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은퇴 이부영
'영원한 비주류' 이부영(73)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지난 11일 징계 은퇴를 선언하고
24년간의 정치역정을 끝맺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에서 근무하다가 1974년 해직돼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이 고문은 김근태 전 열린 우리당 의장, 장기표 씨와 함께 재야 3인방으로 불렀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다섯번이나 옥고를 치렀고,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의 진실이 은폐.조작됐다는 사실을 천주교 정의 구현사제단에 전달해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게 한 이도 그였다.
1991년 정치에 입문해 3선 의원을 지냈지만, 제도권에서 이 고문은 비주류였다.
'3김'이 지배권에서 정치판에서 고 제정구 전 의원 등과 함께 '3김 청산'을 외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 합류를 거부해 민주당에 잔류했고,
1997년 신한국당과 '꼬마' 민주당의 합당으로 한나라당에 합류했다.
하지만 보수라는 맞지 않은 옷을 입었던 그는 2003년 김부겸 전의원 등과 함께
이른바 '독수리 5형제'로 불리며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가입했다.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지만, 2004년 국가보안법 개정 과정에서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배신자'라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정계은퇴 기자회견 후 오전 간담회에서 이 고문은 정치 인생 중 가장 아쉬웠던 순간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국보법 독소조항을 없애기로 합의했으나,
'폐지 해야 한다'는 당내 강경파 반발로 좌절됐던 때"라고 꼽았다.
그는 "6을 얻고 4를 내주는 게 정치인데 10을 얻으려고 하다가 결국 하나도 얻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 고문은 앞으로 일본 평화헌법 제9조 노벨평화상 추천 등 동아시아 평화문제와
보다 넓은 의미의 남북문제 같은 시민운동쪽에서 힘을 보탤 생각이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