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고 안정된 목소리에 가창력, 감정 발음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가수 (2004년 5월 3일 세계일보)
국민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가를 부른 가수, 1집 앨범 ‘물고기 자리’ 발표, 벅스뮤직 랭킹 8위, 컬러링 다운로드 랭킹 4위, 소니와 도시바 음반사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가수 이안을 아십니까?
사실 기자는 이안이란 이름을 인터뷰 한시간 전에 처음 들었다.
아무리 대타(對打-원래 인터뷰는 김 모 기자가 하기로 했었다)라지만, 전혀 준비없이 홈페이지의 프로필만 후다닥 훑어보고 인터뷰에 나선다면 대단한 실례일 뿐 아니라, 인터뷰를 아예 망칠 수도 있다. 그래도 ‘국악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음악세계’란 평가 앞에선 도저히 요령부득이다.
사무실 겸 숙소인 여의도의 어느 아파트 입구에서 담배를 한대 깊숙이 빨면서 ‘에라 모르겠다. 나의 뻔뻔함을 무기로 한번 부딪혀보자’고 생각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 | ⓒ민중의소리 김철수 |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나는 적반하장으로 칼을 빼들었다.
“민중의 소리 아십니까?”
“죄송한데요... 사실은 잘 모르걸랑요....”
“저도 사실 오늘 이안씨 이름 처음 들었습니다. 저는 이안씨를 잘 모르고 이안씨는 민중의 소리를 잘 모르니 피차일반입니다. 맞죠? 누군가를 처음 만난다는 기분으로 편하게 한번 얘기해 봅시다. 이안씨가 정말 좋은 사람이면 제가 이안씨 팬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뻔뻔하게 시작된 인터뷰가 끝난 후 기자는 조용필 이후 처음으로 좋아하는 가수 이름에 ‘이안’을 올리기로 했다.
대학시절 6개월간 우리 국악기를 들고 동남아에서 유럽까지 20개국을 비행기도 타지 않고 길거리 공연 여행을 했다는 얘기에 이 친구가 만만치 않게 당차다는 걸 느끼게 된다.
중학교때 궁중음악을 보고 국악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이안은 ‘한국인의 세포속엔 누구나 우리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유전인자가 있다’고 말했다.
국악 침체의 원인에 대해 ‘일제 강점기로 인해 우리 음악의 전통이 단절되어서....’가 정답인 줄만 알던 이안은 “네가 직접 현대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 보면 어떠냐?”는 한마디에 “내가 그런 곡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대중음악을 택했다는 이안은 자기 음악에 ‘쓰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100년 후에 사람들이 자기 노래를 듣고 ‘아. 그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안의 팬이 되다
실제로 이안의 노래는 효순이 미선이(미인)와, 이산가족의 아픔(언젠가)을 노래하기도 하고, 신용불량자에게 용기를 북돋우고(Credit Card), IMF를 이겨내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노래하기도 한다.(아리요)
 | | | | ⓒ민중의소리 김철수 | | | |
‘국가보안법이 있으면 통일에 관련된 운동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 같다’는 이안씨는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 모두 와서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참가하는 23일 광화문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문화제’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우리 음악에 대한 자부심,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이 뿜는 당당함에, 남을 생각할 줄 까지 아는 가수라면 팬이 될만하지 않나?
장마가 쏟아지던 지난 여름 어느날, 이안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네요..
어쩜 이렇게도 많은 비가 쏟아질까여..
각 지역에 비 피해가 더 이상 없길 바라며..
날씨를 주관하는 어떤분에게 빌어봅니다.
“이제 그만 우시고.. 웃으세여~~네~~”
다음은 이안씨와의 일문일답.
"우리 민족의 세포속엔 우리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유전인자가 있다"
- 이안이란 이름에 대해 얘기해 달라 (가수 이안의 본명은 이동희이다)
이안은 ‘Lee and’, 그러니까 ‘이동희 그리고 그 무엇’이란 뜻이에요. 모든 명사가 붙을 수 있게 했죠. 지금은 이동희 그리고 음악이지만 앞으로는 이동희 그리고 대중일 수도 있고. 가능성을 담고 있는 이름이라 좋아요. 지금 이 순간엔 이동희 그리고 민중의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름을 닮아 간다고 생각해요.
- 어떻게 국악을 전공하게 되었나?
전 한마디로 세금으로 먹고 산 사람이에요. 국립 국악중학교, 고등학교,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했거든요. 저도 일반인처럼 국악이라는게 뭔지 몰랐어요. 그냥 저한테 잘 맞는다는 생각에 10년간 공부하게 됐어요.
중학교 때 꿈이 우리 악기를 들고 세계를 여행하며 공연하는 거였어요. 대학 때 아르바이트 해서 돈 모아가지고 길거리 공연 여행을 한 적 있어요. (그저 여행이라고 이안씨는 말했지만, 이게 동남아에서 유럽까지 20개국을 비행기도 안타고 돌았다는 여행이다) 그전에는 ‘괜히 우리 음악을 공부했나?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데...’ 하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여행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어요. 우리 음악 선택해서 공부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죠.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알려주고 싶어요.
- 솔직히 기자도 우리 음악이 왜 좋은지 잘 모른다. 설명해 줄 수 있나?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이런 이런 점이 좋아’ 하는 건 웃긴 거 아니에요? 우리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사물놀이 보고 찌릿한 사람은 사물놀이를 통해, 궁중음악에 반하는 사람은 궁중음악을 통해... 너무 다양해서 규정할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 세포안에 우리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유전인자가 있다는 거예요. 아무 생각없이 묻어두고 살지만 어느 때고 분명히 만날 겁니다. 어느 순간 누군가의 소리를 듣고 뭔가를 느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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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씨의 경우 뭔가를 느낀 그 ‘때’가 언제였나.
중학교 때 궁중음악을 연주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전엔 우리 소리 하면 씨름판에서 아줌마들이 에헤~~ 하는게 전부인 줄 알았어요. 유치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궁중음악을 보고 저렇게 고풍스럽고 멋진 음악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 음악엔 정말 다양한 장르가 있더라구요.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여행하는 기분이었어요. 궁중음악을 하면 제가 궁중악사가 된 기분이고, 판소리를 하면 제가 시장판 판소리 마당에 와 있는 것 같았어요. 시공간을 넘어 여행을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서양음악은 흔히 쌀롱음악이라고 하죠. 청중과 객석이 분리되어 있잖아요. 우리 음악은 그런 분리가 없어요.
잠깐만요. 깜빡하고 귀걸이를 안 했네...
국악만의 매력을 뭐라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은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어느 시에서 읽은 것 같은데...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하는 말이 생각나요. 몰랐던 것을 알게 되니까 점점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정치도 그렇고 음악도 그런 거 아닌가요?
- 방금 그 시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조선시대 어느 문인의 시 아닌가?
아. 맞아요. 제가 여행 좋아하고 여행 많이 하거든요. 나의문화유산 답사기 중에서 불국사 편이 맘에 들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경주 가서 자전거 여행을 했어요. 그 책 들고... 불국사에서 하루 묵었어요. 친구 중에 한명이 독실한 불교 신자였는데 알고보니 절에 이래저래 기여를 많이 했더라구요. 그래서 원래는 안되는데 주지스님이 직접 전화해 주셔서... 새벽에 일어나서 불경 읊으시는 거 새벽에 종치시는 거 봤는데 느낌이 남달랐어요. 천년전 신라의 새벽도 이렇게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죠.
"이 시대에 맞는 국악, 내가 만들어야겠다"
- 국악에서 대중음악으로 방향을 바꾼 계기를 얘기해 달라.
여행하다 터키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어요. 20년째 선교활동 하는 분이셨는데 저한테 “너는 왜 한국사람이 국악을 안좋아한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물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건요... 일제시대 민족문화 말상정책 때문에 이모양 이꼴...” 이런식으로 얘기했죠. 그랬더니 그분이 “너는 아직도 그 얘기를 하니?” 이러시는 거예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저는 그게 정답인줄 알았거든요.
그 분이 말씀하시길 “터키에는 전통음악이 너무 잘 보존되어 있는데, 한국은 CD 한장 사려고 해도 제대로 된 게 없더라. 답답한 마음에 어느 공무원한테 물어봤더니 그 얘기를 하더라”며 “10년이 지나 너희 세대도 같은 대답을 하는구나.” 하시면서
“네가 현대 사람이 좋아하는게 뭔지 생각해보고 곡을 쓰면 되지 않니?”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일제 단절기를 핑계대지 말고 내가 이시대에 맞는 음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현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뭘까 고민을 했죠. 물론 퓨전음악이나 크로스오버는 많아요. 그렇지만 우리 생활에 젖어든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대중음악을 해야겠다. 사람들과 친해져야겠다 생각했죠.
- 추구하는 음악세계를 ‘국악의 현대화’라고 보면 되나?
제가 새롭게 만든 음악이 국악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국악이 아닐 수도 있어요. 아무튼 우리 음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그걸 바탕으로 대중음악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좀더 다가가고 싶어요.
"내 음악에 ‘쓰임’이 있기를 바란다"
- 좀 무거운 얘기를 물어보자. 23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문화제에 일찌감치 참가하겠다고 밝혔다는데...
제 음반에는 미선이 효순이 사건, IMF를 이겨내고 중국의 역사왜곡 독도문제를 거쳐 나가야 하는 국민성과 저력을 담은 노래도 있구요, 이산 가족 문제를 다룬 얘기, 신용 불량자들에게 재기의 욕망을 부추기는(?) 노래도 있어요. 흔히 뉴스에 볼 수 있는 사건들이 들어 있다는 얘기죠.
민중가요처럼 드러나진 않지만, 전 제 음악에 ‘쓰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택시 노조 집회 있을 때도 노래하러 갔고, 미선이 효순이 2주기 때 광화문에서 ‘미인’이라는 노래도 불렀어요. 그때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전 때와 장소 가리지 않아요.
음악은 사회랑 뗄레야 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지금의 이슈를 담고 싶어요.
판소리를 예로 든다면, 판소리 다섯마당이 동시에 인기 있었던 게 아니고 18세기 초에는 춘향가가 인기가 있었어요. 18세기 중엽엔 적벽가가 인기가 있었죠. 당시엔 당파싸움이 심하다 보니 충(忠)을 숭상하는 대목이 인기가 있었던 거죠. 하나의 유행이라고나 할까요. 그시대에 필요했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던 거죠.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주던 판소리는 상당히 대중적이었어요.
백년후에 누군가가 제 음악을 듣고, 아. 이 시대에 신용불량자도 있었고, 효순이 미선이도 있었고, IMF도 있었고, 고구려 역사문제도 있었고... 대한민국이 힘드니까 그에 맞춰 힘찬 노래가 있었구나 하는 걸 알았으면 해요.
사랑노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워낙 많으니까, 저는 사회적인 분노를 담고 싶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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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문화제에 출연하는데,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잘 모르는데요. 통일에 방해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는 생각해요. 국가보안법이 있으면 통일에 관련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범법자가 될 것 아니에요? 누가 자기 몸을 희생해서 통일 하겠어요.
청소년의 70%가 통일 반대 한다는 설문조사도 있던데 통일이 빨리 됐으면 좋겠고요, 국가보안법 같은 거 없이 화해로 갔으면 좋겠어요.
- 23일 문화제에 대해 홍보 한마디 해 줄 수 있나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집합으로 말하자면 대중속의 한 집합이잖아요. 보안법 철폐를 반대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구요. 아무 생각없는 사람도 음악을 듣고 즐기는 축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생각을 미처 못했던 사람도 그 문화제를 통해 ‘문제가 될 수 있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불씨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실제로 국가보안법의 피해를 받는 경우를 본적이 있나?
대학 다닐 때 마당패 탈이라는 동아리에 있었거든요. 그냥 북이랑 장고 들고 왔다갔다 했을 뿐인데 제 친구랑 선배들이 잡혀가서 조사받고 풀려난 적이 있어요. 당황스러웠죠.
- 홈페이지에 보니 싫어하는 것으로 전쟁, 패권주의, 종교논쟁 이런 걸 써 놨던데...
예전에 방콕에 갔었는데 사원을 방문했더니 거기 부처들은 모두 목이 잘려나가 있더라구요. 버마족이 침략을 해서 한 문화와 민족 전체가 말살을 당했다는 거에요. 앙코르와트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봤어요. 문명을 아예 멸망시켜 버린 거죠. 그 후로 전쟁, 패권주의 이런 거 싫어하게 됐어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도 그런 것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한국의 파병도 패권주의라고 생각하나?
네.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파괴하고 멸망시키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해요.
- 책은 어떤 거 보나. 신문도 많이 보나?
회사에서 구독하는 거지만, 경향신문이랑 매일경제랑 보구요. 스포츠지도 다 보는데...한겨레 21, 민족 21도 봐요. 패션 잡지는 생략해 주세요.
뉴스는 좋아해요. 재미차원에서... 전 뉴스가 재밌더라구요. 깊이 생각 안하니까 뉴스의 깊숙한 속내는 잘 모르고 보통사람이 아는 정도만 알죠. 예술하는 사람들 중에 사회에 대해 문외한도 많아요. 이 사회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야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기 때문에 일부러 관심을 안두는 경우도 있죠.
전 제 노래에 사회를 담으려 하다보니 좀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보는 편이죠.
요즘 읽은 책은 고구려사에 관한 거였어요.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는가’였던가. 조선시대 생활사에 관한 책도 읽고, 지금은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 읽고 있구요, 만화책도 좋아해요.
- 5년후 10년 후의 자기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나?
저도 모르죠. 되고싶은 거라면... 문화 사업가, 문화 컨텐츠 개발자 같은 거요. 지금은 열심히 가수 활동하고 많이 인정받고 싶구요 나중엔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10년 후에는 뭐가 될 지는 잘 모르겠어요. 또 다른 여행을하고 있을지...
"어려운 사람들, 힘내세요!"
- 평화 3000 운동에도 동참한다던데
그런 것도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냥 삼천명이 매달 1인당 삼천원씩 모으는 거에요. 하루에 백원씩. 돈은 꼬박꼬박 나가고 있죠.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 결식 아동들, 통일과 관련된 일하는 사람들 도와주고... 뭐 그런 거에요.
- 끝으로 하고 얘기 있으면...
학교 다닐 때 비정규직... 이런 집회 많았어요. 해고 문제, 대우 문제 같은 걸로... 그런게 차츰차츰 줄어들어 결국 없어지는 때가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 노력하시는 분들 힘내세요.
- 인터뷰 감사합니다. 이안씨의 팬이 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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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원래부터 좋아하던 가수인데...이런면까지 있는 줄은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