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쌈, 김홍도,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7 cm X 22.7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그림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므로 알아 맞추기가 쉽지 않지요. 박물관에 가서 눈여겨본 사람은 아마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그림은 바로 베 짜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림은 크게 두 장면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림 아래쪽의 여인을 보세요. 나무로 된 베틀 위에 앉아 베를 짜고 있네요.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손발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허리 뒤쪽으로 동그랗게 두른 것은 '부테'라고 하고, 배 앞에 찬 것은 '말코'라고 합니다. 오른발에는 '끌신'을 신고, 양손에는 '북'과 '바디집'을 쥐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조상들이 써 온 정겨운 우리말들이지요.
베 짜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스윽 잭, 스윽 잭...' 이 소리를 따라 해 보세요. 이제는 그림에 나온 것처럼 옛날 방식으로 베 짜는 광경을 보기 어려우니, 베 짜는 소리도 쉽게 들을 수 없지요. 하지만 이 소리는 아직도 해마다 가을에 접어들 무렵 시골길에서는 들을 수 있답니다. 누가 아직도 베를 짜고 있냐고요? 바로 베짱이입니다. 풀잎에 앉아 노래하는 곤충 말입니다. 울음소리가 베 짜는 소리와 같아서 지은 이름이지요.
베 짜는 일은 방이나 마루, 혹은 마당에서 대개 혼자 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김홍도는 혼자 베틀에 앉아 있는 사람 뒤에 구경꾼을 두어 그림을 재미있게 하였습니다. 아기를 업은 할머니는 베틀 뒤에 서서 이 광경을 조심스럽게 지켜 보고 있습니다. 할머니 등에 업힌 아기도 신기한 듯 등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지요. 그 곁에는 바람개비를 들고 서 있는 사내아이도 있습니다. 할머니 곁에 바짝 붙어서 치마 고름을 붙잡고 있지요. 늘 일하느라 바쁜 엄마 대신 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봐 주는 따뜻한 모습입니다.?
그림 위쪽에는 등을 돌리고 쭈그리고 앉아 날실에 풀을 먹이는 여인이 있습니다. 이것은 베 짜기 전에 이루어지는 한 과정입니다. 옷감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자연에서 원료를 채취해서 가공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노동을 거쳐야 합니다. 옷감을 만드는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틀어서 '길쌈'이라고 합니다.
길쌈은 주로 여성들의 일이었습니다. 남성들이 농사를 짓는 동안 여성들은 바느질과 길쌈을 하였습니다. 특히 길쌈은 아주 힘들고 지루했습니다. 하지만 온 가족의 옷과 이불 등을 마련하려면 밤낮으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루함을 덜기 위해 모여서 일하거나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신라의 제3대 왕인 유리왕은 왕녀들을 두 편으로 갈라 길쌈을 시켰습니다. 음력 7월 16일부터 매일 궁중의 뜰에 모여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내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한 달째인 8월 15일에 누가 더 많이 길쌈을 했는지 따져 보았습니다.
왕이 승패를 가르면 진쪽의 여인들은 탄식 소리를 내며 슬픈 노래를 불렀습니다. 또한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쪽을 극진히 대접하였습니다. 이어서 함께 노래 부르고 춤추는 등 온갖 놀이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가배' 또는 '가위'라고 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우리의 큰 명절인 추석의 옛말입니다.
바느질하고 길쌈하는 여인들의 고통은 많은 옛 글에 나타나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뛰어난 여성 시인인 허난설헌(1563년~1589년)은 '가난한 여인의 노래'라는 시를 써서 이런 힘든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얼굴이야 남들만 못하지 않고
바느질 길쌈에도 뛰어나지만
가난한 집 자식이라
중매하는 사람도 없네
춥고 배고파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하루 종일 창가에서 베만 짠다네
우리 부모님은 나를 가엽다 여기지만
이웃 사람들이야 어찌 내 마음을 다 알까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베를 짜니
베틀 소리만 삐걱삐걱 처량하네
베틀에는 베가 한 필 짜여 있지만
이건 마침내 누구의 옷이 되려나
출처: 소년한국일보 http://kids.hankooki.com/edu/culture_symbol.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