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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우리가 달려가야 할 믿음의 경주
히브리서 12:1-2
신앙생활을 운동경기에 비유한 내용이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많이 보여 지는데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때로는 경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것 같습니다.
마라톤과 같은 경기를 보면서 얻은 영감을 가지고 신앙생활의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 보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상 얻는 자는 한 사람이다.
너희도 상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하면서 목표를 향하여 끝까지 달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훈뿐 아니라 스스로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삶을 달리기 경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도 신앙생활을 경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1절 하 반절에 보면,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했습니다.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한다는 말은 우리의 삶이, 우리의 신앙생활이 경주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왔는가를 설명하면서
당시의 성도들도 선진들을 본받아 믿음으로 살아갈 것을 말씀합니다.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사도 바울을 비롯해서 히브리서 기자가 신앙생활을 운동경기로 비유한 것은 정말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과 운동경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열심히 하면 상이 있다는 것이 운동경기와 신앙생활의 비슷한 점입니다.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면도 비슷합니다.
-열심히 할 뿐 아니라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것을 벗어 버려야 한다는 점도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완주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앙생활과 운동경기는 비슷합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을 운동경기에 비유한 것은 정말 탁월한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을 운동경기에 비유하면서 주시는 신앙적인 교훈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나 히브리서 기자가 이런 비유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운동경기로 비유했겠습니까?
제가 생각할 때는 신앙생활을 운동경기와 같이 열심히 하자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되어집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하성 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는 수비 공격 주루 세 가지를 다 잘하는 3툴 플레이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선수가 타격하고 1루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최선을 다합니다.
어느 때는 헬멧이 벗겨질 정도로 열심히 뛰어서 안타를 2루타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김하성 선수가 보여주는 모습처럼 이기기를 다투는 선수들치고 대충하는 선수는 없습니다.
연습을 할 때든 시합을 뛸 때든 최선을 다합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대충하면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경기자가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던 사도 바울은 저들은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우리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 더 달려야 하고 더 열심을 내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든 운동선수들에게 경기는 절대 구경이 아닙니다.
마라톤에 출전한 선수들이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면서 관광하듯이 대충 달리지 않습니다.
힘들다고 그늘에 쉬고 배고프다고 앉아서 라면을 끓여먹고 토끼와 같이 잠을 자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물론 너무 힘들어서 기권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선수들의 입장은
항상 기록을 단축하거나 등수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런 선수들의 자세를 배워서 열심을 내어 신앙생활을 하자는 것이 운동경기로 비유한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앙의 경주를 하는 성도들 가운데
이런 경기자의 자세를 갖지 못하고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예배드리고 없으면 드리지 않는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예배에 빠지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성도들을 향하여 주님은 ‘네가 열심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계3:19)
그러면 성도들이 열심을 내지 못하고 적당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취미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앙생활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핵심적인 일인 줄 믿습니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으로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귀한 일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해서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으로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신앙생활에 실패한 자가 인생에서 실패한 자요 신앙생활에 성공한 자는 인생에서 성공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농사를 잘 짓고 잘 보관해서 잘 먹고 평안하게 살려고 했던 부자를 향하여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물질을 갖고 호화로이 연락하며 그것이 전부인양 살았던 또 다른 부자는 결국 음부에 들어가서 물 한 모금을 간구하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돈 많고 권세 있는 부자 청년을 향하여는 그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신앙의 경주를 잘 하시기 위하여 신앙생활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깨닫고 이 일에 열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운동선수들 같이 믿음의 경주,
신앙의 달리기를 잘 하여 마지막에 승리하시고 하나밖에 없는
여러분의 인생을 성공적인 삶으로 이끌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교훈은, 인내로서 신앙의 경주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1절 말씀에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인내로서’
경주를 하는 자가 가져야 할 최고의 자세는 인내하는 것입니다.
경주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곤이라는 말인데요, 이 단어에서 고통(agony)이라는 영어단어가 나왔습니다.
운동선수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멋있고 아름답고 경기에 따라서는 매혹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기까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기도 하였습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경기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끝까지 참고 인내해서 경기를 마쳐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더 어렵고 더 시험이 많고 고통이 따르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기에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뛰는 것 같은데 중간에 더 이상 힘들어서 못 뛰겠다고 기권을 합니다.
포기하고 경주에서 이탈하여 구경꾼 대열로 합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수신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대교 신앙을 갖고 있다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였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일로 인하여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핍박이 점점 심해지자 서서히 신앙의 경주에서 이탈하기를 시작합니다.
먼저 예배드리는 일에 게을러지기 시작합니다.
매주일 예배드리다가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예배를 드리더니 아예 예배시간에 보이질 않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하여 신앙의 경주에서 기권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을 향하여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권면합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신앙의 경주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탈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을 내지 못하고 경주를 하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달리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경기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도 드립니다.
그러나 믿음의 경주를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마음은 경주에서 이탈하였고 이미 경주하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여러분, 초반에 조금 열심히 달렸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로써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의 경주자라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증간에 포기하지 않고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믿음의 길을 달리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교훈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운동선수에게 복장은 매우 중요하고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세계 수영연맹에서는 2010년부터 수영선수들이 전신 수영복을 입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실력으로 기록을 단축하는 것이 아니라 첨단 수영복에 의해 기록이 단축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운동선수들의 복장은 한 마디로 간단합니다.
어떤 운동경기라도 복장이 복잡하거나 두툼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기록을 단축하거나 민첩하게 경기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경주를 할 때도 이 같은 원칙은 분명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무거운 것’은 문자적으로 ‘부피가 큰 방해물’을 말하는데요,
부피가 큰 방해물을 가지고는 제대로 달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한 청년은 부자였고 관원이었고 어릴 때부터 율법을 잘 지키었던 정말 어디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같이 보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질문했을 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이 청년의 많은 재물이 인생의 경주를 하는데 방해가 되는 무거운 것으로 판단을 하신 것입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는 ‘쉽게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유혹하는 죄’를 말합니다.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다윗이
믿음의 길을 달릴 때에 얽매이기 쉬운 죄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신하의 아내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성적인 유혹에 빠진 것입니다.
죄를 감추기 위해 충실한 신하였던 우리아를 죽이는 잘못도 범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경주에서도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의 유혹에 빠져 신앙의 경주를 방해받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무거운 것은 무엇이고 얽매이기 쉬운 죄는 무엇입니까?
신앙의 경주를 방해하는 이런 것들을 빨리 벗어버려야 합니다.
벗어버린다는 것은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자 그는 자신의 죄를 벗어버립니다.
눈물을 흘려가며 철저하게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회개함으로 용서를 받은 다윗은 다시 일어서서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회개함으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잘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교훈은, 신앙의 경주에는 분명히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감당해야 할 이유가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상입니다. 상급입니다.
운동 경기자에게는 분명한 상이 있습니다.
아마추어에게는 건강이나 기쁨의 상이 있고요,
프로에게는 병역면제와 많은 연봉 그리고 명예로 보상되는 상이 있습니다.
이런 상이 있기에 운동선수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어려움과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앙의 경주도 주님이 주실 상이 있기에 인내하며 끝까지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2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이유가 ‘그 앞에 있는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은 ‘부활’이나 ‘하나님 우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고 만유의 왕이 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주어진 상은 믿음의 경주를 하는 성도들에게도 주어집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성도들에게 구원의 상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상과 하늘나라에서 면류관을 쓰고 영생을 누리는 상이 분명히 있는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을 더욱 굳게 가지고 믿음의 경주를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에는 우리를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축구를 잘 하면 많은 돈을 벌수 있다는 것을 손흥민 선수가 증거 하듯이,
야구를 잘 하면 많은 연봉을 받는다는 것을 류현진 선수가 증거 하듯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자에게는 하늘나라의 축복과 영광이 있음을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라합이나 기드온이나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과 같은 사람들이 증거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증거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경주라고 하는 목표가 주어져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 경주를 시작하였고 여기까지 잘 달려왔습니다.
앞으로 인내하며 마지막 결승점까지 믿음의 경주를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경주는 때로는 힘들고 어렵고 고통이 있을지라도 참고 인해하며
끝까지 경주해야 할 가치가 있고 상급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앞에 놓여있는 신앙의 경주를 잘 감당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3.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