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7.30 06:49
지난 7월 24일 찾아간 부산 해운대구의 해운정사. ‘해운정사(海雲精寺)’라는 커다란 편액이 내걸린 해탈문(解脫門)을 지나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절의 큰법당 격인 원통보전(圓通寶殿)이 나왔다. 원통보전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조사전과 범종각, 오른쪽으로는 관음보궁과 불국사 다보탑을 모방한 평화탑, 대불전이 차례로 늘어서 있었다.
원통보전에는 평일 아침임에도 많은 신도들이 모여 앉아 스님의 독경에 따라 ‘관세음보살’이라며 불경을 되뇌고 있었다. 대개 석가모니불이 있어야 할 큰법당 상석에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천수천안(千手千眼)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는 것이 독특했다. 태풍에 휩쓸려 언제죽을지 모르는 바닷가에서는 이승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관세음보살을 주불(主佛)로 모시는 경우가 많은데 해운정사 역시 그런 듯 보였다.
천수관음 앞에는 ‘이건희 배상’이라고 적힌 호접란 화분 2점이 놓여 있었다. 그 좌우로도 각각 ‘이재용 배상’ ‘홍백련성 배상’이란 화분이 보였다. ‘홍백련성’은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관장의 불교식 법명(法名)이다.
자연히 화분에 적힌 ‘이건희’는 홍라희 여사의 남편으로 병석에 누워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은 홍라희 여사의 외아들로 서울구치소에 갇혀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뜻했다. 원통보전에 놓인 4점의 호접란은 지난 7월 20일 해운정사를 찾아 재(齋)를 올린 홍라희 여사가 시주(施主)한 화분인 듯 보였다.
홍라희 여사는 지난 7월 20일, 해운정사를 찾아 와병 중인 남편(이건희)과 수감 중인 아들(이재용)을 위한 ‘수륙재(水陸齋)’를 올렸다. 수륙재는 바다와 육지를 홀로 떠도는 억울한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여는 재다. 이날 수행원 1명을 대동하고 내려온 홍 전 관장은 2시간40분간 재를 올리고 떠났다. 마침 이날은 서울가정법원에서 큰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맏사위인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과의 이혼판결이 예정된 날이기도 했다. 거듭되는 우환에 평소 불심(佛心)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삼성가(家) 안주인 홍라희 전 관장의 번뇌가 클 듯했다.
원불교 종사(宗師)였던 모친 김윤남 여사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원불교에 심취한 홍라희 여사는 불교계와도 연을 맺었다. 2010년에는 조계종 ‘여성 불자 108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고, 같은해 입적(入寂)한 법정 스님이 폐암 치료차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밀린 치료비 6200여만원을 사비로 대납하기도 했다. 지금도 여성 재가 불자모임인 ‘불이회(不二會)’ 회장으로 있다. 해운정사의 한 관계자는 “홍라희 여사는 해운정사를 창건한 조계종 종정 진제(眞際) 스님과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며 “그동안 비밀로 해달라며 해운정사의 크고작은 일에 알게 모르게 불사금을 많이 내셨다” 고 말했다.
1971년 진제 스님이 창건한 신흥사찰
홍라희 여사의 출현으로 해운정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운정사는 ‘불도(佛都)’ 부산에서 떠오르는 신흥사찰이다. 부산불교연합신도회 윤기혁 사무국장에 따르면, 부산의 불교신자는 대략 200만명. 윤기혁 사무국장은 “부산 인구 350만명 중 60%에 육박하는 수치니 불교신자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고 할 수 있다” 고 했다. 현재 대한불교 최대 종파인 조계종 종정으로 있는 진제 스님이 1971년 창건한 사찰로, 부산 최대 사찰인 금정산 범어사(梵魚寺), 단일 사찰로 38만명 최대 신도 수를 자랑하는 백양산 삼광사(三光寺)에 맞먹는 유명사찰로 성장했다.
윤기혁 사무국장은“불교는 교회와 달리 편안하게 오가는 곳이기 때문에 신도 수 집계가 쉽지 않다”며 “해운정사는 신도 수로 교세를 판단하기보다는 종정 예하(진제 스님)께서 계신 한국 불교의 상징성 차원에서 더 유명하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큰법당인 원통보전 서남쪽에 있는 ‘불심인조사전(佛心印祖師殿)’. 석가모니의 법손(法孫)으로 꼽히는 10명의 고승을 커다란 화강석 석상으로 하나하나 조각해 모셔놓은 전각이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초대조인 마하가 섭존자(1대조)와 보리달마대사(28대조), 태고보우국사(57대조)를 위시한 국내외 석가모니 법손들의 석상이 늘어서 있었다. 맨 왼쪽 끝자리는 ‘79대조 진제법원선사’라는 진제 스님의 석상이 차지하고 있었다.
1934년 경남 남해섬에서 태어난 진제 스님은 인천 용화선원(용화사)의 송담 스님과 함께 ‘북(北)송담, 남(南)진제’로 불리는 한국 불교계에서 추앙받는 고승(高僧)이다. 덕망 높은 고승이라지만 아직 생존해 있는 승려의 석상을 만들어 둘 정도니 그 법력과 수완이 범상치 않은 듯 보였다.
사찰 측에 따르면, 진제 스님은 법제자를 양성하기 위한 절터를 찾아 전국의 산천을 두루 주유했다고 한다. 마침내 해운대 장수산(장산을 일컫음)에 이르러 태백산맥이 굽이쳐 내려와 장중한 기운이 맺힌 것을 보았다고 한다. 산 의 모습 또한 장려하고 진중하여 “수행자들의 최상의 공부터로구나” 하고 간파했다고 한다. 그렇게 장산 자락이 해운대로 흘러내리는 자리에 터를 잡고 1971년 창건한 사찰이 해운정사다.
지금은 고층빌딩에 가려 해운대 바닷가가 보이지 않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해운대 백사장이 한눈에 보였다고 한다. 창건 당시 해운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해봤자, 지금의 팔레드시즈 콘도 자리에 1966년 부산 최초의 특급호텔로 개관한 극동호텔 한 동이 전부였을 때다. 해운정사를 찾아온 당대 최고 풍수가 육관도사 손석우 옹은 “부산 시민들이 하루에 한 번씩만 해운정사 도량을 밟고 가도 발복(發福)한다” 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해운정사가 본격 급성장한 계기도 해운대 개발로 부산의 부촌(富村) 지도가 바뀌면서다. 해운대는 1980년대 수영만 매립지 조성(현 마린시티), 1990년대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과 함께 부산의 신흥 부촌으로 부상했다. 부산 전통의 부촌인 동래에 살던 부자들이 대거 해운대로 넘어왔다. 사람과 돈이 몰리면 종교 지도 역시 변하기 마련이다. 결국 해운대 개발 열기가 해운정사를 띄운 것이다. 지금은 해운정사가 자리한 장산 자락 아래로 숨 쉴 틈 없이 빼곡히 들어선 고층빌딩과 아파트들이 그동안의 개발 열기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신라시대인 678년 의상 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인 범어사는 쇠퇴한 부촌인 동래에 자리 잡고 있다. 범어사는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구례 화엄사와 더불어 국내 5대 사찰로 꼽히는 대찰이다. 조계종 8대 총림(叢林) 이자 25개 교구(敎區) 본사 중 하나로, 부산·경남 일원에 말사(末寺)만 140여 곳을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부산 최고봉(最高峰)으로 해발 801m에 달하는 금정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신도들이 옆집처럼 드나들기가 쉽지 않다. 해운정사는 해운대역에서 도보로 불과 15분 거리에 불과하다. 1970년대 영동 개발과 함께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봉은사가 조계종 본사이자 직할 사찰인 조계사를 능가할 정도로 위세가 커진 것과 유사한 전철을 밟은 셈이다.
2011년에는 해운정사를 창건한 진제스님이 조계종 13대 종정으로 추대 선출되면서 해운정사는 영향력 면에서도 범어사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지난해 박대성 해운정사 신도회장이 부산 불교연합신도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불교 연합신도회는 200만 부산 불자들을 대표하는 자리다. 박대성 회장 직전의 부산불교연합신도회장은 범어사 신도회장인 이윤희씨였다. 부산 지역 사찰의 세대교체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박대성 해운정사 신도회장은 “해운정사는 진제 큰스님의 명성이 높아서 신도들이 전국에 걸쳐 있고, 일 년에 한두 번씩 미국에서 건너오시는 신도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서병수 부산시장, 장대환 매경 회장…
해운정사 신도 가운데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도 많다. 조사전 앞의 커다란 화강석에 새겨진 시주 명단 제일 앞 자리는 ‘서석인·서병수’ 부자(父子)의 이름 석 자가 차지하고 있다. 해운정사 초대 신도회장을 지낸 서석인 전 부일여객 회장은 서병수 부산시장의 부친이다. 서석인 전 회장은 해운대 시의원과 초대 민선 해운대구청장을 지냈다.
박대성 해운정사 신도회장은 “서석인 전 회장은 해운정사 초대 신도회장으로 1971년 창건 때부터 10년 넘게 신도회장으로 계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서 전 회장이 불공을 드리며 닦은 기반을 바탕으로, 서병수 시장도 해운대구청장(민선 2기)을 지내고, 해운대·기장갑 지역구에서만 내리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4년에는 부산시장에 당선됐다. 국회의원 시절 불자 의원모임인 ‘정각회(正覺會)’에 참여한 서병수 부산시장은 진제 스님으로부터 ‘대명(大明)’이란 법명을 받기도 했다.
사찰 내 범종각에 걸린 커다란 범종에 빼곡히 적힌 시주 명단의 가장 앞자리는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회장 일가가 차지하고 있었다. 장대환 회장을 필두로, 그 뒤로 장 회장의 부인인 정대원행 (정현희 정진기언론문화재단 이사장의 법명), 아들 장승준 MBN 사장, 딸 장윤지, 선친인 장지량(전 공군 참모총장), 장대환 회장의 장모인 이서례 정진기언론문화재단 명예이사장의 이름이 보였다.
장대환 회장의 선친인 장지량 전 공군 참모총장은 6·25전쟁 와중인 1951년 “공비(共匪)들이 숨어 있는 해안사를 폭격하라”는 미군의 명령에 맞서 폭격을 거부해 ‘팔만대장경(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을 지켜낸 공로로 불교계에서는 은인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박대성 신도회장은 “대원행(정현희 정진기 언론문화재단 이사장) 보살님이 내 임기 직전 신도회장으로 5년간 계셨다”고 했다. 진제 스님의 영문법어집인 ‘Open the mind See the light(마음을 열어 빛을 보다)’를 비롯한 대부분의 책은 매일경제에서 출판했다.
진제 스님이 2011년 조계종 종정에 추대된 후부터는 정·재계 인사들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가운데는 해운대관광리조트 엘시티(LCT) 인허가 비리건으로 지난해 11월 긴급체포된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전 동방주택 사장)도있다. 이영복 회장은 2013년 해운대관광리조트(엘시티) 기공식 때 허남식 당시 부산시장과 함께 진제 스님을 주빈석에 모셨다. 2012년 9월에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전 대통령)가 해운정사를 찾아 진제 스님과 점심 공양을 함께 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진제 스님으로부터 받은 ‘대자행(大慈行)’ 이란 법명을 갖고 있다.
5·9대선 직전인 4월에는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가 부산 유세 중 해운대에 있는 부모집에 머문 뒤 새벽에 해운정사를 찾아 진제 스님으로부터 ‘대경(大慶)’ 이란 법명을 받기도 했다. 홍라희 전 관장까지 찾아온 해운정사에 다음은 어떤 귀인(貴人)이 찾아올지 기대된다.
첫댓글 난 화분이 아닌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 사진이 중심이 되었으면 하는 것은 우리 불자님들의 소망이겠지요.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진제스님의 석상...이란 부분에서 뜨악해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이건 스님께서 말리고 또 말렸어야 할 부분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손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뿐 아니라 모든 유정, 무정이 불자, 부처님의 자손인데요.
기사에서 기자의 스님 디스가 느껴지는 건 저의 오버인가요?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