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문화 광장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가 곳곳에 오롯하다. 그런데 아파트 이름이 '혁명 1910'이라는 독특하게 지은 아파트가 있다. 멕시코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좋아한다. 수없이 일어났던 혁명 중에서 1910년이라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그렇게 지름 지은 것 같다. 아파트 옥상 꼭대기에 씌여진 글씨가 있는데 그 뜻이 '혁명 1910'이란다. 멕시코의 역사를 느끼게 하는, 그리고 시민들의 역사에 대한 시각을 알게 하는 참으로 독특한 이름의 아파트를 보았다. 1910년 멕시코 혁명에 대한 2004년 11월 9일자 동아닷컴 뉴스보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20세기 초 멕시코의 정정(政情)은 혼란스러웠다. 1876년 집권한 프로피리오 디아스 대통령은 겉으로 멕시코의 민주화를 바란다고 이야기하면서도 7번째 연임을 노리고 있었다. 결국 반대파의 리더이던 프란시스코 마데로를 투옥하고 1910년 6월 부정선거를 통해 스스로 당선자라고 선언한다.
감옥에서 나온 마데로는 미국 텍사스의 샌안토니오에서 선거 무효를 주장했다. 그리고 민중에게 1910년 11월 20일 오후 6시에 정부에 맞서 들고일어날 것을 촉구하는 ‘산루이스포토시 계획’을 발표했다. 20세기의 첫 사회혁명으로 꼽히는 멕시코혁명의 시작이었다. 재집권 저지가 1차 목표였지만
멕시코 혁명은 민족주의적인 농민혁명이었고 다수의 지도자에 의해 여기저기서 일어난 민중의 폭발이었다고 시인 옥타비오 파스가 말했다. 혁명의 싹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었다.
디아스 대통령 시절 멕시코의 부(富)와 권력은 광대한 땅을 소유한 일부에게 편중됐다. 일반 민중은 교육 받을 기회조차 없이 가난에 허덕였다. 무장 반란이 계속되자 이듬해 5월 디아스는 결국 물러났다. 마데로의 집권, 쿠데타, 내전이 이어진 끝에 1917년 혁명정부가 수립됐다. 정부는 농민과 노동자 계급을 위해 대규모 농지 개혁과 기업의 국유화,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결국 바라던 세상이 왔을까.
혁명의 이념을 제도화하겠다는 제도혁명당. 하지만 70년 넘게 집권하면서 혁명의 이념은 점점 빛이 바랬다. 대통령이 초헌법적인 존재로 군림했고 자신의 후임자를 지명했다. 대물림되는 절대 권력의 그늘에서 부패가 독버섯처럼 자랐다. “정부 예산 밖에서 살면 불행한 인생”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극단적인 빈부 격차와 구조화된 가난이 찾아왔다. 2000년 7월 2일 다시 혁명이 일어났다. 야당 후보인 비센테 폭스 케사다가 사상 처음으로 집권당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폭스는 “이제 21세기 혁명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기업인 출신인 대통령은 자신이 호화스러운 생활로 구설에 올랐다. 경제는 침체됐고 정치권에선 여전히 부패 스캔들이 툭툭 불거진다.
“승리가 달성되면 혁명은 그 자신을 배반하게 된다”는 문호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말에 예외는 없는 것일까.
국민들은 어느 나라든 평화롭고, 자유와 민주적이길 소망한다. 정권이 바뀌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이지만, 대부분 그리 큰 변화는 없다. 멕시코 역시 1910년 혁명에 대한 기대만큼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멕시코 최초의 혁명이란 점에서 멕시코시티 시민들은 기억하고 싶은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