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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 역사학계를 지배한 친일 식민사학자들은 한국인의 탈을 쓴 일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사관의 폐해는 한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날조하고 폄훼하여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열등감을 안겨주었다는 점에 있다. 주체적 국민에게 노예의식을 심어주었다는 죄과가 크다.
광복 70년이 되도록 한국사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가 창작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식민사학을 만들어낸 자들과 그 제자들이 대를 이어 한국 사학계의 주류로 군림하면서 역사교육을 주물러왔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 같이 해마다 수백억 원의 혈세가 들어가는 국가기관이 앞장서 일제 식민사관을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역사교육의 참담한 현실이다.
광복 후 우리나라는 독립운동가들이 친일파들에게 숙청당하는, 참으로 주객이 전도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치를 편하게 하려고 친일파를 끌어안은 미군정에 이어 이승만정권이 반민특위를 강제해산함으로써 친일파를 처단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애국적 시도를 물거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우리 역사학계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修史官補)를 지낸 일제의 앞잡이 식민사학자 이병도(李丙燾)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자리 잡고 일제 황국식민사관을 한국사의 정설로 둔갑시켰다.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고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식민사관은 이병도의 제자 김철준, 한우근, 김원룡, 이기백, 이기동, 노태돈, 서영수, 송호정 등으로 연결되며 오늘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그렇게 친일 황국식민사학은 실증사학이란 허울 좋은 이름을 내걸고 민족사학을 깔아 뭉개왔던 것이다.
이병도는 1896년에 태어나 1919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와세다대학교에서 이른바 일선동화(日鮮同化)를 주창한 요시다 도고(吉田東伍)에게 영향을 받았고, 황국사관의 권위자인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와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에게 역사를 배웠다.
1925년에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식민사관을 만든 주역인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수사관보가 되어 식민사관으로 일관한 <조선사> 총서 편찬에 적극 참여했다. 조선사편수회에서는 이마니시 외에 식민사학자인 이나바 이와키치(蹈葉岩吉), 김원룡의 스승인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등과 일했다. 이들 대부분은 황국사관의 최고봉으로 꼽히던 동경제국대학교의 시라토리 구라기치(白鳥庫吉)의 지도를 받았다. 또 이병도는 1934년에는 식민사관 전파를 위해 진단학회를 만들어 대표가 되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경성제국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로 취임하여 수많은 식민사학자들을 양성하고 사학계를 좌지우지했다. 이병도는 그 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 박물관장, 대학원장, 문교부장관, 학술원장, 국사편찬위원 등을 거치면서 사학계 최고 원로로 행세했다. 뿐만 아니라 1970년 박정희정권 때는 국토통일원 고문, 1980년 전두환정권 때는 국정자문위원을 지냈다. 이런 친일 식민사학자가 대한민국 학술원 원장도 하고 문교부장관도 했으니 지금 우리 역사와 교육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이병도와 이기백, 김원룡 등은 이제 죽고 없지만 그 제자와 제자의 제자들이 여전히 사학계의 주류로 버티고 서서 식민사학을 고수하고 있으니 우리 역사교육이 큰일이라는 것이다.
이들 식민사학자들이 한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고 폄훼한 주요 골자는 이렇다. 단군조선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다. 중국에서 온 위만(衛滿)이 고조선을 통치하면서 비로소 국가가 되었다.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漢四郡)은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사실이 아니다. 한반도 남부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部)의 지배를 받았다. 한국은 이렇게 처음부터 중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므로 발전할 수 있었다. 요는 한국사는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1910년에 한국을 점령한 뒤 통치의 어려움을 절감했다. 한국인들이 단군왕검(檀君王儉)을 국조로 받들고, 고대에 백제(百濟)가 일본에게 문화를 전해주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사를 왜곡 날조하기 위해 조선사편수회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한국사 초기에 한반도 북부에는 중국의 식민지인 한사군이 있었고, 남부에는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날조했다.
특히 이병도는 고대사 편수를 담당하며 단군조선을 부인하는 등 한국사의 난도질에 여념이 없었다.
이병도는 고조선 사회를 미개사회로 규정하고 단군의 존재를 부정했으며, 중국의 식민정권인 한사군의 위치를 만주가 아닌 한반도라고 주장했다. 1984년 진단학회에 실린 대담에서 이병도는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았다.
“혹시 선생님 사관에 대해 식민지 사관 운운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식민지 사관이요? 난 개의치 않지만 나도 따진다면 민족사관입니다. 내 자찬인지는 모르나 내 공로가 커요. 난 오로지 역사가의 양심대로 연구를 해왔습니다.”
이병도의 ‘민족사관’은 친일 식민사학이지 절대로 민족사관이 아니다. 단재 신채호(申采浩)와 위당 정인보(鄭寅普), 그리고 그들의 맥을 잇는 윤내현과 이덕일 같은 학자들이 정통 민족사학자들이다.
이병도가 열성적으로 활약한 조선사편수회가 <조선사>를 편찬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일선(日鮮) 합병의 은혜를 망각하지 않는 조선인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병도는 매국노 이완용(李完用)과 같은 집안이다. 이병도는 이완용의 조카다. 이병도의 손자는 서울대학교 총장도 하고, 그 동생은 문화재청장도 했으니 이 나라의 역사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식민사학자들은 임나일본부를 주장하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김부식의 날조로 몰았다. 김원룡(金元龍) 같은 식민사학자는 고고학적 증거가 자꾸 나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도저히 부인만 할 수가 없으니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란 해괴한 개념을 만들어냈다.
어쨌거나 서기 300년대, 4세기까지 한반도에서는 삼국이란 왕국이 성립하지 않았다는 터무니없고 허튼 주장이다.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인 이만열은 식민사관을 이렇게 정리했다.
‘식민사관은 일제가 한국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 합리화하기 위해 고안했다. 일제는 어용사가들을 동원해 그들의 식민정책을 정당화하가 위해 <조선사>를 편찬했다. 기본내용은 한국사의 상한 연대를 삭감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가 일본보다 더 오래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한국사는 고대부터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면서 단군을 부인하고 중국인 기자와 위만에 의해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강변했다. 세 번째는 한국사는 줄곧 외세의 지배를 받았고, 네 번째는 한국문화는 외국에서 왔고, 외국 것을 모방했다는 설을 강력히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하여 나치체제의 철저한 청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서는 일본제국주의가 청산되지 못했다.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패전 70주년이 다 되어가도록 여전히 일제의 죄악상을 부정하고 온갖 망언을 되풀이하는 것을 보라. 이는 무엇 때문인가. 일본제국주의가 창안한 황국사관, 즉 천황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일본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은 매국적 친일 황국식민사학자들을 단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군이 없으면 고조선도 없고, 고조선이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 이병도도 죽기 직전에 인정한 단군과 고조선을 그의 제자 노태돈과 손제자 송호정 등은 아직도 부정하고 있다. 자기들만 부정하면 뭐라 하지 않겠지만 그 헛된 학설을 계속 주장하고, 다음 세대에게 그런 허황한 식민사관을 심어주고 있으니 상황이 심각하다. 식민사관이 뼛속까지 들고, 영혼까지 병든 것이다. 지난 2007년 고교 국사교과서에 이렇게 실렸다.
‘족장사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은 고조선이었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이처럼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한 마디가 교과서에 실리는데 근 6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그리고 재삼 강조하지만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한사군은 발해만 연안 요서지방에 있었다. 한 무제(武帝)가 고조선과의 전쟁이 끝난 뒤에 자신의 장군 순체와 양복을 처형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고조선의 내분 때문에 어부지리로 승리를 했는데, 그나마 얻은 땅은 겨우 고조선의 서부 변경 요서의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고조선이 망한 뒤에 설치했다는 한사군은 고조선이 있던 요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한사군이 평양 부근 대동강 유역이라니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수작이다. 고조선을 멸하고 한사군을 세운 곳이 오늘의 평양이라면 이야말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뒷받침하는 매국, 식민, 사대주의 역사관이 되는 것이다. 북한 땅은 고대에는 중국의 지배에 있었다는 설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사학자라고 사학계를 주름잡으며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큰일이라는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겠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사를 자기네 당나라 변방의 지방정권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있던 나라의 역사는 모두 중국사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거란족의 요나라도, 여진족의 금나라도, 몽골족의 원나라도, 여진족의 청나라의 역사도 모두 중국사가 되고, 징기즈칸도, 누르하치도 모두 중국인으로 둔갑한 것이다.
중국의 역사지도집에는 만리장성의 동단이 황해도 수안으로 되어 있다. 이것도 이병도가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 중국의 탐원공정, 단대공정이란 중국사의 상한을 더 올려 잡기 위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그동안 동이족 오랑캐의 역사라고 멸시하던 동이족의 유적, 고조선의 유적이 중국의 은허(殷墟)보다 훨씨 오래 전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중국사의 기원을 황하문명(黃河文明)이라고 하지 않고 요하문명을 중국사의 시원으로 날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이족도 중국인의 조상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이제는 단군왕검도 저희 조상이라고 우기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단군 할아버지까지 중국인의 조상으로 빼앗기면 한국사는 무엇이 남는가.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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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위 '식민사학' 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과장되게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오늘날까지 식민사학이 남아 있다는 의미로 다음과 같이 표현한 부분을 비판하겠습니다.
".... 단군과 고조선을 그(이병도)의 제자 노태돈과 손제자 송호정 등은 아직도 부정하고 있다"
역사적 실존인물로서의 단군왕검의 존재와 정치체로서의 고조선의 존재는 별개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현재 고조선의 존재를 부정하는 학자는 없을 겁니다. (환웅의 아들로 묘사되는) '단군왕검'이라는 존재가 실존했느냐에 대해서 아무도 확언할 수 없을 뿐이지요.
예컨대 노태돈의 대표적인 논문 중에는 이런 게 있습니다. <고조선 중심지의 변천에 대한 연구>
제목에서 드러나듯, 노태돈이 만약 고조선의 실존성을 부인했다면 고조선의 수도가 어디인지를 논하는 저런 논문을 쓸 이유가 있었을까요?
송호정의 논문 또는 글 중에도 이런 게 있습니다. <고조선의 위치와 중심지 문제에 대한 고찰>, <고조선의 지배체제와 사회성격>
노태돈이나 송호정이 고조선의 실존성을 부인했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특정 학자를 비난하더라도 잘못된 근거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입니다.
@미주가효 송호정이 지은 책..."만들어진 단군신화"는 뭐죠?
책 제목만 보더라도 송호정은 단군신화가 역사가 아니라 후대에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는데요...
이 책이 나온해가 2002년인데.. 해가 바뀜에 따라 고조선을 실존했다고 봤다가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서 신화로 봤다가 그런건가요?
@부르간不咸 제가 말씀드린 건 고조선의 실존성 부분이지 단군의 실존성 이야기가 아닙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고조선은 단군왕검이라는 자가 세웠다고 단정할 수 없고, 고조선의 군주의 호칭도 '단군'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존재할 수는 있을 겁니다. 즉, 단군의 실존성을 긍정하는 것과 고조선의 실존성을 긍정하는 것은 별개의 주장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소위 '식민사학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단군의 실존성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몰라도 '고조선의 실증성'을 기준으로 잡는다는 건 적절치 못하다는 게 제 주장이었습니다.
@부르간不咸 저 개인적으로도 삼국유사의 단군 신화는 후대 가필이 많이 된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고 단군의 존재 자체가 부인되는 것은 아니지요
송호정 교수님은 단군과 고조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을 깨기 위해 일부러 강한 제목을 붙인 것 같습니다
@미주가효 궤변이군요.
고조선에 단군이 없으면 대체 뭔가요?
단군 기자 위만 중에 기자와 위만만 인정하고 단군을 실존하지 않았다고 치부하는건 일제식민사학의 잔재가 맞구요...그런의미에서 송호정은 식민사학 맞습니다. 삼국유사나 제왕운기나 다들 단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단군과 빼고 그냥 고조선이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는것 자체가 오류입니다.
님은 개천절도 부정하는건가요? 국경일인데요.
@하균횽을내작품에 책의 내용과 제목이 다르다???
아니 우리나라 사학계가 그정도밖에 안되나요?
그건 학문하는 자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제목이란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할수 있는걸 붙여야지
제목과 내용이 다른 역설적 내용은 문학작품에서나 볼수있는 것입니다.
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학과 교수라는 사람이 책이나 잘팔리게 하려고 제목을 저런식으로 달아 놓는건 교수의 자질도 의심해봐야할 것입니다.
@부르간不咸 사학 서적에도 역설적인 제목 쓸 수 있습니다
@부르간不咸 부르간 님은 단군의 실존성과 고조선의 실존성이 한 덩어리라고 생각하시는가 보군요. 하지만 다른 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건국자의 실존성과 그 국가의 실존성은 별개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로마의 실존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어도) 로물루스의 실존성은 의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로물루스의 실존성이 설사 깨진다 하여도 로마 또한 실존하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
@하균횽을내작품에 그저 웃지요..
@미주가효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단군의 존재부정이 곧 단군조선의 존재부정으로 보는 송호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기원이 중국에서 건너온 기자라고 보고있죠. 우리나라는 단독으로 국가를 이룰수 없으며 중국사람에 의지해야만 나라를 이룰수 있다는걸 내포합니다. 이는 식민학자들이 주장하던 북쪽은 한사군 남쪽은 임나경영설로 한반도는 옛부터 자립국이 없이 식민지였다는 것과 비슷한 논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 초대 건국자를 부정하는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부르간不咸 송호정 교수님은 단군조선을 부정한 적 없습니다. 단군 만들어진 신화에서도 계속 단군 조선의 존재 자체는 인정합니다. 다만 기원전 2334년 건국이라는 그걸 부정하는 것이지요
@부르간不咸 송호정 교수님의 책은 대중서입니다. 대중서에는 다 자극적인 카피가 붙습니다. 그래야 책이 팔리니까요
@부르간不咸 이병도 등의 견해를 직접 보고 비판하시는 것 맞습니까? 단군의 존재부정이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기자가 고조선을 세웠다는 주장이라니요? 기자조선설을 비판한 가장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이병도입니다. 또한 송호정이 기자조선설을 주장한다는 것은 근거가 있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현재 강단의 사학자 중 기자조선설을 신봉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을 처음 듣습니다. 기자동래설은 그야말로 전설 중의 전설로 인식될 뿐입니다. 어느 누가 우리나라의 기원을 기자라고 본다 합니까?
요즘들어 새삼스럽게 정신이 번쩍 뜨일 정도로 놀란 일이 있는데 그것은 식민사학의 정의를 실감있게 체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정말 의외였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바로 지금까지의 전반적인 교육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상식선에서도 충분히 이해.추측할 수 있을 만할 사례들을 극구 부정하거나 심지어는 신뢰할 수 있는 명확한 기록까지도 자신들의 역사 구성체계에 반하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소름끼칠 정도로 두렵고 막막합니다. 대체 이 노릇을 어찌 해결해야 할까요?
이덕일씨는 좀.....
확실히 요즘 식민사학의 정의를 실감나게 체득하지 못한 사람이 종종 보이긴 합니다. 식민사학이 일종의 목적론적 사학이라면 그 목적의 방향이 어디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텐데, 그에 대한 고려 없이 고대사의 특정 주제만이 식민사학의 독점적 주제인 양 생각하시는 사람도 계시더군요. 이 또한 교육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상식선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일부러 모르는 척 애써 무시하려 하는 것을 보면 저 또한 소름끼칠 정도로 두렵습니다.
솔직히 환인-환웅-단군을 하나의 정치 체제로 이해하는 건 신화의 틀을 너무 역사 속에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신화는 문학이지 역사가 아닙니다
단군을 부정하면 개천절을 부정하는것인데
대한민국 법률에 이런게 있어요.
"제1조 국가의 경사로운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경일을 정한다."
개천절이 실존이 아니라면 국가의 경사로운 날인 개천절은 대체 어떤일이 일어난 날인지 말해주시겠습니까?
송호정처럼 단군신화의 믿음과 그정신을 기리기 위한 날이라고 하는건 대한민국 법률에도 위배됩니다.
국경일은 경사로운 날이지 정신을 기리는 날이 아니거든요.
지금 말씀은 지나치시네요. 송호정의 주장이든 누구의 주장이든 할 것 없이 학자가 자기 주장을 펴는 것을 법률로 막는다면, 그 방향성이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법이 잘못되었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그런 법률이 있다면 그게 바로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됩니다.
송호정의 주장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럼 학문적으로 반박하시면 됩니다. 논쟁을 벌이고 반박을 주고받는 건 적극적으로 권장할 만한 일이지만, '법률에 위배되니 그런 주장을 해선 안 된다'는 말씀은 다분히 위헌적인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헌법정신상 그런 식의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률의 존재를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10월 3일은 단군의 건국일이 아닌 무당들이 제사를 지내던 날일 뿐입니다. 그걸 대종교가 수용한 것이고요....
@미주가효 반박할 필요는 없어요. 식민사학자로 치부하면 됩니다. 표현의 자유이니 단군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인것처럼 식민사학자로 간주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입니다.
@하균횽을내작품에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건국자들이 전부 무당 수호자들이었군요. 그런가요?
@부르간不咸 단군이 국조가 된 시점은 잘 봐줘야 대한제국이고 실은 일제 시대 부터입니다.
@부르간不咸 대가 없이 자유만 누리겠다는 건 그냥 그 자유를 박탈해 달라는 말과 같죠
@부르간不咸 에휴.... 뭐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이면 견해가 다른 사람들간의 토론이 아니라 비방 밖에는 안 될 겁니다. A 가 B 를 '식민사학자'로 비하하여 부른다는 게 자유라고 주장한다면, B 역시 A 를 '유사사학자'(사이비사학자)라고 비하하여 부를 자유가 있다는 말도 성립할 수 있겠지요. 서로를 식민사학자와 유사사학자라 부르는 상황에서는 이미 말싸움만 남을 뿐이지 그 이상의 다른 건 없을 겁니다.
@하균횽을내작품에 조선왕조실록은 안읽어보셨군요.
@미주가효 그렇습니다. 이런식의 토론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니깐 이런류의 식민사학 어쩌구 하는 원글이 올라오걸랑 답글을 아예 달지 마세요. 서로 시간낭비 돈낭비 정력낭비입니다.
조선사편수회가 펴낸 조선사는 단순 사료 모음집이지 역사책은 아닙니다. 게다가 이병도가 주동이 된 진단학회는 소극적이지만 일제에 저항한 역사도 있습니다
다들 식민사학자를 옹호하느라 난리군요.
본문을 쓰신분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식민시대시절에 신문을 보면 일본인들이 단군의 존재를 부정하면 이에 대한 반대로 "누가 단군의 존재를 부정하는가?"라는 제목으로 학자들이 신문에 논설을 올리곤 했습니다.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건국때 이를 알고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였죠.
따라서 단군의 존재부정은 대한민국건국과도 맞지도 않을뿐더러, 식민시대시절에 단군의 존재를 부정하던 일본학자와 동조하는 것이므로 식민사학이 맞습니다.
이병도도 단군 자체는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기 번역하고 주석을 단 삼국사기에도 단군 자체는 꾸준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원전 2334년 건국이 고고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이고요
원천봉쇄의 오류(우물에 독뿌리기 오류)를 범하시는 것 같군요. 합당한 근거와 자료, 유물 등으로 단군의 존재를 입증해야지, 단군의 존재를 선험적으로 긍정해 버리고, 이에 반대하는 주장은 반민족주의자의 것인 양 낙인찍는 행동은 이미 논쟁의 수준을 벗어난 것입니다. 저도 단군이라는 존재가 실존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 입장이나 선험적인 주장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하균횽을내작품에 송호정 이야기를 하는데 왜 자구 이병도 선생님 이야기를 하시는지?
@미주가효 기자와 위만도 입증을 불가인데.. 그건 중국사료에 나온다고 인정하고 단군은 인정못하겠다는 것은 사대주의적발상이죠. 박혁거세는 명문이 확실한 유물이 나옵니까? 동명성왕은 명문이 확실한 유물이 나옵니까?ㅋㅋ 그저 단군이라면 무슨 사이비 종교나 되는냥 부정하려 드는 태도 정말 보기 안좋습니다. 문제는 단군신화를 부정하더라도 단군조선 자체를 아예없애버리려는 태도라는 겁니다.
@부르간不咸 송호정은 단군조선 부정한 적 없어요
@하균횽을내작품에 송호정은 단군조선을 부정했어요. 책 제목만 봐도 딱 나오는데 왜자꾸 우기시죠?
@부르간不咸 책을 읽어 보시라니까요... 책 읽어보면 단군조선 인정합니다. 다만 우리가 가지는 이미지 특히 재야의 단군 이미지기 만들어진 신화라는 거죠
@하균횽을내작품에 BC10세기는 기자조선이지 단군조선이 아니라니깐요?
@부르간不咸 학계는 기자 조선 인정 안 한다니까요... 님은 10세기 기자조선 해 놓고 조선 선비들처럼 단군-기자-위만 이 세 조선을 인정하면서 보고 있으니 문제죠.. 학계는 기자조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로 님이 말한 기자 조선 자리는 단군 조선 자리입니다. 이래도 이해 못 하면 정말 할 말 없죠
.......사명감에 불타는 것이야 이해가 가지만 여기는 역사전문카페이고 회원분들이 예의를 갖추고 말씀하시니 식민사학이라는 과격한 말씀은 자제하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게다가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증거를 좀더 모으고 나서 주장를 내놓으심이 먼저라고 봅니다.(저를 무척이나 증오하시는 분들이야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제 말을 안 믿을 것이고 자신들의 확신대로 증오하는 게 어설픈 인연관계보다 저나 그 분들이야 서로 좋지만요.)
제목보고 모든걸 단정하는 신묘한 통찰력 같으니라고....
제 만화 중 상당수는 훼이크 제목이 많은데 그럼 제목보고 해리포터,반지의 제왕,킹덤오브 헤븐,얼음과 불의 노래,다크나이트 등의 작품은 줄거리,결말까지 다 알겠군요.
오오 신묘한 초능력입니다??
단군에 대한 설화와 고조선이라는 국가의 실존성은 서로 별개의 것입니다. 위에서 어느 분이 이미 언급하신 일이지만, 로마의 건국설화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이야기 자체는 사실로 보지 않는 학자도 여럿 있지만, 그렇다고 로마라는 국가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송호정 쌤의 주장도 그와 마찬가지로 보면 됩니다.
그리고 현 사학계에 통설적인 입장으로 보자면, 고조선과 위만조선의 존재는 인정해도, 기자조선은 실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고학적인 근거도 없고, 그 내용도 대체로 중국 측의 비현실적인 설화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