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이 어수선해선지 영 글이 풀리지 않는다.
술도 마셔보고, 파김치가 되도록 쏘다녀도 보고,
바닷가에서 밀물 호흡도 해 보지만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조선 정조 시대의 문장가 중에 '유한준'이란 분이 계셨다.
그분이 명문을 하나 남겼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蓄之而非徒蓄也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
풀자면,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며,
볼 줄 알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그저 쌓아두는 것과 다르다.
이 대목을 문화 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선생님은 이렇게 재인용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이것이 다시 시중에서는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로 전해진다.
혹시 두 분이 같은 문중 출신이 아닌지 모르겠다.
다시 서양의 과학 사상가 토마스 쿤은 창틀 이론을 들고 나왔다.
어떤 창틀을 통해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전혀 새롭게 보인다는 의미이다.
그가 '창틀' 이란 개념으로 사용한 '패러다임Paradigm'은
세상은 보는 인식체계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어 지식인들의 유행어가 되었고
그의 책은 1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한 20년도 지난 일인 것 같다.
내가 사진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패러다임 그리기'라는 제목의 사진을 보고서였다.
국전 대상작품이었다.
어느 사진작가가 작품 소재를 찾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어느 아름다운 호수가를 지날 무렵 바람이 몹시 물었다.
호수가에 서서 바라볼 때는 그저 일렁이는 물결만 보였다.
이번에는 호수가에 납작 엎드려서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주기적으로 밀려오는 물결이 마치 음악의 오선지 처럼 보였다.
-옳지! 저기다 음표 하나만 그려 넣으면 훌륭한 악보가 되겠구나...
-음표는?
순간 그는 무릎을 쳤다.
-저 물결 사이로 물고기를 채기 위해 내리꽂히는 흰 백로 한 마리만 더해진다면
아름다운 음표가 되리라...
그는 호수 가에 텐트를 치고 몇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날씨가 맑으면 바람이 없어 물결이 일지 않고,
아름다운 물결이 일면 날씨가 흐려서 사진이 선명하지 못하고...
날씨 맑고 바람이 일어도 백로가 나타나지 않으면 허사고...
한 주일을 기다린 끝에 맑은 하늘에 바람이 일어 아름다운 오선지가 완성될 무렵,
마침 물고기를 잡기 위해 호수에 내리꽂히는 백로 한 마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그 작품의 제목이 '패러다임 그리기'였다.
난 아직 내공이 턱 없이 부족한 것 같다.
내 안의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를 모두 버려야 할까 보다.
그릇이 작아 더 이상 쌓을 공간이 없으니 모두 버릴 수밖에...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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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준을 정해요, 지난 1년 동안 한 번도 펴지 않은 책은 고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버린다! ㅎ~
시댁에 시모님 치매 간병 할때 책을 100권도 더 읽었더라구요..
그렇게 일 많고 힘들때도 책을 가까이 했는데 이제는 바보상자 덕분에 일년에 몇권도 못 보니
뭐가 보이는게 아니고 자꾸 캄캄해지는군요..
이밤에 좋은 글 대하니 많이 기뻐요..노을님..^^
그러니 나같은 글쟁이 하루 한 끼밖에 몬 묵지요, ㅎ~~ 책을 읽읍시다!
버리긴 버려야 될 터인데...
왜?~
자꾸... 아까운... 생각이 드는건...?
아직도 멀었단 얘기...!
에~ 효~~~
진정 얻으려는 자 버릴 줄 알아야...아름다운 6월 맞으셈!
버려야 할거 내려놓아야 할거 잊어야 할거
왜이리 늙어가면서는 많아 지는지~
된장.~
된장, 고추장, 막장...요즘 경치 좋지요?
내쇼널지오그래픽 영어판을 오래갖고 있다가 몽땅 내다 버린게 젤 아깝더라구요 다른 책들도 긴책장 네개 분량 버렸어요
인젠 시력이 안좋아 억지로 보면 어지럽구요
신발 옷 가재도구 왜그리 사다 날랐던지 사도사도
허허한 마음은 무엇으로 채울꼬?
심플 라이프로 돌아가는 것이 만년을 위한 준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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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달팽이 안단테>란 글을 읽는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고맙~~~
물질적 외형 잡동사니 보다는 내적 부질없는 마음의 잡동사니를
몰아내자는 뜻 같은데~~~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마음이 깨끗하다고 하던데
노을님은 버릴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온통 군더더기, 잡동사니만 가득 차 있습니다...
언제나 고요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때론 버려야 할것들을 버리지 못함이 나를 구속하는듯하더군요.
늘상 입에 오르 내리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좋은글 주심에 감사합니다. 좋은나날 되십시오.
진정으로 버려야 할것은 탐진치 가아닐까요.
이삿집센터 대형차량 보내겠습니다.
저에게 보내주십시요. 남은인생 살아가는데
유용한 자료로 쓰겠습니다.
모두 버리신다니 무얼 버리고 계신지 궁금했습니다.
궁즉통이라더니 그걸 기다리시는 모양인가요?
고운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글이 잘 풀어지질 않으시는군요.
기다림의 미학도 있는거지요. ~^^~
물결의 오선지 위
음표의 백로
너무 멋진한컷의 사진일듯
보고싶어집니다
욕망 욕심을 버리기는 힘들어도
잡동사니 버리는건 일등합니다
없어지면 내탓만 되지만요
심플하게 살고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남자도 딱 한명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