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숙진
피곤해 자고 싶은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TV를 보면 잠이 오려나 싶어 ‘헤이 크로버 TV 켜’~ 주문을 넣었다. OCN에서 배우 박해일이 어설프게 자살을 시도하고 있었다. 박해일은 좋지만, 자살은 싫어서 리모컨을 찾고 있는데 윤여정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네가 좋아하는 백숙 끊여놓았어, 먹으러 와, 그런데 담벼락에 예쁘게 꽃이 피었구나! 화면을 보니 자살하려다 말고 백숙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전화에 심각한 표정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모습이 코믹하여 놔두었다. 한 편으론 잠들 목적이었으니 솔직히 기대감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영화 < 고령화가족>를 끝까지 다 보고도 여운이 남아 새벽 3시가 넘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막장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낸 블랙코미디 영화로 재미 속에 큰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뭉치 전과자 큰아들 한모, 파산하여 실업자가 된 영화감독 둘째 아들 인모, 두 번 이혼한 딸 미연과 그녀의 딸 민경이가 능력도 없이 혼자 사는 엄마 집으로 모이면서 영화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사실 이 삼 남매는 아버지도 다르고 엄마도 다른 뒤죽박죽 집안이다. 자식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성장했으나 모두 결혼과 사회생활에 실패하고 오갈 때 없어 엄마 집에 모였 <고령화 가족>을 만든 것이다. 가족 평균 나이 47세, 이런 자식들을 보고 엄마는
“식구가 별거니? 한 곳에 모여 살면서 같이 밥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울고 웃으면 그게 가족이지”
엄마는 자식들 끼니 챙기기에 온 정성을 다한다. 나이는 어디로 먹었는지 서로 삼겹살 먹겠다고 달려드는 늙은 자식들에게 눈 한 번 흘기지 않고 더 구워 먹이지 못해 안달이다. 이들은 이런 엄마의 밥을 꼬박꼬박 받아먹곤 그 힘을 원수처럼 싸우며 지내는 걸로 풀어버린다. 그러다 중학생 민경이가 가출하자 조카 찾기에 한마음이 된다. 조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한모는 조폭들과 협상하지만 그들의 사기행각을 알게 되어 조카를 구한 후 피한다. 인모는 도망친 형을 위해 죽도록 맞아가면서도 형의 안위를 지키려 하고, 그런 동생을 지키기 위해 다시 돌아와 불구가 되면서까지도 동생을 지켜내는 형제애는 ‘가족은 희생 없이 이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교훈을 준다.
나는 이 가족 속에 묘하게 흐르는 끈끈한 사랑이 탐났다. 또 영화에서는 피도 안 나눈 막장 가족도 보란 듯이 이렇게 이해와 사랑으로 똘똘 뭉치는데 피를 나눈 가족은 어려울 때 어떻게 뭉쳐 살고 있냐고 묻는 듯했다. 가족끼리 뭉쳐야 산다고 하면서도 현실은 뭉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느껴져 이리 생각되었나 보다.
실패하여 앞날이 캄캄한 사람들끼리 한 집에 모여 사는 <고령화 가족>은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배고프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밥상에 둘러앉아 게걸스럽게 삼겹살을 먹어대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뭘 믿고 저리 먹어대나 싶은데 엄마는 어려울수록 잘 먹어야 한다며 집착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고기반찬을 해 먹인다. 그러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해탈 경지의 살고자 하는 엄마의 몸부림을 이해하게 되고, 그 모습에서 위로도 받으며 반성도 되었다.
과연 내가 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떠했을까? 뒤 돌아 생각하면 있을 수도 있는 작은 잘못까지도 자식들에겐 시시콜콜 따져가며 혼내지 않았던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난 단 한 번도 ‘묻지 마 밥’을 해 먹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좌절의 끝에 서 있을 때마다 괜찮다며 따뜻한 밥상을 들이밀곤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지켜보던 사람은 내 엄마였는데도 말이다.
영화를 통해 가족의 행복을 이상적인 수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같이 자고, 밥 먹고 울고 웃는 평범한 수준에서 찾아야 함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합리화 같지만 문명이 발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족 간에도 더 높이, 더 멋지게 살아가는 것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래서 얻은 것이 가족적 이기주의라면 지금보다 훨씬 울퉁불퉁하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웠지만, 가족이 함께 부딪쳐 해결하고 끌어안았던 지난 세월 속의 잃어버린 시간이 소중하고 그리워 되찾고 싶다.
<고령화가족>이 진정한 가족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잃어버린 시간을 담담하게 찾아낸 엄마의 힘이었다. “ 담벼락이 꽃이 예쁘게 폈지, 엄마처럼 말이야.”
‘담벼락의 꽃’은 엄마의 상징이다. 담벼락에 핀 꽃이 얼마나 힘들까, 엄마의 삶이 그러했다. 그런 엄마가 담벼락에 핀 꽃을 보고 빙긋이 웃는 그 모습은 소박하면서도 기품 있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살아있다는 모든 것으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인모의 독백으로 영화는 끝난다. 서로를 인정하게 되면서 혼란스럽고 위태로웠던 과거와 화해하고 나름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더 이상 <막장가족>도 <고령화가족>도 아닌 <사랑스러운 가족>으로 담벼락 꽃처럼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