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76]하치코(ハチ公) 개동상 유감
지난 일요일 오전, 도쿄 하고도 시부야 하치코(ハチ公) 개동상 앞에 섰다. 무식의 소치이지만, 효도관광을 시켜준 아들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 재밌고 유익한 개 이야기를 알았겠는가. “아빠, 이곳은 꼭 들러 사진도 찍어야 해요. 아빠가 관심있는 오수개의 미래와 결부해 생각도 해보세요” 속 깊은 아들이 든든하고 무척 고마웠다. 시부야에서 누구를 만난다면 무조건 이곳이라는 세계적인 만남의 명소란다. 전주에서 10대를 보낼 때 약속과 만남의 장소가 언제나 미원탑 옆 건물인 ‘전다방(전신전화국 1층 로비)’였듯, 개동상이 시부야의 랜드마크(대명사)가 된 것이다. 그날도 개동상을 어루만지는 멕시코인 가족이 있어 신기했다.
‘하치(ハチ)’라는 이름의 개(1923-1935) 이야기는 줄여 말하면 이렇다. 때는 1923년 도쿄제국대 농학부 교수 우에노 히데사부로(1872-1925)가 동료 사이토 요시카즈로부터 강아지를 선물받았다. 일본어 하치는 8이어서 익숙하다. 7은 히치, 희대의 간신 한명회가 칠삭둥이여서 ‘히치부’로 불렸다던가. 몸이 약한 하치는 자신을 극진히 돌봐준 우에노가 통근할 때마다 역까지 꼭 배웅을 하고 마중을 나왔다. 둘은 완전히 ‘아삼육’이었던 듯. 1925년 우에노가 학교에서 급성 뇌출혈로 돌연사했으나, 이를 모르는 하치는 무려 10년 동안 역에 나와 우에노를 기다렸다고 한다. 개장수가 잡아가기도 하고, 주변 상인들이 구박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은 주인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기다렸다는데, 이를 신기하게 여긴 일본개보존협회를 만든 사이토 히로시이 이 사연을 ‘아사히신문’에 제보, 유명해졌다 한다. 이 사연을 듣고 조각가 안도 데루가 동상을 제작했는데, 제막식에는 하치도 참석했다. 그러다 11살(사람 나이론 65세?) 되던 1935년 병으로 숨졌다. 하치의 박제剝製사체는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에 '아키타견'의 표본으로 전시돼 있다고 한다. 100년 전의 일인데, 2022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 하치를 실체로 보고 만져본 적도 있는 90대 노인이 출연, 그 일화를 증언해 더욱 화제가 됐다.
이 미담은 퍼지고 퍼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하치 이야기>가 나왔고, 1987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009년에는 미국에서 <HACHI 약속의 개>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 리처드 기어가 주연을 맡았으며, 중국에서도 영화화했다. 당시 개 목걸이에 ‘8’자가 쓰여 있어 ‘하치’로, 또는 8번째 낳은 강아지라서 이름을 하치로 지었다는 설이 있다. 하치코의 코는 하치의 충성과 의리를 높이 사 ‘코(公)’이라는 존칭을 헌사한 것. K팝스타 이진아의 노래 <마음대로>도 먼저 간 주인을 잊지 못하고 기다리는 하치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도 하고, 음악과 만화 등에서 하치 이야기를 반영한 것이 많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잠시 생각을 해본다. 우리 고향에 1천년 전에 불길에 휩싸인 주인을 살리고 대신 죽은 의견이자 충견인 ‘오수개’ 실화가 전한다. 임술년에 의견비를 세웠다는데, 이 비가 현존하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일무이한 개를 기리는 비석이 아닐까 싶다. 사건 발생은 973년으로, 임술년은 그보다 50년 후인 1022년으로 추정된다(학술대회를 통한 정론 시급). 멸절된 오수개가 30여년 전 생물학적으로 완벽하게 복원돼, 지난 6월말 유엔 FAO에 의해 대한민국의 고유 개품종으로 등재되는 경사가 있었다. 하여, 임실군은 1천년 전과 같이 군민이 합심하여 기념비를 세웠다(전면이 승천하는 오수개를 양각해 새긴 1천년 전의 비처럼 전면에 복원된 오수개를 양각으로 새겼다. 의견비 뒷면엔 당시 비 건립때 시주한 사람 85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오수개를 메인 컨텐츠로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개주인인 김개인에 대한 연구도 필요한 일. 개무덤을 만들고 슬피 울며 부른 노래가 <견분곡>이었다는데, 그 노랫말을 복원할 수는 없을까? 조선초 어느 문신이 오수의 개무덤을 바라보며 쓴 한시도 있지 않은가. 스토리 텔링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 “오수를 세계적인 개판의 작은 마을로 만들자”며 창작판소리를 지어 ‘폭포 명창’으로 유명한 배일동 소리꾼이 불러제키면 어떨까? 오페라인들 만들지 못하랴.
21세기는 무조건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영상의 시대. 영화를 먼저 만들자. 시나리오는 누가 쓰고 메가폰은 어느 감독이 맡을까? 그리고 주연이 중요하다. 리처드 기어 못지 않은 우리나라 배우중 안성기라면 딱인데, 그가 선뜻 응해 줄까? 그가 아프다고 한다. 부디 건안하시길 빈다. 100년 전도 아니고 1000년 전의 일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완벽한 ‘선진국’이 아니던가. 보라, BTS와 블랙핑클 등 K-팝, K-뮤직의 화려한 행진을, 기생충 등 K-영화의 연이은 팡파레를,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거머진 K-문학의 놀라운 성과를. 오수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어 세계에 수출하면 좋겠다. 지구촌은 이제 한국어 배우기 열풍에 휩싸인지 오래. 그 영화를 본 전세계의 ‘대한민국 찐팬’이나 ‘반려동물 인구’들이 줄지어 1천년 전에 세운 의견비를 어루만지러 전라도 하고도 임실, 조그만 오수 읍내를 찾는 발길이 이어지지 않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은가. 시나리오 작가들은 무엇하는가. 소설이나 창작판소리를 지을 작가는 없는가. 영화가 인생의 전부였던 배우 안성기의 열연이 보고싶다. 하하. 그런데,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즐거운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