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둔지산 자락에 자리 잡은 대통령실, 조금 높은 곳에 숲과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다
최근 대통령 집무실이 사대문 안 청와대에서 서울의 중심지 용산으로 이전했다. 그동안 통제되었던 청와대 뒷산과 청와대가 개방되었고, 새로 옮겨간 용산의 대통령실도 지난 6월에 시범 개방하였다. 청와대와 용산의 대통령실 주변 일대를 직접 여러 차례 돌아보고 용산은 어떤 곳인가 풍수적 측면에서 용산을 조명해 보았다.
용산의 유래와 역사
조선시대 용산은 도성 서쪽의 무악산, 오늘날의 안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와 한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아울렀다. 그 구불구불한 능선이 한강에 이르러 봉우리를 형성하는데 전체적인 형세가 용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용산이라 이름 붙었다. 건국 초기 용산은 한양 땅이 아니었다. 다만 수도 한양을 관리했던 한성부는 도성과 함께 도성 밖 십 리(4km)에 이르는 성저십리까지 관할했다. 용산은 이 성저십리에 해당했다.
조선시대에는 성 밖의 지역이었으므로 성 밖 지역은 농사를 짓는 지역, 사냥터, 공동묘지가 있었다. 1904년 러일전쟁을 준비하면서 일본군이 용산으로 들어왔고 남산 아래 둔지산 둔지미 마을 일대를 용산이라고 하였다. 둔지산 일대는 남산 아래 해발고도 65~45m의 낮은 구릉지대로 조선시대 하늘에 제사 지내던 국사당이 남산에 있어 둔지산이라고 하고 마을 이름도 둔지미 마을이라고 하였다. 둔지미의 미 자는 뫼 산을 의미한다.
남산 아래 낮은 구릉지 땅은 일본이 1904년 군부대로 사용한 이후, 미군과 우리나라 군 시설이 있었다, 도시가 강북에서 강남지역으로 확대되고 서울의 중심지가 되자 미군 부대는 평택으로 이전하고, 우리 군사 시설은 계룡산 계룡대로 이전해 갔다. 120여 년간 군부대가 있어 자연이 보존되었고, 부대가 이전해가니 100만여 평이 넘는 땅이 새로운 용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74년간 사용하던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고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였다,
한양의 길목 용산
조선의 물류는 용산으로 통했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태백산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양수리에서 합수하여 한강 물이 용산 일대를 감싸주니 용산에는 용산방(龍山坊)이 생겨 물류의 중심이 되었고 한양으로 모이는 전국의 물류는 용산으로 집결되었다. 1900년 초 경인선이 개통되고 이어서 경부선 경원선, 경의·중앙선이 개통되면서 철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용산은 교통과 물류가 좋으니 군사시설로도 최고의 입지가 되었다.
용산이 어떤 곳인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용산 역사박물관에 갔다가 용산 국립박물관을 거쳐 남산에 잠시 올라 용산을 조망했다, 용산 역사박물관은 2022년 3월에 개장하였다. 그중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용산에서부터 런던까지 1만 1천 km의 유라시아 철도였다. 용산을 시발로 남북철도가 연결되면 14일 정도면 런던까지 갈 수가 있다고 한다. 가상의 열차를 타고 그 길을 달려보았다. 평양을 지나 시베리아 벌판, 모스크바를 거쳐 폴란드 바르샤바, 독일과 프랑스 파리를 거쳐 영국 런던까지 갈 수가 있다.
지난 6월 마침 용산 대통령실 앞뜰 시범 개방이 있었다. 신용산역 출입구에서 가로수길 작은 언덕을 넘어서 대통령실 앞뜰까지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대통령실 전면에 있는 야구장 전망대에 올라 대통령실을 바라보았다. 대통령실은 숲속 낮은 언덕에 둘러싸여 있었다. 대통령실을 야구장 전망대에서 조망하고 대통령실 앞뜰까지 안내받고 걸어갔다. 대통령실을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는 기회가 되었다.
용산을 물형론 관점에서 살펴보면 서울의 중심부에 연꽃이 핀 형상으로 연화부수형이다. 사신사가 한 겹이 아니란 겹겹이 감싸주니 홀 꽃이 아니라 겹꽃이다. 연화부수형에서는 중심부 꽃술 부위가 핵심이다. (용산이 대한민국의 중심부요, 오늘날 서울의 중심부가 되었다.) 서울의 형국을 행주형으로 볼 수도 있다. 잠실, 삼성동, 용산동. 압구정동, 여의도가 배의 형상이다. 배의 형상에서는 돛이 필요한데 잠실 타워, 삼성동 아이파크, 용산에서는 남산타워, 여의도에서는 63타워 등 돛이 우뚝 솟았다.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갈 수 있는 행주형 형국, 세계 시장으로 뻗어가는 무역 국가,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
대통령실 바로 앞뜰까지 개방하여 대통령실까지 가깝게 산책할
수 있었다.
용산공원 야구장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통령실, 국민의 바람을 담은 바람개비가 대통령실 전면을 가득 채웠다.
4호선 이촌역에서 바라본 용산 대통령실 출입구
부국강병의 땅 용산
대통령실이 위치한 용산은 남산이 배산(背山)이 되고, 좌로는 둔지산 우로는 용산이 있어 좌우의 산들이 호종하며 한강수가 동에서 서로 횡류하며 감싸주는 대 명당 형국을 형성한다. 남산에 올라 용산 일대를 바라보면 북악산~인왕산~남산~둔지산으로 축을 이루며 한강과 마주하고. 한강 너머로는 동작동 서달산과 관악산이 안산과 조산으로 이어진다.
도로도 경의 중앙선이 동서로 지나가고, 강변북로, 올림픽대로가 요대(腰帶)같이 둘러주니 겹겹이 안대 역할을 한다. 한강 물도 수구 쪽으로는 노들섬, 여의도, 밤섬, 선유도가 있으니 생기가 새지 않도록 한문 역할을 하며 용이 가지고 노는 구술 역할까지 한다. 그러니 용산 땅은 한반도를 지배하는 가장 힘 있는 자가 머물렀다,
1900년대 초 일본군이 주둔 이래, 미군 부대, 우리나라 군대가 차지하여 100만 평이 넘는 광활한 지역이 지금까지 보존되었다, 이제 때가 되어 용산 일대에 대통령실이 옮겨왔으니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삼국시대 백제가 한강 유역에 도읍을 정하여 농업을 발전시켰고, 한강과 서해를 통하여 해상기술이 발달하여 해상무역 국가로 발전하였다.
세종대왕은 태종이 창덕궁을 세종에게 물려주었지만, 백성들을 위한 큰 정치를 펼치려면 좁은 창덕궁이 아니라 넓은 경복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여 경복궁을 주궁으로 한글의 창제, 문예부흥 등 조선조 최고의 왕이 되었다. 공주 웅진성에 있던 백제 성왕은 백제가 부흥하려면 좁은 웅진성에서 벗어나 넓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하여 부여로 수도를 이전하고 백제의 무왕 무렵에는 백제 최고의 문예부흥을 이루었다.
전통적 왕궁 개념의 청와대 집무실
대한민국은 1988년 한강 유역 일대에서 세계올림픽을 개최하여 우리나라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세계 경제 10대국으로 우뚝 성장하였다.
용산 대통령실을 몇 번 돌아보고 다시 청와대와 청와대 뒷산을 여러 번 답사하였다, 청와대는 천하제일의 복지라고 불릴 만큼 명당이다. 그러나 명당에 30여 년 전에 다시 지은 관저와 대통령 집무실은 풍수적으로 합당하지 않았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한국의 전통적 왕궁에 개념을 두고 과거지향적 관저와 집무실을 만들었다. 관저는 너무 크고 양명하지 못하였다. 대통령 집무실은 대통령과 영부인 두 사람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동안 나라의 규모가 커졌는데 대통령 1인만을 위한 공간으로 나라가 통치되겠는가? 청와대를 방문해 보면 대통령마다 청와대를 왜 옮기려고 하였는지 이해가 된다.
이제 서울의 중심지로 떠오른 용산의 1백만 평이 넘는 넓은 대지에 대통령실이 이전해 왔으니 제자리를 찾았다. 예전의 서울은 사대문 안이 도시의 중심이었으나 규모가 커진 서울은 강남으로 확장되었고 용산이 서울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사대문 안에 있던 기업 본사, 명문 학교, 정부 기관 등 대부분이 시설들이 이미 새로운 둥지를 찾아 더 넓은 곳으로 먼저 이전하였다.
용산의 대통령실은 남산을 배산으로 한강 물을 품었으니 장풍보다는 득수가 좋은 풍수적 대명당이다. 600여 년 전 조선조가 한양을 구축하면서 미래의 청사진을 가지고 성곽을 쌓고 궁궐을 짓고 도시를 배치하면서 지명과 건물의 이름도 새롭게 하였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미군 부대 장군 숙소, 63년 된 건물로 미국에서 직접 건축자재를 공수해 와서 지었다.
용산공원 가로수길, 신용산의 출입구에서 가로수길 작은 언덕을 넘어 대통령실이 보이는 야구장까지 용산 해설사와 함께 걸었다.
대통령실이 들어선 용산공원 일대는 남산에서 이태원, 녹사평, 서빙고로 이어지는 둔지산의 서쪽 지맥 둔지미 마을이 있던 곳이다.
새로운 서울의 중심지
용산도 시대가 변하고 땅의 용도가 바뀌었으니 백년대계, 천년 수도를 꿈꾸면서 세계시장을 주도해나가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은 지명과 배치가 새롭게 되어야겠다. 대통령실 뒤에 있는 남산은 조선 궁궐의 앞산 남산이 아니라 대통령실의 주산(主山, 주인 되는 산)이 되었다. 남산의 새 이름을 대룡산(大龍山,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 또는 고려시대 옛 지명인 인경산(引慶山, 경사를 끌어들이는 산) 등 주산에 걸맞은 이름을 찾아야겠다. 용산 대통령실이 이제 힘이 있고 득수가 좋은 대명당에 들어왔으니 세계 최강의 부국강병의 땅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
토지사랑 http://cafe.daum.net/tozisarang/
토지투자동호회밴드
(카페회원님들은 같이이용하시면됩니다)
추천부탁드립니다 .
첫댓글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