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78]‘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
퇴직하여 고향으로 귀향한 이후, 흔히 말하는 ‘버킷 리스트’1호가 서예書藝였다. 붓글씨를 쓰고 싶다고 큰아들에게 말하니, 제법 귀티가 나는 ‘문방사우’(붓, 종이, 먹, 벼루) 한 세트를 선물했다. 그랬으면 진작에 선생님을 모시고 직심直心스럽게 배웠어야 했다. 5년이나 미적미적 미루다보니 이제 그 생각조차 없어졌다. 서재에 놓여있는 문방사우를 볼 때마다 아들에게까지 민망하다. 버킷 리스트 2호는 판소리 배우기였다. 그저 어느 자리에서든 춘향가의 <사랑가> 한 대목이나 <사철가> <호남가> 등을 불러제키기 소원했으나, 이것도 마음뿐. 말하자면 ‘인생 2막’ 초장에 실패한 셈이지만, 늦었을 때가 빠를 때라고 지금부터라도 작심을 하면 될텐데, 사이비 농사꾼에다 어설픈 생활글 등을 쓰면서 허송세월하고 있다. 뜻만 두고 있으면 뭐 하나, 왜 이렇게 마음이 잡것으로 가득차 안정과 집중이 안되는지 모를 일이다. 솔직히 안분지족安分知足 이런 말은 사치이다. 이런 나를 스스로 ‘반거들충이’(반거충이: 무엇을 배우려다 중도에 그만둬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라고 자책만 하고 있는, 심히 못난 놈이다.
아무튼, 어제 오후 고향 남원으로 형수와 함께 귀향하여 서예와 국궁으로 알찬 노후를 보내고 있는 한 친구의 ‘서예동인전’을 막역한 고교 친구 몇 명과 관람했다. 아담한 화분의 축화라도 가져가 작품 앞에 놓치 못한 빈손이 쑥스러웠다. 친구의 단정한 예서로 쓴 작품 <처염상정處染常淨>을 감상하면서 참 친구가 부러웠다. 그 경지가 어찌 일이년에 되었으랴. 30여년 내공의 소산임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부터 배운다해도 어림없을 터. 친구는 최근 쓴 한글작품과 서예대전 등에서 특선한 작품 등 모두 5점을 전시했다며, 그의 성품처럼 겸손해했다. 남원의 서실書室을 다닌지도 5년이 넘은 듯. 2001년 동인전이 처음 열린 이후 올해로 10번째 동인전이라는데, 상촌 유창순 원장님의 동인전 10회를 기념하는 초서 작품이 휘휘 날아간다. <圓覺道場何處/現今生死即是>. ‘원만한 깨달음을 얻을 자리가 어디인가. 오늘 이 자리가 바로 그 자리’라는 뜻이란다.<맨 오른쪽 사진작품> 글씨를 잘 썼는지, 더 부단한 연마를 해야 하는지를 보는 안목眼目은 전혀 없지만, 저렇게만 쓰면(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졸필조차 안되고, 붓 잡을 줄도 모르는 나에게 서예가 친구가 붓을 내밀며 축하 글을 써달라며 동인전 방명록을 들이대는데 당황했다. 할 수 없어 생각한 문자가 “心自閑”이었다. 요즘처럼 마음이 어지러운데, 마음이나마 스스로 한가로워졌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담은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친구가 한지에 친필로 쓴 부채를 나와 아내에게 선물했다. 그 마음씀씀이가 너무 고마워 졸문 한 편을 썼는데, 다음Daum에 실려 있음을 어제 처음으로 전해 들었다. 남성 부채의 <芝蘭深自馨지란심자형>은 지초와 난초는 깊은 골짜기에서 스스로 향기를 내뿜는다는 뜻이고, 여성 부채의 <其馨如蘭기형여란>은 여인이 내뿜는 향기는 향기로운 난초와 같다는 뜻이란다. 참으로 뜻깊고 고마운 선물이었다. 그런데 어제 동인전 출품 작품 중 <其馨如蘭> 작품이 있어 부채선물 생각이 난 것이다. 주위에 이런 멋진(고급지고 윤택한) 친구와 종종 어울린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서예는 정말 기름진 취미인데, 이 친구는 취미를 넘어서 특기가 되었다. 특기가 예술가 수준이 되었으니, 무엇이 부럽겠는가.
자기 집으로 우리를 데려가 연어회에 만찬까지, 어제는 복이 터졌다. 하여, 덕담德談이라면 덕담 한 마디를 했다. 2년 후 고희古稀기념 개인전을 하시라 했더니,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인데, 내 개인전은 보다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아내의 십자수 작품과 함께 ‘부부전夫婦展’으로 할 생각이라네” 그날 처음으로 공개한다며 형수의 작품을 보여주는데 깜짝 놀랐다. 벽에 3점이 걸려 있었는데, 언뜻 봐 사진인 줄 알았다. 해외에 살 때 한 뜸 한 뜸 수繡를 놓았다는데, 가히 예술이었다. 역시 ‘人生到處有上手’ 말이 맞다. 이렇게 재야에 숨은 십자수 명인이 친구의 아내였다니. 놀라웠다. 2년 후 부부전시회가 기대가 된다. 일동 모두 박수를 치며 치하에 입이 말랐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우리가 살면서 이런 삶의 흔적과 기록 하나 남기지 못한다면 억울할 일이다. 부디 언제까지나 건안하고 건승하시길, 멋진 부부를 위하여 건배! 이 신새벽, 트로트가수 양지은의 '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 노래를 듣는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레터 28/국악國樂의 성지]토선생, 용궁 가다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