누군가 도와줄 생각이 없으면서 말로만 성당 나오라고 권유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소통의 방법이 아닙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아직도 우리 주위 배고픈 이들을 보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가난한 이들에게 아무 말 없이 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교회가 된다면 오늘 복음에서처럼 남는 빵이 넘쳐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로 성당이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됩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르 8,1-10: 사천 명을 먹이시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2-3절). 광야에서 허기지셨던 주님께서 지금은 생명의 빵으로 인간을 먹이신다. 군중들은 사흘째 주님을 따라 다니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길에서 쓰러질까 염려하셔서 굶겨 보내시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상의를 하고 계시며 희생을 요구하신다. 그 요구는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빵이 얼마나 되는지 내어놓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일곱 개 있습니다.”(5절) 대답하면서 그것을 예수님 앞에 내어놓았다. 빵 일곱 개는 그 많은 군중 앞에 아무것도 아닌 양이었다. 그러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 빵을 주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 빵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마음이 없어서 내어놓지 못했다면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으며 제자들이 군중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셨다. 제자들의 나눔과 주님의 축복이 그 큰 기적을 이룰 수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바로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을 때, 주님의 축복도 함께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나누지 못할 때 절대로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
왕곡성당에서 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처음에 “전능자 주님, 판토크라토르”라는 이콘을 제작하고, 성전봉헌식을 하면서, 주위 본당들로부터 또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빵 일곱 개를 봉헌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성전을 봉헌할 수 있었다. 라자로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원회원들의 일곱 개의 빵이 라자로 마을을 위해 기적을 일으키고, “그대 있으매” 음악회의 빵 일곱 개가 해외의 한센인들에게 기적을 보여주고 있음을 체험하였다. 라자로 마을의 가족들까지도 이 일에 함께 참여하기도 하였다. 많이 가졌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빵 일곱 개밖에 되지 않는 적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나누려고 내어놓을 수 있어서 이러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혼자 일하시기보다 우리의 협조를 원하신다. 우리가 가진 것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에 어떻게 협조하는가에 따라 하느님께서는 보다 큰일을 우리에게 이루어주신다는 사실을 믿음 안에서 체험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미사가 끝나면 성당 뒤편으로 가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줍니다. 그런데 유아방에 있던 아이들이 다가올 때를 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들고 있는 사탕만 바라보며 다가옵니다. 그리고 사탕을 받은 뒤의 모습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큰 만족감을 보이는 것이지요.
만족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 막대 사탕이라면, 이 막대 사탕 하나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서는 만족에 끝이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만족감을 계속 유지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족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우리인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성인 성녀는 만족의 삶을 살 수 있음을 자기의 삶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행복=소유/욕망’이라는 유명한 행복의 도식이 있습니다. 소유를 계속 늘리면 행복합니다. 문제는 자기가 원하는 욕망이 커지면 소유가 아무리 많아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인 성녀의 공통점은 자기가 원하는 욕망을 계속 줄여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유하는 것이 없어도 행복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음삼덕인 ‘청빈, 정결, 순명’을 철저하게 지켰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세 가지 덕행이라는 향주삼덕인 ‘믿음, 소망, 사랑’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던 것입니다.
암에 걸려 이를 극복한 사람과 암을 전혀 앓지 않은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 지수가 높을까요? 암에 걸렸지만 이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암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욕망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자기 욕망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소유를 무한대로 늘리는 행복보다 훨씬 쉬운 길입니다. 쉽게 만족하고, 쉽게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그 많은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에게 금은보화가 생겨서 따랐던 것일까요? 세상 것에 대한 욕망을 줄여나가면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사흘 동안 굶으면서도 말이지요. 이들을 가엾이 여겨서 빵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가량의 사람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가 산해진미로 바뀐 것도 아닙니다. 그냥 빵과 물고기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만족하고 있습니다. 소유와 상관없이 욕망이 줄어든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먹던 빵과 물고기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고 감사했습니다.
자기 행복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혹시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주님을 따르는 것이라면 절대로 행복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욕망을 줄여나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오늘의 명언: 모두들 언젠간 그렇듯이 난 죽는 게 아니야. 우린 최선을 다해 달리는 거고 그러다 멈춰야 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어떻게 경기를 운영하느냐 뿐이야(휴 엘리엇).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아담 안에
머물러 계실 수가 없었네.
신의 열매를 따먹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은총을 등지고
당신의 품을 떠나
숨어 버린
사랑하는 당신 피조물의
뼈아픈 죄가
하느님의 마음을
몹시도 괴롭혔기 때문이라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우리의 손과 발, 입은
저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쓰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나에게 빵이 얼마나 많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주님께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과 수고로움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께 대한 갈망과 절박함으로 세상의 빵보다는
영적인 빵에 대한 내적 갈급함이
나에게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 손과 발, 입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쓰이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그렇게 될 때 제 삶이 기적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제 안의 빵 7개가
기적을 이루는 완전함을 이루고
흘러넘쳐 남은 조각 일곱 바구니로
세상의 배고픈 이들을 먹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는
현실이 되어 우리 곁에 있습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마르 8, 8)
광야에서도
우리를
살게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삶입니다.
모든 자리가
식사의
자리입니다.
하느님께로
우리가
가게 되면
먹을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음식의
움직임이
곧 사랑의
움직임입니다.
식사를 자주
같이하는
관계가
가장 가까운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식사를
같이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성체성사는
우리를
보살피시고
배불리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성사입니다.
사랑의
성체성사로
우리 삶에
들어오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 먼저
정성된 사랑의
양식이 되시어
당신 자신을
우리들에게
바치십니다.
우리의 삶 또한
우리의 나눔으로
바치고
올려드리는
성체성사의
삶이 되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감출 수 없는
오늘의
사랑으로
서로를
배부르게 하는
은총의 날
되십시오.
자아가
죽어야
빵이 되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마르8,8ㄱ)
'또 하나의 빵의 기적인 성체의 기적!'
오늘 복음(마르8,1-10)은 '예수님께서 사천 명을 먹이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굶주림에 지친 많은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십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마르8,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갖고 있었던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손에 들고 감사와 축복을 드리신 다음 굶주린 군중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러자 사천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일곱 바구니나 남는 빵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거창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묵상을 먼저 해 봅니다. 나의 작은 나눔에서 시작되고, 그 작은 나눔들이 모여서 큰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이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시는 분입니다. 작은 나눔을 하도록 이끄시는 분, 당신처럼 너에게 가엾은 마음을 드러내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매일 성체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매일 드리는 미사(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고 축복하신 다음 열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던 최후의 만찬의 재현입니다.
우리는 매일 사제의 손을 통해 예수님께서 나누어주시는 성체를 받아모시고, 이 성체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성체(聖體)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는 영적 양식입니다. 축성된 작은 밀떡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믿음 안에서 성체를 받아모시면,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고, 나를 당신의 마음을 닮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지 않으면, 아담과 하와처럼 죄를 짓게 되고, 하느님이 두려워 숨게됩니다.
"너 어디 있느냐?"
굳건한 믿음과 정성된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모시고,
'또 하나의 빵의 기적인 성체의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복음말씀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흙을 일구게 하셨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3,9-24
9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16 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19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22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23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24 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10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