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보리밭은 배고픔의 상징이었다.
배고픈 아이들은 팔을 빙빙 돌리면서 보리밭 가를 돌았다.
그러면 보리가 빨리 익는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보리밭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종달새다.
시인들은 거의가 종달새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노고지리라고 쓴다.
노고지리 우는 소리를 이원수는 '비일비일 종종종'이라 표현했고,
정지용은 '지리지리 지릴리'라고 표현했다.
더러는 보리밭 속으로 기어들어가 노고지리 알을 주웠다.
나의 첫 번째 데이트도 보리밭이었다.
아래 어느 분이 올린 보리밭 이야기를 읽다가
몇 년 전 이 방에 올렸던 글을 찾았다.
*
푸르디 푸른 보리밭,
노고지리 보리밭 위로 날아오르면 봄은 익을 대로 익은 것이다.
노고지리는 보리밭에 둥지를 틀고 거기서 알을 낳는다.
노고지리 하늘높이 날아올라 지지배배 울어대면 알을 낳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꾀많은 노고지리,
알을 낳고서 곧 바로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
보리밭골을 따라 10여 미터를 기어간 다음에 날아오른다.
보금자리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위장술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노고지리 날아오르는 지점에서 10여 미터만 뒤지면 새알이 있다는 것을...
노고지리 지지배배 노래하면
동네 지지배들은 오금이 저린다.
막 부풀기 시작한 가슴에 바람이 든 것이다.
순이야 노고지리 알 줏으러 가지 않을래?
그러면 옆집 순이는 좋아라 따라 나선다.
보리밭골을 누비며 솜털에 싸인 새알을 발견하고 좋아라할 무렵이면
저만치서 수돌이 할머니의 고함이 터져 나온다.
'요놈의 씨못할 년놈들...
차라리 우리집 안방을 빌려달라면 얼마든지 빌려주지,
남의 보리밭은 왜 망가뜨려!'
넘불어진 보리를 일으켜 세우면서 수돌이 할머니는 분을 삭히지 못한다.
지난 밤 수돌이네 보리밭에서 사랑놀이한 동네 처녀, 총각을 향해 지르는 고함이었다.
그러면 순이와 나는 무서움에 떨면서 보리밭골에 납짝 엎드려
할멈의 고함소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엎드려 있을 때
검정 치마 사이로 들어나 보이던 순이의 속살은 또 얼마나 희고 고왔던가.
순이야, 우리 다시 한 번 노고지리 알 줏으러 가지 않을래?
*
유년 시절의 보리밭은 문둥이와 연결된 이미지이기도 했다.
보리밭에 문둥이가 숨어있다가
아이들이 오면 눈에다 고추가루를 뿌리고 잡아먹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외진 보리밭은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철이 들어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시를 접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그리워
삘닐리리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청산 그리워 그리워
삘닐리리 닐리리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삘닐리리 닐리리 닐리리 닐리리"
"
보리피리 불며…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가도 가도 황톳길…
양말 한 짝 벗으면 발가락 한 마디가 떨어지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문둥이가 이리도 가슴 저미는 시를 썼다니...
오죽 한이 맺혔으면 죽어서 파랑새가 되어
푸른 창공을 마음껏 날고 싶어했을까.
불어오는 바람에 보릿대 살가락 거리는 소리는 마치 한하운의 흐느낌으로 들렸다.
한하운은 죽어 지금의 김포 풍무동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아무도 찾는 이 없다.
이래저래 깊어가는 5월이다.
첫댓글 한하운님의 시는 가슴을 싸한 아픔으로 전해오는 그리움
고향이 그립고 사람이 그립고 옛날이 그립고요
어쩌면 나도 저 아픔을 알것 같은데 ......
옛날에는 여자는 한남자 를 손목만 잡혀도 결혼해야하는줄 알고 ㅎ
남자도 또한 책임질줄 알어것만
요즘의 세상은 요지경
보리밭 추억은 없능교? 있으면 하나 털어놓으시지요! ㅎ~
아름다운 보리밭 풍경입니다
하지만 보릿고개의 배고픈 시절도
문둥이의 애환도
보리밭의 데이트도
지나고 나면 추억인것을~
보리밭 야그, 꺼내라니깐요...
@노을이야기 ㅎㅎ
보리밭
추억만들기 는 꼭 함 해보고 죽을 낍니더 ㅎㅎ
@라아라 학창때 보리밭 노래를 부르면 가슴속이 서늘 하도록 곡이 아름다와서 젖어 들었지요
보리 피리 불던 추억도 없고 보릿고개에 대한 회상도 떠오르지 않건만 특별히 다가오는 아련한 추억하나
바로 여고 1학년때 교내 합창 대회때 불렀던 보리밭의 기억때문이다.
이노래로 아련한 눈물나게 그리운 그시절로 추억 여행을 한다. 그리운 친구들의 해맑은 미소가 떠오른다.
감사합니다 잠시 추억을 더듬을수 있었습니다.
혹시 라일라님 이름이 순이 아니었던 가요? ㅎ~~~
보리밭 쿠션도 5월이 최고지요. 6월이 되면
너무 뻣뻣해 무릎이 홀라당 까집니다.~(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에잉? 쿠션의 달작지근한 맛까지 아셨나요? 이런~~~ ㅎ...
보리밭 쿠션도 있나요?
시침 뚝~!
@정 아 애들은 저리가라 ~
뱀장사 말중에서~
갱상도 보리 문디
핵교 운동장이든 동네어귀든디 자슥 찌랄삥 한다 카이"디 가스나 내가 뭐 햇능데 그라노"
밤 영도다리 난간위 외로히 떠 있든
유,소년 시절 성장지 부산
가스나, 머스마 한테 어울러
가스나는 가스나 끼리
머스마는 머스마 끼리 놀다가
가스나 끼리 고무줄 놀이 하는데
머스마가 재빨리 지나치며
슬쩍 고무줄을 끊어 놓으면
가스나 왈
"문
머스마 왈
"문
어스름
초생
그때 그 시절은 어저께 같은데...
육이오 동란중 그때 그 시절
보리죽이라도 먹었으면 잘 먹는 편인데
그나마 먹을수 없었든 찌든 가난
미군부대에서 음식쓰레기로 버린
소위 꿀꿀이 죽을 끓어서 먹곤 했지요
싫증나면 철판위에 부침개로 찌지고 먹곤 했지요
버릴때면격세지감을 느끼곤 합니다
요즘 아파트 단지 음식 쓰레기통에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유효기간이 지나
먹지 않고
그 아까운 음식
참
@산자락 저는 아주 시골이라 미군부대 찌꺼기도 몬 묵고 살았답니다...
겨우 보리사리, 밀사리 해먹었지요...ㅎ~
@산자락 저는 보리죽도 모르고
부대찌개는 더 모르고 자라도 냉장고는 텅텅 비었심더...ㅜ.ㅜ
@정 아 있으니 가련해서 우짜믄 조을꼬 내도 눈물이 날라 카네 내 막걸리 마시고 시퍼요 카믄서
냉장고 텅텅 비워 노으믄 공회전 돼 갓고 수명이 오래 몬가요
내 아무리 엄서도 막걸리 통은 택배로 보내줄 능력은 잇으니...
울 셋째 처제는 막걸리 생각 나믄... 형부요
냉장고에 너어 노을테니 택배로 보내 주이소 그람니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요즘은 개량종이라서 모두 키가 작아요...
그래서 보리밭에서 사랑놀음 하기에는 좀...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녁 노을 불 탈 때 쯤에 보리피리 불며 집으로 돌아오던 유년시절의 추억이~~~,
집으로 오면 감자밥에다 쌀 한 줌 넣어서 끓인 죽 한 그릇 비우고...
으하하하~!! 온유~! 상상만해도~~!ㅎㅎㅎㅎ
우리 지역에서는
문둥이를 용천백이라했는데
마..
보리밭을 지날 땐
무섭기도 했습니다.
그래요. 그러고보니
어려서 문둥이님들이 보리밭에 많이 숨어 계셨지요~~
좋은 추억만 있는건 아니네~~~
보릿대 살가락 거리는 소리라...참 재밋는 표현이네요.
그런데 윤용하가 용화로 오타가 났네요...ㅎ
고운 글 잘 읽었습니다.
아 선배님 오랫만입니다. 윤용하,, 고쳤습니다. 건강하시지요?
저도 보리밭의 추억이 없고
뽕나무에 매달려 오디 따먹고 새까만 입이 되었던 추억만 있습니다
요즘은 보리가 관상용으로 변했으니...정말 격세지감이지요
보리밭이 용도가 참 다양했네요..ㅎㅎ
중소 도시에서는 그넘의 보리밭 땜에 모텔이 안 된다잖우~...(믿거나 말거나 ㅎ...)
@노을이야기 대도시서 피신처로
중소도시 mt간다던디요
죄없는 보리밭을 탓하시온지 ㅎㅎ
보리밭이 커텐 역할을 할른지 모르지만, 침대역할에는 무리가 있을 듯~~
내가 보리밭을 느꼈을 땐 어릴 때(10세)이어서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답니다. ㅎㅎㅎㅎ
하기는 대구에 가면 자갈마당도 침대역할을 충분히 한다고 하지만 미확인정보입니다.
보리밭 근처에도 안가봐서요.
여행중이나 멀찌감치 볼수있는 보리밭은 걍 이쁘기만 한곳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