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선택하셔서
모든 교회에 봉사할 권한을 주시고 당신의 지상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본래 고대 로마에서 2월 22일은 가족 가운데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날이었다.
이날에는 죽은 이를 위하여 가족들 자리 곁에 빈 의자 하나를 마련해 놓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관습에 따라, 이날에 바티칸에 있는 베드로 사도의 무덤과 오스티아로 나가는 길 위에 있는 바오로 사도의 무덤 곁에서 신앙의 아버지인 두 사도에게 공경의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의 기원이 된다.
베드로 사도좌는 성 베드로 사도 위에 세워진 교회의 일치를 상징하는 것으로이 축일은 4세기경부터 로마에서 지켜 왔다.
지금도 로마에는 성 베드로가 집회 때에 사용했다는 의자가 잘 보존되어 있고, 새 교황이 선출되면 그 의자에 앉음으로써 성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서 거룩한 권리를 이어받는 표시로 삼는다.
그런데 313년에 있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신앙 자유 선언으로 두 사도를 함께 기념하는 축일이 6월 29일로 바뀌면서, 2월 22일은 갈릴래아의 어부를 교회의 최고 목자로 공경하는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로만 지내게 되었다.
가톨릭 신자하면 누구든지 다 아는 바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12사도를 선택해 3년간 이들을 특별히 가르치셨고 그 중에서 성 베드로를 뽑아 교회의 으뜸으로 삼으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당신은 베드로 반석입니다.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마태 16,18). 또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시오”(즉 신자와 성직자를 잘 다스리라)(요한 21,15-17) 하고
말씀하신 것을 보더라도 명백하다.
이처럼 성 베드로가 온 교회의 으뜸이라면 그의 교좌(敎坐)가 있는 교회가 전 그리스도교회의 모교회(母校會)로서, 특수한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당연지사라 볼수 있으며 로마 교회야말로 이에 해당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성령 강림으로써 굳은 신덕을 갖게 된 성 베드로는 그 후 예루살렘을 근거지로 삼고, 혹은 전교에 활약하고, 혹은 사방의 신자들을 방문해 그들을 격려했다.
교회가 점차 발전됨에 따라 헤로데 왕의 박해는 시작되어 예루살렘의 주교 성 야고보는 순교하고, 성 베드로는 체포되고 투옥되었다.
결국 그도 사형에 처하게 될 몸이었지만, 기묘하게 천사의 특별한 도움을 받아 감옥에서 구출되고, 신자들의 요청으로 안전 지대인 안티오키아로 피하게 되었다.
그곳은 신자들도 많고 성대한 교회가 있어서 베드로는 그 교회를 7년간이나 다스리며 착한 목자가 되었고, 다른 사도들에게는 착한 지도자가 되었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라”(마르16,15)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사도들에게 남겨주신 이 말씀은 항상 베드로의 마음을 울려왔다.
전 세계의 서울이라고 할만한 로마, 굉장한 인구를 가지고 있는 로마, 그곳이야말로 교회의 씨를 뿌릴 많한 가장 좋은 땅이 아니었던가?
마침내 이 신천지의 개척을 결심한 베드로는 안티오키아를 후계자 하가보의 손에 맡기고 로마로 가기로 했다.
그가 로마에 도착한 것은 42년이었다
그 후 25년 동안 그는 주로 이 지방에서 전교에 전력을 다해 큰 책임을 가진 그는 그동안 대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온 교회를 다스리는 큰 책임을 가진 그는 그동안 이곳 저곳 교회의 시찰과 전교를 위해 순회했을 때도 있었고 예루살렘의 사도회의(使徒會議)에 참석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로마가 그의 성좌의 소재지였던 것은 언제든지 변함이 없는 사실이었다.
교회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오의 시대까지는 비교적 평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네로 왕이 황제가 되자 무서운 박해가 시작되었다.
매일 수백 명의 신자가 체포되어 살육되었다. 이런 때 다른 사람보다 몇 배로 위험한 것이 교황인 베드로였다.
신자들은 간곡히 그의 피난을 재촉했다.
“당신이 다스릴 신자들은 비단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많은 신자들을 위해서도 아무쪼록 귀중한 목숨을 아껴 주십시오”하고 요청했다.
베드로는 처음에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마침내 그들의 요청에 의해 일시 로마를 떠나기로 했다.
옛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가 어느 날,
날이 새기 전에 사람 몰래 로마를 떠나려고 유명한 아피아 가로(街路)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멀리서부터 큰 십자가를 지고 창백히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이상히 생각하면서 베드로가 가까이 가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니까 그는 가시관을 쓰고 피를 흘리시며 고통과 비애에 깊이 잠겨 계시는 바로 예수님이었다.
베드로는 즉각 그대로 땅에 엎드려 말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 쿠오 바디스 도미네?)
주님께서는 그가 주님을 세 번 배반했을 때와 같은 슬픈 얼굴로 한참 바라다 보시면서 대답하셨다.
“그대가 신자들을 버리고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는 재차 십자가에 못박히려고 로마에 들어가는 길이오!”
이런 비통한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얼굴을 땅에 대고 좀체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서는 솟아오르는 눈물이 그칠 줄을 몰랐다.
곧 일어선 베드로의 얼굴에는 굳을 결심이 보였다. 그는 그곳에서 바로 로마로 돌아왔다.
그는 주님의 훈계로 자기 갈 길을 확실히 깨닫고 지금이야말로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당신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요한 21,18) 하신
주님의 예언 말씀이 이루어지고, 순교할 때가 온 것을 깨달았다.
과연 베드로는 오래지 않아 체포되어 십자가 형(刑)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는 주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부당히 생각하고 스스로 자원하여 거꾸로 못 박혀 장렬히 순교했다.
때는 67년 6월 29일이었다.
지금도 로마에는 성 베드로가 집회(集會)시에 사용했다는 의자가 잘 보존되어 있다.
새 교황이 선발되면 우선 그 의자에 앉음으로써 성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거룩한 권리를 받는 표시로 삼는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사도좌는 이런 형태를 가진 교좌나 베드로의 의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교좌, 즉 예수께서 설정하신 지상 교회의 중심인 교황직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대구대교구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