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7일 연중 제19주간 (토) 말씀 묵상 (에제 18,1-10ㄱ.13ㄴ.30-32) (이근상 신부)
“너희는 어찌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자식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말해 대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가 다시는 이 속담을 이스라엘에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보아라, 모든 목숨은 나의 것이다...... 아버지의 목숨도 자식의 목숨도 나의 것이다. 죄지은 자만 죽는다."그러므로 이스라엘 집안아,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회개하여라.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돌아서라. 그렇게 하여 죄가 너희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여라.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 나는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러니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에제키엘 18,2-4. 30-32)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심판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새로울게 없는 당연한 말처럼 들리는데, 사실 이 말씀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다. 부모의 죄를 자식에게 묻지 않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부모의 죄로 호의호식하는 자식이라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왕의 죄를 신하에게 묻지 않으며, 나라의 죄를 그 나라 사람에게 묻지 않고, 백인들의 죄를 한 백인에게 묻지 않는 식으로 확대해나가면 죄란게 죄의 결과에 따른 수혜자란게 있으니 그 수혜만큼을 다 토해내야만 할 것같고, 책임도 좀 져야할 것같고, 결국 어느정도 죄값을 치뤄야 할 것같다. 어떤 나라가 우리 나라를 침략해서 수탈했으면 그 나라 사람 모두가 미워지고, 그 나라 사람 모두가 책임을 져야만 할 것같다.
이렇게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서 심판하리라는 말씀은 그만의 책임경계를 그어준다는 말씀인데... 문제는 그런 경계란 없다는데 이 말씀의 깊이가 있다. 우린 다 얽혀있다. 죄없다고 시침을 떼보아야 이 불평등한 세상에, 전쟁과 죽음이 지금 이 시간 쉼없이 일어나는 순간에, 바로 그 땅에 무기를 팔고, 그걸로 돈이 도는 나라에서 내가 밥을 먹고, 불을 켜고, 통장 잔고를 늘리고 있다면 나는 세상의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도의 차이일 뿐. 억만보대 백보는 다른 거라고 위안해 본들. 피의 흔적을 누가 피할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걸어온 길, 딱 내가 치룬 일에 따라 심판할 것이니 회심하라는 초대는 심판이 아니라 회심에 방점이 찍힌 말씀이다. 죄값을 정당하게 치루는데 방점이 있는게 아니라 이제라도 마음을 고쳐 다른 길을 살라는데 방점이 있다. 고쳐도 바꾸어도 크게,.. 그러니까 모든게 바뀌지는 않는다. 저마다 걸어가는 길이란 어쩌면 너무 작은 변화밖에 못 만드는 경우가 태반. 그러나 바로 그것으로 심판받듯 바로 그것으로 회심하라는 초대.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8MKyrdxN8MXFmzxzATTawUd8spNVgxyEw3udzymkYDzrmfPWntUPbuBMCGWjyKJFl