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저의 부정성을 덮어 주옵소서.
오늘도 아들의 말씀으로 제 영혼이 소생되기를 사모하오니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본문 주해)
9~11절 :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은 사랑과 복종의 관계로 하나이셨다.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이다.
그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아들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킴으로 온전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한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들도 하나님고 하나이신 예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그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는데, 그것은 곧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러한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제자들에게 하늘에 속한 기쁨, 영생의 기쁨을 알게 하고 또 주시려는 것이다. 세상의 기쁨은 일시적이고 유한하고 허무하지만, 하늘의 기쁨은 무한하고 영원한 기쁨인 것이다.
이 영생의 기쁨은 성도가 아들 안에 거하고 아버지 안에 거함으로써 오는 기쁨이다. 곧 아버지께 복종하여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아들의 기쁨인 것이다. 이는 아버지 품속에 거하는 기쁨이요 항상 현존하는 기쁨이다.
12~15절 : 아들의 계명은 아들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아들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그의 죽음을 통해 생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서로 사랑하면 아들의 친구가 된다.
사람이 아들의 친구가 되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아들이 그를 친구로 택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아들은 그가 택한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다.
영생 얻은 자는 아들의 종이 아니라 아들의 친구로 택함 받은 자인 것이다.
이렇게 아들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종이 아니라 친구이다. 종은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하지만, 친구에게는 그 뜻을 알게 하신다.
16절 : 예수께서 제자들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가 항상 있게 하기 위함이다.
‘가서’는 사도로 파송하는 것을 말하며, 그가 가서 맺는 열매는 영생에 이르는 열매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영생의 열매를 맺는 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해야 하며, 그때 아들이 친히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아버지의 응답이 나타나는 것이다.
17절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새번역)
결론적으로 아들의 명령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아들 안에 거하는 자는 아버지 안에 거한다. 그들은 아들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한다. 아들이 그를 사랑한 대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의 묵상)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말씀은 지금 이 순간 내게도 하시는 말씀이다.
늘 고백했지만 나는 나 외에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그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태어난 존재요, 수십 년을 세상 권세를 잡은 자에게 이기적으로 살라고 조종되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위해 주님이 죽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먼저 주님을 알고 나를 구원하여 달라고 호소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땅에 푹 젖어 ‘잘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예수님을 원하지도 찾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주님께서 찾아와 비참한 죄인인 나를 보게 하시고, 그런 나를 위한 그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심과 하늘에 오르심과 성령을 보내주심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땅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며 살던 자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이유를 몰랐던 자가 ‘그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그 사랑’은 나를 위해 목숨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주신 분이 말씀하신다.
“서로 사랑하라”
그렇지만 나는 왜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지 수도 없이 많은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내세우며 고집 피우기 일쑤이다.
하지만 주님은 이런 나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만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그 사랑의 말씀 앞에 내 마음은 어제도 무너졌고, 오늘도 무너진다. 그리고 내일도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그 무너짐에 화가 나거나 억울하지 않고 도리어 감사할 뿐이다.
세상 속에서 이기적으로 살아도 만족함이 없는데, 낮아지고 다 주는 주님의 사랑 방식을 따라가야 하는데 감사라니!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이러한 내 마음이 결단이나 결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손해 보는 일에 내가 뭣하러 결심 따위를 하겠는가 말이다.
오히려 ‘한번 해 보시려면 해 보시죠’ 하고 꿋꿋하게 버텼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러나 주님은 나로 하여금 매일 말씀 앞에 앉게 하심으로 주님의 그 사랑을 알게 하셨다.
이제 변명하던 입을 다물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어쩌지 못하는 나를 주님께 올려드린다.
그러면 ‘서로 사랑하도록 내가 이끌어 가겠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주님께서 시작하신 그 사랑에 나도 동참시키심으로, 주님께서 이루시겠다는 주님의 의지를 알게 된다. 그 증거로 성령님을 보내주시지 않았는가?
이기적이고 거짓된 내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영생을 주시는 주님의 그 사랑에 눈을 뜨게 하시니 너무너무 감사하다.
이제 만나는 모든 영혼들에게 그 어떤 것을 얻어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서 내게 부어주신 그 충만한 은혜를 그들에게 쏟아부을 뿐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아들이 제자들과 나에게 사랑을 부어주심으로 아버지 품속에 거하게 하셨으니, 나도 받은 그 사랑을 많은 이들에게 쏟아부음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내 앞에 누가 나타나든지-원수든 친구이든-상관없이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것이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주님께 받은 그 사랑, 바로 영생의 말씀이다.
(묵상 기도)
주님,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짐이 되었습니다.
다 빼앗기게 될까봐 선을 긋고 마음을 단단히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 앞에 무장해제 됩니다.
그리고 사랑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저를 더 풍성하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하십니다.
이제 주님께 받은 그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길 소원합니다.
이기적이고 거짓된 내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기쁨이 넘치는 주님의 사랑으로 하는 것임을 알게 하셨사오니
저에게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