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우주를 삼킨 소년>은 이주민 문제, 청소년의 성장 과정에서 빚어지는 가족간의 갈등, 부모의 이혼, 사회에 두루 만연되어 있는 마약 밀수 등 어둠 속에서 성장해 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부모의 이혼과 마약 투약으로 인해 돌봄의 기능이 와해 되었을 때 부모 대신 따뜻한 이웃이 그 역할을 대체하며 그 가운데에서 아픔과 어둠을 전환시켜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빈부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커져 가고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 미래의 소망을 잃어가는 분들에게 동질감과 함께 작은 희망의 빛을 비춰 주고 있다.
주인공 엘리 벨은 희대의 탈옥범 아서 슬림 할리데이의 양육을 받으면서 자라난다. 70대 노인이자 탈옥한 전력을 갖추고 있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은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오스트레일리아도 교도소 환경만큼은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사회와 단절되어 있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가두어 놓은 곳이라 인권 유린과 고문, 학대가 버젓이 횡행하고 있다. 특히 아서 슬림 할리데이는 극악범으로 분류되어 나치수용소에서 볼 수 있을법한 가혹한 고문을 당하면서 실낱같은 생명줄을 붙여잡고 생명을 이어가다 탈옥한다. 엘리 벨과 할리데이와의 관계는 부모 이상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엘리 벨이 시련을 극복하고 사회에 적응해 가는데 큰 도움을 주는 관계로 전개된다.
마약 문제로 인해 골치가 아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마약의 중간 단계로 베트남 이주민들이 등장한다. 어느 사회에서든 이주민들이 은근히 차별받으며 사회에 정착하기가 힘든 구조가 사실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정상적인 통로이기보다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덤벼드는 일이다. 가장 손쉽게 마약상들이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이 이주민들이다. 베트남 이주민들이 마약에 손을 대고, 엘리 벨 엄마도 마약에 빠져들며 가정이 깨어지고 어려움에 직면한다. 어린 소년이 지켜보고만 있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 가운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감행해 간다. 엘리 벨에게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형이 있다. 허공에 다가가 글을 쓰고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형이지만 항상 곁에서 돌보며 서로를 의지한다.
사회가 어려워질수록 가장 고통을 받는 이들은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이다. 이런 광고가 문득 떠 오른다.
"수업은 온라인으로 할 수 있지만, 급식은 할 수 없다" 배고픈 것은 둘째치고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라가야 하는 시기에 깨어진 가정, 고통에 빠진 가정 속에서 그들이 감내해야 할 짐은 버거워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를 대신하여 누군가가 따뜻한 이웃이 되어주어야 하고, 학교는 따뜻한 돌봄의 장소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