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이던, 레코드 가게건, 서점이건 간에
이제는 직접 찾아오는 손님을 반기지 않는 듯 하다.
바야흐로 컴퓨터를 켜고, 또는 핸드폰을 들고, 주문만 하면
순식간에 눈 앞에 갖다 놓는 세상이 오고야 말았다.
이젠 차비를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발품을 팔아 직접 찾아가면
집에서 편하게 주문하는 것보다 돈을 더 내야한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과는 차원을 달리하여 무서우리만치 넓어져만 가는 세계가 존재한다.
시작이 길어진 감이 있는데,
오늘은 이런 세상에 조그만 활력을 불어넣어보자는 밑도끝도 없는 고집을 부려봤다. '청개구리 심보'의 연장선상이라고 돌팔매질을 한다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奇行일 뿐이다.
중국요리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이므로 건대인은 예외가 될 수 없다. 많은 수의 중국집들이 학교 주위를 감싸고 있다. 끼니마다 짜장을, 짬뽕을 시켜먹으며 어렸을 적 아련했던 향수를 느껴보기도 하고(어릴 적 소원은 탕수육을 먹어보는 것이었다 - 소박하지? 그지?) 어느 것을 선택하기가 어렵다고 느껴질때면 볶음밥을 시켜먹는다.(볶음밥은 '밥'과 '짜장소스'와 '짬뽕국물'의 삼박자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중국요리의 백미다...라고 생각한다)
학교 주위에도 많은 중국집들이 있다. 후문 쪽에는 불꽃 튀는 대격돌을 벌인지 어언 10년이 다 되어가는 영원한 맞수 '가람성'과 '홍콩반점'이 있다. 또한 새로운 경쟁자로써 '만리장성'이 등장하여 후문 중국집 판도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가람성'은 주인이 바뀐 이후, 탄 짜장과 신선도가 떨어지는 오징어의 짬뽕, 배추를 넣은 탕수육 등으로 인해 제 무덤을 파고 있는 실정이다.
민중병원 쪽에는 '북경'과 함께 정통중국요리를 내걸고 과감하게 '배달시스템'을 없앤 '만리향'이 있다.(아마 생소한 사람들도 많을 듯)
북경 최고의 요리로는 세트메뉴 1이 있는데, 만원 한 장이면 짜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 군만두, 게다가 콜라까지 제공하고 있다.
'만리향'은 고급스런 분위기와 함께 정통 중국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지만 이제 짜장면이 중국음식이던가? 기존에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져버린 마당에 '정통'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는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그렇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곳은 '서호'라는 이름의 정체불명의 중국집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호'에서 배달만 해 먹는다.
'서호'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내가 아는 한 없다) 게다가 가게 명이 두 개여서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소문도 들리고 있다.
하지만 암묵적 동의로 학교주변 중국집 중 '최고'라는 평을 얻고 있는 '서호'의 정체에 대해서 한 번쯤은 의문을 가져볼만도 했던 나와 완희는 오늘 '서호'를 찾아나섰다. 최고의 국물맛을 자랑한다는 '우동'을 직접 가게에서 먹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일단 가장 유력한 소문을 쫓아 세종대로 향했다. 세종대 근처에 서호가 위치한다고 P군이 얘기했기 때문이다. 만강X라는 중국집이 보였지만 섣불리 들어가 "여기 서호 맞아요?"라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만약 아니라면 무지막지한 욕을 먹을게 분명했으므로)
결국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세종대 학생을 불러세우고 '서호'를 물어봤다. 하지만 대부분 '서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이런! 그들 역시 서호의 정체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배달만 하였다는 것이다. 그 중 한 명이 '세종대 후문'쪽에 있을 거라는 유력한 정보를 흘리며 '서호' 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그래.
가보자.
다짐을 하고 세종대 후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후문가는 길을 잘못 가르쳐 준 한 어이없는 세종대생 덕분에 후문으로 가는 데 20여 분을 지체하고 말았다. 여차저차 후문을 찾았다.
이제 여유있게 서호에 전화를 걸었다.
"네 중국집입니다."
"저.. 거기 어떻게 가야하나요?"
"(흠칫 놀라는 눈치로)왜요? 오시게요?"
"아..네. 지금 세종대 후문인데.. 어디로 가죠?"
"어... 일단 길을 건너 육교까지 오셔서 다시 전화주세요."
그 누구도 시켜먹기만 했지 직접 와서 먹으려하지 않았음을 전화를 걸며 상대방의 당황한 목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또 걸었다.
육교가 보일 때까지 걷고 또 걸으며 혹시 못찾을지도 모른다는 비관주의적 패배감이 전신을 감쌌지만 꿋꿋이 굴하지 않고 걸었다.
저기~ 육교가 아련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실어 육교까지 간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은 어린이대공원 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세종대 후문에 있을거라고 정보를 흘렸던 세종생의 얼굴이 떠으르면서 살인충동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화를 걸고 육교를 건너 드디어 '서호'를 찾았다.
서호의 위치는 건대와 세종대, 그리고 널려있는 화양리 여관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예상과 틀리게 무척 작고 꾀죄죄한 실내는 한 시간여의 고생을 무색케 만들었지만 일단은 개의치 않고 '우동'과 '짬뽕'을 시켰다.
거짓말처럼 가게 안에는 우리 말고 다른 손님이 없었다. 대신 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로 배달주문만 들어오고 있었다.
화려함을 예상했던 '서호'의 또다른 이면에 실망감이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얼마 전부터 올랐다는 가격은 우리를 허무의 나락으로 빠트렸지만, 변함없는 우동과 짬뽕을 먹으며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허탈한 기분을 뒤로 하고 서호를 나왔다.
하지만 '서호'의 위치를 알고 있는건 우리 뿐일 거라는 믿음을 확신으로 과감히 바꿔버리고선 집으로 향했다.
...
세상이 변했다.
발품팔며 직접 찾는 사람들에게 더 불리한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발품파는 것이 매력이고 그 재미로 직접 가게를 찾는다면 가끔씩은 추가금을 주면서까지도 직접 돌아다닐 아량은 있음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교훈: 역시 '서호'는 배달전문일 뿐!
부록(또는 뽀나스~)
학교 주변 중국집 별점평가(다섯 개 만점)
1. 가람성 * - 상대할 가치가 없다. 주인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절대로 이용하지 않을 것.
2. 홍콩 *** - 평이하다. 낼 수 있는 만큼의 맛은 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불만인건 짜장면 시킬 때 나오는 계란(너무 얇게 썰었다. 그렇게 썰기도 힘들거다)
3. 만리장성 *** - 예전에 술집이었던 장소였음을 알고 있기에 술생각은 나도 밥생각은 잘 나지 않는다. 맛은 뭐 그럭저럭
4. 서호 **** - 온라인은 별 한 개. 오프 라인은 별 네 개(맛만 봤을 때)
5. 만리향 **** - 시세보다 오백원 씩 더 받기는 하지만 품위있게 짜장면을 먹고 싶다면 이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식사 후에 과자를 주는데, 과자 속에 운세가 적힌 종이가 나온다. 그 재미 또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
6. 북경 ***** - 인정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중국집! 가격대 만족도나 양이나, 맛이나, 인테리어나 그 어느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도 가보지 못했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달려가길. 특히 세트 1은 세 명이 가서 짬뽕 하나를 추가해서 먹으면 최고의 만족을 느낄 수 있을 듯..
..........요 며칠 중국요리에 미쳤더니만, 결국 이런 쓸데없는 짓까지 하고 말았군.. 쩝..
첫댓글 앗, 짜장면 먹고 싶어 진당~~~^^
으음...블랙데이때 꼭...가야겠군...^^
ㅋㅋ 성배오빠. 역시 만리'성'이었어요~~ 방금 한자를 찾아봤지롱! 盛은 담다, 채우다, 세상에 차려놓은 음식, 주발, 바리.. 등의 뜻을 가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