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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16일(주)
* 시작 기도
(눅 2:11-12)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주님...
요셉과 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낳았습니다.
호적을 위하여 베들레헴에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거할 곳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겨우 짐승들의 우리인 외양간을 얻어 그곳에서 아들 예수를 낳고 짐승의 밥통인 구유에 뉘었습니다.
당시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한 자들일지라도 갓난아기를 외양간, 그것도 구유에 누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여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가 바로 목자들에게는 표적이 되었습니다.
아기 예수는 육신으로 오실 때부터 우리에게 밥 곧 양식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더러 먹으라고 구유에 오신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그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더럽고 추한 정욕의 옷은 벗어버리고 의의 옷 곧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13:1-11
제목 :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 나의 묵상
예수님은 유월절 엿새 전,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나사로의 집에 들르신다.
거기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는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하는 일이며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장사됨에 연합하는 일이다.
이튿날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부르는 연호와 함께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그 유월절에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님을 뵈옵고자 청한다.
그것을 사인으로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음을 천명하신다.
그리고 한 알의 밀알 말씀을 하시며 당신의 죽음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인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져야 할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고뇌에 찬 기도를 드린다.
그것은 이 때를 면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이어서 ‘그러나 내가 이것을 위하여 이 때에 왔노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이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주님께로 곧 십자가로 이끌겠노라 하시면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고하신다.
예수님은 그토록 많은 표적을 행했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그들 스스로 돌이켜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신다.
하지만 이는 그들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심판을 통하여 그들을 결국 살리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로 외쳐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 곧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이요,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라고 하신다.
이는 곧 나는 빛으로 왔는데 나를 믿는 자로 하여금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려고 왔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내 말이 세상을 심판할 것인데 그 말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그 명령은 영생이며 내가 말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라고 하셨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의 공적 사역은 마침표를 찍는다.
이제 13장부터는 제자들과 함께 그들을 위한 섬김과 말씀을 하신다.
13장은 유월절 만찬과 관련된 말씀이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섬김을 본으로 보여주신다.
유월절 전 날,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됨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되 극진히 사랑하셨다.
마귀는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도록 그 마음을 넣어주었다.
저녁 먹을 때 예수님은 아버지가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아버지로부터 왔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셨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다음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다.
그리고 수건으로 차례차례 닦기 시작하여 베드로에게 오셨다.
그 때 베드로가 묻는다.
“주님, 주님이 제 발을 씻기려고 그러십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너는 지금 내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절대로 내 발은 씻으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 말에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럼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 온 몸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깨끗하지만 그러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을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시고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12장까지는 예수님의 사역이 유대의 일반인 곧 세상을 향한 사역이었다면, 13장부터 17장까지는 한 장소에서 ‘자기 사람들’로 표현된 제자들을 향한 다락방 강화의 사역 및 대제사장적 기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공적 사역을 다 마치고 저녁을 드시는 식탁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섬김의 도를 보이신다.
이는 단순히 제자들을 섬기는 행위를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과 상관이 있는 자로 삼으시기 위함이다.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여기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은 두 차원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상징과 실제이다.
예수님이 발을 씻겨주시는 것은 섬김과 희생의 도를 보여주시는 것으로 이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우리도 남의 발을 씻겨주는 그런 섬김을 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상징을 넘어 실제, 모형을 넘어 원형의 의미 또한 가진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서의 희생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있는 자라는 말이다.
베드로는 발을 씻겨주시는 예수님의 섬김의 의미를 온전히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단순히 선생이 제자의 발을 씻겨준다는 차원에서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거절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가 너의 발을 씻겨주지 않으면 너와 내가 상관이 없는 관계가 되고 만다는 말에 그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예수님은 입고 계시던 겉옷을 벗고 제자들의 말을 물로 씻어주신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거기서 흘리신 보혈을 의미한다.
이를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들리신 그 십자가로 이끄신다.
(요 12:32-33)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예수님이 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흘리신 보혈로 이들을 씻겨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십자가의 죽음은 대속의 죽음이며 그 죽음과 연합되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자들이 되고 만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후에는 알 것이라는 말씀은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야로 오해하고 있지만, 내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이후에 성령이 오시면 그 때는 분명히 알 것이라는 말씀이다.
나는 예수님의 발을 씻겨 주시는 이 일 곧 일명 세족식을 진짜로 오해한 자였다.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수도 없이 이런 세족식을 받아왔다.
그리고 내가 목사가 되어서는 나도 주님과 같이 섬김의 도를 행하겠노라고 하면서 부활주일이나 혹은 송구영신예배 때마다 연중행사로 세족식을 행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세족식이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된다는 것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알지도 못하였다.
단지 상징에 지나지 않는 제자의 도의 모범을 보이신 섬김의 의미로만 생각해 온 것이다.
그런 나는 주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자였다.
나야말로 진정으로 주님으로부터 발씻김을 받은 적이 없이 그저 상징적인 의미만 부각시켜서 발을 씻겨주곤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해도, 그 상징이 실제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림자가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실체가 오면 그림자는 사라지는 것이다.
모델하우스가 아무리 멋지고 아름답게 지어졌어도 실체인 아파트가 다 지어지면 모델하우스는 아무리 비싸게 지었어도 과감하게 허무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곧 대속적 죽음이라는 실체 뒤어 숨어서 제자도의 모범이라는 상징만 붙잡고 지내왔던 지난날 나의 모습이 그저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이다.
주님의 보혈로 나를 씻고 나 또한 주님의 십자가 죽음에 연합되기 전까지 나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온 것이다.
창세전부터 아들의 생명인 영생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심판하셨다.
그냥 놔두면 언제까지 모형과 그림자만 붙들고 거기서 희희낙락 할 것 같은 나를 심판하시되 함께 은혜를 베푸셨다.
그래서 심판 중에도 베푸시는 긍휼이 나에게 임하므로 복음을 알게 되고 그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십자가 죽음에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십자가를 타고 다니며 재미를 맛보는 그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였음을 고백한다.
십자가는 예수님과 함께 지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나를 못 박고 주님의 죽음에 연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생명의 십자가를 타고 다니면서 나의 명예를 얻고 나의 영광을 구하였으며 나의 인생의 성공을 위하여 탑을 쌓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입술로는 십자가를 외치나 무덤에 장사됨이 없으니 그 십자가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것은 그저 상징으로만 남을 뿐 생명의 실체를 볼 수가 없었다.
생명은 십자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덤에서 나온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활의 생명 곧 새 생명은 십자가를 통하여 무덤에 들어가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무덤으로 초대하시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나의 명예와 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다른 곳이 아닌 무덤으로 초대하시는 것이다.
그 무덤에서 우리가 할 일은 곧 새 언약 백성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주님과의 교제이다.
이 교제는 큰 자나 작은 자나 누구랄 것 없이 모든 자가 해야 할 새 계명이다.
(렘 31:31-3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발을 씻겨주시는 대속적 죽음과 함께 날마다 새 언약 백성으로서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하는 이들은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발을 씻는 것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다.
즉 주님과 상관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인데 이는 매일 우리가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내는 것이다.
우리의 죄를 주님의 보혈로 씻지 않으면 우리의 관계가 주님과 멀어지게 되나 씻으면 주님과의 관계가 가까워지게 된다.
이런 상관관계 안에서 영생을 얻은 자는 날마다 주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내고 내 안에 있는 아담의 본성인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거룩한 불구자로 세워야 한다.
이제 주님이 행하신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 안에서 주님과 연합한 자가 되어 날마다 주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으며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영생을 얻은 새 언약 백성으로서 날마다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한다.
이것이 진정한 영생이요 영생을 얻은 자가 누리는 하나님 나라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주님이 행하신 세족식을 너무나 오해했던 자입니다.
그저 인간적인 차원에서 섬김의 도를 모범으로 보이고자 행하던 하나의 연례행사로 발을 씻겨주던 자였습니다.
이런 나는 진리 안에서 주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그저 육신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나를 조금 낮추는 본을 보이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또한 칭찬과 명성을 얻고자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이용하던 아주 악한 죄인 중에 괴수임을 인정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에 연합하기는커녕 이를 타고 다니며 나를 위하여 이용하던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창세전 약속하신 그 영생을 주기 위하여 나를 심판하시되 생명의 복음을 함께 주셨나이다.
그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그 복음으로 이 죄인이 구원을 얻어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나이다.
오늘도 주님의 품에 안겨 아버지께서 아들의 얼굴에 비추시는 영광의 빛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빛이 내 영혼에 가득 채워지며 나로 하여금 생명의 빛을 누리게 하십니다.
주님이 받으시는 영광의 빛이여 영원하소서.
그 빛을 모르는 이들 또한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알고 거기에 연합하여 새 언약 백성으로 날마다 주님과 말씀의 교제 안에 들어가 진리 안에서 주님과 상관있는 자로 서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