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관광을 끝내고 마드리드로 돌아가는데 그 전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톨레도와 같이 반드시 보아야 하는 곳 중의 하나인 코르도바와 세비야에 대해서....
스페인의 이슬람과 기독교의 역사적 유적지가 많은 곳
먼저
코르도바.
코르도바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 또는 그 도시를 주도로 하는 지역(코르도바 주)으로 카르타고인
의 식민지로 처음 역사를 시작했으며 그 후 로마 제국의 속주의 중심 도시로 기능하다가 게르만 족의 대이동 이후
이베리아에 정착한 서고트족이 차지했으며, 711년 우마이야 왕조가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이 일대를 차지하
였다.
929년에 후우마이야왕조의 라흐만 3세가 이곳을 수도로 삼고 스스로를 서양의 칼리프라고 선언한 후 이곳은 유럽
최대의 도시가 되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앞선 문화를 꽃피우게 되었다.
11세기 초 내전이 발생하여 칼리프 통치구역이 해체되자 스페인 이슬람교도들의 군소왕국들은 이 도시를 점령하
기 위해서 서로 전쟁을 하다가 레콩키스트 운동을 벌이고 있던 카스티야의 왕 페르난도 3세에게 1236년 정복되어
그리스도교 국가인 스페인에 합병되었다.
코르도바의 로마교와 마스키타
이곳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이슬람국가인 그라나다와의 전쟁의 군사기지가 되었다가 1492년 그라나다를 함락
시킨 후에는 교회, 수도원, 귀족들의 저택이 있는 조용한 도시가 되었으며, 고품질의 포도주, 훌륭한 말, 아름다운
여성 등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페인이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부터 독림운동을 할 때 이곳이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관계로 1808년 프
랑스군에 의해 맹공을 받고 약탈당했으며, 스페인 내란(1936~39)중 프랑코 측 군대에 의해 가장 먼저 점령되었던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도시가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곳이 가장 중요한 대도시 중 하나로 발전해 인구가 당시에만 50만이 넘었으며, 100개나
넘는 미나레트(이슬람 사원의 탑)가 있는 도시라 불렸고, 중세시대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네로의 스승으로서 로마의 스토아학파의 철학가이며 극작가였던 세네카는 코르도바 출신이기는 하다.
역코르도바 사지구에 있는 세네카의 동상
메스키타의 아치기둥을 본따서 만든 건물...인터넷
위의 건물...인터넷
지금도 이슬람 문화의 유적이 많이 남아서 중세 가톨릭 문화의 건물들과 함께 공존하는데, 이것이 독특한 매력으
로 세비야, 그라나다 등과 함께 스페인의 중요한 관광도시로 꼽히고 있으며 이슬람이 수백 년 동안 지배를 하면서
타 종교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였는데 이들의 거주지도 중요한 관광지라고
한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알카사르와 메스키타가 유명한 곳으로 코르도바의 알카사르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
다운 알카사르이고 메스키타는 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알카사르
알카사르는 무어인(이슬람)들이 왕궁으로 사용하기 위해 짓기 시작했지만, 완성하기도 전에 국토 회복 운동으로
정복되면서 1328년 알폰소 11세에 의해 남아 있던 무어인들을 통해서 완공시킨 궁전 겸 요새이다.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국왕은 이곳 알카사르에 머물며 국토 회복 운동을 지휘하여 1492년 그라나다를 함락시키고 무어인의
마지막 왕이었던 보아브딜 왕을 이곳에 감금시켰다.
그리고 또 유명한 것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첫 항해를 떠나기 전 두(이사벨라1세와 페르디난도2
세) 왕을 알현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스페인 전역에 남아 있는 알카사르 중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곳으로 손꼽히며, 물의 정원은 코르도바 알카사
르의 하이라이트인 만큼 야간 개장 때에는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더해져 아름다움의 절정을 선보이는 분수 쇼도
진행되고 있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두 왕과 알현하고 있는 콜럼버스의 석상이 서 있다. 성탑으로 올라가면 코르
도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다음백과)
코르도바 알 카사르...인터넷
성 위에서 본 정원
알 카사사르 정원의 내부
이사벨라1세와 페르디난도2세와 콜럼버스 석상
메스키타(스페인어: Mezquita)
메스키타(스페인어: Mezquita)는 스페인어로 "모스크"라는 뜻이지만 일반적인 고유명사로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코르도바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주교좌 성당 "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Córd
oba)을 가리키는데 모스크의 건물과 내부를 거의 그대로 두고 성당으로 바꾼 건물을 의미한다.
가운데가 모스크였다가 성당으로 개조된 메스키타이다.
8세기 후반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세운 아브드 알 라흐만 1세가 바그다드에 버금가는 도시를 코르도바에 세우고
자 당시 서고트족의 교회의 일부를 구입한 뒤 이슬람 사원을 785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뒤 코르도바의 발전과
함께 848년, 961년, 987년에 확장하여 2만 5000여 명의 신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완성하였다.
역사의 흔적으로 인해 한 공간에 두 개의 종교 양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건축물로 스페인을 넘어 전 세계 어디에서
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종교 건축물이라고 한다.
원의 규모는 남북 180m, 동서 130m로 거대하다. 사원 내부에는 줄무늬 석영, 벽옥, 대리석, 화강암 등으로 만들
어진 850개에 이르는 둥근 기둥이 아치를 이루며 서 있어 미궁 속을 연상하게 한다. 적과 백으로 보이는 아치는
흰색 돌과 붉은 벽돌을 교대로 조합한 것이며, 천장의 정교한 모자이크는 비잔티움제국에서 가져왔다고...
페르난도가 코르도바를 점령했을 때 메스키타의 일부를 허물었고, 카를로스 5세 때에는 이곳에 르네상스 양식의
예배당을 무리하게 사원 중앙에 지으면서 이슬람 신자들이 예배 전에 몸을 씻던 수반이 있던 중정(中庭)에는 오
렌지 나무를 심고, 중정을 둘러싸고 있던 아치들도 모두 벽으로 막아 버렸다고 한다. 원래 말굽 모양의 아치 기둥
은 1000개가 넘었었는데 성당을 세우면서 약 150여 개의 기둥은 이 때 사라졌다고 한다.
메스키타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생과 흰색의 아치...이런 기둥이 천개가 있었는데 150개가 없어지고 850개만 남았
다고...
이슬람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우상으로 금지하기 때문에 기하학적 무늬나 꽃과 같은 식물의 무니 말고
는 장식하지 않는데 장식물들은 나중에 기독교에서 만들어 넣은 것이다.....모든 사진은 인터넷에서
메스키타의 내부
기독교적인 장식물이 첨부된 내부들...
건물자체가 예술적가치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허물지 못하고 모스크 건물의 내부의 일부를 훼손하여 성당을 만들
었기 때문에, 사찰의 대웅전 일부를 개조하여 십자가를 세워놓거나 성당 내부의 일부를 개조하여 불상을 안치한
것 같이 모양이 언발란스하고 볼상이 사납다고 한다.
최근 이 메스키타를 두고 논란이 일고있다고 하는데 메스키타는 성당으로 개조된 뒤 종교시설로 남아 현재도 가
톨릭 교단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교단의 관리에 시민들이 불만이 많은데 메스키타의 이슬람 문화를 고
의적으로 배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중시하는 역사학자나 시민사회가 교단과 대립하고 있는 상황으로 시민사회는 터키
의 하기아 소피아(성당)처럼 국가차원으로 관리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 건물에 대한 스페인 기독교의 태도는 이슬람 측에게 기독교 비난 명분이 되기도 한다고...
이곳 메스키타와 반대의 상황에 있는 건물이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동방정교회 소속이었던 아야 소피아 성당이
다.
이스탄불이 1453.5.29일 동로마제국의 소도인 이스탄불이 오스만터키에 함락당하면서 마호메드 2세는 그날 제일
먼저 소피아성당으로 가서 콘스탄티노플 주교로부터 성당을 몰수하면서 모스크로 사용하도록 명하였다.
성당 자체가 너무 아름다운 건물이기 때문에 건물은 그대로 두고 십자가와 성상들을 다 들어내고 성화들은 회벽
칠을 하고 미나레트를 세워 모스크로 사용하였으나 오만제국이 서구제국에 무너지고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
되면서 소피아성당을 복원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하여 지금은 모스크로 사용하지 않고 인류공동 문화재산으로 간
주를 하여 소피아 박물관으로 개조를 하여 관리하면서 이 안에서 이슬람이건 기독교건 어떠한 종교행위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본 건물은 그대로 두고 네 게의 미라렛을 세워 모스크로 개조하였다.
위에는 성모상이 복원되어 있고 아래는 메카 방향으로 향한 이슬람 제단이 있다.
석회로 덧 씌운 성화...복원이 되다가 중단이 되었는데 터키의 이슬람 세력들이 반대를 하기 때문이라고...
메스키타, 로마다리, 알카사르 말고도 이슬람의 하맘이나 유대인의 시나고가 같은 다양한 문화의 유적도 볼거리
로 그라나다 세비야 톨레도 세고비야와 함께 중요한 관광지라고...
참고로 스페인의 식민지가 있었던 땅에는 스페인 도시를 딴 도시들이 많이 있는데 아르헨티나, 멕시고, 미국 등에
도 코르도바라는 도시가 있다고 한다.
유대인 거리의 유대인 마을...이 마을에 꽃이 많은 것은 타종교에 대해서 관대했던 코르도바의 이슬람왕국은 유대
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면서 세금을 내고 집을 예쁘게 꾸밀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한다. 그래서 꽃을 가꾸
게 되었다고...
유대인 마을의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