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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12월14일(일요일) [영양 서석지&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탐방일정
국민은행 010-9024-3919(예금주: 이진미) 계좌로 12월10일 회비 32,800원 송금 완료
탐방지 : [영양 서석지&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탐방일 : 2025년12월14일(일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경북 영양군 입암면 최저기온 영하2도C, 최고기온 7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5시간50분 소요)
07:00~10:50 “신사산악회” 버스로 지하철 3호선 신사역 5번 출구 앞에서 출발하여 경북 영양군 입암면 영양로 883-5 번지에 있는 선바위관광지주차장으로 이동 [3시간 50분, 284.2km]
10:50~14:50 [선바위 관광지 주차장~장군놀이터~소원봉 전망대~애기 선바위~연당리 석불좌상, 태화당 고택, 서석지(인증)~선바위~부용봉(376m)~청암교~입암면 신구리 삼층석탑,약산당~선바위 관광지 주차장]의 동선으로 탐방 (8.5km/4시간)
[영양 서석지(英陽 瑞石池)
시대 : 조선/조선 후기
소재지 :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94-2번지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에 있는 조선후기 석문 정영방이 건립한 누정. 정자·연못.
내용
1979년 중요민속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정자는 정영방(鄭榮邦)이 1613년(광해군 5)에 축조하였다고 전한다. 연못은 수려한 자양산(紫陽山)의 남쪽 완만한 기슭에 위치하였으며, 방지(方池)의 북단에 있는 3칸 서재인 주일재(主一齋)는 마루 안쪽에 ‘棲霞軒(서하헌)’이라 편액하였다.
서단에는 6칸 대청과 2칸 온돌이 있는 규모가 큰 정자인 경정(敬亭)을 세우고 경정의 뒤편에는 수직사(守直舍) 두 채를 두어 연못을 중심으로 한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 북단의 서재 앞에는 못 안으로 돌출한 석단인 사우단(四友壇)을 축성하여 송ㆍ죽ㆍ매ㆍ국을 심었다.
연못은 동서로 길며, 가운데에 돌출한 사우단을 감싸는 U자형을 이루고 있다. 연못의 석벽은 그 구축법이 매우 가지런하고 깔끔하다. 동북 귀퉁이에는 산쪽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을 내었고, 그 대각점이 되는 서남쪽 귀퉁이에는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을 마련하였다.
이 연못의 이름은 연못 안에 솟은 서석군(瑞石群)에서 유래한다. 서석군은 연못바닥을 형성하는 크고 작은 암반들이 각양각색의 형태로 솟아 있는 것으로 그 돌 하나하나에 모두 명칭이 붙어 있다.
돌들의 이름은 선유석(仙遊石)ㆍ통진교(通眞橋)ㆍ희접암(戱蝶巖)ㆍ어상석(魚狀石)ㆍ옥성대(玉成臺)ㆍ조천촉(調天燭)ㆍ낙성석(落星石) 등이며 20여개에 이른다. 이러한 명칭은 정영방의 학문과 인생관은 물론 은거생활의 이상적 경지와 자연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심취하는 심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양 서석지(英陽 瑞石池)
종목 중요민속문화재 (구)제108호(1979년 12월 31일 지정)
시대 조선시대
소유 동래정씨문중(정경정)
주소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서석지1길 10
좌표 북위 36° 36′ 42″ 동경 129° 04′ 11″
서석지(瑞石池)는 석문(石門) 정영방 선생이 1613년(광해군 5년)에 축조한 연못과 정자이다. 1979년 12월 31일 대한민국의 중요민속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원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석문(石門) 정영방이 1613년(광해군 5년) 진성(眞城) 임천(臨川)(현 영양군 입압면 연당리)에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연못과 정자이다. 정자인 경정(敬亭), 서재인 주일재(主一齋), 그리고 서하헌(棲霞軒), 수직사(守直舍) 등을 함께 축조하였다.
연못의 북변에는 주일재(主一齋) 앞으로 연못쪽으로 돌출된 석단을 만들어 사우단(四友壇)으로 이름을 지었고, 이곳에 소나무(松), 대나무(竹), 매화(梅), 국화(菊)를 심었다 한다.
연못의 물을 북동쪽 귀퉁이로 흘러들어와 남서쪽으로 흘러나가도록 되어있었다고 한다.
연못 안에는 60여개의 돌이 있는데 이를 서석(瑞石)이라고 부른다. 이중 19개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옥성대(玉成臺), 상경석(尙絅石), 낙성석(落星石), 조천촉(調天燭), 수륜석(垂綸石), 어상석(魚牀石), 관란석(觀瀾石), 화예석(花蘂石), 상운석(祥雲石), 봉운석(封雲石), 난가암(爛柯岩), 통진교(通眞橋), 분수석(分水石), 와룡암(臥龍巖), 탁영반(濯纓盤), 기평석(棊坪石), 선유석(僊遊石), 쇄설강(灑雪矼), 희접암(戲蝶巖)
7월 중순 연못에 연꽃이 피어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영양연당동석불좌상 (英陽蓮塘洞石佛坐像)
수량/면적 : 1구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지정(등록)일 : 1979.01.25.
소재지 :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60-2번지
시대 : 통일신라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영양군
상세 문의 : 경상북도 영양군 문화관광과 054-680-6422
국가유산 설명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마을 한가운데 임시로 지어놓은 건물 안에 모셔져 있는 석불좌상이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고 있는 불상으로, 머리와 눈부분이 깨져 있고 광배가 3조각으로 절단되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얼굴은 직사각형 형태이고, 사각형의 신체와 반듯한 어깨, 좁아진 무릎 등에서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어 이 불상이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藥師如來)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평행으로 흐르는 물결식의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3단의 높은 8각형 대좌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몸 뒤의 광배에도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대좌의 연꽃무늬, 광배의 구름무늬, 그리고 불신의 정돈된 형태와 물결식 옷주름선 등은 통일신라 후기의 조각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상의 뒷면에 새겨진 글로 보아 889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제작 연대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클 뿐만 아니라, 지방색이 현저한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귀중하게 여겨진다.]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태화당고택 (太華堂古宅)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 2005.01.10.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서석지2길 6-1 (입암면, 태화당고택)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정일영
관리자(관리단체) 정종한
상세 문의 : 경상북도 영양군 문화관광과 054-680-6422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7호 태화당 고택은 동래 정씨의 집성촌인 연당리에 입향*했던 석문(石門) 정영방의 9대손인 동파(東坡) 정익세(鄭翼世)가 1800년대 말엽에 세운 주택으로 연당마을의 동쪽 중심부에 있다.
앞면에 있는 흙과 돌로 쌓은 담장 사이로 난 5칸 규모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ㅁ’ 자형의 살림채인 정침(正寢)이 바라보고 있다. 마당의 왼쪽에는 3칸 규모의 고방채**가 있는 전형적인 양반의 집이다. 정침은 앞면 6칸, 옆면 5칸 반 규모의 ㅁ자형 건물인데, 앞면 왼쪽 칸의 사랑마루와 오른쪽 칸의 새방 1칸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1칸씩 튀어나와 양날개집의 모양을 하고 있다. 안채는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건넌방과 안방을 두었다. 건넌방의 앞면에는 통래칸****과 도장방, 책방을 서로 맞닿게 하였고 안방의 앞면에는 부엌과 고방을 맞닿게 하였다.
* 입향(入鄕):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음.
** 고방(庫房): 세간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 두는 곳. 광.
*** 통래칸(通來칸): 왕래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
등록된 자료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된 안내판 개선사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국가유산 설명
태화당은 동래정씨 연당리 입향조인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1650)의 9대손인 동파(東坡) 정익세(鄭翼世, 1842~1923)가 19세기 말에 건립한 주택으로 연당마을의 동편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정익세의 증손자인 정수호(鄭壽祜, 1907~1987)가 명명한 당호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정익세는 20여세에 종숙부에게 입양된 이후, 돈종목족(敦宗睦族)과 빈객접대(賓客接待)의 필요성을 느껴 이 건물을 짓게 되었다. 그리고 학문을 숭상하는 가풍을 진작시키고 후학을 양성하는 강당으로도 활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사랑채 앞 툇마루를 간이 누마루형식의 난간마루로 만들었다.
고택은 북측 경사면에 터를 잡고 남향을 하고 있으며, ‘ㅁ’자형 정침, ‘ㅡ’자형 고방, ‘ㅡ’자형 대문채로 구성하고 있다. 사면에는 한식기와를 올린 토석담장을 둘러 외곽의 경계로 삼았으며, 정면에 대문채를 세워 출입하고 있다. 담장 너머 좌우정면에는 서석지 2길이 지나가고 있으며, 배면에는 이웃집이 있다. 고택은 정면에 넓은 앞마당이 있고, 정면의 좌측에 장독대가 있고 좌측으로 담장을 두르고 협문을 세워 뒷마당과 영역을 분할했다.]
[영양 신구리 삼층석탑
대한민국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주소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신구리 240번지
좌표 북위 36° 36′ 06″ 동경 129° 05′ 12″
정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영양 신구리 삼층석탑(英陽 新邱里 三層石塔)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신구리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84호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와 현황
옥신괴임은 보이지 않으나, 옥개(屋蓋)의 층단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된다. 1999년 석탑을 잘 보존하기 위해 해체 복원하였다. 석탑은 이끼류 및 지의류로 인한 파손의 우려가 있고, 주변에 풀들이 자라고 있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상태이다.
특징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소박한 모습의 석탑이다. 높이는 2.55m이다. 3층 옥신과 상층기단 면석 1매, 그리고 상륜부(相輪部)의 대부분을 잃었으나, 다른 부분은 완형을 유지하고 있다.
아래층 기단은 밑부분이 땅 속에 묻혀 있어 자세한 구조를 알 수 없고, 면석은 주형(柱形) 없이 안상(眼象) 같은 것이 희미하게 보인다. 갑석은 3매로 조성되어 있다. 상층기단은 4매로 결구되었는데, 면석에는 우주가 있다. 면석 1매가 없어져서 마치 감실(龕室)과 같이 보였는데, 지금은 새로 보수해 놓았다. 1매로 된 갑석의 상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3단의 받침이 있어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은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한 돌로 조성되었고, 옥개석은 받침이 각 층 4단이며, 처마 끝은 직선이고, 전각(轉角)이 약간 들리는 신라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3층에는 머리장식의 네모난 받침돌이 몸돌 대신 끼워져 있고, 각 층의 지붕돌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복발(覆鉢, 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3층 옥개석 상부 중앙에 찰주(擦柱)를 박는 둥근 구멍이 있다. 3층 옥신 대신 끼워져 있는 노반과 함께 현재 2개의 상륜부재(相輪部材)가 남아 있는 셈이다.]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약산당(藥山堂)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 1동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 1985.08.05.
소재지 : 경북 영양군 입암면 신구리 197번지
시대 : 조선시대
상세 문의 : 경상북도 영양군 문화관광과 054-680-6422
국가유산 설명
장례원 판결사 조광의(1543∼1608)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안쪽 구조가 매우 섬세하며 조선 중기 건축 양식을 보여 주는 건축물이다.]
[경북 영양 입암면 자양산 소원봉~부용봉
두 물길 만난 V자 암벽…새해 희망 불끈 솟네
이창우 산행대장 lcw1124@kookje.co.kr |
국제신문 기사 입력 : 2022-01-19 19:15:35 | 본지 12면
- 선바위관광지 기점 원점회귀
- 붉은 절벽 자금병 끊은 ‘석문’
- 하늘 향해 솟은 선바위 황홀
- 조선시대 전통정원 ‘서석지’
- 산해리 오층모전석탑도 볼 만
근교산 취재팀이 이번에 찾은 곳은 경북 영양군의 남이포 선바위관광지에서 출발하는 자양산(紫陽山·426m)과 ‘물 위에 뜬 연꽃’이라는 부용봉(芙蓉峯·376.4m)이다. 전북 진안군의 천반산(646.9m), 그와 마주한 고산(875.8m), 그리고 ‘육지 속의 섬’인 죽도(401m)의 모습이 이와 아주 흡사하다. 일월산(1217.6m)에서 발원하는 반변천과 동천이 동서로 산자락을 감입곡류하며 부용봉 앞 남이포에서 합수된다면, 죽도는 덕유산(1610.6m)에서 발원하는 구량천과 금강의 두 물줄기가 기암절벽의 산을 에워싸며 산태극물태극으로 돌아 합쳐지기 때문이다.
■남이 장군이 칼로 끊은 ‘석문’
죽도와 부용봉은 현재 독립봉이다. 죽도는 약 35년 전에 병풍바위와 연결된 절벽을 인위적으로 끊어 굽어진 물길을 바로 펴 ‘죽도 관문’이라 한다면, 부용봉은 자양산 자금병과 연결된 산맥을 끊어 물길을 돌렸다는 전설로 이를 ‘석문’이라 부른다. 석문에는 조선시대 남이 장군 이야기가 전한다. 입암면 대천리 운룡못에 살던 아룡과 자룡 형제가 역모를 꾀하자 남이 장군을 보내 토벌했다. 재차 반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 장군은 큰 칼로 자양산과 부용봉 사이 산맥을 잘라 물길을 돌렸다 한다.
‘근교산&그너머’ 취재팀은 남이 장군 전설로 알려진 영양의 제 1 비경인 남이포 선바위를 한 바퀴 도는 자양산 소원봉~부용봉을 소개한다.
선바위관광지에서 자양산 소원봉 전망 덱까지 남이 장군 등산로가 개설됐다. 소원봉 명칭은 당시 등산로를 개설하면서 붙여졌다. 자양산 산행은 외씨버선길과 전통정원 서석지 이야기길 이정표를 참고하면 된다. 서석지는 석문 정영방이 1613년에 낙향해 조성하면서 서석지 외원 16곳의 명소를 16수의 시로 남겼다. 입석(立石) 자금병(紫錦屛)도 그 중 하나다. 정영방은 서석지의 경정 대청에 앉기를 즐겼다 한다. 이는 왼쪽 자양산 자락의 붉은 단애인 자금병과 가운데 석문, 오른쪽에 선바위(입석)와 부용벽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승용차를 이용했다면 산행 뒤 서석지와 부산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국보 제187호인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을 꼭 둘러보자.
영양군 입암면 선바위관광지를 출발해 석문교~남이 장군 등산로 안내도 갈림길~장군 놀이터·산촌생활박물관 갈림길~장군 놀이터~전통정원 서석지 이야기길 갈림길~소원봉 전망 덱~애기선바위~911 지방도(연당리)~연당교~선바위~부용봉 정상~신사리버스정류장~청암교~나무 덱 길~선바위관광지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이다. 산행거리는 약 6.5㎞ 이며, 3시간 30분 안팎이 걸린다. 남이포 석문과 자금병 선바위 비경이 워낙 빼어나 산행 시간은 무의미하다.
이번 산행은 남이포 선바위관광지에서 출발한다. 특산물 직판장 뒤로 바위 절벽을 이고 선 봉우리가 자양산인데, 벼랑 위 전망 덱이 소원봉이다. 왼쪽 관광안내소 뒤가 선바위가 있는 부용봉이다. 특산물 직판장을 오른쪽으로 돌아 ‘외씨버선길 5길 오일도 시의 길(11.5㎞)’을 따라간다. 반변천 둑 전망 덱에서 바위 벼랑과 선바위, 부용봉을 본 뒤 오른쪽 영양전통시장으로 간다. 곧 왼쪽 석문교를 건너 사거리 갈림길에서 영양전통시장으로 직진한다. 왼쪽은 남이정 방향인데 낙석으로 폐쇄됐다. 반딧불이와 고추 가로등이 앙증맞다. 남이 장군 등산로 이정표와 표대산 등산 안내도를 지나 덱 계단을 올라가면 갈림길이다. 왼쪽 장군 놀이터(0.4㎞)로 꺾는다. 직진은 산촌생활박물관(0.6㎞) 방향.
■두 물길이 만나는 남이포 절경
이제부터 외씨버선길과는 헤어져 전통정원 서석지 이야기길을 따라간다. 된비알 길을 약 15분 오르면 능선에 쉼터가 조성된 남이 장군 놀이터인데 왼쪽 서석지 이야기 길로 내려간다. 표대산 자양산 정상은 오른쪽 ‘낙원 산책로 길’ 방향. 정씨 묘를 지나 말잔등 같은 능선이 이어진다. 10분이면 서석지 이야기길 갈림길을 지나 소원봉 전망 덱에 도착한다. 왼쪽에 반변천이 선바위관광지를 물돌이 하며, 정면에는 두 물길이 만나는 남이포와 엄지를 치켜세운 듯한 선바위, 부용봉이 우뚝하다. 직전 갈림길로 되돌아가 왼쪽 서석지 이야기 길로 꺾는다. 자금병 산비탈에 난 오솔길을 ‘ㄷ’ 자로 꺾어 전망덱에서 15분이면 애기선바위에 도착한다. 아기를 안은 어머니의 모습이라 해 ‘안선바위’로도 불린다.
911번 지방도에서 왼쪽으로 간다. 오른쪽은 서석지 방향인데 약 500m 떨어졌다. 동천 표지판을 지나 연당교를 건너 10분이면 뾰족한 촛대를 닮은 선바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보는 자금병 단애 풍경도 압권이지만 선바위 오른쪽으로 난 산비탈 길을 올라 부용봉으로 향한다. 발 디딜 곳도 마뜩찮은 된비알인데 눈이라도 내렸다면 주의해야 한다. 10분이면 선바위와 자금병 단애 남이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능선에 올라선다. 배의 선수를 닮은 V자 암벽은 힘이 철철 넘친다. 왼쪽 반변천 쪽으로 안전 시설물이 전혀 없어 추락에 주의한다. 희미하던 산길은 사라지고 폐 무덤을 지나면서 또렷한 길과 만난다.
이내 무덤에서 길은 사라진다. 무덤 오른쪽 능선을 따라 간다. 옛길의 흔적을 보는 굵은 로프가 묶였다. 완만한 능선은 다시 로프가 묶인 길을 올라 전망대 능선에서 약 35분이면 부용봉 정상에 도착한다. 북쪽으로 자양산과 무이산이 보인다. 제단에는 ‘일원산의 정기가 비로서 이곳에서 하나가 되다’ 문구가 있으며, 해맞이 장소로 알려졌다.
남쪽으로 하산한다. 능선이 완만해 정상에서 25분이면 신사리버스정류장 앞을 지나 청암교를 건넌다. 청암교차로 앞에서 왼쪽 나무 덱 길을 간다. 솟대와 입암 안내판을 지나 13분이면 덱 길이 끝난다. 왼쪽 둑 길을 따라 선바위와 자금병 절벽 사이의 석문을 보면서 선바위관광지에서 마친다.
◆교통편
- 대중교통편 환승 불편해…당일산행 땐 자차 이용을
이번 산행은 경북 영양까지 곧장 가는 대중교통편이 없는데다 거리가 멀어 대중교통편을 이용한 당일 산행은 불가능해 승용차 이용이 낫다. 부산역에서 기차로 대구역으로 간 뒤 시내버스나 택시로 대구 북부터미널로 이동해 안동을 거쳐 가는 영양행 직행버스를 탄다. 대구북부터미널에서 영양행은 오전 7시, 8시20분, 9시20분, 10시10분 등에 출발하며, 입암정류장에 내린다. 입암정류장에서 선바위관광지는 약 1.7㎞ 거리에 도보 25분 소요. 산행 뒤 영양터미널에서 대구북부터미널로 나가는 버스는 오후 3시35분, 4시40분, 6시20분에 출발해 입암정류장에 곧 도착한다. 북부터미널에서 대구역으로 이동해 기차를 타면 된다. 승용차 이용 때에는 경북 영양군 입암면 영양로 883-16 선바위관광지를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설정하면 된다.
문의=라이프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국제신문]
[별 따라 이야기 따라 영양에 취하다] 영양의 석탑들
류혜숙 작가
영남일보 기사 입력 2023-10-05 | 수정 2023-10-05 07:34 | 발행일 2023-10-05 제13면인쇄
절집은 간데없고 들판서 홀로 인고의 세월
탑은 묘였다. 석가모니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이었다. 불상은 더 많은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기 위해 나타났다. 절집은 탑과 불상을 위해, 그것에 예배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러나 절집이 사라진 탑, 절집보다 작아진 탑, 논 가운데 혼자 서있는 탑, 마을의 한가운데서 집들에 둘러싸인 탑, 천변의 풀밭에서 나날이 늙어가는 탑에서 보이는 것은 탑이 아니다. 그것은 간절한 기원, 지극한 정성, 무수한 발자국 소리다. 그것은 살아있었던 사람들의 것이고, 현재적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오래된 호흡이며,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 하나의 증여가 되어 돌아오는 현재다.
국보 187호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 조성 추정
보물 610호 현리삼층석탑 9세기 건립
12지신상·8부중상·사천왕상 등 새겨
현리 모전석탑, 감실 당초문양 특이
◆ 입암면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신구리 삼층석탑, 신사리 석탑
첩첩으로 둘러싼 검푸른 산들은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장엄하다. 소리도 없이 흐르는 강물은 소쇄하고 물가의 대지는 텅 비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 국보 187호인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이 자리한다. 진입하면서 바라보면 자연의 스케일 때문에 그리 크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탑의 위용은 압도적이다. 산과 물과 대지로 둘러싸인 고요한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듯 팽팽하고 조밀한 시선이다. 바람마저도 저 시선의 언저리를 맴돌다 떠날 것 같다.
산과 물의 골짜기라는 산해리의 반변천 변이다. 마을 이름이 봉감(鳳甘)이어서 이 탑은 오래전부터 봉감탑이라 불렸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현존하는 모전석탑과 전탑 대부분이 긴 시간 동안 파손되고 결실되어 그 원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참 귀하다. 무엇보다도 이 탑은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 해체되고 연구되고 복원된 유일한 탑이라 한다. 탑은 굉장히 크다. 높이는 11.3m, 초층의 너비는 3m가 넘는다. 토석을 섞어 만든 단층기단 위에 2단의 탑신 받침을 쌓고 수성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5층의 탑신을 쌓아 올렸다. 1층의 탑신에는 화강암 테두리의 문이 남쪽으로 열려 있다. 속은 어두워 보이지 않지만 직사각형의 방이라 한다. 사리함이 있었을 듯한데 함의 조각만 발견되었을 뿐 사리구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석탑 주변에서 기왓장과 청자 조각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에 저 모전석탑의 규모에 맞는 큰 절집이 있었을 법하나 그에 대한 기록이나 전해오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
반변천 물길을 거슬러 북쪽으로 오르면 입암면 소재지인 신구리에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84호인 '영양 신구리 삼층석탑'이 자리한다. 조금은 한산한 신구2리의 마을 안, 조선 중기에 지어진 약산당 바로 앞이다. 2층의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소박한 모습으로 신라 시대의 것으로 여겨진다. 1층 탑신석 상부에는 직사각형 사리공이 있었으나 사리 장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옆에는 마멸이 심한 불상 하나가 앉아 있다. 작고, 훼손이 심한 데다 보수의 흔적마저 보인다. 석탑과 석불좌상은 마치 보리수 아래의 싯다르타 같다. 반변천 서편 신사리 새골마을 입구에도 작은 석탑이 있다. 그저 '영양 신사리 석탑'이라고 불리는 이 탑은 훼손된 탑신부 부재들을 이리저리 쌓아 놓아 간신히 돌탑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고 건립 연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새골은 고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고 배산인 부용봉에는 산성의 흔적도 남아 있다. 석탑은 마을의 선두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 제 모습은 잃었지만 여전히 강건해 보인다. 흩어진 부재를 수습해 쌓아 올린 이는 누구였을까.
◆ 영양읍 현리 오층모전석탑, 현리 삼층석탑, 화천동 삼층석탑
반변천을 거슬러 올라 영양 읍내로 들어서기 직전에 현리라는 마을이 있다. 원래 영양현의 읍치였던 곳으로 예전에는 현동이라 불렀다. 천의 남쪽은 현2리, 북쪽은 현1리다. 현2리 반변천 변에 오층의 모전석탑이 자리한다. '영양 현리 오층모전석탑'이다. 석재를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축조한 이 탑은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서리 돌들이 둥글고 부드러워 시간의 흔적이려니 했는데 그리 치석한 것이라 한다. 1층의 탑신 남쪽에 감실이 있고 안에는 최근에 모신 듯한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감실의 문설주에 새겨져 있는 당초문양이 특이하다. 일제 강점기 때는 4층 일부까지 남아 있었다 한다. 이후 2층까지만 남아 있던 것을 1979년경에 5층으로 복원했다. 해체복원과정에서 일부 변형되었지만 봉감탑과 같은 재료를 사용했고 같은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최근 보물 2천69호로 지정됐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인 영성사(永成寺)가 이 탑을 지키고 있다.
현리 오층모전석탑에서 반변천 너머 들판을 바라보면 영양로 고가도로의 다리 사이로 쓸쓸하게 서 있는 삼층석탑이 보인다. 보물 610호인 '영양 현리 삼층석탑'이다. 탑의 높이는 4.27m로 아담하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아래층 기단에는 12지신상, 위층 기단에는 8부중상, 1층 탑신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구성과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삼층석탑에서 150여m 떨어진 곳에는 2.1m 높이의 당간지주가 하나 서 있다. 둘이어야 하는데 하나다. 장대를 꽂는 구멍이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깊게 파였다. 주변에 신라와 고려 시대의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저 너른 들판이 옛 절집의 규모를 상상케 한다.
현리의 동쪽으로 반변천의 지류인 화원천을 따라가면 대천리 지나 화천리다.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골짜기의 물이 화원천으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천 따라 200여m를 들어가면 몇 채의 민가에 둘러싸인 삼층석탑이 있다. 보물 609호인 '영양 화천리 삼층석탑'이다. 이 탑은 현리 삼층석탑과 '쌍둥이 탑'으로 불린다. 축조연대와 조각장식, 전체적인 모양 등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한 석공의 손에서 두 탑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화천리는 영양읍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가의 마을이다. 고개를 넘어 고을과 고을을 오가던 많은 사람들의 걸음이 이 탑 앞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탑신에 새겨진 사천왕이 발밑에 악귀를 꽉 딛고 서 있다.
◆ 영양읍 삼지리 모전석탑과 일월면 용화리 삼층석탑
영양읍 북쪽에 삼지리가 있다. 세 개의 연못이 있어 '삼지'다. 아주 오래전 연못은 반변천이었으나 어느 날 천지가 변하여 못이 되었고, 또 어느 날 못에는 연꽃이 피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뒷산 중턱에 신라 시대 고찰인 영혈사가 있었다고 전한다. 절집은 400여 년 전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연대암이 들어섰다.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사월(沙月) 조임(趙任)이 임진왜란 이후 지은 암자다. 암자 뒤편에는 자연 석굴이 있는데 '영혈(靈穴)'이라는 샘이 솟는다. 18세기 초의 기록에 따르면 영혈에서 기우제를 올렸는데 영양의 진산인 일월산보다 먼저 제를 올리는 영험한 샘이었다고 한다. 암자의 오른쪽 절벽 끝 햇살이 스며드는 자리에 전탑이 서 있다. 과거 영혈사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이 없어 '삼지리 모전석탑'으로 불린다. 삼국통일 이전에 만들어진 호신불이라 하니 탑은 천년도 더 된 셈이다. 높이는 3.14m로 원래 3층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2층까지만 남아 있다. 1962년 탑을 수리할 때 감실 바닥에서 4좌의 금불동이 발견됐다고 하는데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1998년의 해체 보수 때는 석재 사리함과 사리 1과가 출토되었다. 탑은 오랜 세월 풍화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지만 여전히 당당하다. 탑에서 연지가 내려다보인다. 연지에는 지금도 신라 시대의 연인 법수홍련이 피어난다.
이제 더욱 북쪽으로 거슬러 반변천이 시작되는 일월산으로 향한다. 일월산의 북쪽과 서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 반변천을 이루는 깊은 골짜기에 옛날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용들이 모두 뜻을 이루어 하늘로 올라간 뒤 골짜기에는 용화사(龍化寺)라는 절이 지어졌다. 지금은 전설과 오래된 탑만이 남아 있는 그곳이 오늘날 일월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마지막 마을인 '용화리'다. 탑은 길가의 밭 한가운데에 서 있다. '용화리 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으로 네 개의 판석을 세워 조립한 기단석 위에 높이 3.41m로 올라 있다. 상륜부는 없어졌지만 안정감 있는 단아한 모양이다. 용화리 삼층석탑을 떠올릴 때마다 푸른 밭의 가장자리에 나 있던 탑으로 가는 희미한 길이 떠오른다. 그 길에 서면 탑은 바다에서 솟은 듯했고, 마당 넉넉한 집에서 들려오던 고추 쏟아붓는 소리가 파도 소리 같았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14:50~14:58 “신사산악회” 버스로 경북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 391-6 번지에 있는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으로 이동
[8분, 4.1km]
14:58~15:10 국보인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을 관람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지정종목 : 국보
국보 지정(등록일) : 1977.08.22.
소재지 : 경북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 391-6
수량/면적 : 1기
통합 분류 : 탑 /석탑
건립연대/시대 : 통일신라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 영양군
국가유산 설명
경북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 강가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이 마을을 ‘봉감(鳳甘)’이라고 부르기도 하여 ‘봉감탑’이라 이름 붙여졌었다. 석탑 주변의 논밭에 기와조각과 청자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어, 이 일대가 절터였음을 알 수 있다.
탑은 벽돌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흙과 돌을 섞어 낮게 바닥을 깔고, 10여 개의 길고 큰 돌을 짜서 쌓았다. 그 위의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 모두 벽돌 모양의 돌로 쌓았다.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두었는데, 감실 양쪽에 둔 2개의 화강암 기둥과 이맛돌의 섬세한 조각이 장식적인 효과를 더해주고 있다. 2층 이상의 몸돌은 독특하게도 중간정도의 높이마다 돌을 돌출되게 내밀어 띠를 이루고 있다. 지붕돌은 전탑의 양식에 따라 아래윗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고 있으며, 처마의 너비는 좁아져 있다.
1단 기단의 모습과 돌을 다듬은 솜씨, 감실의 장식 등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균형과 정연한 축조방식을 갖추고 있으며,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우수한 작품이다.]
[통일신라시대 모전탑
통일신라시대 모전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불교 탑으로, 전탑(흙벽돌로 쌓은 탑)의 형태를 석재로 재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모전탑의 정의와 특징
모전탑은 통일신라부터 고려시대까지 유행했으며, 석재를 벽돌 형태로 가공해 쌓는 것이 핵심입니다.
대표적으로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과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이 있습니다.
기단은 주사위 모양의 돌을 2단으로 쌓거나, 1단으로 간략화해 독특한 구조를 보입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1장의 돌로 만들며, 1층 몸돌에는 감실(불상 모시는 방)과 인왕상(수호신) 조각이 특징입니다.
통일신라 모전탑의 의의
전탑과 석탑의 융합: 전탑의 벽돌 형태와 석탑의 구조를 결합해, 신라 불교미술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보여줍니다.
지역적 분포: 주로 경상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통일신라 후기로 갈수록 구조가 간략화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통일신라 모전탑은 불교 신앙과 건축 기술의 융합을 대표하는 석조물로, 전탑과 석탑의 장점을 동시에 지닌 독특한 양식입니다.]
15:10~16:23 “신사산악회” 버스로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652-1 번지에 있는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으로 이동 [1시간 13분, 81.2km]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한자 義城塔里里五層石塔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 4길[탑리리 1383-1]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재원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오층 석탑.
[개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통일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석탑이지만 전체적인 형태에서 벽돌 모양으로 쌓아 올린 전탑과 목조 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이다.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부를 구성하였다. 이 석탑은 기단 구조와 지붕돌[옥개석] 상하면에서 전탑의 양식을 볼 수 있고, 초층 옥신의 우주 및 탱주의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엔타시스 수법, 추녀 전각부의 반전 등 목조 건축 양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초기 석탑 양식의 형성 과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건립 경위]
현재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전탑과 목조 건축의 수법을 함께 보여주는 축조 양식으로 보아 통일 신라 초기인 700년 전후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위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의 중앙선 철도변의 높은 언덕의 대지 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옛 면사무소가 있었던 자리였다고 하며, 인근에는 금성산이 자리 잡고 있다.
[형태]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높이 960㎝, 기단 폭 450㎝이다. 기단부는 14매의 장대석으로 구축된 지대석 위에 이루어져 있는데, 24매의 판석으로 면석을 구성하였고 각 면마다 우주와 2주의 탱주가 모두 별도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갑석은 8매의 판석을 결구하여 덮었는데, 부연은 표시되지 않았으며 갑석 윗면에는 1단의 굄돌을 놓아 초층 옥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각 층의 옥신[몸체]과 지붕돌이 각기 다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층 옥신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초층 옥신은 각 면마다 우주가 별석으로 세워졌다. 남쪽 면에는 불상을 모신 것으로 보이는 감실이 만들어져 있으나,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주는 배흘림 양식이 있고, 주두에 좌두와 그 위에 액방·형방이 이중으로 조각되어 있어 목조 건축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2층 이상의 옥신에는 각 면마다 우주 외에 중앙에 1주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낙수면과 1층 받침이 별석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4·5층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층급 받침은 초층이 4단이고 2층부터는 5단이다. 낙수면은 모두 6단의 층단이 있고 추녀는 전각에 이르러 약간의 반전을 보이고 있다. 추녀 부분에는 풍탁을 달았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있다. 상륜부는 현재 노반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현황]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주요 구성 암석은 유문암질 응회암이며, 소량의 응회각력암과 대체석인 세립질 화강암이 혼용되어 있다. 석탑이 위치한 금성면 일대에서 화산암류는 금성산을 중앙부로 점하여 분포하고 있으며, 금성산의 유문암질 응회암과 석탑의 암석은 거의 동일한 경향을 보인다. 현재 균열, 박리 박락 등과 같은 물리적 손상과 변색 및 생물학적 오염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석탑 전면에 걸쳐 표면 오염물에 의한 흑색 및 갈색 변색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밀 훼손도 진단과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주변 지역은 넓은 공터에 잔디를 심고 펜스를 설치하여 보호하고 있다. 석탑이 있는 언덕 앞에는 설명문을 세워 관람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전탑과 목조 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과 함께 통일 신라 전기의 석탑 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16:23~16:40 국보인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을 사진촬영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국보 지정(등록)일 : 1962.12.20.
위치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오층석탑길 5-3
탑리리 마을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5층 석탑이다.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전탑(塼塔) 양식과 목조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바닥을 깐 뒤, 목조건축을 본떠 가운데기둥과 모서리기둥 모두를 각각 다른 돌로 구성하였다. 탑신은 1층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목조건축의 지붕 끝을 떠올리게 한다. 각 부분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응용하는 한편, 곳곳에서 전탑의 조성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6:40~20:30 “신사산악회” 버스로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을 출발하여 서울 지하철 3호선 신사역으로 귀경 [3시간 50분, 252.2km]
영양 입암면 [소원봉&부용봉] 탐방지도
영양 [서석지&약산당] 지도
[부용봉&영양산해리오층모전석탑] 지도
의성군 탑리리 오층석탑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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