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살아있는 인간이셨습니다. 그분의 존재는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죠.
동시에 그분은 역사를 뛰어넘어 존재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이 세상이 끝날 때에도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죠.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십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그분께서 사람이시며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인간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로 오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통해 우리가 지녔던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하기 위함이죠.
창조 때 지녔던 본래의 모습,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비슷하게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유혹에 넘어간 원조들로 인해 그것을 상처를 받았고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났죠.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다시 하느님께로 인도해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구리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당신 자신도 그 구리뱀처럼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말이죠.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께 온갖 불평을 해댔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보내신 것이 불뱀이었습니다.
그 불뱀에 물린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모세가 만든 구리뱀을 바라보아야했죠.
불뱀은 심판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발 하느님을 바라보라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라고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죽음의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 그분께서 매달려 계신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십자가를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리고 우리를 위해 저분께서 오셨다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위해, 그 희망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겐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수 없죠.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겐 어떤 것도 줄 수 없습니다.
원하지 않으면 받지도 않고 받더라도 쓸 줄을 모릅니다.
믿는 사람, 그것을 바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구리뱀을 바라보는 사람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구원은 희망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선물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것을 열어볼 것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벽장 안에 넣어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불리는 그리스도인들이고, 그분을 믿고 그분께 희망을 두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 구원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너머를 바라보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니코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 말씀 안에 머무르며 기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늘 미사는 생미사로 이현승 요셉, 오영수 안셀모,
위령미사로 송미경 모니카, 조영자 엘리사벳을 기억하며 미사 봉헌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