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法의 힘
宗은 상나라 때 위퍠를 모시던 장소(집)이다. 종법은 조상에게 제사를 올릴 때의 규례이다. 위폐를 서열에 따라 모시고, 모시는 장소를 규범으로 정해두었다. 이 질서가 유교의 기본이 되었다.
종법은 통치를 혈통에 의하여 연속하기 위한 장치이다. 왕권을 장자(맏아들)기 잇도록 했다. 나머지 아들(別子)은 왕의 통치 지역의 곳곳에 제후로 봉하여 한 단계 낮은 지위를 지니도록 했다.(小宗) 이것은 중국의 고대사회에서 봉건제도를 구축하는 방법이다.
周나라는 모든 (귀족, 봉건제후)가문이 왕실의 종법에 준하여 가계를 잇도록 하였다. 장자가 잇는 혈통은 대종이므로, 모든 가문에서 大宗과 小宗이 나오고, 소종은 신분이 한 단계씩 낮아진다.
周가 혈통으로 가계를 잇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들이 필요했다.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는, 왕은 부인을 12명이나 둘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것은 한 집의 안에서 남자의 위상을 높이고 여성의 지위를 낮추므로, 중국사회의 남존여비 사상이 여기서 나타났다고 한다.
상나라는 왕비가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도 나갔다. 여자의 신분이 낮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의 남존여비 사상은 주나라에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宗法은 고대 중국사회의 봉건제도를 구축하게 했다. 중국에서의 종법제도는 단순히 가문 안에서 위계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고, 종교적인 힘을 가진다. 누구도 종법을 거스려서는 안 되는 힘을 가졌다. 종교만큼이나 막강했고, 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