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작가 겸 정신과의사)의
『오티움』에서,
그는 ‘자기 돌봄’을
‘몸 돌봄,
마음 돌봄,
관계 돌봄,
생활 돌봄’의 네 영역으로 나누었다.
오티움은, ‘능동적 여가 활동’으로
‘어른 놀이’라는 라틴어이다.
어른인 우리에게 ‘오티움’이 왜 필요할까?
그 첫번째 질문이,
“별사탕을 먼저 먹을까,
건빵을 먼저 먹을까?”이다.
실은, 우리는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이 둘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대니얼 네틀(심리학자)은,
한 사람의 10년 후 행복을 예측하는 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조사해 보았다.
그 조사에 따르면,
나이와 건강과 가족관계와
돈, 지위, 친구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비교했지만,
‘현재의 행복지수’가 미래의 행복을 예측하는데 정확도가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얼마나 행복 하느냐가
미래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지금 행복한 사람이
미래에도 행복하고,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미래에도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의 행복을 미루면 행복의 감각이 녹슨다고 한다.
지금의 행복을 미루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행복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행복은 어떤 조건이 채워졌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행복을 허락한 만큼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법정 스님은,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며,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감각이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린 가끔 이성적인 사고를 하겠다는 이유로
세상에 닿을 수 있는 모든 감각의 촉수를 거둬들이곤 한다.
그러나 이성도 감각의 조화 속에서 더 사려 깊어진다.
자동차로 말하면, 이성은 브레이크이고, 감성은 엑셀이다.
그러나 감성이 메마르면 이성도 역시 할 일이 없어진다.
바람직한 것은 자동차이든, 삶이든 엑셀과 브레이크가 공존하는 거다.
그때 균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을 허락하라고 해서, 내일 일은 생각하지 말고
오늘만 행복하자는 것은 아니다.
삶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
오늘 걸어야 할 길을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뛸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보다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그건 균형에서 나온다.
『개미와 베짱이』이야기에서,
낮에는 개미에서 밤에는 베짱이로,
혹은 평일은 개미에서 주말은 베짱이로
이중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사실 누구나 하루의 몇 시간 혹은
주말의 한나절은 자유 시간이 있다.
이 시간부터 좋아하는 활동으로 채워 넣는 것이다.
인생이란 해야 하는 것도 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빵 한 개, 별 사탕 한 개 번갈아 가며 먹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지금 우리의 현실에
눈 길이 가면 답답하고 가슴이 꽉 막힌다.
김기석 목사눈,
“끝없이 터져 나오는 기괴한 사건들,
부끄러움을 모르는 우쭐거림,
거친 표정과 혐오의 말들,
여백 없는 단정적인 언사들,
공공장소에서 다른 이의 존재는
아랑곳하지 않는 무례한 태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이런 일들로 인해
마치 구정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느낌이다.
불쾌함이 켜켜이 쌓여 우울의 지층을 이룬다.
이곳저곳 왈큰왈큰 피어나는 꽃들 앞에 서면
그 아름다움에 황홀해지다 가도
사람으로 사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생명이 기적임을 보여주는 징표가 도처에서 나타나는데
사람들은 가르고 나누느라 온 힘을 다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