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의사결정과 열린 마음이 창의적 리더십
2008년 9월 뉴욕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순식간에 글로벌 소용돌이로 번져갔다. 전 세계가 한 덩어리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면서 최고경영자(CEO)들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글로벌화의 진전에 따라 ‘복잡성(complexity)’이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이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중앙일보와 포브스코리아가 7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CEO 라운드 테이블을 마련했다. 한국IBM과 함께할 세 번의 간담회 중 첫 번째다.한국의 대표 CEO들이 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불확실성을 뛰어 넘는 경쟁우위 창출’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오른쪽부터 신영욱 한국IBM 경영컨설팅서비스 전무, 심상복 포브스코리아 대표, 정옥희 두산캐피탈 대표, 장형덕 비씨카드 대표, 김종훈 한미파슨스 회장, 이창식 동아원 대표, 유석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장, 박의준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오상민 포브스코리아 기자] | |
사회=먼저 신영욱 전무가 ‘2010 글로벌 CEO 연구’ 결과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신영욱=이 조사는 IBM이 2년에 한 번씩 전 세계 CEO들을 직접 만나 조사하는데, 올해 조사엔 한국 CEO도 25명이 참가했습니다. 2년 전 조사에선 ‘어떻게 변할 것이냐(Change)’가 CEO들의 가장 큰 고민이었는데, 올해는 대내외 경영환경의 복잡성을 어떻게 극복하고 활용하느냐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글로벌 CEO들의 생각을 종합해 보니 이들은 복잡성을 오히려 경쟁력 강화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3개의 키워드를 제시했습니다. ▶창조적 리더십 ▶고객관계 재창출 ▶능숙한 운영이 그것입니다.
사회=그럼 창조적 리더십부터 얘기를 시작할까요. 사실 이 말은 요즘 너무 흔하게 쓰이고 있는데 각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요.
장형덕=창조적 리더십은 CEO뿐 아니라 직원들로부터도 시작됩니다. 구성원들이 사소한 일이라도 ‘우리에겐 그게 왜 안 될까’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가질 때 조직의 창의성은 살아납니다. 내년 초부터 비씨카드가 국내 카드 사상 처음으로 해외 곳곳에서 사용될 예정입니다. 이 일도 ‘왜 우리 카드는 해외에서 사용할 수 없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서 시작됐습니다.
김종훈=얼마 전 일본 도요타의 한 사장을 만났는데, 한국 자동차 회사의 의사결정 속도에 감탄하더군요. 자신들은 6개월이나 1년 걸릴 일을 한국 회사는 한 달이면 해낸다는 겁니다. 이런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이 뒷받침될 때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실행력은 CEO가 70% 이상을 책임집니다. 직원이 창의성을 발휘하면 그걸 실행시켜 주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정옥희=복잡성은 안팎에서 다 생겨나는데, 내부 문제를 푸는 데는 CEO의 ‘열린 마음’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조직 구조나 일하는 방식을 유연하게 만들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CEO의 전략적 접근과 깨어있는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유석진=리더십은 크게 CEO가 주도해 조직에 바람을 일으키는 톱다운(Top-down) 방식과, 조직원들이 열린 기업 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를 분출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나뉩니다. 위기 때는 전자가 힘을 발휘하고, 평화로운 시기엔 후자 쪽입니다. 창의적인 리더십을 위해서는 둘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사회=복잡성을 돌파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고객과의 관계를 재창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선 폭주하는 고객 정보 속에서 얼마나 알맹이 있는 걸 뽑아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장형덕=요즘은 어느 기업이나 고객 정보를 수집합니다. 문제는 이걸 얼마나 잘 분석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느냐는 겁니다. 현재 비씨카드 회원은 3000만 명에 이르는데, 우리는 기술적인 분석을 통해 고객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창식=우리 회사는 밀가루부터 와인, 심지어 페라리까지 팔고 있습니다. 다양한 부서가 있는 만큼 서로의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합니다. 예컨대 사료업의 고객이라 할 수 있는 축산업자들에게 페라리 고객 못지않은 일대일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영업사원들이 축산업자들에게 정보기술(IT)을 전수하고 그들의 실전 노하우가 담긴 사례집까지 만들죠.
김종훈=우리는 얼마 전 업에 대한 정의를 ‘건설가치창출업’이라고 새롭게 내렸습니다. 고객의 성공을 돕고 그들의 가치를 높여주겠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고객이라도 상황은 계속 바뀝니다. 예전에 중동은 후진적인 시장이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하는 선진 시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력을 글로벌화하며 고객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신영욱=고객과의 관계를 재정비하기 위해선 IT의 활용이 중요합니다. 트위터는 매달 1000만 명 이상 쓰고 있죠. 가입자가 3억 명을 돌파한 페이스북은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큰 시장이 됐습니다.
유석진=트위터와 페이스북를 활용하는 것엔 양면이 있습니다. 기존 시스템에 단순히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얹는 것은 실패하기 쉬울 겁니다. 소통의 도구가 바뀌면 콘텐트와 시스템도 바뀌어야 합니다.
사회=세 번째 키워드인 능숙한 기업 운영은 어떤 겁니까.
정옥희=기업 운영의 묘를 살리기 위해선 시간 개념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이젠 연간 계획이라는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1월부터 12월은 달력상의 수치에 불과하죠. 세상은 끊임없이 돌아갑니다. 우리 그룹의 CEO들은 연말이 아닌 지금 경영 전략을 짭니다.
장형덕=세상이 갑자기 복잡해진 것은 아니죠. 평소 조직을 유연하게 만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태스크포스(TF)팀을 수시로 운영합니다. 제가 직접 TF 팀장 역할을 할 때도 있습니다. 아웃소싱을 늘려 고정비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김종훈=우리는 일부 핵심 역량을 제외하고는 시공이나 설계까지 모두 아웃소싱으로 해결합니다. 고객에게 최고의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영욱=그게 바로 복잡성을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복잡성을 고객에게 넘기지 말라는 것이죠. 과거엔 고객이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구했지만 이젠 기업이 토털 솔루션을 제공해야 살아남습니다. 복잡성을 골칫덩어리로 생각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걸 자산화하느냐에 기업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