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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중국 산둥성 빈저우에 세워진 진시황의 거대한 동상이, 지난 4월 6일 강풍 때문에 앞으로 넘어져 파손됐습니다.
만일 어떤 한국사학자가 이것을 안타까워하여, "진나라와 시황제도 본디 우리 한민족의 먼 시조이다"며 순례단을 꾸려서
진시황 동상을 복구중인 그 현장에 가서 애도를 하고 자원봉사를 자처했다고한다면, 중국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국민마저 대부분 미쳤다고할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사학자가 고조선과 단군만이 한반도의 시초라며 문자적인 단일민족 틀거리로 스스로 가둔 오류에서 출발합니다.
고대사를 게놈프로젝트로 살펴보면 중국과 한반도는 알타이계로 거의 모든 아시아가 이에 포함됩니다.
아시아계 민족의 기원은 선사시대 인류출현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호모에렉투스(북경원인) ->
호모사피엔스 ->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후기 구석기)로 수렵과 채집을 하는 공동체의 삶이었습니다.
신석기와 청동기때부터는 인류의 개체가 더욱 증가함에 따라 각자도생하듯 흩어져 농경생활을 하며 집단을 이루었지요.
아시아권만 4개문화권(동방문화권, 북방문화권, 화북문화권, 화남문화권)으로 나눠집니다.
바이칼호부터 유라시아 대륙 동쪽지대까지 알타이어계 언어를 사용하는 몽골리안이 넓게 형성된 셈입니다.
문헌상 기록으로 동이족, 한족, 예족, 맥족, 예맥족으로, 한민족은 동이족, 중국은 한족으로 분류합니다.
청동기에 한민족의 시초인 고조선이 성립돼 철기시대까지 단군왕을 모셨는데,
고조선인끼리 혼인하고 단절해 산것이 아니라, 이웃 진나라를(교류가 활발) 비롯해 북.남방계 중원등 종종 교류했습니다.
(단군왕족들은 동이족혈통으로만 계통을 이었으나, 신하와 백성들은 중원대륙에 줄곳 어울리며 교류함)
고조선뿐아니라 삼국시대에도 중원사람처럼 서로 교류하며 다양한 형태로 세를 형성해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번성한 시기가 고구려때로 각아시아 민족과 교류하며 서북아시아권 용병을 기용하기도합니다.
하여 대한민국 민족의 기원이 고조선이겠지만, 이후 국가 계보에 진나라를 포함시키는것도 무난합니다.(예; 발해)
즉 한민족이 단일민족임은 허구인것이며, 그 허구에 가둘수록 역사의 포부는 쪼그라들수밖에 없습니다.
<삼국지>에서 '고구려는 언어가 대부분 부여와 일치한다'하며,
<양서>에서 '신라가 중국 진나라 말과 흡사하다'하며, '백제는 고구려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언어는 신라와 같았다.' 전합니다.
귀한 수정(水晶)으로 축구장 16배 크기 건물을 지었던 고구려 2018.03.23
출처 ; 매일경제 http://premium.mk.co.kr/view.php?no=21824
(고조선의 부왕; 진나라에 형식상 복속, 왕위 부자 상속, 고조선의 준왕; 진나라 이주민들을 받아들이고 국토를 확장함.)
출처 ; blog.naver.com/jow78122/220904725017 감상과 생산의 누리..
진시황제의 진나라(秦國)와 신라의 진한(辰韓) 상관관계 2010.01.06
blog.naver.com/zpzgya/97153020 (朝鮮,韓)학교에서 안가르치는 우리 국사
한인(韓人)이라 했다. 그래서 진한(秦韓)이라 했다. 10. 진시황제의 진나라가 망하고 진한(秦韓)이 나왔다.
그리고 신라가 나왔다. 11. 중국인들은 스스로 한족(漢族...
여진족은 발해유민 2009.07.08
대진국 발해가 망한후 그 백성을 고려인 이라고 부르려다 못 부르고 여진족이라 부른다
고려 라는 국가가 있기에 그래서 고구리의 "리" 자를 따서 "여" 라고 하고 대진국에 "진" 자를 따서 여진족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발해의 유민이 여진인 것이다 "청" 제국은 만주족 여진인이 세운 것이 대진국이 망하고 700 년후의 일이다
그래서 청제국은 발해인이 세운 것이다..
출처 ; cafe.daum.net/spacemind/OJyp/27 한민족역사 홍익인간 빛나라 | 댓글 1
여진족은 고구려와 대진국(발해)의 후손 결국 같은 동이족! 2009.11.30
남조: 통일신라 - 고려 - 조선. * 북조: 발해 - 요(거란) - 금(여진) - 제(고구려 유민) - 원(몽고족) - 청(후금. 여진족) 위에서 남조를 우리나라 정통사학파는 발해만...
출처 ; cafe.daum.net/illuwha/3f7n/19 천부경-역사-일류화 신비 우주진리완성
한겨레 참역사2009.09.21 levi.tistory.com/7 The Order
본래 중원대륙 주인인 한겨레를 동이족, 서이족(서융), 북적, 남만 등으로 부르는데 서도 저들의 왜곡수법이 드러난다...
진나라는 한민족처럼 알타이어계 언어를 사용하는 몽골리안으로 몽골말을 쓰는 북방계 여진인이 주류였습니다.
진시황 또한 서이족후손이었는데, 배달민족의 한갈래로서 투르크 민족(중앙아시아 카자흐민족)이었습니다.
도량형,개량형 등 수치화를(화폐, 문자) 통일하고,
법가사상이 보편화 되었는데 법가(한비자)사상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강했습니다.
지배계층이 호족.귀족으로 형선된 봉건사회이다 보니 강력한 무력통치와 억압통치를 통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법가사상은,
결국 양민의 억압과 수탈로 이어져 백성의 피로 만리장성은 구축 하였으나 민심은 잃게 됩니다.
진나라 유민의 한반도 유입은 진시황때부터이며 진나라 쇠락후 대거로 이동해와 세를 형성했다고합니다.
(삼국사기에 진나라 유민이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한반도로 이주해왔다고 서술)
역사서에서 기원전 210년 음력 9월 10일, 진시황제 영정은 50세의 나이로 서거했습니다.
그러나 간신배 이사와 조고, 간사한 황제의 아들 호해는 시황제의 죽음을 숨겼습니다.
얼마 뒤, 시황제의 26남 호해는 황제에 오르니 그가 진 2세 황제이며, 이때부터 국운이 기울어 진3세에 멸망을 하게 됩니다.
조고는 시황제의 유서(옥새를 적장자인 황태자 부소에게 전달케 하고,
부소에게 함양에서 자신의 장례를 주관하라.)를 호해에게 유리하게 조작했습니다.
유서에 황태자 부소와 몽염에게 자결하라 했다. 했으며 부소는 함양 외지에서 자결하였다고 전합니다.
출처; 서안 진시황병마용 유유자적 http://elitehcs.tistory.com/383
한편 구전으로는 나라의 폭정으로 진나라가 쇠락하고 왕권다툼이 발생하자
장남 부소는 변방에 운거하며 자객단을 피해 몸염과 함께 신진을 세우고,
이후 요동을 거쳐 한반도에 내려와 경북 경주에 진한을 세웠는데 박혁거세로 신라의 시조라 전합니다.
한서 흉노전에서 몽염이 진나라 변방에 운거하며 명목상의 '신진新秦'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부소는 명민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부친 시황제의 서거 후 정권을 찬탈한 호해시대(진2세)부터 국력이 기울어지자,
몸염과 함께 수십만의 반란군을 모아서 명목상의 신진을 세웠으나
왕위복귀나 수도 수복을 꾀하지 않은체 변방에 운거했습니다.
(부소가 어진 사람인것임은 부친 생전시 시황제가 분서갱유(焚書坑儒) 사태를 일으키자, 왜 그려셨냐고 부친에게 간언했으나, 도리어 시황제의 분노를 사 대장군 몽염이 있는 국경 근교로 쫓겨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권을 찬탈한 호해정권은 대거 추격꾼을 보냈으나 만리장성의 무리한 축조로 이미 민심을 잃은지라,
각기 다른 민족이나 제후국으로 이루어진 지역관군이다보니 협조가 만무한 상태였습니다.
진나라의 태자 부소를 따라 요동으로 가는 수십만의 엑소더스에 연,조,제나라인들은 그들을 잡아 압송시키기보다,
그들을 머물게해 자신의 제후국 세를 더 확장하는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아무튼 진나라 반군뿐아니라 진나라사람 대부분이 폭정을 피해 변방에서 기반을 잡아 나갔습니다.
진나라 리더들은 고조선처럼 선민사상 및 북방계 유목민처럼 개척정신이 강했기에,
농민,평민출신으로 구성된 한나라에 고개 숙이며 사는것이 좀 부담스럽기도하였습니다.
한편 진나라의 일부 반군인(신진) 군벌들은 요동을 거처 위만조선을, 또는 만주 북부에 부여를,
또는 한반도로 남하해 평양에 낭랑국을,
또는 한반도 충남으로 이동했으며, 사비의 백제가 남부여로 국호를 계승했다합니다.
한반도의 경상북도 경주에는 '서불한'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사로국을 다스린걸로 나오는 서불한)
구전으로, 부소가 드디어 .. 수십만의 진나라인들을 거느리고 경주에 왔습니다.
서불왕이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태자를 맞이했습니다.
"본디 진나라는 우리의 또 하나의 혈족이 아니겠습니까.
태자님.. 이 곳에 새로운 진秦을 세우소서.. 진한秦韓이옵니다.. 진한..."
부소는 그렇게 혁거세로 즉위하였고(박혁거세)
경상북도,경상도,강원도는 물론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여 진국秦國을 세웁니다.
(물론 삼국지 동이전에는 진국辰國이라 나오지만 삼국지 동이전 자체도 진辰은 진秦이라고도 적는다했고
후한서,삼국지 동이전은 진한秦韓이 옛 진국辰國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한족의 전통성은 진나라 쇠락후 한나라를 세운 유방부터이며,
이후 위,촉,오로 분열하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의 촉나라가 한나라를 계승한 것으로 정리합니다.
중원대륙에 있다 한반도로 남하한 한민족에 비해 중원에 죽치고 세를 형성하다보니,
진나라도 중국의 역사라 뭉뜽거리는 계기인 셈입니다.
역사로 볼때 고대 진나라는 한민족의 먼 혈족입니다.
중국 한족에게는 이웃사촌일뿐 혈통으로는 남남인것입니다..
신라는 삼한에서 왔는데 백제는 어디서 왔나요?
신라는 여러 경로를 통해 외부에서 이주해온 세력입니다..
http://tip.daum.net/question/102779660?q=%EC%A7%84%EB%82%98%EB%9D%BC%2C+%EB%B6%80%EC%97%AC
왜 중국의 나라들은 오래가지 않았을까요? 2017.07.29. 【부흥】네이버 대표 역사 카페 대표 http://cafe.naver.com/booheong/152905
..있던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 그리고 사마의의 진나라가 멸망을 하고 등장을 하는 5호 16국 시대까지 생각을 하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역사에서 늘 말하는 것이 어떻게 나라를...
[김탁의 우리역사의 비밀] 위만의 등장과 한무제의 조선침공 / 해모수의 북부여 건국과 조연전쟁의 경과 2018.03.22
위만은 우리에게 망명을 요구했으니 (북부여)단제께서 이를 허락치 않으셨다.
단제...星이 한韓나라 사람 장량張良과 함께 진나라왕 정政을 박랑사博浪沙<하남성 박랑현...
굿모닝충청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84982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82294
동이족 연대기사 - 삼국시대이전 고조선 부여등등 http://cafe.daum.net/GUNCHOGO/ewfy/3
고대시대부터 이후 동북아 격동기의 정세
티벳에서 동북으로 북상한 마곡의 후손들은 지금의 장안일대에서 최초의 고조선제국성립
(최근 발표된 Y 염색체 이동결과 논문과 장안근교의 피라미드 무덤군과 장안에 있는 태백산 지명이 증거)
단군왕검이 무리를 이끌고 동방으로 이주 하북성 당장경을 중심으로 수도건설 대제국 고조선 성립
(미수기언,고려사,단군고기)
단군왕검의 후손중 치우와 황제헌원 산서성 탁록에서 대전을 벌여,
치우가 이기고 동쪽으로 갔으며, 헌원은 탁록의 서쪽일대를 점거함
(산서성의 려성지명,하북성의 탁록지명은 원래 산서성에 있었음,치우의 무덤은 동평에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치우는 고대의 천자로 알려져 있었음)
제곡고신의 후손 감숙성 롱서에 최초의 고죽국세움 고조선의 제후국이 됨,
제곡고신의 아들 방훈 요임금이라 칭하고 산서성평양에 도읍 고조선의 동맹국내지는 제후국이 됨
(롱서에 위치한 고죽국 수양산,수서에 고구려의 선조는 고죽국,삼국사기에 고구려의 선조는 제곡고신씨,사기)
고죽국 산서성으로 이동 ,은나라의 제후국이 됨, 고조선 은나라를 신하국으로 하는 강력한 제국이 됨
(산서성에 위치한 고죽국 수양산,은허발굴에서 은나라는 고조선과 동일민족이 세웠으며
망한후 고조선으로 돌아갔다는 증거 발굴됨)
서이족의 주나라 국가체계확립하고 강력한 군사국가로 변모함 주무왕은 은나라를 정벌,
은나라유민은 고조선땅으로 대거유입 은태사 기자 고조선에 망명후 개봉일대의 제후가 됨
(대명일통지 기자의 봉지는 개봉일대,)
고조선제국 분열시작, 북부여와 마한제국 고조선태왕 직속령으로 3등분됨.
동이족이 주류가된 흉노는 부족을 통일하고 스키타이의 영토를 수복하기 시작함 주나라 분열되기 시작
(신라의 비문과 고구려비문에 왕을 태왕으로 표기 태왕이 왕중의 왕이라는 우리식표현임이 확실함,
마한은 진나라가 황제를 칭한후 동시에 황제를 칭함 마한의 계승자 백제는 자신의 왕을 백제국마한황제 제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흔적이 성왕의 삼남 오오치가문의 족보에서 발견됨; 미수기언,삼국사기,삼국유사,단군고기)
제나라에 의해 고죽국 멸망함, 그땅은 조나라가 차지하고 고죽국유민은 북으로 이동하여 조선땅에 유입됨
연나라 장수 진개 북쪽의 동호를 쳐서 1천리땅을 뻇고 동쪽의 조선을 쳐서 2천리땅을 빼앗음
(위략,한서,사기,자치통감)
기원전206년 서이족후손(배달민족의 한갈래, 투르크 민족) 진시황이 중원통일
고조선, 흉노 등 중원변방과 경계를 짓기위해 만리장성건축,
진나라 멸망후 진나라 유민들 동족인 마한제국에 의탁함 마한은 땅을 떼어주고 秦韓이라 부름.
진한에서 일부종족 갈라져 변한이 됨. 모두 마한제국황제의 통치를 따름
- BC 341 고조선의 번조선왕 해인이 연나라 자객에게 암살당함
- BC 339 고조선(진한 번한)과 기후세력의 협공으로 연나라가 패하고 연공자 진개 조선(동호)의 불모가 되다
- BC 323 기후 번조선 왕이 되다
(이 시기부터 기자조선이라고 함, 위만에게 탈취 당할 때인 BC194년까지 6대 129년간 존속했음)
- BC 311 진개 탈출하여 번조선을 침공. 서방 2천리를 차지함. 진개는 연나라 소왕 재임시의 인물( BC313-BC279)
- BC 230 진나라 진시황 천하통일 전쟁 착수.
( 한(BC230), 조(BC228), 위(BC225), 초(BC223), 연(BC222), 제(BC221)를 차례로 멸망 시키고 40세의 나이에 천하통일 완수)
- BC 222 연나라 멸망
- BC 221 번조선(기자조선) 기준왕 즉위
- BC 210 진나라 진시황 서거
- BC 206 유방 한나라 건국(한족의 시초)
- BC 195 번조선의 기준왕은 연나라 망명객 위만을 박사에 봉하고 상하장을 떼어서 봉함
- BC 194 연나라에서 도망온 위만이 번조선(기자조선)을 탈취. 한나라에 의해서 봉해진 연왕 노관 흉노로 투항.
부하장수 위만은 번조선으로 도망하고 기준왕을 속여서 번조선 탈취하다
- BC 147 한나라의 한무제 등극. 북방으로 흉노, 서역, 남월 등 정복전쟁 개시.
- BC 109 한나라 사신 섭하가 조선의 비왕 장을 살해함으로 조한전쟁(한사군 전쟁 촉발)
- BC 108 위만조선 멸망
첫댓글 아이구 이러다간 중국 동북공정에 다 넘어가게 생겼네...............결국 귀하의 논리는 당시 진한시대에는 인종분류가 동아시아는 인종구분이 거의 없었다 이거지요.... 진시왕 노역을 피해서 진나라 사람이 아니고
노역에 동원된 당시 조선인들이라고 다른 사서에는 기록되었는데요. 진시왕의 정복전쟁으로 황하하류지역에 거주했던 번조선 유민들이 만리장성 노역을 마치고 조선지역으로 만주 몽고 유역으로 이주하고 일부는
한반도로 흘러들었고 당시 마조선 부단군이 그들을 경주지역으로 안배시켰다는 사서가 있습니다 이러다간 중국넘들 동북공정에 한반도가 통채로 넘어가게 생겼네
바이칼호부터 유라시아 대륙 동쪽지대까지 알타이어언어의 몽골리안이 넓게 형성됐었고, 한족은 엄연히 다르지요. 당시 배달민족이 동이족 뿐아니라 예맥족, 북방여진족(말갈), 선비족(거란족), 서이족 등이 있었다죠.
카자스탄 서이족, 여진족이 우리의 순혈민족은 아니겠지만 동족은 된다이며,
중국 한족에겐 거의 남남인데 여진,서이족을 중원에 줄창있었으니 중화 민족이라는게 동북공정이지요.
중국은 배다른민족도 자기 역사에 포함화는데, 한민족은 순혈통만 포함시키니 운신이 좁은것이며, 하여 임시정부때 원나라, 청나라도 한반도의 먼민족이라 역사서에 별도로 포함한 전례도 있네요. http://www.yes24.com/24/goods/1978
@채널만호 아무튼 한민족 선조의 전속강역이 배달민족인 단군에 의해 고조선->부여로 당연히 정식 직계사로 인정합니다 .
한편 알타이어계 언어를 사용하는 몽골리안 배달민족이 넓게 형성되 동이족, 예맥족, 북방여진족, 서이족 등이 있었는데, 이러한 배달민족이 여진족을 주류로 진나라에도 산재해 있어 당시 한족은 비주류였으니 진나라는 만주족의 역사이며(당시 서융왕조), 한민족엔 동족역사이고, 한족은 당시 운신했던 역사이지 주류역사는 아니라는거죠.
민족이란 오랜세월을 통해서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서
언어 습관 혈통이 동일시 된 상태죠
귀하 논리로 한다면 마고성과 환인십이제국에 소속된 인류는 같은 민족개념이 됨니다 귀하논리는 일본도
같은 한민족 방계이지요 중원 민족도 그렇고
그게 통합니까 먹힘니까
남북이 천년간 분단되면 다른민족 됩니다
고대사에서 여진거란돌궐등 북방민족이
같은 민족인데 한민족과 친했나요
(선비족인 거란만 제외하고)당연히 한민족인 동이족들과 친했지요.
고조선 단군중 후에 부여를 건국후 선비족침략에 위기에처할때 진나라 도움으로 나라를 회복하는등,
동족이기 때문에 큰도움주고받고 그랬답니다. blog.naver.com/heuijong1004/150132386722
당시 진나라에 배달민족이 여진족을 주류로 산재해 있어 당시 한족은(배달민족 아님) 비주류였어요.
엄연히 진나라는 만주족의 역사이며(당시 서융왕조), 한민족엔 동족역사이고, 한족은 당시 운신했던 역사이지 주류역사는 아니라는거죠.
@채널만호 그게 등신입니다
그렇게해서 한족들에게 동화되는거죠
그리고 거란족은 단군조선 직계입니다
그들도 단8조를 지켰지요 거란이란 이르은
커다란 큰 이란 부족명이고 단군팔가 일족입니다 대륙을 지배했던 동이부족들은
그들을 통치한다고 하다가 전부 동화되고
소멸되었지요 역사를 안다면 중원대륙 통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아참 진나라 피난민에 신나라 세웠다가
한무제한테 쫒겨난 김망일족 그리고
선비족으로 고구려 한테 치도곤 당해서
경주로 몰려든 대륙변방 짬뽕들이
신라를 가지고 장난치고 집권해서
외세불러서 민족정통맥인 고려 백제를
망하게 했지요 옳은 역사인지 궁금하고
더 이상 소모적인 댓글 짜증납니다
단지 알타이어계에 몽골리안이라고 같은 역사 동족이라는 논리가 전혀 이해가 안되는군요
고려 청자의 원류가 중국이니 고려청자는 중국 청자라는 논리와 뭐가 다른지
오히려 고구려 이후 한족보다 같은 동족이라는 거란 여진 몽골과 적대시하고 전쟁을 했는데 무슨 조그마한 단편적인 공통점으로 같은 문화 역사라고 하는지
다 떠나서 고구려 발해 이후 한족과 투쟁은 우리 위대한 배달 민족이 아니라 소위 방계라는 거란 몽골 여진이죠 우린 그들과 적대시 했죠 만주 역사가 한족 역사가 아닌거 맞죠 하지만 100프로 우리역사라고 할수도 없죠
먼동족인데도 한족에 비해 덜양반적이고 기질이 지랄같아 도외시한건 탓할바는 아니나 그닥 잘한 처세는아닙니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한민족 나라를 침략하거나 몽니를 부린 선비족(거란족), 흉노족에겐 "니가 우리 동족이가!"며 한마디할수있지만,
나머지 여진족(몽골), 만주족 등엔 서로 과오가 있는바 자성할 부분이죠.
중국,일본은 민족의 동질성만 있다면 다품어안으려하는데, 한국은 차때고 포때다 결국 이꼬라지인 형세입니다.
중국의 경우, 조선족이든, 몽골족이든, 북한이든 자신이 한국이라면 이해득실로 처세치않고 투자적관목으로 접근했을것입니다.
cafe.daum.net/hanryulove/8pfm/23938 영원한한민족님의 댓글을 숙고바랍니다.
(만주족 청나라 청태종이 조선을 침략한건 인조정권이 후금국을 노골적으로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이 협력은 고사하고 적대적이니 조선을 먼저 원정해서 협력국으로 남기고 명을 칠수밖에 없었다. 누루하치를 포함한 당시의 여진족은 조선을 부모의 나라 혹은 형제의 나라로 조선을 우호국이자 한때는 상국으로 보고 있었는데말이다. 인조가 병신짓만 하지않고 최소한 광해군 정도만 했어도 군신관계로까지 떨어지지 않았었다. 어쩌면 친청으로 왜구소탕도 수월해, 격동기때 국제판세가 덜 요동쳤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