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강물처럼
아모 5,14-15.21-24; 마태 8,28-34 /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2026.7.1.
오늘 독서에 나오는 아모스 예언자가 활약하던 곳은 북 이스라엘 왕국이었고, 그 나라는 이스라엘의 열 지파가 다윗의 지파와 레위 지파에 힘을 합쳐 반기를 든 세력의 왕국이었습니다. 갈릴래아 호수를 끼고 있고 이즈르엘 평원이 펼쳐져 있어서 땅은 비옥해서 살기는 좋았으나, 그런 만큼 이 비옥한 땅을 노리던 주변 강대국 아시리아의 위협도 늘 걱정거리였습니다. 더구나 그 이방인 지역에는 우상 숭배가 창궐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 이스라엘 왕국도 우상 숭배에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나라의 통치가 하느님의 법을 멀리 벗어나 백성의 삶이 피폐하게 되자 농부를 짓던 평신도 아모스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일어나서 외쳤습니다.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재판을 하는 성문에서 공정을 세워라,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14-24)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역시 우상 숭배가 창궐하던 이방인 지역 가다라에 들어가셔서 마귀 들린 사람을 둘이나 만나신 장면입니다. 마귀가 들린 탓으로 그 두 사람은 죽음의 그림자가 서린 무덤가에서 살다시피 했고, 자기 몸을 자해하며 학대하는 것도 모자라서 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마귀 들린 사람 둘이 예수님을 만나자 먼저 알아보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마태 8,29) 하고 외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차 없이 그 마귀들을 돼지 떼 속으로 쫓아내어 버리셨는데, 그제서야 마귀 들렸던 두 사람은 비로소 온전한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회에서는 오늘 독서의 상황과 같이 정의와 공정이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사회적 무질서가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비정상적 상황이 만연한 나머지 오랫동안 굳어져 버리면 우상 숭배를 뒤에서 조종해 온 마귀가 노골적으로 상황을 움직이는 상황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자리를 잡습니다. 이런 가운데 특별히 영적으로 취약해져 버린 사람들이 오늘 복음의 상황과 같이 마귀가 들어가 사는 집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비인간화된 처지가 되고 마는 겁니다. 이러한 처지는 예수님께서만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멸공통일과 적화통일이라는 적대적 이념으로 포장된 험악한 통치 이데올로기 탓으로 5천 년 동안 함께 살아온 한겨레가 서로를 원수로 알고 적대시해 오던 때가 지나가고, 교류와 협력으로 진정한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동포를 원수로 적대시하게 만들어 놓았던 마귀가 물러나야 하는 때이고, 공정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통일 코리아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남북 관계가 적대적으로 고착화되어 가고 있어도 이 시대 정신은 물릴 수 없을 만큼 대세가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사흘 후면 남과 북이 처음으로 통일에 대해 선언한 7.4 공동 성명 54주년을 맞이합니다. 1972년 7월 4일 남과 북은 분단 후 처음으로 양쪽 정상의 이름으로 통일의 대원칙을 세운 바 있습니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그 후 46년이 흐른 오늘 이제야 통일 3원칙이 이름 값을 할 때가 되었지만, 남북이 자리잡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국제 정세는 이 원칙이 이름 값을 하도록 놓아 두지 않았습니다.
그 뒤 28년이 흐른 뒤, 2000년 6월 15일에는 남과 북의 정상이 평양에서 직접 만나 공동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⓵ 남북 관계 개선과 평화 정착을 위해 협력한다. ⓶ 서로를 인정하고(상호관계 발전) 대화·교류를 확대한다. ⓷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⓸ 군사적 긴장 완화와 불가침/평화체제로 나아갈 필요를 강조한다. ⓹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는 남북이 주도해 풀어가며, 추가 정상회담·후속 합의를 통해 구체화한다. ⓺ 장기적으로는 통일을 향한 과정을 열어 놓는다.
이 선언은 남북 모두 자신의 체제 강화를 위한 도구로만 썼기에 아무런 사태 진전 없이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이후에도 남과 북의 후임 정상들이 평양에서 두 번이나 더 만나서 회담을 했는데, 위의 두 원칙을 확인하고 구체화시키자는 다짐을 했을 뿐 실질적인 진전은 더 없었습니다. 남북 정상 회담에서도 통일의 물꼬가 트이지 않자, 북한은 ‘통미봉남’ 노선에 따라 미국과 직접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남한이 이 직접 협상을 주선하기도 해서 두 번이나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만났는데 결국 아무런 합의도 없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6.15 공동 선언의 제4항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를 남북이 주도하여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던 셈입니다.
일치와 평화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최고선이라고 볼 때, 그 반대인 분열과 반목은 악령의 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를 적으로 증오하며 지내온 분단 세월은 악령을 몰아내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름으로써만 가능할 것이기에, 오늘 복음 말씀을 주목하여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악령의 간계에 따라 우상 숭배에 물들어버린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아모스 예언자에게 내리신 말씀도 주목하여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 두 말씀을 곱씹어보는 프리즘은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나타난 징표들입니다.
휴전 후 70년을 넘기고 있고 남북 대화를 시작한지도 반세기를 넘기고 있지만, 남북의 온 겨레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통일의 길은 아직도 멉니다. 민족 화해도 점점 멀어져 가는 상황입니다. 평화 실현에 필수적인 절차인 종전 협정도 기약이 없습니다. 단지 전쟁 가능성이 이전보다 훨씬 약화되었을 뿐인데, 그 이유도 북측의 힘이 약화되어 가고 있고 남측이 국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민족의 분열과 남북의 반목을 부추기는 세력은 남북 내부에서는 물론 한반도 주변에서도 공고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점이 독서 말씀을 눈 여겨 보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그래야 살리라. 그래야 너희 말대로, 주 만군의 하느님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한반도에 평화를 실현하고 민족이 화해하는 길이 이다지도 멀고 험난한 까닭은 가깝게는 백여 년 전에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이 땅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민족을 노예로 삼으면서 시작된 이 비극은 일제가 패망해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전후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대립하게 된 미국과 소련이 이 땅을 3.8선으로 갈라 분할 지배하려 들었기 때문인데, 그 결과 5천 년 동안 함께 살아온 겨레가 강제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구도를 감안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 그리고 국토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1989년에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 성체대회를 주관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간파한 바가 있습니다. “민족이 갈라진 한반도는 평화가 사라진 인류를 상징합니다.” 이를 뒤집어 보면, 한반도에서 평화를 회복하는 길은 인류 평화를 시작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는 뜻이고 인류 평화를 위한 지향으로 벌이는 노력으로만 한반도 평화가 주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먼저 찾아야 할 선은 남북의 자주적인 통일 노력 이전에 국제적인 공동선입니다. 우리 사회의 내부나 한민족 사회 내부만이 아니라 아시아 대륙 전체까지 뻗어 나가 실현해야 할 공동선입니다. 이런 역사적 상황은 소박하게도 민족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바라온 우리에게는 너무도 거창해서 실현하기엔 불가능한 징표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바야흐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일극 체제의 패권이 내리막을 걷고 있고 산업혁명이 디지털 혁명으로 전환되고 있는 세기적 변혁의 한가운데에서 대한민국의 국력이 이 대전환의 시대에 한 줄기 희망이 되고 있어서 이 징표는 구체적이고 희망적인 징표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거시적이고도 근본적으로 이 역사의 징표를 식별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몰아내야 할 마귀는 종전의 강대국들이 보여준 바처럼 군사력과 경제력 같은 하드파워로 인류를 분열시키고 반목시켜 온 악령의 세력입니다. 그 반면에 우리가 따라야 할 성령의 이끄심은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문화와 신뢰 같은 소프트 파워로 민족들을 매료시키고 상호 공존하며 번영하고자 하는 미래의 징표입니다. 인류 대다수 약소국들이 이 매력에 이끌리고 있고 대한민국은 이 매력을 돋보이게 지니고 있는 중입니다. 이 매력을 남한 사회 내부에서나 남북한 민족 사회 내부에서 그리고 아시아의 많은 가난한 나라들 사이에서도 퍼뜨리는 것, 이것이 “공정과 정의를 물처럼 흐르게 하는” 길입니다.
교우 여러분!
그렇게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의 의로움을 찾으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평화는 “덤으로 얻어질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말입니다. 백 년 박해에 대한 죗값이 백 년 고난이라면, 원상 회복에도 백 년을 각오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또 다른 백 년’은 진리를 추구하고 정의를 구현하며 평화를 실현함으로써 진정한 한류가 복음화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백 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