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마르 1,7-11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우리 죄를 용서하러 오신 구세주께서 죄 많은 이들 틈에서 세례를 받으려고 기다리십니다. 허물과 잘못으로 가득한 우리는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때가 많은데, 티 없이 깨끗하신 우리 주님께서 겸손하게 당신을 낮추시고 요한에게 세례를 청하십니다. 사람들은 죄를 숨기고 부정하며 합리화하기 바쁜데, 죄에 물들지 않은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십니다. 정작 죄 지은 이들은 책임을 떠넘기고 처벌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아무런 죄도 없으신 그분께서 우리 대신 모든 책임을 떠맡으시고 우리 죄를 어깨에 짊어지시며 우리 대신 벌을 받으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단지 몸을 씻는 수단에 불과했던 물을 영혼을 씻는 구원의 도구로 변화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주었던 물의 세례에는 ‘정화’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며 그에게 세례를 받으면, 죄를 용서받아 깨끗해진 상태로 구세주를 맞을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례는 ‘성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몸이 잠기면서 물이 성수(聖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시는 예수님께, 아버지께서 이렇게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로써 세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드러내는, 하느님과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드러내는 ‘표징’이 되었기에 세례는 ‘성사’입니다.
그렇기에 세례성사는 우리에게 세 가지의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는 ‘정화’입니다. 더러워진 것을 물로 깨끗이 씻어내듯, 죄와 악으로 더러워진 우리 영혼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그분께서 베푸시는 은총으로 깨끗하게 씻어내는 겁니다. 둘째는 새로운 ‘탄생’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면서 ‘세례명’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됩니다.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는건 나의 삶이 그 의미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신 분의 뜻에 맞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면 점점 그분의 모습을 닮아가는 겁니다. 셋째는 ‘관계 형성’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신뢰와 사랑으로 그분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하느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분께서 기뻐하실 일을 하게 되지요.
세례를 통해 이토록 많은 은총을 받은 우리는 자신이 허물과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일흔 일곱번이라도 용서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순명과 실천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제자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물에 들어가시어 물을 거룩하게 만드신 것처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세례의 소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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