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범 |
2014-03-24 05:30:47, 조회 : 1,131, 추천 : 0 |
위대한 러너(1) -김형락 선수
2014년 서울 동아 마라톤대회가 끝났다. 봄 철 거행되는 마라톤 대회 중 가장 규모가 큰 메이저대회이기 때문에 뒷이야기 거리도 풍성하다. 메이저 언론이나 방송사는 오로지 우승자만 집중적으로 보도하지만, 입상자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우승자보다 그 밑의 차 순위 입상자가 눈부신 aura로 다가올 때도 있다. 내게 있어서는 마스터스 풀코스 부문에서 2위를 한 김형락 선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김형락 선수는 아프리카 브룬디 마라톤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다가 우리나라로 귀화한 김창원(귀화하기 전에는 도나티엔)에 이어 2시간 32분 21초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하였다. 기록만으로 비교한다면 1위 김창원 선수의 우승 기록 2시간 26분 38초와 5분 43초나 차이가 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두 사람의 나이다. 김창원 선수는 36세이지만, 김형락 선수는 53세다. 무려 17세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나이를 감안한다면 김형락 선수의 기록이 김창원 선수의 기록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 서울 동아 대회에서 김형락 선수가 수립한 그 기록은 우리나라 마라톤 역사상 50대 최고기록일 것이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최진수, 심재덕 선수 등 국내 40대 쟁쟁한 선수들을 따돌리고 2위를 차지하였다.
더욱 눈여겨 볼 대목은 김형락 선수가 지금까지 주로 하프마라톤대회에 치중해 왔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내용에 의하면 작년(2013년) 10월을 기준으로 하프대회에서 우승한 횟수만도 150회 이상이라 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하프의 황제’란 호칭이 따라다닌다. 그의 하프 최고기록은 1시간 7분대로 알고 있다. 그의 풀코스 최고 기록은 그의 나이 42세였던 2003년 서울 동아마라톤대회에서 기록한 2시간 25분 33초다. 올해 36세의 김창원 선수가 수립한 2시간 26분 38초보다 1분 5초나 빠른 기록이다. 김형락 선수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나와 같은 해에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했다. 1999년도였으니 만 15년이 지난 셈이다. 그 때 나이 나는 48세였고, 그는 38세였다. 마라톤에 데뷔한 1999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그는 정상권에서 멀어진 적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마라톤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많은 스타들이 출현했지만 김형락 선수만큼 장기 집권(?)한 선수는 없었다. 우리나라 마스터스 마라톤 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그의 롱런에는 평소 엄청난 훈련과 절제된 생활이 뒷받침 되고 있으리라 추측된다. 수도승 같은 절제와 탁마가 없으면 그렇게 오래 정상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형락 선수의 그간 마라톤 행적을 평가한다면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마스터스 마라톤의 이봉주라 해도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그는 보통의 평범하고 성실한 근로자이다. 현재 선박 엔진 제조 회사인 ㈜STX의 반장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침 일찍 출근(오전 8시)하여 저녁 늦게 퇴근(오후 7시)하는 그에게는 평일에 별도로 훈련할 시간 여유가 없다. 그래서 평일에는 출 퇴근 시간을 이용하여 달리기 훈련을 한다고 한다. 출근할 때는 집에서 회사까지 가까운 길을 8km 정도 달리지만 퇴근 시에는 먼 거리를 일부러 돌아서 12km 정도 달린다 한다. 대신 주말에는 35km 이상 장거리 훈련을 한다고 한다.
그의 롱런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그가 엘리트 선수처럼 그의 몸과 훈련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감독이나 코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소속팀으로부터 훈련 후 마사지나 훈련 결과 분석, 각종 의료검진 및 치료, 현재의 몸 상태에 따른 적합한 훈련, 훈련에 필요한 영양 공급 등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스포츠 과학의 도움을 받는 엘리트 선수에 비해 그만큼 열악한 훈련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다.
혼자서 스스로를 관리하며 10여 년 동안 별다른 슬럼프도 없이 마스터스 정상권에 군림한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의 마라톤 내공은 바둑으로 치자면 9단, 이미 오래 전 入神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봐야 한다.
나는 그를 이번 2014 서울 동아마라톤대회 경기 출발 전 세종문화회관 별관 주변에서 처음으로 직접 봤다. 군살이 전혀 없는, 오로지 마라톤을 위해 빗어진, 身長이 후리후리하고 날씬한 몸매였다. 그의, 생물학적 나이를 훨씬 뛰어넘는 빛나는 행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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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허허 ~
좋은글에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감동~
진짜 멋지십니다.나이를 생각한다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오늘 저는 잠깐이나마 선배님 뒤를 달려보는 영광을 누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