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물가에 차례상 송편-명태 빼고… “친척 많이 올까 걱정”
거리두기 해제후 첫 추석, 상차림 한숨
5만원으로 산 식재료 확 줄었네 추석을 앞두고 주요 성수품 가격이 일제히 급등하며 상차림 부담이 커졌다. 1년 전 5만 원으로 살 수 있었던 식재료(위 사진)와 올해를 비교하면 양이 확연하게 줄었다. 가격이 50% 안팎 치솟은 배추, 명태 등은 작년의 절반 정도밖에 못 산다. 제수용 과일인 사과도 6개에서 4개로 줄었고, 대추와 밤 개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송은석 기자
충북 청주에 사는 나모 씨(63) 가족은 올해 추석 차례상에서 송편과 명태를 과감히 빼기로 했다. 2년간 안 왔던 조카들까지 모두 모이며 준비해야 할 음식이 무려 13인분. 상차림 비용만 생각하면 한숨부터 푹푹 나온다. 손길이 안 가는 음식은 포기하고 재료비가 비싼 부침이나 소고깃국은 밀키트로 조금만 올릴 예정이다. 그는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든다”며 “더 온다고 해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추석이 거리 두기 제한이 없어진 ‘첫 엔데믹 명절’로 일가친척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됐지만 식품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며 풍요로운 추석 상을 차리기 어렵게 됐다. 상차림을 간소화하거나 식재료를 한 푼이라도 싸게 사려고 발품 파는 이들이 늘고 있다.
큰집 장손인 직장인 이모 씨(28)는 나흘째 이커머스를 뒤지며 ‘초저가 제품 사냥’ 중이다. 반건조 옥돔과 식용유 등의 가격이 떨어지는 즉시 주문해둔다. 부모님이 조상님께 올리는 음식 가짓수를 줄일 순 없다고 고집해 싼 상품을 찾는 것. 부모님께 상차림비를 예년보다 더 드리는 이들도 있다. 경기 평택에 사는 이주은 씨(38)는 동서와 의논해 시부모님께 올해 10만 원씩 더 드리기로 했다. 그는 “음식 준비만도 고생이신데 비용 부담이라도 덜어드리고 싶다”고 했다.
성수품 파는 상인들 마음도 무겁다. 추석 연휴를 일주일 남짓 앞둔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상인들은 “올해는 대목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한과가게 사장 A 씨는 “물가가 올라 매출이 작년과 별반 다를 게 없다”며 “한과는 명절 선물로 그나마 부담이 작아 축산, 과일보단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B 씨는 “고향 가는 사람이 많다지만 고기 사가는 사람은 전혀 늘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가 추석 물가를 지난해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차례상에 오르는 농산물 가격은 여전히 오름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배추 1포기 소매가격은 지난달 31일 기준 7032원. 지난해(4660원)보다 51%나 올랐다. 같은 기간 무(38%), 홍로 사과(29%), 시금치(34%) 등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aT에 따르면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 평균이 31만8045원(지난달 24일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6.8%(2만241원) 올랐다.
이는 올여름 폭염과 폭우가 겹친 데다 예년보다 이른 추석으로 공급량이 떨어진 영향이 크다. 한 대형마트 농산물 바이어는 “폭우 피해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비가 띄엄띄엄 내리며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농작물 출하량이 급감했다”고 했다. 추석 직전 제11호 태풍 ‘힌남노’ 상륙이 예상돼 가격 오름세가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채소, 과일은 수확한 당일 또는 이튿날 바로 파는 경우가 많다”며 “다음 주 태풍으로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