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6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창 12장).
그 언약이 이방인 로마 백부장 고넬료 집안 사람들에게도 이어졌으며(행 11장) 오늘에까지 왔습니다.
주님의 언약은 신실하여 결코 중단되지 않음을 믿습니다.
오늘이라는 새 날을 주셨으니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옵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진정한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이 하루도 주님을 통하여 영원한 그 나라를 소망하오니 나의 삶이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16:1-15
제목 :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 나의 묵상
이 세상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지금 밖에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그 바람으로 인하여 나뭇가지들이 흔들린다.
부는 바람 때문에 하늘에 있는 구름도 움직인다.
그 바람으로 인하여 떨어진 나뭇잎들도 날아다닌다.
이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은 없다.
다 흔들린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히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모두가 흔들리지만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다.
비록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그 가지가 흔들릴지라도 나무는 움직이지 않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구름도 움직이고 나뭇잎도 날아서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흔들리는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땅에 뿌리를 깊이 박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는 아버지께로 가지만 대신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마고 약속하신다.
그 이유는 곧 그들로 하여금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때로는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시킬 뿐 아니라 너희를 죽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일을 당하는 제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공동체에서 출교를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을 때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얻는다.
그런데 자신을 지켜주는 공동체에서 쫓겨난다는 사실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무엇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죽음의 현실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대책을 세울 것이다.
대상과 상관없이 타협하고 목숨을 구하는 일에 자신을 내어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이 목숨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 육신의 목숨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심으로 우리가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하신다.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신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보지 않으면 잘 믿지 못한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께로 가시면 그들의 믿음이 흔들릴 것을 아시고 영원히 그들과 함께 계실 성령님을 보내주신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근거를 창세전, 영원한 나라에 두는 것이다.
그 나라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나라이다.
(히12:28-29)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뿌리를 땅에 깊이 박은 나무의 가지는 세찬바람에 흔들릴지라도 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도 결국 넘어지고 썩어 없어질 것이다.
땅에 속하고 만물 안에 있는 것은 그 무엇 하나라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 없다.
풀은 마르고 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만물 안에 있는 것들은 무상성의 법칙에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창세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나라이다.
썩어 없어질 나라도 아니다.
그곳에 우리의 믿음의 근거를 둘 때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믿음의 근거가 만물 안에 있을 때는, 육신의 일이 잘 되면 믿음이 굳건해 지는 것 같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같고, 즐겁고 든든하기도 하다.
하지만 육신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낙심하고 실망하여 믿음의 뿌리까지 흔들리고 만다.
그것은 신앙의 근거를 하늘에 두지 않고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존재물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코로나로 인하여 전국의 교회들이 예배당 문을 닫고 각 가정에서 예배하도록 권장하였다.
한국은 자유민주국가이기 때문에 이런 결정은 각 교회가 결정할 사안이지, 총회에서 강압적으로 명령할 권리는 없다.
다만 총회에서는 여러 가지 정황상 예배당의 문을 닫고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만 할 뿐이다.
하여 고신과 총신 등 각 교단 차원에서 이런 권고문을 각 교회에 보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것을 오용하는 이들이 생겨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쩌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양과 염소로 분류되듯이 이런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믿는 자들의 신앙의 본 바탕이 다 드러난 것이다.
총회에서 보낸 권고문을 이용하여 기회는 이 때다 하고 주일에 예배 안 드리고 쉬려는 이들이 적잖이 많았다.
공적으로 면죄부를 받는 것이기에 주일에 예배를 안 드리고 그냥 집에서 쉴지라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부담이 없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현상은 직분에 상관이 없다.
그저 내 몸만 편하면 된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각 교회들이 온라인이나 인터넷 방송으로 예배하는 경우가 많이 생겨났다.
그런데 코로나가 끝난 지금 내가 베트남에 있는데, 코로나 시대 영상 예배가 일상이 되다 보니 교회에 와서 예배를 하자고 해도 자기들은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겠다고 손사래를 친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공적 예배는 정말 중요하다.
코로나와 같은 상황에서 공적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개인의 경건생활은 자신이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성령으로 인하여 말씀과 함께 주님을 예배하는 자가 양(羊)의 줄에 설 수 있는 자들이 아닐까?
이 땅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아무리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해도 주님과 교제하지 않고 주님의 뜻인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하신다(마 7:22-23).
하나님과의 관계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여야 한다.
그런 이들이 모인 자리가 바로 영생의 거주지이며 공동체인 것이다.
나는 이처럼 신앙의 근거를 땅에 박고 존재물을 향유하며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온 자였다.
젊었을 때는 이 세상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여 풍요롭게 누리면서 살고자 했다.
예수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주실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결과는 항상 존재물에 달려 있었다.
목회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목회를 열심히 해서 교인 수가 많은 큰 교회를 이루는 것이 목회의 목적이었다.
물론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신앙생활을 하고, 목회를 하면서도 철저히 유물론적 사고가 나를 지배하였고, 세상의 존재물이 내 삶을 즐겁게 하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물질이 있으면 즐겁고 없으면 죽을 것 같았다.
성도 수가 늘어나면 살 것 같고 줄어들면 죽을 것 같았다.
교회에 재정이 든든하면 재미가 있고 재정이 부족하면 괴로웠다.
교회에 별 문제가 없이 잔잔하면 살 것 같은데 교회에 일이 터지면 목회를 그만두고 싶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내가 기대하는 믿음의 근거를 무상성(無常性)인 땅에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공의의 심판이 찾아 왔다.
이로 인하여 이전에 내 안에 뿌리박혀 있던 신앙의 근거에 대 변혁 곧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났다.
나는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런데 그 천국은 죽어서 가는 천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영생을 누려야 한다는 사실도 물론 안다.
그런데 그 누려야 할 영생은 실제가 되지 않고 관념에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어떻게 맛보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저 열심히 예배하고, 성경 잘 읽고, 기도 생활 잘 하고 헌금 열심히 드리면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실 것이고 그것이 영생의 삶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 나의 패러다임을 한 반석이 날아와 완전히 부숴버렸다.
닫혔던 나의 눈을 열어 지상에서 창세전의 세계로 이끌어 갔다.
나의 생각도 올라갔으며, 나의 귀도 그곳을 듣는다.
이제 매일 말씀묵상을 통하여 그 세계를 본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하는 사귐의 시간을 가지면서 아들에게 주신 그 영광을 나도 본다.
그 맛은 흔들리는 나라인 땅의 세계에 근거를 둔 신앙의 때와는 전혀 다르다.
어떤 상황이 와도, 내 모습이 어떠해도 상관없이 내 눈은 그곳을 바라본다.
가지는 흔들려도 나무는 꿋꿋하게 서 있듯, 내 마음이 괴롭고 조금은 흔들리는 것 같아도, 이제 신앙의 뿌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 나라에 심겨져 있다.
그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흔들려 상처가 나고 시험이 드는 나라에 살고 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붙들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 비록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때로는 번민하고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이제 주님을 향한 믿음만큼은 흔들리지 않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이제는 신앙의 열매가 땅의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존재이신 주님이요 영생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며 당신만이 나의 전부임을 고백하나이다.
오늘도 나를 다스려 주시고, 주님 한 분 만으로 하늘의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내 손과 혀가 굳어도 내 몸의 피가 식어도 나 영영히 잊지 못할 곳은 은혜의 보좌가 있는 그 나라이오니 그곳만이 나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죄와 싸워 피투성이가 될지라도 절뚝거리며 나아갈 나의 나라가 있음을 감사하나이다.
그런 나를 맞아주실 주님이 계시니 든든합니다.
오늘도 나는 감춰주시고 오직 주님만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