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 하여 북촌이라 부른다. 북촌은 세월의 흔적이 더해진 낡은 건물과 자연미를 살린 한옥이 아기자기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골목길 경사진 계단가에 내놓은 소박한 화분 두엇에 골목길의 정감이 느껴진다. 말갛게 씻긴 새하얀 고무신 한 켤레라도 놓여 있을 것만 같은 댓돌과 한 자락 처마 끝, 모퉁이진 골목 어귀 하나에도 세월이 그대로 담겨 풍경을 이룬다.
안국역에서 걸어 올라오거나 삼청동 초입 파출소 골목을 따라 내려오면, 개관 이래 수많은 청춘들의 연애 명당이던 정독도서관에 닿는다. 아트선재센터와 정독도서관이 있는 교차로는 북촌길이 시작되는 곳. 정독도서관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그 길부터가 북촌길이다.
북촌길의 묘미는 마주 오는 두 사람의 어깨가 닿을 듯 좁아지는가 하면 어느새 넓어지는 길 자체를 걷는 데에 있다. 좌우로 시선을 돌리면 한옥 담벼락을 끼고 예쁜 골목골목이 나오는데 차가 들어올 수 없어 온전히 사람이 주인이 되는 곳이다.
정겨운 북촌길을 걷다 허기가 지면 이탈리안 레스토랑 ‘플로라’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많이 나왔던 ‘애프터 더 레인’에서 분위기 있는 한 끼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집을 개조해 만든 ‘차향기들꽃집’이나 ‘to go coffee’의 그윽한 차 한 잔도 그립다.
쉬엄쉬엄 북촌길을 즐기다보면 재동초등학교 사거리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부터 시간이 멈춘 듯 옛 정서와 맞닥뜨리게 된다. 재동초등학교에서 한 블록 더 떨어진 ‘북촌문화센터’와 중앙고등학교가 이어지는 계동길이 바로 그곳. 혼자 걷기 더 좋은 이 길은 옛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정겨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곳엔 오래된 집, 오래된 사람들이 많다. 대형 마트나 종합병원이 아닌, 문방구 혹은 구멍가게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계동길 끝자락 가회동 11번지도 북촌길만의 자랑이다.
계동길에서 가회동 성당 쪽으로 한 블록 걸어오면, 북촌이라면 부처님 손바닥 보듯 훤한 이곳 토박이 황도씨가 운영하는 와인바 ‘비니콜라’가 나온다. 고등학교 때까지 이곳에서 줄곧 자라온 그는 여전히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북촌이 좋아 이곳에 와인바를 냈다. 비니콜라가 자리 잡은 단출한 2층 건물 역시 그의 건축가 친구가 직접 설계한 건축물. 황도씨는 북촌의 가장 큰 매력으로 해질녘 산책을 꼽았다. “북촌의 골목길은 유흥과 거리가 먼 문화적인 콘텐츠를 담고 있어요. 미로 같은 골목길은 애써 손을 댄 곳이 없어 조용하고 아늑하지요. 초등학교 시절 수업을 마치고 골목길을 뛰어다녔는데 이 골목길은 어디든 다 통해서 집으로 가는 골목길 코스를 개발해내는 재미가 있었어요.”
600년 세월을 오롯이 간직한 북촌 한옥마을은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공간. 아담한 담과 좁고 운치 있는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켜켜이 숨겨진 문화를 발견하는 일은 소박한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1. 북촌문화센터 북촌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꼭 들러야 할 곳, 서예, 다도, 한문, 판소리, 천연염색, 전통주 빚기 등 여러 전통문화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문의_02-3707-8388
2. 북촌미술관 가회동 동사무소 바로 옆에 자리한 북촌미술관은 전통 고미술에서 현대 미술을 아우르는 전시 공간이다. 문의_02-741-2296
3. HOSEVAN 수제화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볼 수도 있고, 가방과 백, 지갑 등 수제 명품을 볼 수 있는 숍.
문의_02-3675-2235
4 플로라 세계 요리 대회 출신의 주방장이 직접 만드는 제대로 된 이탈리안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문의_02-720-7009
서울 강남 한복판에도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요소요소에 걸을 만한 길이 숨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신사동 현대고등학교 맞은편. 주민자치센터와 예화랑 사이로 난 이 길은 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내려앉아 이정표에 아예 가로수길이라고 쓰여 있다. 폭신한 우레탄이 꼼꼼하게 깔려 있어 하이힐을 신고도 한 시간쯤은 너끈히 돌아다닐 수 있고, 근처 직장인들이 점심 먹고 산책하기에 제격이며, 트렌디한 강남 여성들의 쇼핑 스트리트로도 잘 어울린다.
가로수길에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걸음을 재촉하기가 쉽지 않다. 짧은 산책로지만 꽉 막힌 교통으로 숨 막힐 듯 답답했던 바로 아랫길 풍경과 너무 다른 데다 양쪽으로 들어선 숍들이 하나같이 예뻐서다. 외길이어서 숨은 골목 찾는 재미는 없고 한가운데 제법 큰 차도가 있어 양쪽을 한번에 구경하기도 어렵지만 나무 그늘 사이로 늘어선 예쁜 가게들을 구경하며 걷는 것만으로도 남다른 산책 코스가 된다. 앤티크 스타일의 유럽 가구를 구경하고 아기자기한 소품과 건물 외관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사람보다 차가 더 많은 강남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길 위에 늘어선 숍은 대부분 트렌디한 강남의 젊은 문화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곳들이다. 핑크빛 외관에 알록달록한 플랫 슈즈가 층층이 도열한 ‘프렌치 솔’, 지중해식 가정식 덮밥으로 그리스 분위기를 내는 레스토랑 ‘그랑데’ 등은 독특한 인테리어만큼이나 개성 넘치는 가게여서 문턱이 닳도록 손님이 드나든다.
반대편 블록 진입로 초입에 자리 잡은 ‘예화랑’은 지난해 서울시 건축대상을 받을 만큼 세련된 건물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마침 현대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화랑 문을 열었더니 수석 큐레이터 백운하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학원 졸업 후 9년 동안 가로수길 근처 직장만 다닌 이 동네 토박이다. 그녀는 “10년 넘게 봤지만 이 길은 늘 트렌드에 민감하고 아기자기한 변화로 생동감 넘친다”라고 말했다. “퇴근할 때 가로수길을 가로질러 가면 볼거리가 정말 많아요. 길도 좋지만 곳곳에 들어선 가게며 창문으로 비친 풍경들이 정말 아기자기하고 유행에 민감하잖아요. 친구들도 쇼핑하고 싶은 길로 꼭 여기를 꼽아요. 백화점 쇼핑과는 또 다른 맛이 있거든요.”
1. GRANDE 손님 다섯 명만 들어와도 꽉 들어찰 만큼 비좁지만 아기자기한 카페. 매일 바뀌는 주방장 특선 메뉴가 인기다.
문의_02-548-8858
2. 마이 페이버릿 토이 전문 수집가 배용태씨가 희귀 서적과 세계 각국의 장난감을 모아놓은 곳. 쇼윈도에 가득 들어찬 아톰 모형을 보고 발길을 멈추는 방문객들도 많다.
문의_02-544-9319
덕수궁에서 경향신문사에 이르는 정동길엔 전통과 낭만 그리고 문화가 있다. 연인 혹은 부부끼리 데이트 코스로 걷기에 그만이지만, 꼭 여럿이 아니더라도 홀로 사색하며 거닐면 기분 좋아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걷는 듯 정겨운 착각이 느껴지는 덕수궁 대한문 옆 돌담길은 정동길이 시작되는 곳. 정동교회와 서울시립미술관이 만나는 곳엔 분수대를 가운데 두고 경주 포석정 물길처럼 굽이친 원형 네거리가 보인다. 자동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만들어놓았다는 이 분수대는 보기에도 시원한 미학적인 기능도 갖추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의 완만한 경사로 역시 아담한 공원 같은 곳이다. 짧은 소풍을 즐기기에 딱인 시립미술관은 옛 대법원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시립미술관 앞 분수대를 기준으로 정동길은 세 가지 갈래길로 나뉜다. 맨 오른쪽 길은 덕수궁 후문으로 통하는 미국대사관 공관길. 수풀이 우거져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즐길 수 있다.
가운데는 ‘정통’ 정동길이다. 먹을거리, 볼거리뿐 아니라 영화·공연·예술 등의 문화 콘텐츠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정동길에 자리한 유일한 갤러리인 경향갤러리의 김순옥 관장은 소문난 정동길 마니아. “정동길은 한 폭의 그림 같은 공간입니다. 이 길을 걷고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특히 10월에 열리는 정동 축제는 일 년 내내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예요. 정동길은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 1위로 꼽힌, 걸어야 제 맛인 운치 있는 길이죠.” 김순옥 관장은 정동길이 사랑의 길이라고 표현했다. “예전에는 이곳에 가정법원이 있어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연인들이 이별을 한다는 얘기가 있었잖아요. 하지만 그건 속설에 불과해요. 정동길을 걸으면 사랑이 커집니다. 손잡고 걸으면서 데이트하기 좋은 곳일 뿐 아니라, 걷는 것 자체가 휴식이 되는 멋진 공간입니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김순옥 관장은 갤러리 문을 밤 10시까지 열어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문을 늦게 닫는 미술관이 바로 경향갤러리다.
마지막 세 번째 갈래길은 ‘등기소 가는 길’이다. 여기는 쉬는 재미와 재미있는 건축물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나무 데크가 멋진 배재빌딩과 이국적인 러시아 연방대사관이 바로 그곳. 크지 않아 오히려 운치 있는 배재공원에는 아담한 느티나무가 정겨운 풍광을 연출한다.
1. 정동어린이도서관 하늘씨앗 정동교회 안에 위치한 하늘씨앗은 지난 7월 1일 개관한 어린이 도서관. 책과 자료를 빌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과 체험 학습에 참여할 수 있다. 문의_02-776-8762
2. 길들여지기 정동극장 안에 자리한 길들여지기는 2층 건물에 야외 테라스가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2층에 올라가 앉으면 덕수궁 돌담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문의_02-319-7083
취재 : 모은희, 이한 기자 / 사진 : 임익순, 김동욱, 원동현, 박소연 기자
출처 : [여성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