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잠버그를 포함한 케이프타운에서의 주된사역은
남아공의 다양한 교회와 학교 등에서 드라마를 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흑인들만 나오는 교회, 요하네스버그처럼 백인들만 나오는 교회,
백인 학생들만 다니는 학교, 흑인 어린이 보호시설, 크리스챤 레스토랑 등등...
흑백이 나뉘었지만 가이드인 제임스(James)는 본인이 흑인인데도
백인만 다니는 교회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케이프타운의 백인들만 나오는 교회는 교회건물은 화려했지만 교인수가 적었고
흑인들만 나오는 교회는 교회건물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교인수는 차고 넘쳤다.
백인 교회는 예배인도를 오르간, 키보드 등으로 주로 했고
흑인 교회는 전자기타와 템버린이 주 악기였다.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예배를 드렸지만
흑인 교회에서 드려지는 찬양은 아프리카 특유의 열정과 소리, 화음 그리고 춤을 느낄 수 있는
정말 온몸으로 드리는 살아있는 예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백인 교회 가서는 주로 Calling 및 도전을 주는 시간을
흑인 교회 가서는 팀이 오히려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열정, 자유함의 모습을 통해 힘을 얻었다.
빈민가 등의 여러 흑인 어린이 보호시설에 갔지만 TV에서 보던 뼈만 앙상한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남아공은 아프리카 국가 중 그래도 부유한 나라였다.
뫼잠버그 숙소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한 빈민촌에 갔을 때였다.
외부인의 방문에 이미 익숙해보인 아이들은 낯을 가리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런데 유독 필자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졸졸 따라다녔다.
그리고 필자를 "브루스 리"로 불렀다.
"브루스 리"가 누구지? 한참 생각하다가... 아, 이소룡!
그랬다. 이 아이들은 동양인을 처음 본 것이었다.
TV에서나 봤던 이소룡과 비슷한 머리색과 피부색을 가진 사람을 실제 처음 보고
필자를 브루스 리, 브루스 리 불렀던 것이다.
속으론 "재키 챤(성룡)"은 야들이 못봤나?하는 생각도 했다.
남아공의 공용어는 영어와 아프리컨스(스와이힐어와 다른 남아프리카 지역의 언어)였고
흑인들은 거기에다 각 종족마다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보통의 백인들은 아프리컨스보다 영어를
보통의 흑인들은 영어보다 아프리컨스를 사용했지만
모두 영어와 아프리컨스를 자유로이 구사했다.
그래서인지 빈민가에 사는 흑인 아이들도 간단한 영어는 하고 있었다.
필자는 난 브루스 리도 아니고 더구나 차이니스도 아니며 코리언(I'm Korean)이라고 몇 번을 얘기했지만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모르는 아이들은 "브루스 리"와 "차이나"를 연발했다.
드라마 사역이 끝나고도 브루스 리를 외치자 하는 수 없이
군대시절 4시간 연습하고 태권도 유단자가 된 필자는(보통 전투화를 신으면 공인 2단이라고 합니다.^^)
옆차기를 한번 보여주자 아이들은 거의 쓰러지며 환호와 함께 브루스 리를 이번에는 목소리를 맞춰 연호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팀원 중 뉴질랜드 추장의 손자인 Allan이 자기도 할 수 있다며
이상한 무술을 선보였지만 아이들의 야유만 받았다.
군대 갔다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과 기념 사진을 찍으므로 필자의 작고 큰 바램을 이루었다.
어느 지역은 흑인만 사는 동네인데도 가는 곳마다 사는 수준이 달랐다.
어느 흑인교회는 모두 자기 차를 갖고 있는 교인들이 대다수인 교회도 있었다.
가이드인 James에게 연유를 물어보니
남아공의 문제는 흑백갈등, 인종차별의 문제 뿐 아니라
흑인 종족간의 갈등,반목이 더 큰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 종족만의 이익을 위해 산다는 것이었다.
비단 남아공의 문제가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의 문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