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우리들은 날씬하고 멋진 미인. 미남형에만 잘생겼고 멋지다고 성격까지 좋다면 인정을 하고 바라보는 사회적인 선입견에 발 빠른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 길들어져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러한 관념적으로 자라왔으니 오죽하겠습니까(다 그렇다고 배제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창조자 하나님은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보시기에 좋았더라 단, 죄를 짓기 전에 아담과 하와였을 때를 좋아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예수님을 통한 십자가로 원수 되었던 죄악들을 씻기고 잊어버릴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고백 할 수있는 마음의 생각과 여유를 가지는 하나님 사랑의 은혜를 입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 마음을 유지 개발하는 원리가 하늘나라 양식으로 이 땅에서 저와 우리들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사람들의 영혼을 보는 은혜로 살아야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근본치료가 됩니다(오직 말씀에 능력의 사상으로만 보는 시야가 주어진다면~).
우선 스스로가 바꿔야 합니다. 바뀌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고요. 세상 것을 쫓으며 아무리 애쓴들 해결되는 것은 없으며 잣대를 재고 주제 파악을 못하면서 잘난 사람 멋진 사람만 찾아보는거와 같습니다(고르며 보지마라는 것이 아니라 그사람의 중심을 보는 눈으로).
그러니깐 멋지고 이쁜 사람을 보면 보고 싶어 눈이 마주치고 돌아가는 것은 죄의 유혹이 강해서 아니면 잘 몰라서 평소 생활 습관대로 길들어진 모습을 따라 하게 되는데 늘 미련을 남는 것은 우리들의 욕구만족을 다스리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모든 죄악들은 항상 이렇게 나타나는 것과 같기에 치료 과정도 똑같이 주님의 십자가로만 고침 받아야 합니다).
이 또한 고치고 안 고치는 것은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중에는 우리들의 잘못된 행동 습관들은 모든 것은 헛될 뿐 방해 요소들로 괴롭게만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노력하는 신앙생활에 거룩함을 따르는 길에는 폐쇄적인 사고력을 고치고 봐야지 믿음 생활에 기쁨을 찾고 발전적인 신앙생활을 노력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의 거룩함이란? 누구든지 잘못된 의식수준들을 뜯어고치는 개개인의 사고 판단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뚱뚱한 대로 날씬한 대로 좀 못났어도 하나님의 걸작품인데 우리들이 뭐라고 판단하면 그 죄를 어떻게 갚겠어요. 그대로 마지막 날 심판대에서는 그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마음의 풍랑이 잠잠해질 때까지 수없는 훈련의 노력으로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마음으로 주님께 향하고 딱 붙잡혀 있을 때 우리들의 영성은 깊어지고 능력 있는 행함도 나타나고 이와 같은 인생살이에서 육적인 모든 욕망들을 능히 다스리고 이기기까지는 우리들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닙니다(에베소서 6:12).>>
정사(정치 지도자 통치권자들)와 권세(권력을 쥐어서 위풍당당한 사람들)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권자들(세상 왕 그 시대 군주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사악한 사단은 간교한 사기성으로 많은 사람들을 타락의 함정으로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13절).
생각과 마음 판에 말씀과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로 말씀의 검을 가지고 진리로 허리띠를 띠우고 평안에 복음의 신을 싣고서 온몸과 마음이 예수께로 향해서 힘써 싸워서 목숨을 다하여 지켜나아 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바라시는 삶이 예수님의 십자가이십니다(14-20절).
인간의 욕구 욕망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빼앗아 먹지도 않는데 급하게 먹으려는 욕구들 가질려는 욕구들 자기 기준대로 잣대를 다 재고서 판단해서 맞지 않으면 짜증 내는 것들 저 인간은 왜 저래 하는 마음들 불안해서 겁먹고 사는 마음들 만족이라고는 어쩌다가 내 것이 되면 좋다고 싱글벙글하는 마음들 인간의 죄악상들을 어떡하더라도 능히 내어버리고 예수님의 안전된 심령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야고보서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