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서는 어떻게 성서가 되었는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질문에 대한 흥미롭고 풍요로운 이야기들
“이 책에서는 성서의 기원에 관해 간단한 물음을 제기해 보려 합니다. 물음은 두 범주로 나뉘는데, 각각은 조금씩 겹치지만, 따로따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성서를 이루는 다양한 책들은 언제, 어떻게 저술되었을까요? 둘째, 이 책들은 어떻게 한데 모여 구약과 신약이라는 ‘경전’을 형성했을까요? 20세기 학자들은 이 중 두 번째 물음보다는 첫 번째 물음에 관심을 집중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성서라는 문헌을 가지게 되었는지, 성서가 어떠한 문헌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물음 모두 필요합니다.” - 본문 中
성서가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이며 그리스도교(그리고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성서를 이루는 몇몇 책들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할지라도, 성서라는 ‘책’에 대해 아는 이는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경전의 무게감 때문인지,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는 종교적 광휘 때문인지 사람들은 다른 책을 접했을 때 자연스럽게 묻게 되는 질문들(누가 기록했는가? 언제 기록했는가? 성서 기록은 언제 ‘경전’이 되었는가? 성서를 이루는 책들은 언제 성서라는 ‘선집’으로 묶였는가? 그 목록은 언제 확정되었는가?)을 잘 던지지 않는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성서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 좀 더 입체적인 읽기는 불가능해진다.
옥스퍼드 대학교 오리엘 칼리지 명예교수로 구약학 분야와 정경 형성사 분야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존 바턴은 이 책에서 그동안 자신이 연구해 온 바를 반영하되 대중을 고려하여 쉽게 성서 문헌들이 처음 기록된 시점부터 시작해 책이 되고 경전으로 거듭나고 선집으로 모이기까지의 과정을 간결하게 기술한다. 바턴은 성서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암묵적으로 경계한다.
그리하여 성서란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기록일 뿐 아니라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인류 문화의 자산임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성서를 신앙의 원천으로 삼는 그리스도교 신자뿐만 아니라 성서라는 인류 문화의 유산에 관심이 있는 인문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신선한 자극과 도움을 줄 것이다.
사람들은 ‘성서’Bible라고 알고 있는 책이 그리스도교 교회가 태동했을 때부터 정확히 지금 형태로 존재했으며 결코 변하지도, 의문시되지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문화에서 성서는 단일한 덩어리이지요. 성서를 진지하게 읽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이 책이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는 모두가 압니다. 성서라고 하면 모든 사람이 본문이 두 단으로 이루어진 한 권의 책을 떠올리지요. 그리고 성서를 이루는 책들은 어느 곳이든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 책의 이름을 모두 아는 이는 드뭅니다. 그리고 판본마다 구성이 다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 주면 대다수는 깜짝 놀랄 것입니다. 성서는 성서이고, 우리가 좋든 싫든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있었으며 언제까지나 그러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성경’이라는 관념에는 이 경전이 완전하고, 고정되어 있으며,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있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은 성서를 하느님이 주셨다고 생각하고 바로 여기서 성서의 권위가 생깁니다. 이는 결코 타협할 수 없으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분명 이로운 일이지요. 자신들의 신앙이 모래 같은 인간의 가르침이 아니라 반석 같은 하느님의 계시 위에 놓여 있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 성서는 2차원적으로 변할 수 있으며 평범한 책이 지니는 깊이와 다양성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p.11~12.
과거에 ‘성서’The Bible는 한 권의 책 제목이 아니라 소규모 서고를 가리켰을 것입니다(‘바이블’bible이라는 영어 단어는 ‘비블리아’βιβλία라는 그리스어 단어에서 나왔는데, 이는 복수형으로 ‘책들’을 뜻합니다). 오늘날 유대교 회당은 이러한 고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를 일컫는) 모세 오경은 지금도 두루마리 다섯 개에 기록해서 ‘성궤’ark라 불리는 장에 보관했다가 안식일마다 예배 중 독서를 위해 꺼냅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리스도교인들처럼 한 권, 또는 하나의 ‘코덱스’codex로 된 성서를 씁니다. ---p.78.
네 편의 복음서는 각각 어떤 특정 지역의 교회에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설명하는 권위 있는 글로 세상에 나왔을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최초의 복음서인 마르코의 복음서가 로마 교회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태오의 복음서는 시리아에서, 루가의 복음서는 (지금의 터키에 해당하는) 소아시아에서, 요한의 복음서는 에페소에서 형성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형성 단계의 복음서에는 제목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코의 복음서 첫 문장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그리스어 ‘에우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 즉 ‘좋은 소식’)의 시작”은 사실상 제목 역할을 하지요. 대다수 그리스도교인은 자신들의 교회 이외의 다른 교회에서 다른 복음서를 읽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원후 1세기 말부터 2세기 초 그리스도교인들이 복음서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했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복음서를 인용하곤 했지만, 자신이 인용하는 복음서가 어떤 복음서인지, 이 복음서에 담긴 정확한 표현은 무엇인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보통 기억에 의존해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p.89~90.
성서에 관한 오래된 생각 중 하나는 하느님이 이 책을 특정 시점 혹은 여러 시점에 고대 이스라엘 백성과 초대 교회라는 두 공동체에게 주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성서를 이루는 책들은 언제나 하느님 백성의 경전, 하느님에게 영감을 받아 저술된 거룩한 책입니다. 그렇다면 이 장의 제목인 ‘책에서 경전으로’는 거의 무의미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다룬 이야기를 고려한다면 성서를 이루는 책들은 다양한 시대, 다양한 맥락에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나왔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계시는 특정 순간, 공간, 사람으로 한정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경전을 주셨다면 그 방식은 인간의 저술 과정을 통해서였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성서를 이루는 책들이 처음부터 ‘경전’으로 탄생하지는 않았으며 일정 시간, 혹은 기나긴 시간을 거치며 ‘경전’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처음에 이 책들은 그냥 책이었습니다.---p.105~106.
두 가지 점에서 고대 세계는 오늘날 세계와 명백한 차이를 보입니다. 첫째, 고대 세계는 문자보다 입말을 통해 전달되는 사상, 이야기, 시, 격언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읽고 쓸 줄 아는 문화에서는 글을 통한 전달에 비하면 구전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오늘날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고대 이스라엘과 초대 교회에서는 정확한 기억에 의거해 막대한 양의 축적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잘 훈련된 기억에 견주면 글쓰기는 차선책이라는 믿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특히 이러한 입장을 보였지요. 때로 그들은 복음서를 경전보다는 설교자나 교사가 예수 이야기를 기억하게 만드는 일종의 자료 보관소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복음서를 부정확하게 인용하곤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두루마리보다 코덱스를 선호했습니다. 이는 당시 신자들이 복음서를 격식 있는 책이 아니라 비공식적인 기록물, 메모 비슷한 문서로 여겼다는 사실을 반영하는지도 모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역사에 관한 기억들은 누군가가 기록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졌을 것이며,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처럼 전설에 가까운 자료들은 특히나 그러했을 것입니다.---p.164~165.
P.43
구약의 일부는 거의 기원전 10~11세기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며(판관기 5장에 나오는 시가 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본문이라는 데는 대다수 학자의 견해가 일치합니다) 가장 최근 본문인 다니엘서는 기원전 2세기 중엽 (160년경)에 나왔습니다.
신약성서는 좀 더 명백한 문자 문화의 산물입니다. 예수시대 지중해 세계에는 도서관, 서점, 그리고 수많은 작가와 번역가가 있었습니다.
P.43
신약의 언어는 당대의 교양 있는 이들이 일상에서 사용한 그리스어입니다. 이 언어는 지중해 세계전체의 공용어가 되었고 이탈리아 여러 지역에서도 라틴어와 함께 쓰였지요. 당시 작가가 전문 서기관을 고용해 자신의 말을 속기로 받아쓰게 하는 일은 흔했습니다.
P.44
그러므로 성서의 세계는 오늘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글의 세계, 책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성서를 이해하려면 이 책이 고대 및 현대 세계의 작가들에 견줄 만한 숙련된 작가들의 창작물임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P.47
그러나 창세기를 비롯한 성서의 많은 책은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부분들을 담고 있습니다. 일종의 스크랩북이나 선집인 것이지요. 책이 전하는 이야기에 담긴 몇 가지 충돌하는 지점들을 통해 우리는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창세기 4장26절에서 우리는 아담의 손자 에노스의 시대부터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기 시작했음을, 즉 하느님을 특별한 히브리 이름인 ‘야훼‘YHWH‘
로 부르기 시작했음을 알게 됩니다.
P.136
훗날 모습과는 달리 그리스도교 운동의 초기에 신자들은 복음서를 온전한 경전으로 간주하지는 않았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복음서를 중요한 역사 기록으로 보기는 했지만 구약과 같은 경전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복음서를 거룩한 경전으로 여겼다면 마르키온은 루가의 복음서를 자유롭게 개정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루가 역시 마르코의
복음서를 자유롭게 개정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P.99
복음서를 넷으로 확정한 것에 대한 반발도 있었습니다.
마르키온Marcion(?~기원후 160)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루가의 복음서만이 참된 복음서라고 주장했고 (자신이 생각하는 참된 그리스도교에 걸맞기 위해서는 불온한 부분들을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P.131
그리스도교인들도 신약을 읽으며 이러한 해석을 적용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얼마나 신약을 중시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자주 쓴 방법은 우의 allegory, 즉 본문의 표면적인 의미가 사뭇 다른 무언가를 가리킨다고 보는 방법이었습니다. 가장유명한 예는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e of Hippo(354-430)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해석한 것입니다. 그는 이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사마리아인이 다친 사람에게 한 일은 곧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하는일을 뜻한다고 보았습니다.
P.93
마태오와 요한의 복음서는 사도들이 쓴 것이라 하여 앞에 두고, 마르코와 루가의 복음서는 ‘아포스톨리키 apostolici,
즉 ‘사도들의 제자들‘이 쓴 것이라 하여 뒤에 배치하기도 했습니다(마르코는 베드로가 그에게 이야기한 것을 기록했으리라 추측되고, 루가는 바울과 동행했지요. 다시 말해 둘 중 누구도 예수를 직접보지 못했습니다). 현대의 성서학자들은 복음서 가운데 사도가 쓴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고대 세계의 모든 이는 마태오와 요한의 복음서를 사도들이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P.93
저술 연대를 추정하여 나열한 경우도 있습니다.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260~340)는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최초의 역사가인데, 저술 연대를 근거로 네 복음서를 우리에게 익숙한 순서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대로 나열했습니다.
P.100
이 같은 현실에 대한 마르키온의 반대는 그의 계승자들을 거치며 잦아들었지만, 몇몇 초기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네 개의 일관성 없는 복음서들보다 단일하고 균질화된 복음서가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잘 드러난 가장 유명한 예는 타티아누스Tatian의 저작입니다. 150~60년쯤 그는 『디아테사론』Diatessaron, 즉 ‘네 복음서 발췌 합본‘을 만들어 냈는데, 동방의 일부 교회는 이를 극찬했으며 네 편의 복음서라는 선집이 그 권위를 인정받은 뒤에도 많은 그리스도교인이 이 복음서를 계속 사용했습니다.
불일치하는 내용을 모두 제거하고 모든 이야기와 가르침을 한 책으로 통합한 ‘네 복음서 발췌 합본‘은 오늘날에도 몇몇 그리스도교인들이 쓰고 있습니다.
P.84
신약시대에 팔레스타인 바깥에 사는 많은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에 사는 일부 유대인들은 그리스어를 제1언어로 썼습니다. 이 때문에 유대교 경전은 그리스어 번역본이 있었지요. 전설에 따르면 이집트의 통치자 중 한 명인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포스PtolemePhiladelphus(기원전 285~246)는 토라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는 이를 읽으면서 유대인 신민들의 율법에관한 자신의 견해를 가다듬고 토라 한 부를 유명한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 소장하려 했지요. 70명(또는 72명)의 번역자가 작업에 착수해서 그리스어판을 내놓았고, 그래서 이 번역을 ‘70인역‘Septuagint, LXX(라틴어 ‘셉투아긴타‘septuaginta는 70‘을 뜻합니다)이라 부릅니다.
P.85
그 가운데서도 이집트 유대인들이 그리스어 경전을 필요로 했으며, 70인역은 기원전 4세기경부터 기원전 1세기경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나온 번역들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어 성서는 히브리 경전보다 많은 책을 포함하지만 모두 유대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P.85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알고 있던 성서, 그들이 언급한 성서는 바로 이 70인역이었습니다. 이는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히브리어에 정통했지만 그리스어로 글을 썼고 그리스어로 된 구약을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