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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현명한 통치에 영지는 갈수록 번영했다. 그러나 이는 서서히 베드포드 공의 야심을 눈치채고 있던 윌리엄 왕이 그를 더 경계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을 뿐이었다.
윌리엄 왕의 의심은 나폴리의 왕, 로베르 기스카르가 교황 조정자가 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나폴리 왕이 누군가? 베드포드 공작의 장인이 아닌가? 비록 이 장인과 사위가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뒀다가는 나폴리 왕이 윌리엄 자신을 적대하게 될 충분한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베드포드 공작을 무조건 제거할 수도 없는 일. 윌리엄 왕은 때를 기다린다. 베드포드 공작 그레이스가 그렇듯이.
1081년 1월. 프랑스는 격동하고 있었다. 프랑스 내에서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아키텐 공과 그레이스의 옛 장인 부르고뉴 공, 그리고 영토는 크지 않지만 영지의 부로 인해서 프랑스 내에서 손꼽히는 플랑드르 공작이 일제히 반기를 든 것이었다. 프랑스 왕은 파리 북부의 베셍 백작은 친위군을 보내 토벌하긴 했지만, 이 강대한 세 공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조용하던 프랑스가 갑자기 격동의 회오리에 말려들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바로 교황에게 불경하게 군 데다 십자군에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프랑스 왕이 파문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대로 교황의 수호자를 자처하는데다 신앙심에서도 다른 왕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프랑스 왕이 십자군을 가기 싫어서 안 간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실 프랑스 왕은 국내의 대귀족들 눈치 보기에 바빠서 십자군이고 백자군이고 해외 원정을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대귀족들이 프랑스 왕위를 집어먹기 위해 나폴리 왕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온 프랑스 안을 떠돌았다.
이 소문이 자극한 것은 그러나 프랑스 내의 민심 뿐만이 아니었다. 잉글랜드의 궁정 또한 이 소문으로 뒤숭숭했다. 프랑스의 대귀족들과 나폴리 왕 사이에는 아무런 다리가 없지만, 베드포드와 나폴리 사이는 인척이란 끈끈한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즈음 부터 런던의 왕궁에서는 '베드포드 공작이 프랑스의 예를 본받아 잉글랜드의 왕위를 찬탈코자 한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윌리엄 왕은, 소문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자신의 왕위에 이토록 위협이 되는 사람을 가만히 두는 군주가 아니었다.
런던의 분위기가 급격히 냉각되는지도 모르고, 베드포드 공작 그레이스는 이 프랑스의 위기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그의 입장에서 볼때 잉글랜드 안에서는 확장할 여지가 없었다. 궁정 분위기는 잘 몰랐던 그레이스지만 윌리엄 왕이 자신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으므로 잉글랜드 안에서 한 뼘이라도 영지를 늘리려고 했다간 바로 왕의 친위대가 베드포드를 짓밟아버릴 터였다. 그레이스의 목표는 프랑스 왕이 베셍 백작을 무찌르고 자신의 소유지에 갓 편입시킨 베셍과 아미앵, 두 곳이었다.
직접 동원할 수 있는 병력 차이는 아직도 프랑스 왕이 베드포드 공작에 비해 세 배가 넘었지만, 프랑스 왕은 전 프랑스에 걸쳐서 시종일관 밀리느라 병력을 할애할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프랑스 왕이 베드포드 공작과 전쟁상태에 돌입하면, 잉글랜드 왕 또한 봉신 계약을 앞세워 프랑스 왕에게 선전포고할 터였으므로 그레이스는 걱정하지 않았다. 1081년 3월. 베드포드 공작 그레이스는 프랑스 왕에게 아미앵과 베셍 두 곳의 소유권을 양도할 것을 요구하며 전쟁을 걸었다.
휘하 군대와 함께 함대에 승선하고 있던 그레이스에게 프랑스 왕의 사절이 당도한다. 사절이 내민 서신에는 아미앵의 소유권을 인정해주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레이스는 사절 앞에서 서신을 찢어버린 후, 배에 올라탔다. 아미앵 한 곳을 얻자고 전쟁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레이스가 앞서서 이끄는 영국군 앞에 순식간에 베셍이 무너지고
아미앵까지 함락당할 위기에 처하자 프랑스 왕은 굴복했다. 프랑스 왕은 이미 아키텐 공에게 대패해 궁정마저 와해된 상황이었으므로 북쪽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전쟁이 마무리되자, 그레이스는 그의 첫째 아들을 플랑드르에 유학보낸다. 플랑드르 공작은 파리와 일드프랑스까지 프랑스 왕에게서 뺏어내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미앵과 베셍의 바로 옆에 있었다. 그의 아들을 플랑드르에 보낸 건 순전히 주인이 바뀐 이 두 지역에 벌써부터 침을 흘리기 시작한 플랑드르 공작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둘째 아들은 독일 궁정에 유학을 보낸다. 독일은 그때 당시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중심으로 뭉쳐있었으므로, 둘째 아들을 통해 독일을 플랑드르와 프랑스의 견제 역으로 쓰려는 그레이스의 생각이었다.
프랑스에서 새로운 영지를 획득함으로써 국력이 세 배 가까이 신장된 베드포드 공작 그레이스는, 이제 그의 영지인 베드포드에 성채를 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윌리엄 왕이 바라마지않던 명분이 될 줄이야.
잉글랜드의 왕 윌리엄 1세는 베드포드 공작을 반역자로 규정하고 군대를 일으켰다. 그 이유로는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 장인인 나폴리 왕과 작당하여 왕위에 도전하고자 하였다.
둘째 : 왕이 봉신계약을 충실히 지켜 프랑스와의 전쟁에 나선 베드포드 공작을 지원했는데도, 베드포드 공작은 왕을 무시하고 프랑스 왕과의 단독 평화 협상을 벌여 전쟁에서 빠져 나갔다.
셋째 : 왕도 런던의 코 앞에 왕의 허가도 없이 성채를 짓는 것은 왕에 대해 칼을 겨누는 것이며 이는 첫째 항목을 증명하는 것이다.
베드포드 공작은 고립되었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베드포드 공작 혼자 이익을 챙긴 것에 분노한 잉글랜드의 다른 봉신들이 왕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윌리엄 1세의 공격이 이토록 신속할 지 상상도 못했던 그레이스는 당황했다. 프랑스의 그의 영지는 아직 그의 휘하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군을 동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베드포드에서 4천, 프랑스에서 5천을 긁어모은 그는 일단 베드포드에서 버티면서 프랑스의 군대가 노르망디를 점령하고 브리튼 섬으로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이제 플랑드르 공작이 움직였다. 플랑드르 공작이 베셍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대군을 동원하고, 베셍에서 플랑드르의 1만 5천 군세에 프랑스 내 베드포드 군이 박살나면서 유일한 희망도 사라졌다. 게다가 베드포드에서 버티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상대하는 자는 다른 자도 아니고 당시 유럽 최강의 무장의 한 명인 윌리엄 드 노르망디였던 것이다!
그레이스는 항복했다. 윌리엄 1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베드포드와 베드포드 공작위를 반납했고 다시 잉글랜드 왕의 봉신으로 들어갔다. 베셍에는 플랑드르 공작의 봉신이 들어서는 걸 눈 뜨고 구경할 수 밖에는 없었다.
더 이상 그레이스 박은 베드포드 공작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고작 아미앵의 백작이었으며, 그나마 아미앵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재기는 불가능해보였다.
이런 상태가 되자, 그의 사생아는 그의 궁정을 빠져나와 도망친다. 어차피 아들로도 보지 않던 아이였으나 그래도 아들이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이 그레이스를 괴롭혔다.
그레이스는 재기를 위해 계책을 짰다. 일단은 잉글랜드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갓 성년이 된 첫째 딸을 윌리엄 1세에게 시집보내기로 했다. 윌리엄 1세는 당시 부인을 잃고 홀몸으로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 차가 무려 42살이나 되었으므로 아미앵의 궁정 내에서도 반발이 심했지만, 이 혼사를 중단시킨 것은 다름아닌 윌리엄 1세였다. 그레이스와 같이 위험한 자와는 인척을 맺지 않겠다는 게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젊은 아내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늙어버린 스스로의 체력 때문이었다. 사실 수년 후, 이 희대의 정복왕은 왕국을 그의 아들에게 물려주고 눈을 감는다.
잉글랜드 왕과의 혼사가 좌절된 직후, 궁정에서는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사실 궁정 안에서 벌어진 살인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레이스의 두번째 사생아 슈비스가 그의 형 오스왈드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둘 다 후계자는 될 가능성이 없었으므로 후계자 싸움은 아니었다. 두 사생아는 궁정 안에서 함께 자랄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스왈드는 슈비스의 어머니가 천한 출생이라며 슈비스를 경멸했고, 슈비스는 오스왈드가 아버지의 피도 이어받지 않았으면서 궁정에 있는다고 멸시했기 때문이었다. 이 살인 사건은 두 사람의 감정의 골에 종지부를 찍는 마침표에 불과했다. 그레이스는 간섭조차 하지 않는다.
아미앵의 상황이 호전되고, 어느 정도 병력을 동원할 수 있게되자 그레이스는 다시 베셍을 되찾을 결심을 한다. 플랑드르와의 정면대결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다시 잉글랜드에 의존해야 했지만, 윌리엄 1세는 지원은 커녕 아미앵이 불타오르고 그레이스의 가문이 사라진 후에야 나설 인간이었다. 하지만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레이스는 도박을 걸었다. 잉글랜드는 전쟁에 참전했다. 플랑드르 공은 윌리엄 1세에게도 위협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잉글랜드 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아미앵에서 버티면서 베셍을 공략하는 묘기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베셍을 제대로 공성하기도 전에, 베셍 백작이 항복함으로써 그레이스는 아미앵에서 버티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뛰어난 전술 능력을 발휘하여 아미앵에서 세 차례나 적의 대군을 막아냈지만
마지막 전투에서는 패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의 수가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다. 초전에는 그래도 상당히 잘 싸웠으나, 병력이 전멸해버리자 그레이스는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신이 이번에는 그레이스를 도왔다. 파리를 점령한 잉글랜드 군이 플랑드르 공작에게서 평화조약을 받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베셍과 아미앵은 그레이스의 것으로 인정되었다. 천우신조였다.
결국 둘째 사생아마저 궁정을 등지고 도망쳤다. 그레이스는 그를 쫓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복왕 윌리엄 1세는 마지막 정복으로서 십자군을 꿈꾸었다. 잉글랜드의 모든 봉신의 군대가 소집되었다. 그레이스는 가고 싶지 않았으나, 이번에도 거역했다간 정말 영지가 사라질지도 모르고 또 교회의 눈치도 두려웠다. 결국 십자군 선서를 하긴 했으나, 병력을 움직일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대륙은 바야흐로 난세였다. 프랑스에 이어서 독일도 사분오열되면서 무너졌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한때 카스티야 왕국이 레온을 상속받고 톨레도까지 진격했지만, 그라나다 에미르의 반격으로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온 유럽이 전국시대로 접어든 가운데, 영국만이 분열되지 않고 있었다. 이 현상은 윌리엄 1세가 비록 정복왕이라고 불리기는 했으나 통치 기술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레이스는 상속법을 정비한다. 장자 우선 상속제를 우수자 우선 상속으로 바꾼 것이다. 그의 장남 윌프노스는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연약했고, 대국을 경영할 능력도 모자랐다. 차남과 삼남이 능력면에서는 훨씬 더 탁월했다.
불로뉴 백작이 마상시합에서 그를 모욕한 것을 그레이스는 놓치지 않았다. 이미 잉글랜드에서 윌리엄 1세는 죽고, 노르망디 공이 왕위에 올라 있었다. 심한 말더듬이인 이 신왕은 노르망디 공작 시절부터 플랑드르를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지원은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레이스는 다시 전쟁을 선포한다. 이번에도 플랑드르의 봉신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바람에 플랑드르로써는 전쟁을 선포하며 위신까지 손해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레이스가 이끄는 아미앵의 본군이 플랑드르의 7천 부대를 박살내는 동안, 베셍의 군대는 불로뉴로 향했다.
잠시의 공성 끝에 불로뉴의 성문은 베셍 부대에게 문을 열었다. 아미앵에서는 플랑드르의 대부대가 한 번 더 습격하여 그레이스를 격퇴시키고 포위에 들어갔으나, 바다를 건너온 잉글랜드군이 곧바로 아미앵의 포위를 풀고 플랑드르의 수도로 진격했다.
마침내 플랑드르는 다시 평화조약에 싸인한다. 이것으로 그레이스는 영불해협 반대편에 영지를 확보함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지만 그는 베드포드에서의 굴욕적인 패배를 잊을 수 없었다. 그는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았다. 만약 잉글랜드 왕에게서 다시 한번 버림을 받는다면 이제는 정말 끝이었다. 왕에게는 어떠한 명분도 주지 않으면서 영역을 확보하든지, 아니면 잉글랜드보다 더 강한 나라에게 의탁하여 방위를 보장받든지 해야했다. 하지만 프랑스가 사분오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두 번째 방안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말은, 아직은 노르만 인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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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근성! 근성!
오오 근성 박씨! 잘 보고 갑니다!
근성 박씨는 꺾이지 않습니다!
머스트 플레이 크루세이더
머스트 플레이 크루세이더
자자 크킹을 하시는 겁니다.
막장 가족극을 보여주세요
벌써 사생아 둘 중 하나는 죽고 하나는 도망간 상태라 막장 가족극이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네요. 부르고뉴 공작위는 첫째 아들 앞으로 한 열 명쯤 있어서 다 죽일수도 없고 ㄷㄷ 나폴리 왕위도 둘째 아들 앞으로 수두룩해서 다 죽일 수도 없으니 천천히 플레이해야 할듯요
우와 근성이 멋지군뇨!
흥미진진하네요 >.<~~
올 ㅋ
우와 재미있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