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가 트로이유적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전설이었죠.
하지만 유적이 발굴되므로써 사실로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중국에서 대륙백제 유물이 발굴되기를,,,
1.대륙백제의 증거들
「송서」…백제국은 본디 고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1천여리에 있었으며 그 뒤에 고려는 요동을 공략하여 갖게 되었고,백제는 요서를 공략하여 갖게 되었다.
「북사」…백제-거강좌우
「양서」…백제는 본래 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으나 진(晉)나라때에 구려가 이미 요동을 공략하여 갖자,백제 역시 요서군과 진평군의 땅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남사」…신라는 백제의 동남쪽 5천여리에 있다.
「위서」…백제는 북쪽으로 고구려와 1천리 떨어져 있으며 소해(발해)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백성들은 토착생활을 하며,땅은 매우 낮고 습기가 많기에 거의 모두 산에 기거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책계왕13년(298)」…한(漢)나라가 맥사람들을 이끌고와서 침략하였다.왕이 직접 나가서 방어하다가 살해 되었다.
백제는 서진(西晉)시대에 고이왕이 대륙백제를 설치하여 근초고왕~근구수왕대와 동성왕~무령왕 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이루었다.하지만 대륙백제는 성왕대에 이르러 붕괴된다.
보조자료
「남제서」…위나라 오랑캐가 기병 수십만을 일으켜 백제를 공격하였는데,그 경계안으로 들어가니,모대가 장군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를 보내 군대를 통솔시켜,오랑캐의 군사를 기습하여 크게 물리쳤다.
구당서 백제전
"백제의 영토는 사로는 바다를 건너 월주에 이르고 북으로는 바다를 건너 고구려를 접하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일본)에 이른다"
여기서 백제의 서쪽 영토가 월주라고 기록되었는데 월주는 현 중국 양쯔강 하구이고 북으로는 바다를 건너 고구려에 이른다 여기서 바다는 현 발해만을 말합니다. 이말은 백제가 중국대륙에 진출했다는 것을 증명하지요
북으로 바다를 건넌다 이것은 백제가 중국 산동성에 영토를 가지고 있으면 가능한 얘기입니다(한반도 백제는 불가능)
문헌비고
"월왕 구천(전국시대 월나라의 왕, 월나라는 양쯔강 이남을 지배했던 대국)의 고도(옛 수도)를 둘러싼 수천리가 다 백제의 땅이었다"
만주원류고
"금주,의주,애주,애훈(중국 북경인근 지방) 등지가 다 백제이다"
3.바다를 지배한 백제의 힘
백제의 요서진출 아니 중국진출은 8대 고이왕이 낙랑의 서현(금주지방)을 함락하면서 개시되었다가 10대 분서왕 때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분서왕이 지금의 중국 천진지방을 점령하자 서진은 국력이 급속히 약해져서 결국 유연이 세운 한에 멸망하게 됩니다. 한편 서진 멸망 후 서진의 왕족이 양쯔강 이남에 동진을 건국합니다. 중국 역사책을 보면 동진이 호(胡)에게 끊임없는 시달림을 겪다가 양자강 하구의 기름진 옥토를 빼앗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학자는 이 호를 흉노라 기록했지만 사실 이 호는 동호 아니 동이족 정확히 말하면 백제였습니다.
중국 역사책 사기를 보면 이 호와 흉노를 구분하였습니다. 사기를 보면 호를 고조선이라고 기록한 예가 많은데 이 기록을 참고하면 호가 백제임을 알 수 있지요
아무튼 백제는 13대 근초고천황이 즉위하면서 영토를 급속도록 확장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제(소열제)를 전사시키고 왜를 신민으로 삼았으며 중국의 동진을 복속시켰습니다. 그러다가 고구려 19대 황제 광개토태황제에게 굴욕을 겪다가 24대 동성천황이 즉위하면서 백제의 힘은 급속도록 강력해집니다.
백제 동성천황 때 당시 북중국의 강자 북위(고구려의 속국)가 10만 기병을 이끌고(10만 기병은 40만 보병과 맞먹는 힘) 백제를 쳤으나 백제는 평야지방에서 북위의 10만 대군을 몰살시켰다고 합니다.
남제서를 보면 백제의 장군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 이 네 명의 장군이 북위의 침략을 격퇴시켰으므로 백제의 요청에 따라 이들을 왕으로 임명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백제사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고 문정창 선생에 의하면 백제는 바다를 지배하고 대륙을 지배한 거대강국이었습니다. 그 분에 의하면 백제는 중국의 남조국가를 식민지로 두었다고 합니다.
남조 중 하나인 양나라를 세운 도이 숙연이 백제인이었고 백제가 그가 나라를 세울 때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양나라의 문화인 벽돌문화가 양이 아닌 백제의 문화라고 합니다. *
4.백제의 최대영토
중국 하북성,산동성,강소성,안휘성,호남성,호북성,절강성,사천성,인도차이나(동남아 일대) 일대를 지배했습니다.
즉 중국의 동부와 남부의 일부, 서남부 일부지방과 동남아 지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만약 백제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우리는 해양을 재패한 거대강국(미국을 능가)이었을 것입니다.
반도국가였던 로마가 바다를 재패하여 최대강국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3.대륙백제, 중국동해안 전체를 통치하다"
(중국대륙의 옥토 전체를 백제가 7개군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이에 대해서 중국사가 이렇게 적고 있어요. "동성왕의 국서"인데 오늘은 제가 그 윤곽만 말씀드리고 다음 공청회때 좀 더 자세한 발언을 하겠습니다. "중국 25사의"의 "남제서백제전"을 보면 참 기가막힌 내용이 있습니다.
(동성왕 재위기간 31년 = 남제 존속기간 31년(왕이 5번 바끰))
동성왕(東城王)은 중국의 남북조시대의 인물인데 묘하게도 "남제가" 건국하는 해에 동성왕이 임금이 되셨고 남제가 멸망하는 해에 동성왕도 승하(昇遐)하셨어요. 그러니까 동성왕 1대하고 남제라는 나라의 길이가 같습니다. 그러니까 남제와 같은 이런 "미니제국"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 정말 "미니왕국"입니다.
이 남제라고 하는 나라가 31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백제 동성왕 역시 31년 동안 재위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이 31년 동안에 남제의 왕은 다섯사람이나 등락을 합니다. 그러니까 한 임금의 평균 재위기간이 6년 되는 셈이지요.
(백제 동성왕은 남제의 소란왕에게 국서(國書)를 보내여 중국 동해안을 7개 구역으로 나누어 7명의 백제장군이 통치하게 하였다)
그런데 백제의 동성왕은 남제(南薺)의 소란(簫蘭)이라는 왕한테 국서를 보냈습니다. "레트 어브 스테이트"(Latter of state) "국서(國書)" 말입니다. 이 국서의 내용이 "남제서" 백제전 속에 꽉 들어 찼습니다. 현대인이 이 "남제서"의 백제전을 보고서 놀라지 않는다면 우리 한국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동성왕은 중국의 산동반도에 남쪽으로 상해까지 중국의 북경에서 동해안을 "7개지역"으로 분할하여 백제의 장군 7명에게 그 통치권을 위임한다는 글을 전기(前記)의 남제 "소란"왕에게 국서로 보냈어요.
(동해안 지역 옥토는 전부 동이의 땅)
중국은 동해안에 평야지대가 밀집되어 있습니다. "북경에서 상해까지"는 지도만 봐도 파란 색깔로 칠해진 평야지대예요.
(중국 역대왕조는 황무지 고원지대 섬서성에 도읍하고 동쪽의 옥토 "동이의 땅"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이 섬서성(陝西省)에
- 주(周)나라 은(殷)나라 때의 장안(長安), 호경(鎬京)
- 진(秦)나라때의 함양(咸陽)
- 심지어 당(唐)나라때 서안(西安)도
모두 이 곳에 있습니다.
지금의 지도에도 호경, 장안, 서안, 함양은 모두 섬서성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섬서성은 흉악한 산골짜기입니다. 여기에 역대 중국의 수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산골짜기에 사는 중국 사람들이 그 동쪽의 살기 좋은 평야지대에 살고 있는 우리 "동이족"을 얼마나 부러운 눈으로 선망(羨望)의 눈으로 보았겠습니까?
(중국 동해안의 사람이 살수 있는 옥토는 전부 백제가 통치하였다)
그런데 "북경에서 상해까지" 중국의 실질적인 가주지역(可住區域 : 사람이 살수 있는 대륙) 그 전부를 7개로 나누어서 백제장군 일곱사람에게 통치권을 맡기는 글을 남제의 소란이라고 하는 왕한테 보냈어요. 그 당시 남제는 백제와 우호관계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말하자면 협조공문이라고 할까요. 그런 친서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중국사필은 예(例)의 그 오만불손(傲慢不遜)한 사필로서 이 남제서에 손질을 했습니다.
"대륙백제, 7태수 관할지역 및 8대성씨는 대륙"
(중국사람들이 사서에 가필을 하였다)
가령 동성왕이 목간나(木干那), 찬수류(贊首流)... 등 7장군을 태수로 임명했는데 그 국서의 서두에 동성왕이 "신(臣)......가임(假任) 목간나......위광위장군 운운(爲廣威將軍 云云)" 이라 하고 끝머리에는 "복원(伏願)......청제 운운(聽除 云云)"으로 기록한 것처럼 조작 했습니다
즉, 동성왕이 31년간 겨우 존속한 남제의 왕한테 "신칭(臣稱)"하고 "신자석수봉운운(臣自昔受封云云)"했을 리가 있습니까 ? (신이 옛날부터 封을 받자옵고....운운) 또 "臣이 목간나를 임시로 임명 하였사오니.....원컨대 제수(除授)하여 주옵소서......" 라고 했을 리가 있습니까?
정말이지 이는 "갓뎀 !"이요 "네버 하픈"의 헛소리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가필만 빼고보면 이것은 백제의 뚜렷한 영광입니다. 중국의 동해안을 "원 사이드"하게 지배했다는 말씀입니다.
(백제 일곱장군의 성씨는 중국에 존재한다)
또 백제 7장군의 성씨만 훑어봐도 사학을 아는 사람은 깜짝 놀랄일이 있어요. 왜 그런고 하니 백제에는 본래 8대 성씨가 있는데 중국 25사와 우리 삼국사기는 이렇게 적고 있어요
첫댓글 3세기,4세기에 백제세력이 엄청 강했던것만큼은 어느정도 인정된 사실입니다.고구려원정때 승리하고 황색깃발을 쓴것과 칠지도에 일본을 제후국으로 표현한정황.. 엄청난세력이였음은 틀림없습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업적에 관한 누락이 가장 심한 나라가 백제인거 같네요 국사 교과서에도 백제에 관한 기록이 제일 적음 아무래도 신라의 공작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