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란 몰상식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가 8월 30일 서울 중구에 있는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를 찾아가 곽정현 기념사업회장에게 사죄했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김 교수는 그날 오후 한 시간쯤 곽 회장을 만나 "(이번 논란에 대한) 책임을 절감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유의하겠다"며 사죄했다. 이런 얼빠진 사람이 사학지요 역사 교수라니 기가 막힌다.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이 심각하다는 사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교육부가 8월 26일 개최한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의 개선안 토론회’에서 벌어진 ‘유관순 열사’ 서술 논란만 봐도 알 만하다.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을 통과, 현재 사용 중인 한국사 교과서 8종 중 4종은 3·1 독립운동을 기술하면서 유관순 열사는 누락시켰고, 그 배경 설명도 좌편향 역사관 때문이라는 것도 분명히 드러났다.
홍후조 고려대 교수는 이 자리에서 “역사를 전공한 집필자들이 유관순 열사를 모를 리 없는데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일부러 뺐을 가능성이 크고, 이것은 결국 집필자의 편향된 역사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에,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친일 전력의 박인덕이 해방 후 유관순을 발굴해 이화 출신의 영웅으로 만든 것”이라며 “북한에선 당연히 유관순을 모르고, 우리나라 교과서엔 1950년대에야 들어갔다는 것이 2009년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 운운했다. 친일파가 만든 영웅이니 대한민국 교과서도 북한처럼 유관순을 기술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이다.
친일 행적이 있는 사람이 띄웠다고 해서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순국정신이 사라져야 옳단 말인가.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 재학 당시 고향인 충남 천안의 병천시장에서 벌인 대규모 만세 시위 와, 일제의 잔악한 고문으로 1920년 겨우 18세의 아까운 나이에 옥사한 사실이 어디 가는가.
설령 그런 사실을 찾아낸 인사에게 일부 흠이 있을지라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한 부분인 유관순 열사의 행적과 공로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광복절 69주년이었던 지난 8월 15일 청소년 대상의 설문조사에서 유관순 열사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독립운동가’ 1위로 선정된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더욱이,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갖도록 하는 역사교육의 가장 기본인 교과서에서 이를 배제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그르치는 역사적 죄악이기도 하다. 앞으로 한국사 교과서 검정 기준에 유관순 열사 기술도 포함시키고, 이를 누락시키면 원천적으로 검정을 통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유관순 열사(1902∼1920)는 충남 천안군 동면 용두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 기독교 감리교에 입교한 개화 인사로 재산을 털어 학교를 세워 민족교육 운동에 몸 바친 계몽운동가였다. 유관순은 1918년 이화여자보통학교 고등과 1학년에 진학해 신학문을 배웠다. 당시 이화학당은 이문회(以文會)라는 자치활동 기구를 통해 시국 관련 토론회를 열었고, 사회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시국강연회도 열었다. 이런 환경에서 애국애족정신을 키우게 된 유관순은 어느 날 밤 친구들과 물감으로 태극기를 그려 학교 곳곳에 붙이기도 했다.
유관순은 1919년 서울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나 일제가 전국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자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한 달 뒤인 4월 1일 천안군 병천면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조인원(독립운동가 조병옥 박사 부친), 숙부 유중무 등이 세운 거사에서 연락 책임을 맡은 것이다. 또 사촌언니 유예와 함께 태극기 제작도 전담했다.
그해 4월 1일 오후 1시 마을 어른들과 선두에 서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고, 일본 헌병대를 향해 나아갔다. 헌병들이 시위대에 총을 쏘려 하자 총구 앞으로 뛰어나가 ‘쏘지 마라!’ 외치며 막아서는 바람에 체포됐다. 그날 헌병의 총칼에 시위대 19명이 즉사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했으며, 16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유관순의 부모도 이때 흉탄에 맞아 즉사했다. 유관순의 집과 헛간도 불태워졌다. 이날 일본 헌병의 피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유관순은 공주법원에서 5년, 서울법원에서 3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수감된 날부터 매일 틈만 나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모진 고문을 당했다. 같은 방에 수감된 임산부가 허기에 지치자 자신의 밥을 양보했고 아기 기저귀를 자신의 몸에 돌돌 감아 체온으로 말려 주기도 했다.
유관순은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출옥일을 며칠 남긴 채 눈을 감았다. 유관순의 유언이다.
“손톱이 빠져나가고 귀와 코가 잘리고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 잃은 고통만은 견딜 수 없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유일한 슬픔이다.”
시신은 가족들이 이태원 공동묘지에 모셨으나, 일본이 이 일대를 군부대로 개발하면서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했다. 이 과정에서 유해가 유실돼 천안 매봉산 기슭에 초혼묘로 모셨다.
유관순은 당시 만세운동으로 형을 받은 사람들 중 가장 중한 처벌을 받았다. 이는 유관순이 만세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반증이다.유관순 집안은 부모, 오빠, 숙부 등 가족 7명이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등 건국 훈장을 받은 집안이다.
이런 유관순 열사의 삶이 빠진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고교가 전체의 60%다. 교육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역사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도라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독립투사들의 피로 세워진 나라이다. 역사는 나라의 혼을 가르치는 것인데 인격과 자아정체성 형성에 매우 중요한 시기인 고교생들에게 유관순 열사를 가르치지 않는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일까.
유관순 열사의 역사교과서 배제, 참으로 황당무계한 현상이다. 일제식민사학자들이 비틀고, 좌경 사학자들이 뒤튼 한국사교과서와 역사교육, 언제나 제자리를 찾을 것인가. 나라가 어디로 가려고 이렇게 좌편향된 자들이 사회 각계에서 설치고 있는가. 참으로 한심하고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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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관순이 빠진 건 좀 당황스럽더군요.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교과서가 유관순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할 순 없겠지만,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 이라는 이유로 유관순을 평가절하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이런 논의는 이순신에서도 있었지요. 박정희가 이순신을 성웅화했으므로 이순신은 평가절하해야 마땅하다는 논의인데, 박정희가 이순신을 영웅화한 부분을 제거하더라도 그 남는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이순신은 충분히 한국사에 중요한 위인으로 손에 꼽힐 만 하지요.
'누가 그 인물을 이용했고 중시했느냐'보다는 '그 인물의 업적이 어떠하냐' 로 인물을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졸문을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같은 역사를 다르게 배우면 ...성인이 된 그 아이들에게 갈등을 주게되고 화합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에
제대로 된 역사 가치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선생님의 글에 절대 동감입니다.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슨 나라가 거꾸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사실인거 같아 서글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